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저는 주님을 영접하고 이제 막 새로운 생명을 얻었습니다. 만약에 어머니한테 진정으로 사랑하고 사모하는 분이 계시다면 어머니는 그 분을 쉽게 포기할 수 있겠어요? 저는 이 자리에서 죽는 한이 있어도 그 분을 버릴 수는 없습니다. 제가 어머니의 몸을 빌어서 태어나기는 했어도 오직 예수, 그 분만이 저를 구원해 주셨고, 또 앞으로 우리 집을 구원해주실 분도 그 분뿐입니다. 사람은 육신만으로 살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영혼이 구원받으려면 어머니, 아버지도 주님을 영접하셔야 합니다. 구원은 각자가 개인적으로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그것까지 대신해 줄 수는 없습니다…… 만약 제가 바라는 대로 우리 집안 전체가 구원을 받게된다면, 저는 부모님 동생들과 함께 천국에 갈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영수의 목소리는 죽음을 각오한 것처럼 비장했다. 영수는 말을 끝내고 나서 의미를 알아채기 힘든 눈물을 떨구었다. 동섭은 생전 들어보지 못한 '구원' 이나 '영접' 이나 '천국' 같은 이상한 단어들에 어리둥절했다. 그리고 혼이라는 말은 들어보았지만 영혼이라는 말은 들은 적이 없었다.
잠시 동안 전주댁은 장남을 측은한 눈빛으로 보고 있다. 이 놈의 자식이 교회에서 떠들어대는 것을 바보처럼 순진하게, 곧이곧대로 믿고 있는 게 틀림없어. 도대체 어린애에게 이런 신앙이 생겨날 수가 없어. 이건 잘못된 거야.
"야, 이 놈아! 송충이는 솔잎을 묵고 살아야제, 갈잎 묵으먼 죽는 거여. 내가 누구냐, 네 에미여! 부모가 자식 해 되게 시키는 거 봤어? 왜 전도사가 허는 말은 곧이곧대로 다 믿고 따름선 왜 내 말은 안 듣는 거여! 우리 집 안은 대대로 조상 생기고 제사 지냄서 살았는디 장남인 니가 탁 배틀아진 돼지 뒷발톱겉이 어긋나 부리먼 대체 어쩌자는 거여?"
전주댁이 보기에 영수는 한치도 물러날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자신이 뽑은 털을 제자리에 집어넣을 정도로 고지식한 놈! 부모가 죽은 다음 자식에게 물 한 그릇이라도 얻어먹는 것은 당연한 거야.
"저는 오직 예수만을 믿고 의지하기로 작정했습니다."
전주댁은 오른손을 번쩍 들어 장남의 뺨을 후려갈겼다. 한순간 영수의 표정이 일그러졌다가 온화한 빛으로 돌아온다. 그것이 전주댁에게는 한없이 역겹게 느껴졌다.
"뭐해요!"
전주댁의 외침에 동섭은 손에 들고 있던 장작개비를 들어 영수를 후려갈기기 시작한다.
"미친개한테는 몽둥이가 약이여!"
동섭은 이를 꼭 다물고, 눈을 감은 채 몽둥이를 마구 휘두른다. 몽둥이를 휘두르면서 그는 몇 번 꿈속에서 본 적이 있는 용의 형상을 본 뜬 괴물을 본다. 내가 지금 싸우고 있는 상대는 영수가 아니라, 바로 이 괴물이다. 그는 이 비열한 괴물을 향해 욕지거리를 퍼붓는다. 너 같은 귀신은 필요 없어, 꺼져!
영수는 장작개비를 피하려고 들지도, 손을 들어 막지도 않는다. 장작개비를 맞고 옆으로 쓰러지는 순간까지 무릎을 꿇은 자세 그대로를 유지한다. 아니, 이럴 수가! 영수의 태도에 놀라면서도 동섭은 관성의 작용으로 인해 여전히 장작개비를 휘두르고 있었다. 숭고하면서도 끔찍하기조차 한 자세, 이 괴이한 자세를 보자, 그는 맥이 빠져 장작개비를 던지고 밖으로 나왔다.
닷새 뒤다. 동섭의 사촌 형인 한동준이 출근하는 길에 집으로 찾아왔다. 한동준은 동섭을 보자마자 비아냥거렸다.
"잘한다, 잘해! 자식 하나 후려 잡지 못하고… 앞으로 큰집 제사는 누가 지낼란가?"
동섭도 예상하고 있던 터였다. 이 문제는 한 집의 문제로 끝날 문제가 아니라 집안 전체의 문제였다. 동섭은 죄송스러워 고개를 들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인 채 동준의 말이 끝날 때까지 잠자코 있을 따름이다. 전주댁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집안 단속 좀 잘해!"
한동준은 헛기침을 크게 하고 입구를 향해 돌아섰다. 동준이 가는 것을 보며 동섭은 이제 어찌 해야 하나, 생각하며 전주댁을 보는 척했지만 사실은 그다지 걱정이 되지 않았다. 같은 집안이라지만 그것은 개인적인 일이었다. 누구에게든 종교를 선택할 자유가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그것을 입밖에 내어 말할 수는 없었다.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이후 전주댁은 종종 쉽사리 포기하려면 아예 건드리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뇌었다. 그러면서 영수를 옴짝달싹 못하게 감시를 했다. 특히 예배가 있는 날은 감시를 강화했다. 그래도 영수도 포기하지 않았다. 공부하는 체하면서 달력으로 겉을 싼 성경책을 몰래 읽고 있었다. 학교에서 자율학습을 한다는 핑계로도 은밀히 교회에 드나들었다. 한 마디로 영수는 예전과 다름없이 주를 믿고 사랑하며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작가의 말: 아담, 너는 어디에 있었느냐? 이 물음은 우리의 6·10항쟁에도 적용이 된다. 물론 종교적인 이유에서가 아니다. 독재에 저항하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 믿었던 사람들은 항쟁에 참가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6·10항쟁에 참여하는 것은 무언가 잘못을 저지르는 것 같아 등을 돌리고 외면했다. 그 때 나는 무엇을 했던가. 서울 기동대 전투경찰 복무 중이었다. 나는 취사반에서 식기를 닦거나 오이냉국을 퍼담고 있었다. 아담, 6·10 때 너는 어디에 있었느냐? 부끄럽지만 이제 자신이 어느 곳에 있었는지 말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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