세대·계층·지역 '3각축' 형성하라

[진단] 정상호 박사의 '노무현 위기와 해법'

등록 2002.06.29 10:00수정 2002.07.03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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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6월 26일 '부패청산을 위한 노무현과 시민사회지도자 간담회'에 참석한 노무현 후보. ⓒ 오마이뉴스 이종호

민주당의 6·13 지방선거의 참패 원인에 대한 일부 언론과 정치학자들의 분석은 다음 몇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지지자(구매자) 측면에서 볼 때 전통적 민주당 지지계층인 호남 유권자들의 결속력 약화, 한나라당의 지역기반인 영남 유권자들의 응집력 강화, 민주당과 전략적 제휴관계였던 충청권 지지자들의 이탈이 결정적 원인이라는 분석이다.

조직 및 전략(마케팅) 측면에서는 민주당 지도부의 일관된 전략 부재와 당의 비효율적인 선거 시스템이 지적된다. 끝으로 상황적 요인(시장, 환경)으로 대통령 아들들의 비리문제의 쟁점화가 유권자들의 후보결정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이 강조된다.

노무현 지지층과 민주당 지지층의 부조응

이러한 설명들은 나름대로의 근거와 설득력을 갖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요인을 간과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필자가 보기에 참패를 초래한 근인(根因)은 후보와 당의 분리, 보다 정확하게는 노무현 지지계층과 민주당 지지계층의 부조응에 있다고 보여진다.

사실 6·13 지방선거의 패배는 예견된 결과였다. 98년 6·4 지방선거 당시만 해도 DJP 공조가 수도권과 충청권에서 나름대로 영향력을 발휘하였고 집권당이었던 국민회의는 총재인 DJ의 단일한 지도 아래 확고한 응집력을 유지하였다.

새 정부에 대한 기대와 IMF를 초래한 한나라당에 대한 심판이라는 선거전략이 유효하여 국민회의는 기대 밖의 선전을 거둘 수가 있었다. 그러나 이번 6·13 선거에서 상황은 반전되었다. DJP 공조는 와해되었으며 심판의 대상은 부패정권으로 규정된 집권 민주당이었으며, DJ가 떠난 민주당의 응집력은 전례없이 약화되었다.

외연은 축소되고 조직력은 와해되어 그 정도가 문제였지 패배가 거의 확실한 상황에서 민주당 지도부나 당원들에게 혹시나 하는 기대를 갖게 만들었던 유일한 근거는 국민참여경선제를 계기로 분출한 '노무현 현상'이었다.


국민경선제가 진행되었던 3월과 4월 두 달 동안 노무현 후보는 이회창 후보를 많게는 27%에서 적게는 12%까지 압도하였다. 더욱이 이러한 우위가 안팎의 이념공세와 색깔론을 물리치고 지켜낸 것이었기에 일시적 바람 이상의 견고한 지지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6·13 선거에서 명확히 드러난 것처럼 민주당의 희망이었던 노풍은 후보와 당 간의 심각한 균열과 긴장을 내재하고 있었다. 경선이 한창이었던 4월 18일 TNS 설문조사에 의하면 노무현 후보와 이회창 후보의 지지도 격차는 16%에 달했지만 정당지지도에 있어서는 오히려 한나라당이 민주당에 4.5% 앞서는 기이한 현상이 나타났다.


경선이 막바지에 이르렀던 4월 27일 한국갤럽 조사 역시 두 후보의 지지도 격차는 여전히 10% 이상을 유지하고 있지만 정당지지도에 있어서는 한나라당이 근소하게나마(2.4%) 앞서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정당정치가 확립된 서구의 경우 후보와 당의 지지도는 한 묶음으로 나타난다. 왜냐하면 토니 블레어의 열렬한 지지자들의 대부분은 영국 노동당의 전통적 지지자들이며, 슈뢰더나 요스카 피셔의 지지자들 역시 독일 사민당이나 녹색당의 오랜 지지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무현 지지자들은 민주당의 강령과 정책에 찬동하였던 민주당의 확고한 지지자들이 아니었다. 그것을 구성하는 중심적 한 축은 기존의 민주당 당원과 대의원들이겠지만 보다 중요한 또 다른 한 축은 언론개혁과 정치개혁, 민족문제의 해결과 지역주의 타파를 염원하는 20대에서 40대까지의 친개혁 성향의 세대집단이었다.

'세대정치'의 공격적 활용

▲ 6.13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다음날인 14일 대책회의에 참석한 노무현 후보가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돌이켜보건대 패배가 예견되었던 이번 선거의 관건은 정치인 노무현에 대한 개인적 지지를 민주당에 대한 정치적 지지로 전환시킬 수 있느냐의 여부였다. 그러나 이러한 '지지의 제도화 과정'에서 나타난 노무현 후보나 민주당 지도부의 능력과 인식은 실망스러운 수준이었다.

