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밤, 임시 수사본부가 마련된 용산파출소에서 경찰 관계자들이 비공개 회의를 갖고 있다. 오마이뉴스 이승욱
지난 11년 동안 '개구리 소년' 실종은 희대의 사건으로 기록이 되고 있었다. 아직 추정 유골 단계일 뿐 섣부른 단정을 하긴 힘들지만 긴 세월동안 실마리를 잡지 못하던 실종사건이 유골 발견으로 급물살을 탈것으로 보인다.
26일 밤 11시 현재 '개구리 소년'들로 보이는 유골이 무더기로 발견된 현장에는 취재진들이 거의 빠져나가 정적만이 감돌고 있다. 단지 10여 명의 경찰들이 현장 주변에서 발전기를 가동시켜 불을 켠 채 유골과 유품 등 현장 상태를 보존하고 있을 뿐이다.
경찰은 이날 유골 발견 10시간 후인 오후 9시 30분 경 임시 수사본부가 마련된 대구 용산파출소에서 관할 경찰서인 달서경찰서장이 주재하는 가운데 향후 수사계획 등에 대해 논의했다.
현재까지 경찰은 발견된 유골과 유품 등으로 봤을 때 발견된 유골이 개구리 소년들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 경찰은 발견당시 상황으로 미루어 길을 잃어 헤매다 추운 날씨에 '저체온'현상으로 사망한 것에 비중을 두고 있다.
| | | 개구리 소년 실종사건의 '아픔' | | | | 개구리 소년 실종사건은 초등학생 5명이 동시에 사라진 사건인 만큼 각종 의혹과 소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왔다.
연인원 32만명의 경찰이 동원됐고, 810만장의 전단이 전국에 뿌려지는 등 사건 해결에 대한 기대와 국민들의 관심은 높았지만 별다른 성과가 없어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려야 했다.
특히 수사가 미궁에 빠지면서 납북설, 외계인 납치설 등이 나오며 수모를 감수해야 했고, 일부 무속인·종교인들은 "하늘의 계시를 받았다"며 땅을 파헤치는 '해프닝'을 낳기도 했다.
하지만 그 가운데 소년들의 가족들은 가슴아픈 시련을 겪어야만 했다. 실종되지 않았다면 20대 초반의 나이가 됐을 자식을 보지 못한다는 아픔은 그 자체가 시련이었던 셈이다.
가족들은 생업을 포기하다시피 하며 전국 방방곡곡 트럭을 타고 아이들의 사진이 담긴 유인물을 돌리며 애간장을 태워야 했다. 결국 2년 6개월 동안 아이들을 찾아 헤매던 가족들은 결국 기자회견을 갖고 "생업으로 돌아가겠다"고 발표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그 후에도 상처가 아물만하면 엉뚱한 제보와 전화가 걸려와 가족들의 가슴에 '생채기'를 냈다. 또 지난해 10월에는 실종된 어린이 김종식(당시 9살)군의 모습을 보지 못한채, 아버지 김철규 씨가 7개월 동안에 걸친 간암 투병 끝에 마흔 아홉의 이른 나이로 숨을 거둬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개구리 소년들의 모교인 성서고등학교 역시 제적 처리를 하지 않고 정원 외 인원으로 특별관리하는 등 주위의 많은 이들이 아이들이 돌아올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 이승욱 기자 | | | | |
경찰 '저체온' 사망에 비중..."상식적으로 타살 흔적 거의 없다"
경찰 관계자들은 "실종 당시 두끼를 거른 상태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당일 비가 오자 비를 피하기 위해 유골이 발견된 현장에 쪼그려 앉아 있다 변을 당한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또 변을 당한 후 마사토 등 흙과 암벽이 무너지면서 깔렸을 것이라는 추정들이 나오고 있다.
반면 경찰은 타살 가능성은 극히 미비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대해 달서경찰서 김용판 서장은 "상식적으로 봤을 때 타살 흔적은 거의 없는 것 같다"고 말해 타살 가능성이 희박함을 내비쳤다.
하지만 경찰은 '단정적인' 언급은 자제하고 있다. 일단 서울에서 급파될 국립과학수사연구소 관계자들의 정밀감식 결과가 나온 이후에야 가능하다는 것. 따라서 27일 오후 늦게나 되어서야 발견된 유골들과 소년들이 일치한지 등 '동일성 여부'와 사망 원인들의 그나마 구체적인 윤곽을 잡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유골이 발견되고 사태가 급진전을 보이자, 개구리 소년들의 가족 반응에 초점이 모아지고 있다. 가족들은 유골 발견 소식이 전해지자 개별적으로 현장을 찾아 일부 유골과 유품들을 확인하기도 했다. 당시 현장을 찾은 가족들의 반응은 "믿지 못하겠다"는 반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한 유품 확인결과도 다소 이견이 나오고 있다.
한편 현장에 대한 정밀 감식은 27일 오전 9시부터 과학수사연구소 관계자들과 해당 경찰서 관계자들이 합동으로 벌일 계획이다.
뒤늦은 11년만의 추정 유골 발견, 이유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유골 발견과 관련된 각종 의문점들도 쏟아지고 있다.
특히 연인원 32만명(산악수색 7만명)이 동원돼 대규모 수사를 벌였음에도 찾지 못하다, 실종 11년이 지난 지금에야 추정 유골이 발견됐냐는 것이다. 91년 실종 직후 경찰은 '가출'로 수사방향을 모으다 실종된 지 6개월 후부터 와룡산 일대에 대한 대대적인 수색작업을 벌여나간 바가 있다.

