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조선 잇단 패소판결 공정성 의문

우리가 진실을 말해야 하는 이유

등록 2002.09.07 09:24수정 2002.09.07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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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랍 신화에 나오는 정의의 여신 디케는 한 손에 저울을, 다른 한 손에는 칼을 쥐고 있다. 여기서 저울은 개인간의 권리관계에 대한 다툼을 해결하는 것을 의미하고, 칼은 사회 질서를 파괴하는 자에 대해서 제재를 가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시비선악을 판별하여야 할 정의의 여신상은 두 눈을 안대로 가리고 있다. 이는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어느 쪽에도 기울지 않는 공평무사한 자세를 지켜야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 사회의 시시비비를 가리는 사법부는 얼마나 정의롭게 법을 집행하고 있을까? 그들은 법 적용에 있어 객관성과 공정성을 지키고 있을까 ‘유권무죄, 무권유죄’로 대변되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법에 대한 불신은 차치하고라도, 최근 법원 쪽이 안티조선 진영에 내린 패소판결들을 보며 나는 그것이 진정으로 판사들의 양심에서 우러나온 공정한 판단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지난해 언론사 세무조사 당시 한나라당과 <조선일보>는 '현 정권 및 방송 등 친여 매체와 공모하거나 지시를 받아 홍위병식으로 동원돼 비판언론 죽이기 음모를 벌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조선일보반대 시민연대를 비롯한 4개 시민단체는 명예훼손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으나, 지난 8월 30일 서울지법은 패소 판결을 내렸다. 판결 이유는 “세무조사가 언론 탄압이라고 보는 입장에서는 검찰과 시민단체들이 공조하고 있다는 의심을 가질 여지가 있다”는 것이었다.

판단의 근거는 타당성을 지녀야 한다. 이는 그 근거가 최대한 진실에 입각해야 하고, 그를 위해 어느 쪽에도 기울지 않는 공평무사한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러한 기본도 무시한 채, ‘세무조사가 언론 탄압이라고 보는 입장’에서 모든 것을 판단함으로써 공정성을 심대히 훼손했다. 그러니 확인된 사실이 아닌 허황된 거짓이 판결문 곳곳에 날뛰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이승복 사건’ 판결에서 재판부는 ‘조선일보에 게재된 현장 취재사진으로 보아 조선일보 기자가 현장취재를 했다고 추정됨에도 불구하고’라며 ‘추정’을 판단의 근거로 삼고 있다. 이미 포토저널리즘학회에서 정밀 감정한 결과 조선일보 취재기자가 아니라는 결론이 난 거짓된 사진을 근거로 말이다.

그런가 하면 ‘이문열 명예훼손’ 판결에서 재판부는 “안티조선 단체를 친북세력이라고 표현한 것도 독서토론회 과정에서 나온 상대방을 공격하기 위한 수사적 과장표현에 불과하다”며 아량을 베푼다. 냉전의식이 뿌리깊이 잠재한 우리나라에서 ‘빨갱이’나 ‘친북세력’이 지니는 부정적인 의미와 파괴성을 외면해도 되는 것일까

진실은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나 말장난으로 밝혀지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재판부는 버젓이 한쪽의 편에 서서 ‘거짓’과 ‘추정’으로 판결을 내리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더욱 눈을 크게 뜨고 세상을 바로 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가진 자에 의해 짓밟힌 정의를 지켜내기 위해서.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한겨레 '왜냐면'에도 실려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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