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뿐인 '공직자윤리법'

<김영호칼럼> 실사 전담기구 만들고 계좌추적권 도입해야

등록 2002.06.29 11:08수정 2002.07.02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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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돌아가는 꼴을 보니 분노와 절망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게이트'라는 이름의 권력형 부패사건이 밑도 끝도 없이 터지더니 대통령의 아들들이 권력의 향연에 도취하여 벌린 돈잔치가 추악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김대중 정권도 과거의 어느 정권 못지 않게 부정부패를 척결하겠다는 의지가 결연했다. 부패방지법도 만들고 돈세탁방지법도 제정하고 부패방지위원회도 설립했다. 그런데 결과는 참담하다. 공직사회가 어느 때보다 더 썩어 악취를 풍기니 말이다.

마침 부패방지위원회가 공직자윤리법을 개정하겠다고 나섰다. 그 의지는 좋지만 이 문제는 간단하게 손질만 해서 될 일이 아니다. 공직자윤리법은 아무런 실효가 없어 사실상 사문화된 법이나 다름없다. 이 법을 살리려면 대수술을 단행해야 한다. 이 법만 제대로 살아도 공직사회는 한결 맑아질 것이다.

부패구조가 먹이사슬처럼 권력의 핵심까지 이어지다 보니 부정부패가 온 나라에 만연하다. 부패의 온천인 공직사회부터 투명하게 만들자는 뜻에서 공직자윤리법이 제정되었다. 그런데 현행법은 법망이 미비하여 부패방지에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공직자의 재산공개를 일정급 이상을 대상으로 하되 하위직은 등록만 하도록 하고, 상위직은 관보 또는 보도를 통해 공개하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신고내용을 검증할 실질적인 실사기능이 없어 누락-은닉-축소하여 신고해도 그 진위를 확인할 방도가 없다. 단순히 등록-공개하는 데만 목적을 둔 것이나 다름 없다.

이 제도를 시행해서 얻은 과실이 있다면 재산등록이 공직자에게 심리적 부담을 준다는 것 뿐이다. 선출직 입후보자도 재산신고가 의무화되어 있지만 공표 이외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의 재산신고 조항이 이 법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지난 1993년 공직자윤리법에 따라 처음으로 신고내용이 공개됐다. 당시만 해도 언론은 추적보도를 통해 많은 공직자의 재산형성에 대해 의혹을 제기했다. 그래서 이른바 '재산파동'이 일어났고 축재과정이 불투명한 몇 사람은 공직사회에서 쫓겨나기도 했다.


또 언론이 신고내용을 소상하게 보도함으로써 과거정권에서 높은 지위와 권세를 누린 인사들이 엄청나게 축재했다는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그리고 동산이 의외로 적게 신고했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귀금속, 보석류, 서화류, 골동품은 물론이고 은행예금, 유가증권, 외화를 거의 보유하지 않은 것으로 신고했던 것이다. 이것이 빌미가 되어 나중에 금융실명제를 전격적으로 실시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런데 해를 거듭하면서 언론은 재산공개의 중요성을 망각하고 보도자료를 간단히 처리해 버리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언론의 감시기능이 소홀해지면서 이 법은 사실상 존재가치를 상실한 것이나 다름 없다.


이 법에 따라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 등에 설치된 각 윤리위원회는 권한과 기능이 애매하다. 그래서 각 위원회의 심사기준-원칙이 동일하지 못해 임의성이 개입될 소지가 있고, 이에 따라 공정성-형평성에 대한 논란이 제기될 수 있다.

또 외부에 위촉한 위원은 덕망이 있는지 모르나 실무능력을 겸비했다고 보기 어렵다. 내부에서 발탁한 위원은 본인이 심사의 대상이고 이해의 대립에서 중립성을 견지하기 어려운 입장에 있다.

