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판 변절자들의 '위용'을 보며

등록 2002.09.05 13:33수정 2002.09.09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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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사회에는 애초의 절개를 저버리고 현실적인 이득을 취하는 쪽으로 돌아서는 변절과 절의를 함께 했던 동지들을 배반하고 한 순간에 현실과 야합해 버리는 배신행위들이 수없이 많다. 절개를 인간 삶의 소중한 가치 덕목으로 삼고, 변절과 배신을 하나의 죄악으로 경원시 하는 것은, 그만큼 인간 사회에 변절과 배신행위가 많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할 터이다. 또한 인간들이 자행하는 수많은 죄악 중에서도 변절과 배신은 인간 사회의 결속과 미덕을 가장 치명적으로 파괴하는 것이기 때문이리라.


아무튼 인류의 역사 속에는 수많은 변절과 배신 행위들이 바다의 도도한 암초처럼 박혀 있다. 역사의 크고 작은 굽이마다 변절과 배신이 껴들어 있음을 우리는 쉽게 볼 수 있다.

우리 역사의 굽이굽이에 음산하게 껴들어 있는 수많은 변절과 배신 중에서 누구나 가장 손쉽게 떠올릴 수 있는 것으로는 고려 시대 노비 만적(萬積)의 거사를 무참하게 무산시켜 버린 순정(順貞)의 배반, 조선 초기 사육신의 거사를 일시에 절단내 버린 김질(金 )의 밀고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또 참혹한 박해 역사와 약 2만명에 달하는 순교 선열들을 가지고 있는 천주교 신자들은 배교자 김여삼(金汝三)과 김순성(金順性)을 누구보다도 쉽게 떠올릴 것이다.

변절과 배신은 현실 야합의 산물이고, 비겁함의 표본이다. 그것은 자신의 목숨을 구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경우에 따라서는 동지들의 충절이나 현실 개혁 의지를 앞장서 철저히 분쇄하면서 그 대가로 자신은 부귀영화를 얻는 것으로까지 나아간다. 어제까지 뜻을 함께 했던 동지들의 목숨을 팔고 그 피를 깔고 앉아 세속의 온갖 호사를 다 누리니, 더욱 적극적으로 추악하다. 최소한의 양심과 도덕 마저 길옆의 시궁창에 처박는 행위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대개의 경우 변절자들은 자신의 출세나 현실 이득을 의탁하고 있는 세력 안에서 과잉적인 충성심을 보인다는 점이다. 마치 자신의 과거가 혹여 책잡히지 않을까 염려하는 듯이, 뭔가를 만회하기라도 하려는 듯이 무슨 일에나 앞장서서 설치고 용춤을 추어대고 하는데, 그것은 저 자동차 길의 U턴처럼 인간의 삶 역시 180도 회전이 가능함을 여실히 보여 준다. 말하자면 역리(易理)의 전형을 보여 주는 것이다.


옛날 왕조 시대나 과거 군사 독재정권 시절처럼 변절이나 배신이 밀고로 이어지고 그것이 곧바로 피비린내를 부르는 상황은 아니더라도, 모든 것이 백명한 오늘에도 변절과 배신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따라서 과감한 U턴에 의해 새로 실리를 의탁하고 있는 세력 안에서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설쳐대는 변절자들의 가공할 용춤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나는 젊은 시절부터 이렇다 하는 사람들이 지조를 버리고 현실과 야합하여 독재정권의 나팔수 노릇이나 하는 현상을 슬픈 눈으로 보곤 했었다. <유신정우회>라는 것이 설치던 시절에는 지조라는 것이 과연 인간의 삶 안에 존재할 수나 있는 것인가, 깊은 회의로 인한 비애가 너무도 컸다. 그 시절 내가 환멸의 눈으로 바라보았던 백두진 태완선 곽상훈 등의 이름은 내 뇌리에 지금도 깊이 새겨져 있다. 애초부터의 성분이나 지조를 놓고 볼 때 그들의 현실 야합을 변절로까지 보는 데는 다소 무리가 없지 않겠지만, 그들로부터 느꼈던 당시의 배신감과 곤혹감은 참으로 크고도 분명한 것이었다.


