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치의 선수들에게 위로와 치하를 ②

등록 2002.07.04 12:40수정 2002.07.04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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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축구협회(이하 '축협') 이사회가 월드컵 선수들에게 포상금을 차등 지급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을 접하는 심정은 한마디로 어처구니없다. 월드컵 기간 중에도 그런 얘기가 축협에서 흘러나왔으나 설마 하는 마음이었고, 끝내 그런 비상식적인 결정이 내려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었다.


월드컵 4강으로 도약한 우리나라 축협의 이사라는 사람들의 생각이나 안목이 그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우선 연민을 금할 수 없다. 국민들의 엄청난 반대와 비난에 직면할 것을 훤히 예측하면서도 그런 결정을 내렸다면, 자신들은 과단성과 용단이라는 단어를 끌어들일지 모르지만, 실로 무모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지난번의 내 글 '벤치의 선수들에게 위로와 치하를'은 월드컵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반영하기라도 하듯 수많은 네티즌들이 읽었다. 그리고 꽤 많은 다양한 '독자의견'들이 표출되었다. 우선 내 글을 읽고 또 의견을 피력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고마운 뜻을 표한다.

독자의견들 중에는 사리가 명확하고 논리가 정연한 글들도 있었지만, 다분히 감정적인 거친 언사들도 많았다. 조금은 신경질적인 거친 언사들도 인터넷 세상의 무서운 '언어폭력'과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는 것이어서, 나는 그 점에 대해서도 고맙게 생각한다.

전에 한창 맹렬히 '안티조선-언론개혁' 운동에 동참하는 글을 쓸 때 실로 무지막지한 욕설들을 바가지로 뒤집어썼던 것에 비하면 이번은 너무도 온건한 비난들이어서, 이것 또한 월드컵이 가져다준 국민 성숙의 일면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니 다행스럽고 기쁘기도 한 마음이었다.

내 글에 대한 비난과 비판의 글들을 면밀히 살펴보면, 어떤 글들에는 우리나라의 은인이요 최고 영웅인 히딩크 감독에 대한 고마움과 숭배 의식이 단단히 똬리를 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월드컵 '4강 신화'를 창조한 히딩크 감독에게 네까짓 게 감히 비난을 할 수 있느냐는 뜻이 내재되어 있다. 일종의 알레르기 반응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은인 히딩크 감독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모멸감'을 받는 심정이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지만, 축구 전문가인 그도 하나의 '인간'임을 알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는 축구에서, 축구와 관련하는 정신 세계에서 완벽을 추구하는 인간이지 전지전능한 신은 아니다. 그도 경우에 따라서는 실수할 가능성을 안고 사는 사람이며, 훗날 어느 사안에 대해 후회도 할 수 있는 인간인 것이다.

나는 히딩크 감독을 존경한다. 우리 한국인들이, 또 우리 한국 사회가 그에게서 배울 것이 많고 그의 축구 철학으로부터 응용하거나 참고해야 할 사항들이 참으로 많음을 절감하고 있다. 나는 처음부터 그의 편이었다. 대한축구협회의 부정적 속성과 병폐들을 알 만큼 알고 있는 나로서는 선수 선발권부터 완전 장악하고 나선 그에게 전폭적인 신뢰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나는 한때 대표팀의 부진한 성적으로 그가 곤란을 겪을 때 축구전문가들과 언론들의 포화를 매우 안타까운 눈으로 보았다. 축구전문가들과 언론들의 행태 속에서 한국인 특유의 냄비 근성을 읽으며, 특히 족벌 언론들에 대한 전의도 좀더 가다듬을 수 있었다.

한국 축구가 영광의 자리에 오른 오늘, 그 동안의 족벌 언론들의 행태를 뒤돌아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어느 네티즌이 족벌 언론들 중에서도 특히 조선일보와 자매 매체 지면에 오른 히딩크 비난 비판 기사들을 모두 모아 인터넷에 올린 것을 보면서 그 많은 양과 내용들에 혀를 차지 않을 수 없었고, 오늘의 '국민 대축제'에 조선일보는 빠지라는 그 네티즌의 주장에 동조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거듭 말하건대 나는 히딩크 감독을 존경하고 신뢰한다. 그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참으로 크고, 우리 사회의 곳곳에서 일고 있는 '히딩크 열풍'도 긍정적으로 보며 큰 기대를 갖고 있다.

하지만 그의 협소한 선수기용 문제와 관련해서는 지금도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자신이 선발하고 가르친 좀더 많은 선수들에게 '꿈의 무대'에서 뛸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여전히 아쉬운 마음을 지울 수 없다.

물론 그는 누구보다도 선수 개개인의 기량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자신이 직접 가르치며 노상 함께 생활하니, 그는 모든 선수 개개인의 미세한 장단점까지 훤히 꿰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의 주전 선수 집착과 벤치 선수들에 대한 불신(?)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일에는(심지어는 잘한 일에도) 시비는 있는 법이고, 어느 정도의 문제 제기는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나는 히딩크 감독이 터키와의 3·4위 전에 벤치 선수들을 대폭 기용했더라면 그것은 그가 연출하는 또 하나의 '극적'인 모습이고, 좀더 히딩크다운 전술이라는 새로운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는 생각을 버릴 수 없다.

