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02.09.30 15:36수정 2002.09.30 17:08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20여년 전 '국방의무 완수'라는 국가의 중차대한 부름을 받고 신병교육대에 입소하여 우리나라 국방 첨병인 육군으로서의 기초교육을 이수할 때의 일입니다.
본디 군사교육이라는 것이 어렵고 힘든 것이기에 육체적인 어려움이야 다른 거개의 훈련병들처럼 저도 어찌어찌 참고 견딜 만했으나, 그 중에 '배고픔'의 고통만큼은 정말 참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쇠를 먹어도 소화를 시킬 것 같았던 당시의 제게 군대의 '짬밥'은 먹고 돌아서면 곧바로 소화되어 배가 푹 꺼지는 정도의 양, 가히 '조족지혈'에 불과했기 때문이지요.
낮에는 힘든 교육의 연속이어서 그러한 고통을 애써 잊을 수 있었지만, 밤에는 그럴 수 없었습니다. 문제는 밤에 불침번을 설 때였습니다. 제가 입대한 때는 지금과 같은 초가을녘이었습니다.
밤에 총을 들고 경계를 서노라면 달밤은 왜 그리도 밝고 귀뚜라미는 왜 또 그리도 처량하게 울어대던지요. 정말이지 그것은 사람을 극적으로 멜랑콜리하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때에도 어김없이 찾아와 저를 괴롭히던 것이 바로 그 지독한 배고픔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평소보다 밥을 한 끼만 더 먹을 수 있다면 그야말로 금방 죽어도 여한이 없겠노라'는 다소 엉뚱한 생각이 들기에 저는 뜸을 들이지 않고 그 이튿날 곧바로 거사(?)에 착수했습니다.
저녁 식사 시간이 되자마자 뛰어가서 제일 앞 열에 섰던 저는 그 날 저녁식사로 받은 식판의 밥과 반찬을 게 눈 감추듯 먹어치우고는 식판을 잔반통에 비움과 동시에 깨끗이 닦고는 다시금 잽싸게(!) 아직도 자신의 식사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전우들의 뒷열에 따라붙어 시침을 뚝 떼고는 밥 한 끼를 더 얻어먹고야 말았던 것입니다.
밥 한 끼를 남들보다 더 먹으니까 정말이지 기분만으로도 금방 돼지처럼 살이 뿌득뿌득 찌는 것만 같았습니다. 포만감으로 세상 살 맛이 났던 거죠. 그처럼 한 번 도둑질을 하니까 자꾸만 하게 되더군요. 저는 그 후에도 몇 번이나 도둑고양이처럼 밥 한 끼를 더 훔쳐먹는 실로 후안무치한 작태를 계속했습니다. 하지만 '꼬리가 길면 잡히는 것이 도둑'이랬던가요.
하루는 그처럼 밥을 더 훔쳐먹다가 저 말고도 저처럼 밥을 훔쳐먹는 인간 '도둑고양이'들이 의외로 많아서였는지 하루는 밥이 현저하게 부족한 게 원인이 되어서 그만 들통이 나는 사태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날, 저와 또 다른 '인간 도둑고양이'들은 반은 죽을 정도로까지 모진 기합을 받느라 대단한 고생을 했습니다만 아무튼 그때의 그 에피소드는 지금 생각해도 슬며시 웃음을 짓게 합니다.
