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안(西安)에선 비오는날 '시체놀이' 했어요

<최현숙기자의 베이징 돋보기>

등록 2002.07.09 20:49수정 2002.07.10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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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잦은 여름이지만 중국인들의 발인 자전거 행렬은 여전히 끊이질 않는다. 우산을 쓴 사람보다 우의를 입은 사람이 더 많이 눈에 띈다.

인력거꾼들도 비닐로 다시 덮어씌우기 작업에 돌입하고 손잡이 앞에도 비를 막는 칸막이를 붙인다.

그나마 북방지역이라 좀 양호한 편이다. 남방지역은 매년 여름홍수와 전쟁을 치르는 올해도 역시 마찬가지다. TV를 보니 남방지역은 난리도 아니다.

비가 오면 싸늘하기까지 하니 이럴 때는 한국식 온돌방이 무척이나 그리워진다. 비 얘길 하니 유학시절 생각이 문득 떠오른다. 지금 생각하니 참 재미있는 유학시절이었던 것 같다. 베이징은 전기가 끊이지 않아서 좋다.

시안(西安)에서 유학시절 비가 오든 오지 않든 전기가 자주 끊겼다. 요즘처럼 비가 잦게 오는 시기엔 더욱 자주 그랬다.

한번 전기가 끊기면 사방 1킬로미터 정도는 암흑세상으로 변한다. 전기가 들어와도 어두컴컴한데 TV도 안나와, PC방도 안돼, 전화도 안돼. 침대에 누워 꼼짝 않고 멍하니 있을 뿐이었다. 일명 '시체놀이'를 자주 했었다.

시안에 도착한지 얼마 안됐을 때 주위는 온통 '공사판'이었다. 이를 보고 잘 정비된 전기보급로를 마련하기 위해 하는 공사라고 여겼는데, 너무 잦은걸 보니 계획적으로 전기 공급을 중단시키기 위해 공사를 진행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따라서 양초와 손전등이 필수품이었다. 이런 일을 몇 번 당하고 나니 그 다음부터는 당연하다는 듯 비상용 초를 켜고 옆방 친구들과 식탁에 모여앉아 귀신얘기도 하고 과일도 먹는 여유를 갖게 됐다.


시안은 아직까지 학생들이 그렇게 많지 않아 유학하기에 괜찮은 편이다. 사투리 배우는 재미도 쏠쏠하다. 또 베이징처럼 곳곳에는 외국인을 볼 수 있는 것과는 상반돼 한국사람이라면 신기하게 바라보고 비교적 친절히 대한다.

그러나 각오해야 할 점이 있다면 '김치가 금치'가 되는 곳이라는 점이다. 김치, 고추장, 김 등 만반의 준비를 하고 가야한다. 김치 한 조각에 '피 터지는' 일이 생길 정도다.


지금도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 상황이 크게 호전됐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전화만 하면 눈앞에 당장 한국음식이 놓이는 베이징과는 천지차이다. 시안에서 생활할 당시 중국에서 이런 생활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정도다.

시안에서도 한국학생이 가장 적은 학교를 택해서 갔다. 당시 한국학생 1명이 바로 전 학기에 연수를 했다. 한국유학생 1호이고 내가 2호가 됐다. ‘한국유학생 1호’가 한국으로 떠나는 날이 됐다.

그러나 시안에서 한국으로 직접 가는 게 아니라 먼저 옌타이(烟台)에 가서 여행을 하고 며칠 뒤 옌타이에서 귀국을 한다고 한다. 시안에서 옌타이까지는 24시간이 넘는 거리인데 거기에 쓰던 물건까지 모두 챙겨 떠난다.

한국에 가서는 무용지물이 되기 십상인 물건들까지. 그 많은 짐을 들고 ‘한국유학생 1호’는 중국 기차 가운데 가장 질이 떨어지고 느린, 중국 일반사람들도 타길 꺼리는 ‘만쳐(慢車)’를 혼자서 타고 간단다. 한국에서 그렇게 많은 짐을 들고 그렇게 장시간 여행이라면 지레 포기하고 말 것이다.

그 기차에 관해 간단히 말하자면 에어컨도 없고 창문이 다 열리며 밤이 되면 승객들은 바닥이고 짐을 올리는 선반이고 할 것 없이 누워 잠을 잔다는 것이다. 푹푹 찌는 여름, 그런 기차를 타고 24시간을 가면 그야말로 인간승리다. 그 ‘1호’가 여행을 떠나는 날, 그 날도 또 비가 왔다.

새벽 5시 반부터 일어나 흐트러진 머리에 졸리는 눈을 비비고 짐 싸는 일을 도왔다. 새벽부터 폭우와 번개가 치더니 오전에는 조금 잠잠해졌다. 또 시안은 배수시설이 엉망이라 비가 한번 오면 물이 빠지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대부분이 평지인 중국의 지형적 특성은 빗물이 빠지는 것을 더욱 어렵게 한다. 시내는 물론 곳곳이 물바다가 되고 택시를 타고 가는 길마다 물이 발목까지 차 오르고 차가 밀려 앞으로 나가질 않는다.

기차를 이용한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여름방학 시즌이라 기차역으로 가는 길이 더 막혔다. 30분이면 갈 거리인데 중간지점에서 이미 시간은 1시간이 지나버렸다. 기차시간 30여분 전인데 차가 꼼짝도 않기에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이튿날은 더 일찍 나섰고 무사히 시간에 맞게 도착해 '한국유학생 1호'를 기차에 태울 수 있었다. 그를 배웅해주고 돌아왔는데 아니나 다를까. 또 전기가 끊겨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다시 시체놀이를 해야만 했다. 지금 시안에도 베이징처럼 비가 오고 있을까. 오랜만에 친구녀석한테 전화를 걸어 '시체놀이'를 하고 있는지 물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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