오늘날 한나라당의 국회의원 강창성 이재오 김문수 등이 보여 주고 있는 삶의 행태는 변절의 확실하고도 적나라한 모습일 것 같다. 자동차 도로의 U턴을 방불케하는 180도 회전도 그렇거니와 현실 실리를 의탁하고 있는 정치 세력 안에서의 과잉적인 충성심 노출, 그로 인한 갖가지 해프닝 적인 오버액션 등이 다 그들 변절의 전모를 잘 설명해 준다.

강창성의 경우는 약간 차원을 달리한다. 박정희 정권 시절 국군보안사령관을 지낸 그는 애초부터 '정치군인'이었다. 권력 실세내의 파워 게임에 밀려 한때 영어의 몸이 되었던 것을 계기로 야당에 가세했던 적이 있으나, 자신의 원래 성향에 따라 다시 U턴을 했다. 그가 한때 야당에 몸담았었다고 해서 원래 성향에로의 복귀를 일러 변절로 규정하는 데는 다소의 무리가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급회전에다가 역회전이 겹쳤으니 '겹변절'이라고 불러야 할지….

강창성에 비해 이재오와 김문수의 경우는 변절의 양태가 한결 간단 명료하다. 아직 노회한 나이가 아니어서인지 활약상 또한 눈부시다. 그들이 과거 재야에, 노동운동 현장에 몸담고 민주화의 물꼬를 위해 헌신하던 시절, 오늘의 한나라당은 분명히 그들을 탄압하던 세력이었다. 그들이 목숨을 걸고 저항하며 타도를 해야 할 대상이었다. 그런 정치세력의 한복판으로 그들은 하루아침에 투신을 했다. 그것은 귀의일 수도 있고 투항일 수도 있으므로, 그들의 변절은 중층의 의미를 갖는다.

이재오에 비해 김문수는 좀더 젊어서인지 변절의 열매를 거두는 일에 한결 분골쇄신하는 모습이다. 그는 거의 무아지경의 모습을 보이기까지 한다. 아무튼 그들이 과연 오늘의 한나라당인 과거의 독재 권력에 저항하며 민주화 운동에 헌신했던 사람들인가 싶을 정도로, 그들은 국민들에게 깊은 의문과 연민을 안겨 주고 있다.

우리 나라의 정치판은 유난히도 정치 철새들이 많다. 정치 철새들은 둥지를 옮길 적마다 그럴 듯한 이유나 명분을 제시한다. 아무리 그럴 듯한 이유와 명분으로 포장을 한다해도, 그들에게서 철새로서의 속성까지 배제할 수는 없다. 그 속성 안에 껴들어 있는 실리 계산이 실은 가장 큰 이유임을 국민들은 모르지 않는다.

철새들이 이 가지에서 저 가지로 옮겨앉는 일에도 그럴 듯한 이유와 명분이 필요한데, 180도 U턴을 감행하는 선 굵은 변절의 경우에는 명분의 포장술이 더욱 필요하다. 나는 이재오와 김문수가 멀리는 친일 세력으로부터 발원하여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의 군사정권의 줄기를 타고 이어져온 한나라당으로 방향 회전하여 투신하는 것을 보면서 그래도 일말의 기대를 가졌었다. 시대의 변화와 함께 한나라당도 자체 변화의 여지가 가능하고 필요하다는 인식과 궤를 같이하는 기대였다. 한나라당 안에서 오랜 동안의 비민주적인 권위주의 습성과 맞서 싸우며 개혁의 기치를 드높일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유치하리만큼 소박한 내 기대를 여지없이 깔아뭉개고 말았다. 그들은 자신들이 내세웠던 변신의 명분을 망각의 시궁창 속에 내던지고는 그야말로 변절의 모습을 보여 주는 일에만 급급했다.

