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섭이 조부로부터 배운 글은 현실적으로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것은 그의 인간관계를 왜소하게 만들고 현실을 바라보는 창에 불투명한 유리를 끼워 놓았다. 한자를 많이 알고 있다고 해서 그를 존경하는 사람도, 운에 맞춰 한시를 멋지게 지어도 칭송할 이도 없었다. 이미 그런 시절은 지나갔다. 사람들의 관심은 새마을 운동과 더불어 열심히 일하고 가난을 벗어나는데 집중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 글이 한 번씩 동섭에게 내면적인 도움을 주는 경우가 있었다. 인생이 그에게 실어오는 번뇌를 잊고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하고 잠시 일상에서 도피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런 점에서 학문은 노래와 같았다. 노래를 부르는 동안 가슴이 후련해지는 것을 알 수 있듯이 전혀 다른 세상 속에 들어와서 세상을 해부해 보면 온갖 시름은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졌다. 인생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꿈이나 다름없었다.
앞으로 제사는 어떻게 한다지? 내 대로 끝나 버리게 되는 걸까, 아니면 둘째 아들이 이어받게 되는 걸까. 동섭은 장남으로서 천대를 받았기 때문에 지금껏 영수에게 힘을 실어주려고 애써왔다. 전주댁도 마찬가지였다. 전주댁도 자식들을 똑같이 대한다는 말을 곧잘 하면서도 어느 시기까지 영수를 우선적으로 생각해왔다.
장남의 뜻대로 예수 귀신을 섬기도록 놔 둘 것이냐, 아니면 조상신을 섬기도록 버르장머리를 고쳐 놓을 것이냐, 만약에 끝까지 말을 듣지 않고 부모의 뜻을 거역하면 어찌할 것이냐 등에 대해 동섭은 고심했다. 사실 어느 귀신이라고 다를 리 없었다. 어느 것이 더 영험할 리도 없었다. 그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영수에게 명할 수 없었다. 좀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는 아직까지 죽어서 자손들을 벌하거나 돌본다는 귀신을 믿을 수 없었다. 그들이 끼치는 해악이 눈에 보이든 보이지 않든 그는 그것을 믿지 않았다.
반면 전주댁은 약간 달랐다. 그녀는 생각보다 보수적이었고 전통이라는 것을 따졌다. 처음부터 그녀에게 예수는 배척의 대상이었다. 그녀는 지금껏 조상들이 해 온 대로 살아가려고 했다. 제사를 지내고 다른 사람들의 입에 좋은 일로 오르내리기를 바랐다. 좋은 평판을 가지기를 바라고 자식들이 성공하기만 하면 가문을 빛내고, 자신도 호강할 시대가 올 것임을 의심치 않았다.
전주댁은 장남을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다시 제자리로 되돌려 놓자고 했다.
"그렇게 안 허먼 저승에 가서 조상을 뵐 묀목이 없어."
그런데 그녀에게 비친 예수라는 귀신은 어느 악귀 이상으로 강하고 질긴 것으로 보였다. 그래서 그녀는 초반부터 다부지게 밀어붙이자고 했다. 동섭은 전주댁의 말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현실에 대해 둔감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는 지금껏 현실적인 아내 덕분에 살아올 수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녀가 아니었다면 아마도 세 끼를 해결하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다음 날이었다. 전주댁은 중학교에서 돌아온 영수를 큰방으로 조용히 불러들였다.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크게 긴장하지 말라는 듯 작고 나직한 목소리였다.
"무릎 꿇고 앉을 것까지는 없어. 그냥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그런 건께 말이여."
"예, 말씀하세요."
그럼에도 영수는 자진해서 전주댁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아니 ∼ 이, 네가 교회 나가는 걸 누가 봤다고 해서 말인디 정말이냐?"
" ……."
영수의 눈빛에 당황함이 가득하더니 고개를 떨구었다.
"교회 다니는 것이 뭐 숭(흉)이나 되냐?"
전주댁의 목소리가 더욱 부드러워졌다. 그렇게 하는 것이 영수의 마음을 가라 앉혀 진실을 말하게 하고, 또 어머니에 대한 애정을 되살려 마음을 돌리도록 하는 데 보탬이 되리라 생각한 듯했다.
덧붙이는 글 | 작가의 노트: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 것은 요즘에 들어, 세계적인 현상이지만 유독 한국은 더한 것 같다. 왜냐하면 활자문화(대량생산)가 제대로 정착하기도 전에 라디오와 영상이 밀려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름 날 해변에 가면 모래사장에 앉아 책을 읽는 외국인은 볼 수 있지만 한국인은 볼 수 없는 것이다. 한국에서 활자문화가 지배하는 시기가 좀 더 길었더라면 인문학이 이토록 고전하지는 않을 것이다.
ㅇ. 내가 아는 한국 사람 중 두 사람이 서양별점에서 말하는 게자리에 속한다. 한 사람은 당대 문단이 인정해 주는 빼어나다면 빼어나달 수 있는 시를 썼지만 친일과 독재에 대한 아부로 인해 죽은 후 부관참시에 비할 수 있는 오욕을 당한 서정주 시인이 있고, 한 사람은 젊은 시절 서구적인 기법을 응용, 누구나 인정하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지만 삼국지적 유교관으로 인해 좋지 못한 인생의 후반기를 맞이한 작가 이문열이 있다.
서정주 시인은 음력 5월18일, 소설가 이문열도 음력 5월 18일. 그러고 보니 두 사람의 생일이 일치한다. 나도 게자리에 속한다.(음력 5월 20일, 양력 6월 27일) 나도 어쩌면 두 사람의 인생 항로를 따라갈지 모른다. 그들처럼 성공하고 싶고 좋은 평가를 받고 싶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무명작가의 한 여름 밤 꿈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지금 그들처럼 시대에 부합하는 좋은 작품을 쓰기는 커녕 시대 착오적인 작품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소설은, 영화에나 어울릴 법한 빠른 장면전환과 속도감, 짧은 문장 등을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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