▲지도에 나타나는 붉은 점선은 당시 개구리소년을 목격한 이들의 증언을 토대로 알려진 개구리소년들의 이동경로 오마이뉴스 이승욱
유골이 발견된 현장은 소년들의 집이 모여있는 달서구 이곡동에서 약 3.5km 떨어진 지역으로 당시 수색작업에 참여했던 경찰 관계자들의 말에 따르면 수색지역에 포함된 곳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 점에 대해 당시 수색작업에 참여했던 경찰 관계자는 "당시 대규모의 수색이 이뤄졌지만 산세가 험해 빠트린 부분도 있을 수 있어 수색에는 한계가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수색 집중 지역과는 다소 거리가 멀어 경찰의 관심에서 배제된 지역이었다는 점도 원인으로 보인다. 경찰에 따르면 당시 수색 집중지역은 최종 목격자의 증언에 따라 불미골 입구를 중심으로 한 지역으로 현장과는 약 4km정도 떨어진 지역이었다는 것. 따라서 산등선을 경계로 와룡산 정상 쪽으로 집중했던 수색에서 그 반대편인 유골 발굴 현장은 수색이 소홀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90년대 후반 용산지구 개발이 이뤄지기 전까지는 유골 발견 현장이 울창한 산림으로 둘러싸여 있어 외부인의 발걸음이 거의 없었던 지역이라는 점도 유골 발견이 어려웠을 가능성을 뒷받침 해주고 있다. 또 발견 현장 주변으로 상수리, 아카시아 등 수목이 울창하게 자라 접근이 용이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추론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장기 미제사건으로 남아 있던 개구리 소년 실종사건이 추정 유골의 발견으로 확인된다면, 당시 경찰의 수사 허점 여부도 여론의 도마에 오를 것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1신:26일 오후 7시>개구리소년들 추정 유골 발견