그들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은 오로지 충성심 경쟁뿐이다. 과거 자신들과 한 울타리 안에서 동고동락을 해왔던 동지들을 향해 노상 전의를 불태우며 무슨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선봉에 서서 저돌적으로 대시하는 행위들을 서슴지 않고 있다. 그리하여 급기야는 이회창 대선 후보의 병역 비리 의혹을 감추고 호도하는 일에 있어서도 탁월한 방패막이 역할을 감행하고 있다.

어느덧 인생의 가을쯤으로 들어선 나는 요즘 들어 더욱 인생 무상을 절감하고 있다. 덧없는 세월 속에서 저 변절의 전사들을 보노라면 절로 서글퍼지는 심회를 갖지 않을 수 없다. 꼭 저렇게 살아야만 하나 싶고, 출세와 권력이, 국회의원이라는 벼슬의 가치와 뜻이 과연 무엇일까, 깊은 의문에 잠기기도 한다.

지금은 건강 문제 때문에 한발 물러서 있지만 그래도 가끔은 지역의 시민단체 모임에 참석하곤 한다. 그때마다 곤혹스러운 생각을 뿌리치지 못한다. 이 자리에 참석하고 있는, 지역의 시민운동에 참여하고 사람들 중에서 훗날 어떤 연유로 하루아침에 변절을 해버리는 사람은 생겨나지 않을까? 변절자가 생겨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어디 있는가? 이런 공연한 의문을 머금으며 혼자 쓴웃음을 짓기도 한다.

그뿐이 아니다. 이 사람들 중에서 혹시 나를 의심의 눈으로 보는 사람은 없을까? 자신들끼리도 변절과 배반 가능성을 생각하며 서로 몰래 의심의 눈초리를 겨누고 있지는 않을까? 그리하여 그들 사이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불신의 그림자 같은 게 껴들어 있지 않을까? 그리고 어떤 문제 때문에 서로에게 '아무개 같은 놈'이라고 욕을 하며 질타를 하는 일은 생겨나지 않을까?

우리 나라의 정치판에는 '사회교사'적인 풍모를 갖춘 정치인들이 너무 없다. 정치인으로서 이 사회에 직·간접으로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다시 말해 거울과 같은 구실을 할 수 있는 참다운 정치인들이 너무 없다는 사실은 우리 나라 정치판의 가장 큰 취약점이다.

사회의 올바른 정신과 덕목을 일깨우고 키워 가는 정치인들이 거의 없다는 사실은 곧 그들이 대체로 책임감이 없고 부끄러움을 모른다는 사실과 연결된다. 인간이 반드시 갖춰야 할 가장 큰 덕목 중의 하나는 수치심, 곧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다.

그런데 정치인들에게는 그것이 거의 없거나 참으로 미약하다. 그 대신 그들에게는 후안무치가 있다. 후안무치는 정치인들의 전매특허인 것도 같고, 가장 강력한 무기인 것도 같다. 그런 후안무치의 거대한 방벽 안에서 정치 철새들은 끊임없이 생겨나고, 변절의 전사들은 오늘도 용맹히 굿거리하듯 용춤을 춘다. 또 그런 후안무치로 말미암아 하늘 우러러 한 점도 부끄러움이 없다는 식의 하늘에 대한 능멸도 빚어지는 것이다.

정치인들의 후안무치가 무제한적으로 허용되는 사회는 별로 희망이 없다. 거기에서 참다운 혁신이 생겨날 리 없다. 정치인들의 후안무치가 타파되지 않는 한 우리는 올바르고 참된 세상을 만들어갈 수 없다.

이제부터라도 국민들은 정치인들의 자질을 살필 때 무엇보다도 그에게 수치심이 있는가, 후안무치의 두께가 얼마나 되는가에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국민 대다수가 그런 눈매를 갖는 것이 올바른 정치판, 참된 세상을 만들어 가는 지름길임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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