여기에다 실무인력도 턱없이 부족하다. 행정부의 경우 중앙공무원만도 신고대상자가 7만4,600여명이나 되는데 조사기간은 3개월에 불과하다. 사실상 실질적인 조사가 불가능한 것이다.

공직자윤리법의 제정취지는 공직사회의 부정부패를 척결함으로써 투명하고 공정한 사회를 건설하자는 데 있다. 따라서 공직자의 신고내역은 재산의 과다보유보다는 축재과정이 투명한지, 또 성실-정직하게 신고했는지가 중요하다. 그런데 이 법에는 신고내역을 실질적으로 검증할 장치가 없다. 실사를 전담할 독립된 상설기구를 설립해야 한다. 실사기능을 기존의 감사원에 통합하여 4부로 승격하는 방안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

하지만 부패방지위원회가 설립된 만큼 그 기능을 이곳으로 이관하면 업무의 효율성을 더욱 제고시킬 수 있을 것이다. 과중한 업무량만 고려해도 전담기구의 설치는 절대로 필요하다.

공개내용의 성실성-정직성을 검증할 강력한 조사권-검사권을 부여하는 것도 중요하다. 여기에는 금융감독원과 국세청에 대한 자료청구권도 포함해야 실효성을 확보할 수 있다. 금융실명제가 사실상 형해화되어 차명-가명계좌를 통해 재산을 은닉하기가 용이하다.

특히 추적이 어려운 무기명 금융채권은 누락신고하는 사례가 많다. 공직자윤리법이 계좌추적권을 부여하지 않아 금융자산의 누락-은닉신고를 사실상 확인할 수단이 없는 것이다. 부인의 보석반지가 하나도 없다거나 해외여행을 뻔질나게 다니면서 외화가 한푼도 없다고 신고해도 진실성에 의문을 제기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부동산은 전산망을 통해 보유현황을 소상하게 알 수 있다. 하지만 타인명의로 이전하거나 명의신탁을 해놓으면 파악이 용이하지 않다. 농지소유에 관한 규제가 점차 완화되고 있지만 현행 농지법은 아직도 농지소유를 비교적 엄격하게 규제하는 편이다.

따라서 불법적인 방법으로 농지를 취득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매입시점에 서류상으로만 주민등록을 이전하거나 위장소송을 통해 채권을 농지로 변제받은 것처럼 꾸민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개발예정지를 매입했다면 투기이득을 노린 것인지 알아야 보아야 한다.

또 개발제한구역에 토지를 가졌다면 그린벨트 해제와 관련해 매입시기를 확인하는 노력이 중요하다. 이것은 지위나 권력을 이용하여 미공개 정보를 입수해서 개발-투기이득을 노렸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현행법은 신고내역을 검증할 실사기능이 없기 때문에 그것을 확인할 방도가 없다.

주택소유에 관해서는 어떤 규제도 없다. 하지만 주택을 2채 이상 소유했다면 취득동기를 알아 볼 필요가 있다. 주택가격의 상승은 주택공급의 과점에 따라 일어나는 현상이다. 그 까닭에 공직자가 집을 여러 채 가졌다면 사회적으로 지탄받아 마땅하다.

1993년 재산공개 때도 고위 공직자가 소형주택을 수십 채나 소유하여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바 있다. 또 주택가격은 신고기준이 없다. 따라서 재산이 많은 공직자일 수록 주택가격을 시세에 따르지 않고 축소해서 신고하는 경향이 있다.

지난 1년새 집값이 지역에 따라 50% 가량 올랐다. 그런데 해마다 주택가격을 변동이 없다고 신고하는 공직자들이 많다. 현행법은 법망이 뚫려 부정직하게 신고해도 윤리위원회가 그 진위를 확인할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선진국에서는 정당들이 정치자금을 외부에 의존하기보다는 당원의 당비 등으로 내부에서 조달한다. 그런데 한국의 정치현실은 그와 정반대다. 당원이 정치자금을 헌금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돈을 받고 있다. 자원봉사자도 선거 때 돈을 받고 뛰는 것이 현실이다.