다수의 독자의견들은 승부사의 세계에서는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한다. 월드컵 무대임을 강조하며 나에 대해 아마추어적 발상이라고 공박한다. 일단은 옳은 말이다. 그런데 그들은 왜 히딩크에게서 철저한 승부사의 모습만을 바라는 것일까? 나는 히딩크에게서 냉혹한 승부사의 모습만이 아닌, 그것을 더욱 보강하는 또 하나의 모습도 보기를 원했는데, 그것이 과연 불합리하고 무가치한 것일까?

히딩크는 말했다. 우리 팀에는 주전과 비주전이 없고, 23명 전원이 주전이라고. 나는 그 말을 온전히 믿지 않으면서도 그렇게 말하는 히딩크 감독이 고맙고 더욱 미덥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의 그런 말이 완전히 허사가 되지 않고 3·4위 전에서라도 어느 정도는 실증으로 나타나기를 기대했다. 그의 주전 선수들에 대한 집착이 후보 선수들에 대한 불신이나 냉대로 노정되는 상황이 생겨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기도 했다.

히딩크는 우리에게 참으로 많은 멋진 모습들을 보여 주었지만 선수 기용면에서는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이탈리아 전과 독일 전에서 후반 중반 이후 수비의 핵인 홍명보를 빼고 공격수를 투입한 과감성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과감성을 넘어서는 모험정신이 더욱 극적이고 인상적인 모습과 상황을 연출할 수 있는데, 그는 그것에는 눈을 돌렸다. 체력 문제를 안고 있는 주전 선수들에게 집착하는 방식으로 철저히 냉혹한 승부사의 모습만을 연출했을 뿐이다.

월드컵의 역사 속에는 여러 가지 일화들이 많다. 어느 때 어느 나라 선수단에서 생긴 일인지, 그리고 당시 당사자들의 이름을 내가 명확히 기억하지 못해서 설득력이나 신빙성을 충분히 확보하지는 못하겠지만, 내 뇌리에 흐릿하게나마 저장되어 일들은 지금도 여러 가지 생각을 가능케 한다.

유럽 어느 나라 선수단의 감독은 조별 예선리그 두 경기에서 죽을 쑨 주전들을 대폭 후보 선수들로 갈아치운 덕으로 기대 이상의 성적을 거둔 예도 있다. 또 어느 나라의 한 선수는 주전 선수가 부상을 한 덕에 출장을 하게 되었는데, 놀라운 활약으로 팀에 큰 기여를 했다. 후에 기자가 그에게 감독에 대한 고마운 마음의 여부를 물으니 감독에게는 고맙지 않고 하느님께 감사한다고 했다. 또 어느 나라의 감독은 23명 엔트리를 가장 폭넓게 고루 활용한 것이 좋은 점수를 받아 가장 유능한 감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한 독자의견 제시자는 후보 선수들을 대폭 기용하여 만약 대 터키전에서 5:0으로 졌으면 어쩔 거냐는 공박을 했다. 그것은 결코 단정할 수 없는 만약의 경우이므로 논의의 가치가 없다고 본다. 그 반대의 경우도 그에게 제시할 수 있는 사항이기 때문이다.

한 분은 바둑의 예를 들며 승부사의 세계를 설파한다. 논리 정연함에 마음이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도 역시 승부의 세계, 승부사의 모습을 히딩크 감독의 주전 선수 집착 쪽으로만 비끄러매 놓고 있었다. 과감한 후보 선수 기용은 어째서 철저한 승부의 세계, 승부사의 모습에서 배제되어야만 하는 것일까? 이민성의 투입을 예로 들며 후보 선수들의 대폭 기용을 처음부터 부정적으로 보는 것 또한 일종의 패배주의가 아닐까? 또 그것은 희망과 가능성의 세계를 스스로 축소시키고 차단하는 것이 아닐까?

나는 그 글을 쓰면서 감상주의와 온정주의를 의식하지 않았지만 읽는 이들이 그것을 느꼈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또 내가 청년 시절에 초등학교 축구팀을 지도했던 기억 속의 일화 하나를 소개한 것은, 그저 내 추억의 반추일 뿐이지 반드시 월드컵 상황과 연결 지으려는 의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과 관련하여 월드컵이 학예회냐는 공박이 빗발쳤던 것은 당연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이쯤에서 생각을 해 본다. 세상 만사에는, 큰 일과 작은 일 사이에도 공통성이라든가 일맥상통의 요소는 있는 법이다. 세상 만사에 공통성과 일맥상통이라는 것이 있어 세상의 조화가 유지되는 법이고….

우리가 좀더 뚜렷하고 확실한 가치관을 세우기 위해서는 큰 안목이나 판단을 거스를 수 있는 사소한 감상주의와 온정주의를 극력 경계해야 하지만, 온정이라는 것은 어느 경우에서나 무조건 타매를 해야 할 것이 아니다. 연고주의와 친분주의 따위 허접쓰레기 같은 온정주의를 너끈히 초극하는 진정한 온정 말이다.

서양의 확고한 합리주의 안에서도, 그리고 냉혹한 승부의 세계에서도, 또 도가 아니면 모라는 식의 이분법의 세계에서도 그것의 그늘이나 틈새를 한 번쯤은 살필 줄 아는 따뜻한 눈매와 가슴의 따스한 피가 결정적인 가치와 더욱 중대한 '요인'을 지니는 법이다. 그것이 우리의 삶에 좀더 탄력성 있고 융통성 있는 여유의 공간을 마련해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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