▲'개구리 소년'들로 추정되는 유골이 발견된 현장. 수습된 유골과 유품은 흰 천으로 덮여져 있다. 그 앞쪽으로 1.2미터 깊이의 골짜기의 모습이 보인다. 오마이뉴스 이승욱
'개구리 소년'들로 추정되는 유골이 발견됐다. 지난 91년 실종된 뒤 11년만이다. 이들 유골은 9월26일 오전 11시 30분경 대구 달서구 용산동 경원고등학교 뒷편 속칭 '세방골'(와룡산)에서 인근 주민에 의해 발견됐다.
| | | 실종 당시 개구리소년들의 신발 일치 | | | 현장 조사 결과, 유골 5구 추정 | | | | 대구 달서구 와룡산에서 발견된 유골은 과연 '개구리 소년'들의 것일까? 유골 현장을 조사한 경찰들은 대체로 개구리소년들의 유골이라는 '심증'을 굳히고 있다.
▲유골은 모두 5구인가? 발견당시 현장감식을 진행했던 경찰관계자들은 지금까지 유골이 확실하게 발견된 수는 4구가량이지만 아직 수습하지 못한 곳에서 추가적으로 유골과 유품들이 발견돼 시신은 5구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재 현장감식이 중단된 상태이기 때문에 27일 오전 서울에서 급파될 국립과학수사대가 현장에서 정밀감식에 들어가면 유골의 확실한 수효가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이날 발견된 유골 중 눈에 띄는 부분은 치아 보철흔적이 있는 유골이다. 실종당시 조호연 (당시 12살)군이 보철 치료를 받았다는 유족들의 증언이 있어서 이 부분이 확실하게 드러나게 되면 개구리소년이라는 결정적인 단서가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조군의 유골을 살펴봤지만 가족들이 정확한 보철 수를 기억하지 못해 단정짓기는 힘든 상황이다.
▲현장발굴에서 발견된 유골의 신발은 모두 8점(3켤레, 두 점은 짝이 없음)으로 7점은 흰색 운동화, 나머지 하나는 검은색 신발로 밝혀졌다. 이는 실종당시 개구리 소년들이 신고 있었던 신발상태와 맞아떨어지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경찰 관계자들은 이번 발견된 유골들이 '개구리 소년'들의 유골일 가능성을 그만큼 높게 보고 있다. / 이승욱 기자 | | | | |
최초 발견자는 최환태(55. 달서구 용산동)씨로, 이날 도토리를 주우려고 산에 올라갔다가 흙 사이로 일부 삐져나온 유골을 목격한 뒤 경찰에 신고했다. 유골 발견 현장은 인근 주택가와 신축 학교 공사장과는 200여m, 좁은 산책로와도 30여m 정도 떨어져 있다.
현장에서 확인된 유골은 4구 가량으로 추정하고 있지만, 인근에 신발 8점과 옷가지, 유품으로 보이는 시계 등이 모여 있는 것으로 보아 다른 곳으로 유골 일부가 흩어졌을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유골과 유품들은 작은 골짜기에서 10㎝, 더 깊게는 40cm 깊이로 묻혀 있었으며, 일부는 노출돼 있기도 했다.
경찰 관계자에 따르면 "유골, 유품들이 한군데에 모여 있었으며, 최근 폭우로 인해 일부가 노출된 것으로 생각된다"면서 집단으로 암매장 당했거나, 추위를 견디지 못해 모여 앉아 있다가 동사했을 가능성을 동시에 수사하고 있다.
오후 6시30분 현재 유골들을 대부분 수습한 상태이지만, 국립과학수사연구소 관계자들이 내일 오전 본격적인 현장 정밀감식과 추가 발굴에 들어갈 예정이다. 또 인근 용산파출소에 사건 전담 수사본부가 본격적인 조사에 들어갔다.
한편 유골발견 현장에는 50여명의 기자들이 모여들어 취재경쟁을 벌이고 있으며, 한때 방송사 헬기까지 등장하는 등 취재열기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개구리소년 5명은 지난 91년 3월 26일 대구시 달서구 이곡동 성서초등학교에 다니던 우철원(당시 13세.5년), 조호연(12세.5년), 김영규(11세.4년), 박찬인(10세.3년), 김종식(9세.3년)군 등으로 인근 와룡산에 개구리를 잡으러 간다며 집을 나간 뒤 지금까지 11년 동안 실종됐었다.

▲경찰과 취재진들이 모여 북적이고 있는 현장 모습. 오마이뉴스 이승욱

▲유골이 발견된 속칭 세방골 야산의 모습.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는 곳에서 약 50미터 뒷편에 유골 발견 현장이 있다. 오마이뉴스 이승욱

▲유골이 발견된 골짜기. 이곳에 흙과 낙엽 등에 덮여져 10센티미터 깊이에서 유골들이 발견됐다. 오마이뉴스 이승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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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개구리소년수사본부 확대개편 50사단, "이번 사건 군 무관" 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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