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패봉과 부봉 사이에 있는 동암문에서의 필자. 임종헌
가파른 비탈길을 내려와 북암문에 이른다. 성은 다 허물어졌지만 한 사람이 간신히 빠져나갈 수 있는 암문의 흔적은 남아 있다. 성의 위치나 규모로 보아 성루가 있었음직도 하다. 암문을 통해서 동화원과 지릅재로 가는 갈림길이 있다.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다람쥐 한 마리가 성벽위를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부봉으로 가는 능선에는 산성의 흔적이 계속 이어진다. 능선의 양쪽으로 쭉쭉 벋은 아름드리 낙낙장송들이 기상 있게 서 있다. 그런데 그 소나무들은 하나같이 밑둥치에 깊은 생채기를 하나씩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바로 일제시대 공출을 위해서 송진을 채취한 자국이다. 이렇게 깊은 산속에서 자라는 소나무에서 송진까지 긁어갔으니 당시 일본이 조선에서 얼마나 많은 인적, 물적 자원을 수탈했는지를 알 수 있다.
해방이 되고나서 당시에 민중들이 받은 피해를 마땅히 일본으로부터 배상받아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박정희, 김종필 두 사람에 의해 그것마저 좌절되고 말았다. 취약한 독재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오히라, 김종필 메모로 단돈 몇 푼을 받고 일본에게 면죄부를 준 것이다. 일본군 위안부문제, 강제징집과 징용피해자 배상문제 등에서 일본의 책임을 면하게 해 준 사람이 바로 박, 김 두 사람이다. 천인공노할 짓을 저지른 이들이 이완용과 같은 매국노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아직까지도 김종필과 같은 사람이 지역감정을 볼모로 정치생명을 유지하고 있는데 대해 국민들은 부끄러워 해야 한다.
756m봉을 넘는다. 이제 길은 밋밋한 능선길이다. 고만고만한 산봉우리가 이어진다. 764m봉을 지난다. 백두대간은 동화원을 가운데 두고 빙 돌아서 간다. 768m봉을 넘자 내리막길이 나타난다.
오후 1시 40분 동암문에 닿았다. 이 곳에도 무너진 성터에 암문의 흔적이 있다. 표지판에는 동문이라고 되어 있다. 동문이란 이름으로 보아 여기도 성루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동문에는 동화원과 문경의 월항, 그리고 미륵리로 가는 갈림길이 있다. 동문 성터에서 점심을 먹었다. 갑자기 하늘이 흐려지는가 싶더니 다시 맑아진다.
동문을 떠나 한동안 산성을 따라 난 오르막길을 오른다. 오르막길이 끝나는 지점에 부봉과 주흘산 갈림길이 나타난다. 오른쪽 비탈길을 오르면 부봉이다.
2시 45분 부봉 제1봉[916m]에 올랐다. 포암산과 주흘산이 성큼 다가와 있다. 만수봉에서부터 월악영봉을 향해서 달려가는 월악공룡능선이 장엄하다. 부봉에서 조령산맥을 바라보니 어제와는 또 다른 장관을 드러내 보여 준다. 여기서도 동화원으로 내려갈 수 있다.
정상에는 쓴 지 얼마 되지않은 산소가 하나 누워 있다. 이 높은 곳까지 와서 묘자리를 쓰다니 감탄할 만한 효성이다. 묘자리를 잘 쓰면 자손이 잘 된다는 생각은 비합리적이고 지극히 이기적인 사고방식이다.왜 스스로 성실하게 노력해서 성공하려 하지 않고 조상의 은덕을 바라는가! 설령 조상신이 있다 하더라도 자기 자손만을 잘 되게 해 준다면 그게 어디 신[神]이라고 할 수 있을까! 다 죽으면 한 줌 흙으로 돌아가는 것을...........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는가 보다.
이런 문제는 소위 사회지도층[나는 이들을 진정한 지도층이라 보지 않는다. 이들은 친일, 친미 사대주의자들로서 사이비 지도층일 뿐이다.]이 솔선수범해야 한다. 우선 대통령이나 국회의원부터 묘자리를 잘 써서 당선되었느니 어쩌니 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럼 그들을 지지한 유권자들은 뭐란 말인가! 허수아비란 말인가!