규모를 알 수 없지만 대통령 선거나, 국회의원 선거 때마다 막대한 선거자금이 살포된다는 사실을 모든 국민들이 잘 안다. 그런데 정치지도자의 재산공개내역을 보면 고급 아파트 한 채 값에 불과한 수준이다.

그렇다면 그 많은 추종자를 어떻게 거느리고 그 많은 집회를 어떻게 갖는지 의문이다. 음성적인 정치자금을 조달하여 사용한다는 뜻 밖에 안된다. 정치자금을 투명하게 조달하여 정치발전을 도모하는데 기여하기 위해서도 축재과정에 대한 소명은 중요하다.

해마다 재산공개 내용을 보면 많은 공직자들이 주식투자를 통해 재산을 증식했다고 밝혀 왔다. 공직자의 주식투자에 대해서도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주가조작사건이 무수하게 터졌지만 공직자의 주식투자에 대한 체계적인 규제장치가 없다.

다만 유관업무에 종사하는 실무자만 규제할 따름이다. 이 같은 제도적 미비로 인해 경제정책이나 기업활동에 관한 정보를 취득할 수 있는 지위나 권력을 가진 공직자가 유관주식에 투자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공직자는 유관업종-기업의 주식에 투자하지 못하도록 이 법이 강력히 규제해야 한다.

장관이라면 소관부처 이외에도 국무회의를 통해서, 국회의원이라면 상임위 활동을 통하여 고급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일본은 장관의 경우 어떤 주식투자도 엄격하게 제한한다. 공직자의 유관업종-기업에 대한 주식투자를 규제하지 않으면 투명한 공직사회를 기대하기 어렵다.

현행법은 직계 존-비속의 재산에 대해서는 고지거부권을 인정하고 있다. 그런데 많은 공직자들이 이 조항을 재산을 축소-누락-은닉하는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다. 재산을 부모나 자식명의로 이전해 버리면 재산을 얼마든지 감출 수 있기 때문이다.

부패방지위원회도 이 규정을 개정하도록 검토하겠다고 한다. 이 규정은 재산공개의 취지를 훼손한다는 점에서 반드시 고쳐야 한다. 뚜렷한 직장이 없거나 갓 사회생활을 시작한 자녀가 고급 아파트에 살면서 대형 자동차를 굴리는 등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다면 그 출처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변칙상속-증여가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평범하게 살아온 노부모가 재산가라면 공직자가 부모의 명의로 재산을 위장분산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 고위 공직자일수록 이 조항을 많이 이용하고 있는 사실이 해마다 실시하는 재산공개에서 드러난다. 이 규정은 부모나 자녀의 재산을 정직하게 신고한 공직자가 오히려 불이익을 받을 수 있는 모순을 지녔다는 점에서도 문제점이 크다.

공직자윤리법이 이처럼 엉터리이다 보니 재산은닉의 면죄부로 악용되고 있다. 금년에 실시된 재산공개를 보더라도 재산가로 알려진 어느 정치지도자는 지난 6년 동안 재산변동이 없다며 내역란을 빈칸으로 남겨 놓았다.

▲시사평론가 김영호 씨
또 적지 않은 국회의원들이 변동사항이 없다고 신고했다. 늘 쓰는 예금통장에도 변동이 없다면 누가 믿겠는가. 이런 행위는 재산공개의 취지를 퇴색시키고 나아가서 국민을 무시하는 처사다. 공직자의 재산신고는 국민에 대한 신성한 의무이다.

그런데 많은 공직자들의 신고내역을 보면 재산형성의 투명성을 떠나서 최소한의 정직성-성실성이 결여되어 있다. 이 법의 존재가치가 상실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뜻이다. 이런 사람들이 고위공직을 맡으니 나라가 썩어 구린내를 풍기지 않을 수 없다. 공직사회의 부패추방을 위해서는 공직자윤리법를 전면개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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