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02.09.08 01:13수정 2002.09.09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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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형 태풍 루사가 200명 이상의 사망 및 실종자, 3조원 넘는 재산피해, 기상 관측 이래 하루 최대 강우량을 기록하며 전국을 휩쓸었다. 이번 태풍으로 군 지역에서만 사망 7명, 실종 2명과 2천여 억원의 재산 피해를 입은 충북 영동을 다녀왔다.

▲강둑길 옆 흙이 논에 퇴적되면서 벼들은 파 묻혔다 박종희
하행 경부선, 월요일인데 기대어 있을 틈도 부족한 객차 안이다. 철로 유실로 연착되어 승객이 몰린 탓일까 아니면 수해 입은 가족 친지 보러 가는 사람들이 많아서일까. 기차 타는 일이 힘들다 해도 많은 사람들의 얼굴에 근심이 보이는 것만은 분명하다.
대전을 지나 옥천 정도 왔을까, 어느 순간 차창 밖으로 시선들이 쏠리고 객차 안이 웅성거린다. 섬뜩한 경관이 지나간다. 보름 정도 되면 추수해야 하는, 연누런빛 벼이삭들이 논바닥에 누워있다. 노지 재배 포도 수확철인데 흙이 잎, 줄기를 덮은 포도 과수원이 황토빛이다. 집이 침수되고 농사마저 망친 농민들의 심정은 오죽할까.
영동역에 내려, 수해가 극심하다는 황간행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한 할아버지가 허둥지둥 다가와서 묻는다.
-"어디 가나?"
"황간 가요"
-"얼마나 영동에 비가 많이 왔나? 집은 괜찮나?"
"…"
어디 사는, 무엇 하러 가는 사람인지도 묻지 않고 하는 질문에 순간 당황했다. 가만히 보니 초조해 하며 연방 담배를 피워대는 모습이 수해 입은 가족이나 친지를 보러 가는 분 같다.
"타지에서 왔어요. 저도 수해 얼마나 입었나 보러 가요"
버스에 올라서 할아버지는 마침 황간 가는 아주머니와 말이 통했다. 할아버지는 닷새 동안 서울 아들집에 있었는데 홍수로 집이 다 잠겼다는 소식을 듣고 허겁지겁 내려가는 길이었다.
아주머니 말로는 강 주변 논, 과수원은 물론이고 면 소재지 한 가운데 시가지를 물이 다 덮어 버렸단다. 아주머니 댁은 포도농사를 짓고 있다.
"진짜 몰랐어. 텔레비전에서 본 일이 일어날 줄은…. 우리 집 포도 농사 망했어!"
망연히 던지는 아주머니의 말에서 수재민들의 심경을 읽었다. 비통하고 화나지만 누구에게도 대놓고 하소연하기 힘든 그런 마음을….
도로가 무너져 내려 버스가 옆 차선으로 우회하여 가곤 했다. 6.25 전쟁 당시 미군 양민학살지였던 노근리 굴다리 부근도 보였다. 다행히 이번에 노근리는 수해가 기록되지 않았다. 황간면 소재지에서 "(정부 수해 복구나 보상) 지원 좀 많이 나오게 기사 잘 써줘"라는 아주머니의 부탁 아닌 부탁을 뒤로 하고 버스에서 내렸다.

▲주민들이 천문에서 침수된 가재도구를 씻고 빨래를 빨고 경운기로 물을 품어 나르고 있다. 박종희
길이란 길은 진흙으로 질퍽했지만 이나마도 복구 작업 덕이다. 상점과 집 앞에 흙탕물에 젖은 가재도구가 널려있고 이를 씻고 있는 주민들이 많다. 다리를 건너려 했는데 끝 쪽이 급류로 무너져 건널 수 없다고 한다.
다행히 작년에 놓은 새 다리가 있었다. 수해의 주범인 황간천은 시치미를 뚝 떼고 흐르고 있었지만 흙탕물 빛은 감출 수 없다. 흙탕물에 아랑곳할 여력도 없는 주민들은 천변에서 침수된 가재도구를 씻고 빨래를 빨고 경운기로 물을 품어 나르고 있었다. 상수도가 파손되어 물이 공급되지 않기 때문이다. 옷가지며 이불이 천변 곳곳에 널려있다. 50, 60년대 경관을 보는 듯 하다.