묘자리와는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재벌들이 기업의 중요한 결정을 할 때 점집을 찾고 정치인들도 선거철만 되면 당선여부를 점치기 위해 무당을 찾는 이런 현실을 도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3시 35분 부봉을 내려와 959m봉에 오른다. 오른쪽으로 웅장한 산세를 가진 조령산맥이 내내 따라온다. 여기서 남동쪽 능선을 타고 계속 가면 주흘산이고, 백두대간은 북동쪽으로 방향을 튼다. 간식으로 참외와 소보로빵을 먹었다. 어디선가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온다. 왕날파리들이 자꾸만 달려들어 귀찮게 한다.
햇빛은 쨍쨍 나는데 포암산쪽에서는 천둥이 친다. 비가 올 것 같지는 않은데...........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갑자기 천둥소리가 잦아지고 먹구름이 삽시간에 몰려오더니 우박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비 반 우박 반이다. 비닐로 만든 비옷을 급하게 꺼내 입었으나 바지와 등산화는 다 젖어 버렸다. 조심해 가면서 급경사길을 내려간다.
월항재에 닿았다. 월항재는 월항마을에서 동화원과 미륵리로 가는 고개다. 우박은 그칠 기미가 없다. 농작물에 피해가 크겠다.
851m봉을 넘는다. 경치고 뭐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하산길을 서두른다. 안개가 피어올라 포암산을 감싼다. 766m봉을 지나자 거짓말처럼 우박이 멈춘다. 거의 한 시간 정도 우박에 두들겨 맞고나니 정신이 하나도 없다.
밤나무밭을 지난다. 하늘재가 코앞에 보인다. 오른쪽으로 농가 한 채가 서 있다. 밤나무밭이 끝나는 곳에 샘터가 있다. 수량도 꽤 많다. 샘터주위로는 산딸기밭이다. 산딸기를 실컷 따먹는다.

▲하늘재 정상 표지석 임종헌
5시 30분 오늘의 목적지인 하늘재[525m]에 도착했다. 미륵리에서 문경 관음리로 통하는 재다. 고개마루에는 하늘재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하늘재는 신라 아달라왕 3년[156년]에 처음으로 개통되었다고 한다. 애초에는 계립령으로 불리다가 조선시대부터 지금의 하늘재라 불리기 시작했다.
이 재는 삼국시대 전략적 요충지로 신라 경순왕의 마의태자와 덕주공주가 망국의 한을 품고 울면서 이 고개를 넘었다는 전설이 전해 온다.송계 덕주골에는 덕주공주가 머물렀다는 덕주사가 있고 미륵리에는 엄청난 규모의 절터가 발견되었다.
미륵리를 향해 하늘재를 내려간다. 이 지역 향토작곡가인 백봉선생이 작곡하고 주현미가 부른 '월악산'을 떠올리면서 간다.
"월악산 난간머리 희미한 저달아 천년사직 한이서린 일천삼백리
너는 아느냐 아바마마 그리움을 마애불에 심어놓고 떠나신 우리님을
월악산아 월악산아 말좀 해다오 그님의 소식을... "
하늘재는 겨울에 눈이 왔을 때 걸어서 넘으면 아주 운치가 있다. 사랑하는 연인들에게 두 손을 꼭 잡고 한 번 걸어보라고 권하고 싶은 길이다. 하늘재를 거의 다 내려오자 언제 천둥치고 우박이 내렸느냐는 듯 햇빛이 반짝 난다. 산 구비마다 안개가 피어 오른다.
6시 20분 미륵리 점말로 내려왔다. [미륵가든]에서 도토리 골패묵을 안주삼아 동동주로 하산주를 한 대포씩 했다. 5분 전 7시 시내버스로 충주로 돌아왔다. 아내에게 물어보니 충주에는 비가 한 방울도 오지 않았다고 한다. 샤워를 하고 내일의 산행을 준비한다.
2001년 6월 7일[목]. 오전에 맑음, 황사.오후에 우박.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2001년 5월12일부터 7월10일까지 60일동안 백두대간을 혼자서 순례한 기록입니다. 이 날은 조령3관문을 떠나 마패봉, 북암문, 동암문, 부봉, 월항재를 넘어서 하늘재로 내려왔습니다. 월항재 근처에서 우박을 동반한 소나기를 만났답니다. 온몸이 그만 흠뻑 다 젖어버렸지요. 하늘재는 마의태자가 금강산으로 들어갈 때 넘었던 고개라고 합니다. 겨울에 눈이 내릴 때 사랑하는 이와 함께 하늘재를 걸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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