DJ와의 차별화를 둘러싼 당내의 논의는 계승과 단절 혹은 정치적 신의와 대중적 정서라는 이분법에 갇힘으로써 DJ를 넘어선 노무현의 비전과 대안 제시로 발전하지 못하였다.

무엇보다도 결정적 오류는 20대에서 40대까지 광범위하게 조성되었던 개혁과 참여 욕구를 수용할 수 있는 정당개혁과 정치개혁의 과제를 방임함으로써 '부패정권 심판'이라는 한나라당의 선거전략에 수동적으로 끌려가게 되었다는 점이다. 적대적인 언론환경 속에서 후보는 결단력보다는 조급성을 보였으며, 정제되지 않은 성급한 표현들은 자신을 구속할 족쇄로 작용하였다.

민주당으로서 다행인 것은 6·13 지방선거가 대선과 6개월의 시차를 두고 있다는 점과 차라리 완전한 패배의 결과가 어정쩡한 절충이 아니라 근본적 자기 개조의 기회를 제공하였다는 점이다. 또한, 두 후보간의 지지도 역전 현상이 이회창 후보의 지지도 급증 때문이 아니라 노무현 후보의 지지도 이탈에 기인한다는 점 역시 반전의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패배의 원인이 그러하다면 해법은 의외로 간단할 수 있다.

첫째는 '세대정치'의 공격적 활용이다. 한국정치사의 새로운 키워드로 등장한 세대는 보혁구도의 소모적 논쟁을 지양하고 지역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 또한 진보정당이 확립되지 못한 현재의 정치구도에서 세대는 민족문제, 분배문제, 환경문제를 둘러싼 정치적 대립이 가장 분명히 나타나는 접점이다.

이러한 문제들에 가장 보수적 입장을 견지하여 왔던 신문사가 '세대간 갈등은 지역주의에 이어 사회적 분열을 초래할 또 하나의 위험요소'라고 우려하는 까닭은 그것의 잠재적 폭발성 때문이다.

또한 그 신문사에서 발행하는 월간지가 '어른은 투표로, 청년은 축구로 애국심을 폭발시키고 있다'며 '20대의 정의감이 북한동포 해방과 김정일 붕괴로 이어질 것'이라고 속보이는 세대론을 주장하는 데에는 젊은 세대들의 집단적 에너지를 선점ㆍ활용하려는 의도가 짙게 배어 있다.

정리하자면 문제의 핵심은 세대간 균열의 봉합이 아니라 정당을 매개로 그것을 더욱 공고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20대에서 40대까지의 청장년세대에 집중하는 세대전략은 이들의 낮은 투표율과 변덕 성향을 고려할 때 위험하기 짝이 없다는 인식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노사모와 붉은악마의 성공이 잘 입증하고 있다.

노무현 후보의 지지도가 절정에 올랐던 시점은 '악의 축' 발언으로 민족문제가, 빌라파동으로 계층문제가, 장인전력시비로 이념문제가, 조폭언론 발언으로 언론개혁이 첨예한 이슈로 부각되고 이를 둘러싼 정치적 대립이 가장 선명하였던 시점임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노무현 프로그램의 목표는 세대가 결집할 수 있는 분명한 대립축을 공격적으로 구축하고 이들이 발언하고 참여할 수 있는 새로운 채널을 제공하는 것에 두어야 한다. 그리고 그 시작은 노쇠한 연청 조직의 전면 재편과 같은 민주당 내부의 자체 개혁이어야 하며, 그 방법은 자발성과 개혁성에 기반한 노사모 방식의 확대과정이어야 한다.

계층정치의 확대와 탈지역주의 전략

ⓒ 오마이뉴스 이종호
두 번째 해법은 '계층정치의 확대'이다. 6·13 지방선거에서 나타난 민주노동당의 약진은 계급정체성에 기반한 이념정당의 출현이 멀지 않았음을 예고하고 있다. 그러나 냉전수구세력이 압도적 권력을 갖고 있는 한국적 상황에서는 진보적 계급정당의 필요성만큼이나 합리적 중도개혁세력의 공고화 역시 중차대한 과제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합리적 개혁세력의 존립근거를 주로 민주주의와 인권, 남북관계 등 정치적 차원에 두어왔다. DJ의 대중경제론이나 민주적 시장경제론이 제대로 시도조차 되지 못한 데서 알 수 있듯이 경제분야에서의 차별적 비전과 정책대안 제시는 상대적으로 소홀했다.

50대 서민후보와 60대 특권귀족과의 대결이라는 노무현 후보의 출마의 변은 계층적 대립을 대중적 수준에서 효과적으로 응집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출사표는 정당과 정책적 수준에서 구체성을 갖지 못한 채 출신 및 성장과정에 기반한 후보간의 이미지 대립과 소모적인 원조 서민논쟁으로 왜곡되고 말았다.

