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이회창 후보님!
일전에 오마이뉴스를 통해 이 후보님의 대북관에 어떤 변화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그것은 이 후보님이 민족전체의 장래를 걱정하면서 대선행보를 할 때 적지 않은 국민들의 불안감을 덜어줄 수 있고, 또 그것은 이 후보님의 득표지반을 확장시킨다는 정치적 의미도 있는 것이었다고 거든 바 있습니다.
그런데 어제 이 후보님과 한나라당을 둘러싸고 전해진 2건의 보도내용을 보면서 착잡한 느낌을 지울 수 없어 이렇게 다시 컴퓨터 앞에 앉게 되었습니다.
하나의 보도는 이 후보님이 북한선수단을 격려차 방문하려던 계획이 북측 선수단의 거부로 무산되었다는 소식이고, 다른 하나는 남경필 대변인이 북한의 과거사 사죄문제와 관련해서 북한이 동족에게 저지른 숱한 만행에 진솔히 사과해야 한다고 촉구한 논평소식입니다.
저는 마치 이 후보님의 폭넓은 대북행보에 대해 당의 대변인이 딴지를 거는 듯한 엇박자 논평을 보면서 이 후보님의 반쪽짜리 리더십을 보는 듯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이 후보님이 서 있는 지점이 대북포용정책이나 화해정책을 취하기에는 매우 취약하다는 점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 사건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이 후보님!
저는 북측선수단이 이 후보님의 방문을 거절한 것은 그들의 경직된 사고와 수직적 의사결정 체계 탓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동시에 저는 북측만큼이나 경직된 대북 관점을 가지고 있는 한나라당과 이 후보님의 업보의 결과라고도 봅니다.
더구나 이 후보님이 방문하기를 원했던 바로 그 날에 남대변인이 북한측을 자극하는 논평을 낸 것도 순수하고, 우연이라고 봐주기에는 그 의도성이 쉽게 드러나 보인다는 점에서 역시 이 후보님과 한나라당의 근본적인 대북자세를 비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실 부산에서 치러지는 아시안게임에서 남북한선수단들이 화합의 한마당을 펼치는 것은 선거구도상 이 후보님께 불리한 것은 사실입니다. 남북한 화합의 한마당이 이 후보님의 텃밭으로 인식되고 있는 부산 경남유권자들의 보수성과 반민주당, 반DJ정서를 희석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냉전적 보수강경 분위기를 연출해야 이 후보님의 득표력이 올라간다는 맹신에서 이제는 벗어날 때도 되었다고 봅니다. 말하자면 득표패러다임을 바꿔보시라는 것입니다.
김대중 정부와 민주당이 잘못한 것도 많지만 민족화해정책은 대부분 잘했다는 국민판단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후보님의 득표력 확장을 위해서도 김대중 정부와 민주당이 잘 하고 있는 민족화해정책에 발맞출 필요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이 후보님이 민족화해정책을 추구함으로써 남북문제와 관련한 민주당후보의 득표력을 무위로 돌리거나 잠식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미 말씀드렸지만 어제 도심에서 한 시간 이상 난동에 가까운 시위를 벌인 북파공작원들의 실체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고 있는 우리 정부와 한나라당의 자세 변화 없이, 우리보다 모든 것이 열악한 북한측이 먼저 사과하고 들어오라는 것은 상대방의 마지막 자존심마저 인정하지 않으려는 군림의 자세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이런 마당에 북측선수단이 이 후보님의 방문을 거절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긴 하지만 한나라당과 이 후보님이 뿌린 씨앗의 결과라는 점을 인정해야 할 줄로 압니다.
그런데 문제는 야당후보의 선수단 방문 거부사태가 아닙니다. 만일 이 후보님이 차기정부를 구성하게 될 권한을 가지게 된다면 북한측과 어떻게 긴장완화를 통한 화해와 평화질서를 구축할는지 심히 걱정되는 것입니다.
책임 있는 집권자로서 야당 때와 같이 문제제기만 하지는 않을 것이라 보면서도, 그 유연성의 한계가 그리 넓지는 못할 것이란 생각에 이르면 여러모로 답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후보님!
이 기회에 4억달러에 이른다는 대북송금설에 대해서도 한마디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엄호성 의원이 폭로한 이 사건의 실체에 대해 저도 그렇고 국민도 그렇고 도무지 뭐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이 정부가 국회, 특히 야당의 동의도 구하지 않고 몰래 엄청난 거액을 빼돌렸다고 하니, 만에 하나 그게 사실이라면 대단히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 사건은 있는 그대로 실체가 밝혀져야 하겠습니다. 다만 이 사건을 대하는 한나라당의 태도가 국회와 야당을 무시한 정부의 독단성을 바로잡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반북대결주의적 이데올로기만이 보수적인 유권자를 결집시킬 수 있다고 보는 선거전술의 한 형태라면 그 역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저도 물론 국회와 야당의 동의 없이 엄청난 액수가 북한으로 이전되었다면 바로 그 독단적인 정부의 결정에 대해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나 제가 한나라당과 생각을 달리하는 것은 북한을 도와주는 것이 이적행위가 아닌가 하고 보는 한나라당 일부의 시각과 달리, 저는 절차상의 문제에 대한 문책은 하되 북한을 도와주는 것 자체를 불온시하거나 배격하는 듯한 자세는 냉전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 근시안적 관점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러한 관점은 대선 득표력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봅니다. 반북대결주의는 사실 6~70년대에 태어난 3~40대들에게는 군사정부에 의해 정치적으로 농락당해온 정책이란 인식이 퍼져 있습니다. 이른바 남북의 적대적 공존전략이란 것을 일반 백성들도 아주 잘 알고 있다는 얘깁니다.
이런 마당에 이 후보님이 자꾸만 반북대결주의를 주창하는 듯한 언행을 하는 것은, 보수유권자들이란 고정표를 묶어두는 데는 효과가 있을지 모르나 이 후보님 자력으로 선거에서 당선되기 위한 지지율 확대와는 정반대로 나가는 전략이라고 감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후보님께 좀더 대국적인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야 어제 이 후보님이 북측선수단 방문 거부가 반북대결주의를 강화하려는 한나라당의 전략 아래 북측의 거부를 의도적으로 유인해낸 것이란, 말 같지도 않은 의혹을 불식시킬 수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후보님이 합리적인 정치지도자란 생각을 갖고 있는 적지 않은 유권자들을 실망시키지 않는 길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후보님의 대선전략 못지 않게, 민족의 공존과 평화가 우리의 시대정신이라고 여기고 있는 저로서는 행여나 이 후보님이 반민족적인 정치지도자였다는 오명을 남길까 두렵습니다. 그래서 다시 한번 반북대결주의보다 더 유연하고, 더 적극적이고, 더 대국적인 남북화해정책을 이 후보님께 주문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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