몇 년간의 논농사 풍작과 함께 현대인들이 아침밥을 기피하는 현상이 심해지면서 요즘은 쌀이 많이 남아 농민의 고통과 정부의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러한 연유로 해서 앞으로는 쌀 증산정책을 전면 재검토한다는 뉴스까지도 듣게 되는데 하지만 그러한 주장에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쌀은 우리 한국인들의 영원한 먹거리이며 또한 '글로벌 무한 경쟁시대'라고까지 일컬어지는 현재와 다가올 미래에는 그 쌀이 곧 일종의 안보적 무기로서의 역할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요 몇 년간 쌀이 많이 남아돈다고 해서 식량증산을 포기한다는 것은 결국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처럼 쌀이 많이 남아서 고민이라면 현재도 점증하고 있는 실직자들과 독거 노인, 그리고 소년소녀 가장들과 이들을 지원하고 있는 많은 사회단체와 복지시설 등에 지원을 하면 될 것입니다. 다른 건 몰라도 쌀만큼은 "다다익선"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어렸을 적에는 보릿고개가 실재했던. 다들 그렇게 못 살았던 시절이었기에 저 역시도 빈한한 가정의 장남으로 태어난 원죄(!)로 인해 늘 많지도 않은 꽁보리밥을 그야말로 물리도록 먹어야 했으며 그게 아니면 밀가루로 만든 국수라든가 수제비 역시 참으로 많이도 먹으면서 자랐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에 많은 어르신들은 "하얀 이밥(쌀밥)이랑 고기를 배가 부르도록 먹을 수만 있다면 지금 당장에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고도 했으며 쌀이 많음은 곧 부자를 일컫는 등식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서 어느 때부터인가 우리나라의 경제가 신장되고 또한 지천에 이런저런 패스트푸드 류의 먹거리들이 많아지다 보니 요즘엔 아침에도 밥 대신에 빵과 우유를 즐겨먹는 풍조가 만연하는 듯싶습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현재 그처럼 쌀이 많이 남아도는 것이겠지요. 쌀을 한문으로는 '미'(米)라고 쓰는데 이는 농부의 정성스런 손길이 무려 여든 여덟번(88) 이상 가야만 비로소 쌀이 생산될 수 있다는 의미로서의 경구적 한문이라고 보아집니다.
'곡식은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처럼 1년의 거의 대부분을 온갖 지성을 다 들여서 수확한 쌀이 작금 패스트문화라는 시대적 조류의 밀물에 휩쓸려 소비가 둔화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살이 찐다는 이유로 다이어트의 한 방편으로 쌀밥을 안 먹는 사람도 있다 하니 이는 참으로 무지의 소치요, 또한 실로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는 지금도 단 하루도 빠뜨리지 않고 매일 아침이면 꼭 밥을 먹습니다.
기름기가 잘잘 흐르는 하얀 쌀밥에 얼큰한 된장국과 잘 익은 김장김치를 곁들이면 그야말로 '진수성찬이' 따로 없습니다. 입맛이 없거나 전날 과음을 하는 날이면 이따금씩 아침밥을 안 먹고 대신에 빵과 우유도 먹어봤습니다만 저 자신이 구세대여서인지는 몰라도 아무튼 그건 제 입맛에는 맞질 않아서 출근하면 회사 근처의 해장국집이나 김밥집으로 가게 되곤 했습니다.
제가 그처럼 아침밥을 거의 의무적으로 먹는 것은 어쩌면 저의 일종의 신앙이기도 합니다. "아침밥을 든든히 먹지 않으면 하루종일 힘을 쓰지 못하는 법"이라는 과거 어르신들의 지청구가 어느새 제게도 전이되었다고나 할까요.
오늘 아침에도 저는 쌀밥을 콩나물국에 말아서 한 그릇을 뚝딱 말아 해치우고 출근했는데 그처럼 제가 아침밥을 악착같이 든든히 먹는 또 다른 이유는 사망률 세계 1위라는 '한국의 40대 가장'인 제게 있어 그 아침밥은 저와 제 가족 모두의 든든한 건강과 '수신제가치국평천하'를 담보해주는 일종의 '방파제'라는 생각에서이기도 합니다.
세월은 유수처럼 흘러 이제 제 아들도 내년이면 군에 입대한다 생각하니 20여년 전에 훈련소에서 '인간 도둑고양이' 노릇을 했던 기억이 떠오르기에 이처럼 몇 자 적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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