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자(6월 29일) 경향신문을 읽다가 정부의 포스트 월드컵 대책에 대한 소개를 접했다. 21세기형 에너지를 보여준 우리 국민을 상대로 정책을 마련하는 정부는 정작 19세기적 사고방식을 가진 게 아닌가 하는 우려 때문에 가슴이 답답해졌다.
기사의 내용 중 일부이다. (2면의 ‘월드컵 손익계산서’ 중 부분발췌)
“... 정부는 최근 ‘업그레이드 코리아’라는 이름으로 ‘포스트월드컵’ 대책을 내놓았다. 국민적 역동성을 ‘국가 에너지’로 전환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이 대책에는 에펠탑에 맞먹는 대규모 조형물 건립에서부터 ‘국가이미지 제고 위원회 출범까지 포함됐다. 전문가들은 이번 축제문화에 대한 국민적 욕구가 분출된 만큼 ’광장‘과 축제’를 통해 국민적 흥과 신바람을 이어가 지속적으로 사회통합의 정도와 공동체 의식을 높이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감동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생기는 것이다
이번 월드컵 기간 중 온 국민을 스스로 감동시킨 ‘거리응원’의 핵심은 누구나 인지하고 있듯이 ‘자발성’으로부터 출발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내가 좋아서 자발적으로 참여했고, 응원과정에서 일체감을 느꼈으며, 나와 닮은 이웃과 더불어 기꺼이 ‘우리’가 되었고 그런 스스로를 발견하는 놀라운 기쁨을 누렸다. 이런 순간들이 각자의 마음에 감동을 안겨주었을 것이다.
이 에너지를 우리사회 발전의 에너지로 삼아야한다는 의견에는 동감하면서도 그 방법을 정하는 데는 그 어느 때보다도 신중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좋은 기운을 생성하기는 어렵지만, 소멸시키는 것은 너무 쉽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그런 불안을 갖고 있던 터라 위에 소개한 기사내용을 그냥 지나치기 힘들었다. 가장 우려되는 문장은 ‘에펠탑에 맞먹는 대규모 조형물 건립에서부터...’라는 부분이었고, 기대감을 주었던 부분은 ‘광장과 축제’라는 단어였다.
전자는 명백히 ‘인위적인 무엇’이며 ‘전시행정적 사고’라는 혐의를 갖게 한다. 기념관이나 기념동상 기념탑 등의 기념물들이 있었지만 그것이 미래를 위해 담보하는 것은 무엇이었던가? 말 그대로 기념의 의미를 갖는다. 담당자가 행정의 치적을 내세울 때 유리한 증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뿐이다. 그것을 보면서 회고적으로 기억하는 감동은 이미 죽은 감동이다.
자발성의 터가 되어줄 광장이 필요하다
반면에 ‘광장’은 그 자체로는 그저 공간일 뿐이며 눈에 띄는 무엇인가를 보장하지는 못하지만, 더 소중한 것을 싹틔울 토양이 되어줄 것이라고 믿는다. 자발적으로 모일 수 있고, 소통할 수 있고, 일체감을 행복하게 즐길 수 있는 우리들의 마음이 우리사회의 가치 있는 소프트웨어라면, 그 소프트웨어를 원활히 구동할 수 있는 하드웨어의 구실을 광장이 일정부분 담당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까지는 우리의 도시를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공간 중에 자연스럽게 모이고 서로를 확인할 수 있는, ‘광장’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는 마땅한 공간이 없었다(그나마 여의도광장마저도 이미 공원이 되었다). 집회와 시위를 두려워했던 정치적 이유에서였을까? 문을 열어두고 마당에서 쉽게 이웃들과 어울렸던 과거 우리의 삶의 형태가 굳이 광장을 필요로 하지 않아서였을까?
이번 범국민 응원물결의 대표적 장소들을 떠올려본다. 시청앞? 로터리라는 이름이 붙은 ‘길’이다. 광화문과 대학로, 신촌로터리 역시 길이다. 길은 평소에는 ‘모임’ 또는 ‘만남’이 불가능한 ‘이동’의 공간이다. ‘사람의 머뭄’보다는 ‘차의 이동’을 위해 마련된 공간이다. 도로가 아닌 곳들(여의도 공원, 한강고수부지, 일산 호수공원)은 대부분 공원이었다. 공원은 사람을 위한 공간이긴 하다. 그러나 ‘일상’의 공간이라기보다 ‘휴식 또는 여가’의 공간이다. 바꿔말해 휴식 또는 여가라는 목적을 가지고 찾아가는 공간인 것이다.
21세기형 강강수월래를 품어낼 광장을 소망한다
광장은 일상 속에서, 길을 가다가, 멈추어 서서 머물 수 있는 공간이다. 그런 면에서 공원이나 거리가 대체할 수 없는 고유의 의미와 기능을 가지고 있다. 저절로, 자연스럽게, 일상 속에서 멈춰서서 이웃을 인식할 수 있는 공간, 그러다가 어울려 ‘우리’가 될 수 있는 공간인 것이다. 나는 소망한다. 자발적으로 하나 둘 모여든 사람들에 의해 크고 작은 규모의 진정한 축제가 이뤄지는 광장, 소통과 일체감이 새로운 현재형 감동을 생산하는 그런 순간을 다시 경험하길 소망한다.
마당놀이와 강강수월래로 대표되는 우리들 마음 속 ‘화합과 소통’의 욕구가 다시 되살아날 수 있는 가능성은 이미 목도되었다. 잃었던 터를 되돌려받았을 때 21세기 우리사회에 모습에 어울리는 형태의 강강수월래와 마당놀이가 다시 시작되는 것은 어쩌면 시간문제가 아닐는지.
만일 정부가 대규모 기념탑을 세우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게 사실이라면, 그 자리를 비워 주었으면 좋겠다. 만일 정부가 국민의 분열보다는 화합을 진정으로 바란다면, 국민들이 서로의 동질감을 회복하길 바라는 것이 정말로 진심이라면 그 자리를 고스란히 비워주는 것이 오히려 마땅하다.
그 공간을 광장이 되게 하고, 다만 불법집회나 상업적인 용도로 사용되지 않도록 관리함으로써 건강한 광장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유지해주는 최소한의 역할만을 담당해주면 좋겠다. 나아가 도시에 관한 계획의 입안에서 주택과 도로와 더불어 이제부터라도 ‘광장’도 함께 고려해준다면 더욱 좋겠다.
하나 둘 늘어나는 ‘광장’들과 그 광장이 잉태할 많은 의미들과 새로운 가치들을 떠올리는 지금, 모처럼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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