민주당은 오래 전부터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 국민정당을 표방하였지만 서민과 중산층을 감동시킬 수 있는 정책개발에는 무관심했다. 위기의 돌파는 소모적 정계개편이 아니라 적어도 서민과 중산층이 일상 생활에서 절실히 체감하고 있는 교육ㆍ육아ㆍ실업의 3대 민생분야에 대해 설득력있는 정책대안을 제시하는 것에서 찾아야 한다.

마지막 해법은 '탈지역주의 전략'이다. 기존의 모든 지역주의에 대한 접근의 명분은 지역주의 탈피였지만 내용은 특정지역간 연대에 기반한 '지역주의 공고화 전략'이었다. 이러한 지역주의 전략은 단기적으로는 집권에 기여했을지는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정치 불안정을 초래했고 정당정치의 확립을 저해했다.

호남에 근거를 둔 민주당의 영남출신 후보로서 노무현의 지역주의에 대한 접근은 두 가지 방향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하나는 앞서 설명한 세대와 계층정치에 대한 집중이다. 특정지역에 뿌리를 둔 다른 정당과의 상층연합은 구태의연할 뿐만 아니라 성공가능성도 낮다. 지역주의 타파를 전면에 내걸고 전국적 단위에서 서민과 중산층 연합을 구체화시켜야 한다.

이러한 시도는 성공 가능성이 낮기는 하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개혁 드라이브를 강하게 밀어 부쳤던 임기 초반 YS의 지지도는 당대의 인기 가수 서태지를 능가하여 80% 수준에 육박하였는데 호남에서의 지지도 역시 평균을 상회하였다.

노풍이 몰아쳤던 4월 한 달 동안 노무현에 대한 영남권 유권자들의 지지도는 이회창을 앞서거나 오차범위 내에서 각축을 벌였다. 지역연합을 통해서가 아니라 세대와 계층을 통해서 지역주의를 타파한다는 정공법만이 영남을 비롯한 전체 유권자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

한편, 탈지역주의 전략의 다른 한 축은 민주당의 내부 개혁이다. 민주당의 민주화와 전국화의 출발점은 박근혜나 정몽준과의 결합이 아니라 '호남정치의 개혁'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3김시대의 지역주의는 대안부재에 근거한 맹목적 지지를 낳았고 그 후유증으로 부실한 견제장치와 취약한 경쟁 시스템을 남겨 놓았다.

호남지역 정치인들의 경쟁력 부재와 지역에서의 낮은 신뢰도는 이번 지방선거에서 무소속 당선자가 가장 많은 지역이 호남이란 사실로 반증된다(무소속 자치단체장이 36곳 중 11곳). DJ와의 차별화는 자연인 DJ와의 단절이 아니라 보다 개혁적이고 보다 민주적인 세력이 중심이 될 수 있도록 동교동 지배의 민주당을 해체하는 작업이어야 한다.

'개혁지향의 삼각축' 형성해야

요약하자면 민주당의 재집권은 단순한 재집권이 아니라 개혁정권의 재집권이라는 성격을 지녀야 하며, 그것의 과정은 세대-계층-지역이 각각의 개혁적 내용과 정책으로 구성된 '미래지향의 삼각축 모델'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외연확대를 위한 정계개편, 당 화합을 위한 권력분배, 정책적 유연화와 이미지의 안정화 등과 같은 전술적 요소나 정치적 고려들은 '개혁지향의 삼각축 전략'이라는 기본 원칙 하에서 구사되어야 한다. 이러한 해법은 비현실적 관념주의로 치부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3월 16일 광주 경선에서 '개혁지향의 삼각축 모델'의 원형과 그 성공을 목격한 바 있다.

돌이켜보면 단기필마로 출마한 노무현이 민주당 후보로 결정될 가능성은 한국 축구가 8강을 달성할 가능성보다 결코 크지 않았다. 한때 경선 경쟁자였던 이인제 후보가 광기라고 표현한 것처럼 노사모의 자발성과 참여 열기는 붉은 악마에 견주어 그리 뒤지지 않는다. 노무현과 히딩크 사이에는 '원칙과 소신의 지도자'라는 공통분모가 존재하고 있다.

그렇다면 새로운 역사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조건은 무엇일까. 체계적 훈련을 통한 체력과 조직력의 증강이 한국축구를 세계적 수준에 근접시킨 것처럼 후진적 한국정치를 선진화시킬 정당개혁과 정치개혁의 '파워 프로그램'이 아닐까 싶다. 2002년 한국사회는 우리를 지배해 왔던 패러다임이 분명 변하고 있으며, 희망을 확신하는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일깨워주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정상호 박사는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위원이며, 경제사회정책e아카데미 연구기획실장을 맡고 있다.

덧붙이는 글 정상호 박사는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위원이며, 경제사회정책e아카데미 연구기획실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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