▲수해입은 철물점의 한 할머니가 흙바닥 속에서 못, 열쇠를 주워 담고 있다 박종희
담이 허물어진 집안에서는 삽이나 대야로 검은흙을 퍼낸다. 상점 앞에는 젖은 빵이나 식료품을 밖에 쌓아 두었다. 강물이 흘러오는 쪽을 등진 집이나 상점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흐름을 마주보고 있던 것들은 참혹하다. 기둥만 남아있고 상점 안은 바닥은 물론 벽이며 천장 할 것 없이 진흙칠이 되어있다.
한 할머니가 흙바닥 속에서 자물쇠며 못을 파내고 있다. 철물점이었다지만 휑하게 달려있는 간판 외에는 더 이상 철물점이 아니다.
"토요일 저녁에 물이 바닥까지 올라오기에 조금 더 불어났다가 빠질 줄 알고 멀찍이 가서 보고 있었는데 순식간에 마루까지 올라왔어. 몸만 빠져 나왔지. 팔십 평생 못 겪어본 일이라 이럴 줄은 몰랐어….”
이어진 골목으로 흙더미와 가재도구가 쌓여있다. 흙탕물 냄새와 악취가 진동한다. 중장비가 이곳저곳에서 움직이고 군인들과 주민들이 파고 나르고 쌓고 씻으며 복구 작업에 정신이 없다.
마을을 빠져 나와 강둑길로 걷는데, 물에 밀려와 쌓인 진흙에 걸음마다 푹푹 빠진다. 강둑 길 쪽의 벼들은 진흙이 덮어버렸다. 논 주인인 할아버지는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지 푸념할 뿐이다.

▲수마가 지나간 포도과수원. 시멘트 기둥이며 철사, 포도나무 할 것 없이 뒤엉켜 있다. 박종희
원망스러운 강과 생채기가 난 들판을 바라보며 도로를 따라 걷고 있는데 등 뒤 쪽이 허전했다. 돌아보고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포도과수원이 시멘트기둥, 철사, 포도나무는 말할 것도 없이 바닥에 다 누워 버렸다.
포도과수원 끝에 있는 주인집에, 위로하러 온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이고 있는 남상우씨를 만나 볼 수 있었다. 집안 역시 침수된 탓에 벽지를 뜯어내고 흙을 씻어 내느라 복구에 여념이 없었다.
한 친구분이 “3천평 포도밭이면 억대 피해 입은 거야, 억대”라며 “황간면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농가”라고 말한다. 주인은 “속이 상하니까 술을 먹으면 차라리 생각이 나지 않아 좋은데, 깨면 이렇게 멍하니 벽만 바라보고 있어”라고 한다.
9년 넘게 지어온 포도농사가 하루밤 사이 수마가 망쳤다. 다시 포도 수확을 하려면 삼사 년은 지나야 한다는 그에게 “땅을 떠날 생각은 없어요?”라고 물었다.
“오십 넘어서 어디를 가나. 그냥 살지. 밥이야 먹고 살겠지.”
수해로 지친 농민과 들판을 뒤로하고 황간면사무소로 향했다. 입구에서 양복차림의 사람들, 방송사 카메라와 기자들이 우르르 몰려 나간다. 그 일행에게 물어보니 한나라당 중앙당과 도청에서 인사들이 내려왔다고 한다.
그들이 지나간 면사무소 마당에는 생수며 라면상자가 쌓여 있다. 면사무소 직원들은 수해로 인해 민원 받고 실태 파악하느라 이틀 밤낮을 지새웠단다. 구호품은 쌓아두고 갔지만 오가는 높은 사람들 영접하느라 말단 공무원들은 피로만 더 쌓인 눈치다.
면사무소 산업계 직원의 말에 따르면 수재민들에게는 자연재해대책법에 따라 간접적인 보상이 이루어진다. 예를 들면, 수해 입은 포도과수원은 시설비, 벼농사는 농약비와 종자 파종비 정도가 지급된다.
선진국의 경우 자연재해로 입은 피해에 대한 직접적인 보상은 없지만 재해보험이 정착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 농민들이 들 수 있는 재해보험은 가축공제보험이나 화재보험에 든 후 가입하는 ‘풍수재해보험특약’ 정도이다. 그나마 이를 알거나 가입한 농민들은 극소수이다. 한국 농민은 재해시에 부채와 파산의 낭떠러지에 여지없이 노출된다.
돌아오는 길, 이곳저곳 파손된 도로사정 때문에 버스도 시간을 넘겨서 다닌다.
“반 아이들 중 절반 정도가 나오지 않았다. 수업은 안 하고, 수해 입은 친구 집에 가서 도와주고 하교하는 길이다”는 이제현(황간고 1학년)군을 만났다. 문득 “나중에 농촌에 살 거예요?” 라고 물었더니 고개만 설레설레 한다. 그래, 나라고 해도 농촌에 못 살겠다.
포도 향기와 황금빛보다 흙탕물 냄새와 황토빛 더 짙은 농촌을 이렇게 뒤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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