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연재소설>무대일가 4회

등록 2002.06.30 23:06수정 2002.07.01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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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숙이고 있던 영수가 갑자기 고개를 쳐들고 천장을 쳐다보았다. 그것이 전주댁에게 마치 신의 음성을 들으려한다는 느낌을 주었다. 사람은 땅을 쳐다보며 살아서는 안 된다, 하늘을 올려 보며 살아야 한다, 그 태도는 그것을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영수가 아직 신을 만났다고 할 수는 없었다. 영수는 무의식적으로 빨려들고 있을 뿐이었다. 영수는 눈을 뜬 후 어머니를 바라본 후 아이처럼 순진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래도 제가 어머니를 놀라게 해드린 것 같아 죄송합니다. 하지만 제가 교회 나가는 것이 부모님과 사이가 나빠지고 이 가문을 수렁에 빠뜨리기 위해서는 아닙니다. 어머니가 어디서 그런 소리를 들으셨는지는 몰라도,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교회는 사람을 그릇된 길로 인도하는 곳이 아닙니다. 그리고 저는 누구보다도 우리 가족을 사랑하고 우리 가족이 화목하고 행복하기를 바라고 또 기도하고 있습니다. 제발이지, 제가 주님께 가는 길을 막지 말아주십시오."


영수는 조금도 더듬거리지 않는다. 학교에서 웅변을 할 때처럼 유창하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는 물기가 어려 있다. 전주댁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조금 전과는 달리 약간 흥분된 목소리다. 달래는 듯한 말투도 사라지고 없다. 그녀는 강압적인 표현도 서슴지 않는다. 그럼에도 영수의 태도는 바뀌지 않았다. 하지만 영수의 몸 곳곳에 두려움이 깃들어 있다. 불안이 스며있는 큰 눈을 어디에 둘지 몰라 두리번거리고 있다.

그러다가 영수는 신에게 두 손을 꽉 잡음으로써 눈앞에 닥친 고난을 이겨내려고 한다. 영수는 교회에서 배운 가르침대로 무릎을 꿇고 사는 길을 원하지 않고 있었다. 마침내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전주댁이 헛기침을 했다.

기침소리가 들리자, 동섭은 밖으로 나간다. 그는 모퉁이에서 장작개비를 들고 방으로 들어간다. 갑작스럽게 발생할 일에 대비해서 문을 걸어 잠그며 그는 손가락이 떨리는 것을 느낀다. 그는 전주댁을 본다. 전주댁은 그에게 눈을 돌리지 않는다. 전주댁은 그가 들어오는 순간 생길지도 모를 영수의 미묘한 변화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 눈을 떼지 않고 있다.

무릎을 꿇고 고개를 빳빳이 든 영수의 자세가 동섭의 눈에도 거슬린다. 그는 아버지에게 이런 태도를 보인 적이 없었다. 전주댁이 알고 있듯이 동섭은 아버지 앞에서 죽는시늉도 했다. 전주댁이 영수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기로 했는지 애원하기 시작했다.

"아들아, 내 아들아! 네가 언제부터 이런 몹쓸 병에 걸렸냐? 나는 다 알고 있다. 어느 못된 녀석이 순진하고 착하디 착헌 너를 꼬드겼고, 너는 헐 수 없이 끌리 들어갔다는 걸 말이여. 근께 너는 아무런 죄도 없는 거여. 글고 니가 다시 착헌 아들로 돌아와 주기만 험사, 일가들한테도 이번 일을 안 알릴 거고 이 동네 사람들도 전혀 모르게 헐 거여…근께 이 일은 이 세상에서 우리찌리만 알고 묻어 두먼 표가 안 나는 일이여…내가 뭐 땜에 너헌테 이러는지 너도 나이가 들었은께 알아들을 꺼여…니가 다시 우리 집안의 장손으로 돌아와 주기만 헌다면 우리는 옛날 겉이 오손도손 살 수 있지 않겄냐? 허지만 예수 귀신하고는 안 된다, 그건 절대로 안 되는 짓이여, 조상한테 누를 끼치고 죄를 짓는 일을 어찌 후손이 할 수 있다냐. 어쨌거나 마음을 돌리 묵어라. 그 귀신이 아무리 좋은 것이라고 해도 우리 집보다 좋고 우리 식구보다 좋겄냐?"


전주댁은 머릿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여하한 어휘를 다 동원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영수의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다. 고개를 들고 등을 곧게 편 단정한 자세를 유지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이런 태도에는 분명 누군가의 그릇된 가르침이 들어 있다. 전주댁은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혼자서 깨우칠 수 있는 자세가 아니었다. 전주댁은 슬슬 화가 치밀어 올랐다.

영수도 아버지가 문을 잠그고 방안으로 들어 온 까닭을 눈치챘고, 당장이라도 예수를 버린다고만 하면 육친으로부터 참혹한 꼴을 당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영수는 아름다운 석양이 비치는 형장과 끝까지 믿음을 고수한 죄로 아침 이슬처럼 사라진, 망나니의 칼에 의해 베어진 후 피를 뿜으며 바람 빠진 풍선처럼 이리저리 허공에 솟구치고 있는 순교자의 머리를 상상한다. 그런데 그것이 그에게 묘한 쾌감을 가져다 주었다.(계속)

덧붙이는 글 | 작가의 말: 낮이든 밤이든 국도변을 걷는 것은 위험하다. 국도를 건설하는 기관에서는 걷는 사람들을 위한 길을 마련하지 않았다. 거기에는 오로지 차들이 오갈 수 있는 공간만이 존재한다. 장자크 루소의 <고백록>을 읽고 도보여행을 해볼 생각이 든 사람도 일찌감치 단념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국도변을 걷는 것은 스스로의 죽음을 자초하는 행위이다. 이번 경기도 양주군 56번 지방도로에서 미군 장갑차에 치여 숨진 두 명의 여중생의 비극을 안다면 말이다.

덧붙이는 글 작가의 말: 낮이든 밤이든 국도변을 걷는 것은 위험하다. 국도를 건설하는 기관에서는 걷는 사람들을 위한 길을 마련하지 않았다. 거기에는 오로지 차들이 오갈 수 있는 공간만이 존재한다. 장자크 루소의 <고백록>을 읽고 도보여행을 해볼 생각이 든 사람도 일찌감치 단념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국도변을 걷는 것은 스스로의 죽음을 자초하는 행위이다. 이번 경기도 양주군 56번 지방도로에서 미군 장갑차에 치여 숨진 두 명의 여중생의 비극을 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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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문학세계》에 「매직을 훔친 아이」가, 《문학과 창작》에 「리오그란데를 찾아서」가 당선되면서 문학 활동을 시작하였다. 소설집으로 「장례식에의 초대」, 「로터리에 앉아 있던 새」 해양문고 「우리 바다가 품은 온갖 이야기」, 에세이 <지금은 별을 보며 한걸음 내디딜 때>가 있다. 현재 소설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양산에 거주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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