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가을 일곱 가지의 감사의 열매가 주렁주렁

감사는 감사를 낳는다. 불평은 불평을 낳는다.

등록 2002.10.06 14:32수정 2002.10.08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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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반도 안면도 남단 봉황산 자락에서 바라보는 오른쪽 들녘에는 황금물결이 일렁이고 왼쪽 바다에는 푸른 물결이 출렁인다. 내가 사는 나지막한 동산에는 한 낮의 뜨거운 가을햇살아래 무화과가 무르익고 밤송이가 터져서 알밤이 뚝, 뚝 떨어지며 단감은 노랑색깔로 물들어 가고 대추와 석류도 붉은 빛깔로 옷을 갈아입는다.


밤하늘에는 휘영청 밝은 달이 등불처럼 허공에 떠있고 별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이 아름다운계절가을을 감사하고 있다. 추석을 지나고 십여 일만에 양력으로는 시월삼일 소위 개천절 날 오후 1시에 인천의 Y교회에서 나로서는 처음으로 아들의 혼례식이 있었다. 특별히 간소하게 하자는 양가의 합의가 있었다지만 막상 준비 없이 맞이하여 긴장감이 들지 않았다면 거짓이다.

먼저 은근히 걱정이 되었든 것은 교회당의 좌석에 비하여 하객의 수가 너무 적어서 분위기가 썰렁하면 어쩌나 하는 심정이었다. 연락을 취해야할 분들을 최소한으로 줄여서 청첩장을 내었으니 어떤 분들은 왜 청첩장을 안 보냈냐고 하는 분들도 있었다.

혹시나 예상한 식사인원만큼도 안 오시면 무슨 창피냐 하는 등의 여러 가지 염려들이 문득문득 생길 때마다 신경 쓰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고 함이 솔직한 표현이다. 그런데 이 모든 걱정과 염려들이 한가지도 발생하지 않고 아름답게 행사를 마치게 되어 정말 감사한 마음과 기쁜 마음이 그지없어서 나는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나의 큰 기쁨과 감사가 어떻게 독자 여러분들에게도 전달되고 이해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조금이나마 함께 나누고 싶은 심정이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감사한 일들을 정리해 보았다.

첫째로 소개하고 싶은 감사는 하객들이 예상하던 수가 훨씬 초과하여 식장내의 분위기가 시종여일하게 안정된 가운데 은혜롭게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하객들 중에는 청첩장을 보내지 않거나, 오시리라 기대를 하지 않았던 분들이 천리 먼 곳에서도 찾아 오셨다는 사실이다. 가령 가장 멀리서 온 분들 중에는 충청도 지방에서 온 분도 있지만 경상도지방 대구에서 올라 온 점곡초등학교 동창들과 나의 사촌형님들과 형수님들이 그러하다.


둘째로 감사한 일은 주례자의 좋은 말씀이다.
기자도 지금까지 수십 쌍의 결혼식에 주례를 하면서 주례사를 해 왔지만 이번처럼 실재적이고 훌륭한 결혼 주례사는 없었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나의 친구이자 영락교회 담임이신 고창곤 목사님에게 진심으로 감사 드린다. 그리고 예비 결혼교실의 교육프로그램을 통하여 아들의 새 가정을 지도해 주시고 축복해 주신 '열린 교회' 담임이신 문정식 목사님에게도 같은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다.

셋째로 감사한 일은 기대이상으로 상부상조의 미덕을 살려 과히 모자라지 않게 경제적 도움을 주셨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한 가지 꼭 고백하고 넘어갈 것은 당초에 양가가 합쳐서 3백 만원 선에서 결혼비용으로 쓰자고 합의하고 결의하였던 약속을 미쳐 미리 생각지 못했던 이런저런 이유 일들로 인하여 약속한 금액을 지키지 못하고 초과하고 말았으나 계산을 해보니 3백 만원 선 안에서 모든 일을 결산했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이것조차도 독자들 중에는 이해가 안가는 거짓말이라고 말할 분도 있지 안을까 생각하지만 엄연한 사실임을 확실히 하고 싶다.


넷째로 감사한 일은 16만원에 맞춘 양복이 생각 이상으로 맘에 들었다는 것이다. 사실 전에 있었던 몇 번의 경험으로 볼 때, 즉 훨씬 더 비싼 옷을 사 입고서도 이번 옷처럼 맘에 들지는 않았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다. 좋은 옷이어서 독자들에게 자랑도 하고 싶고 그 '이태리 양복점'을 소개라도 하고 싶은 기자의 심정을 독자들이 어찌 이해할지 모르겠다.

다섯째로 감사한 일은 나의 가족들과 친족들의 이해와 사랑과 배려에 대하여 깊이 감사 드리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나의 아내에게 고맙기 그지없다. 어려운 경제생활 중에서도 오늘까지 잘 적응하며 자식들을 잘 키워 주고 다른 친척들에게도 착하고 진실한 인격과 성품으로 잘 대해 준 것을 생각할 때 어찌 내가 그것을 모른다 하겠는가. 이번 혼인예식의 거품을 다 일소하고 모든 과정에 중요한 문제들을 근검 절약의 모범적인 모델로 실제 적용해 보인 놀라움은 전부 아내의 공이었으니 정말로 감사한 일이 아니겠는가 말이다.

여섯 번째로 감사할 일은 아들 내외의 대견스러움과 아름다움에 고맙고 이러한 은혜와 복을 허물 많은 소생에게 주신 것을 감사한다. 비록 사회생활의 짧은 경험 중에서도 젊음과 패기 그리고 도전과 지혜를 함께 아들 내외에게 내려주신 것을 생각할 때 절로 감사가 솟아 나오는 것이다. 다소 엉뚱하지만 나의 자작시 '가는 님을 잡을 수 있나'를 통하여 나의 내면세계에 있는 정서를 이 가을에 느껴 봄이 어떨지 모르겠다.

세월은 물 같이 흐르고
역사는 돌 같이 남는다
인생은 짧은데
예술은 길다 하였네
아침인가 했더니 아침이 아니요
낮이 한창 인가했더니 이미 저녁일세나

저 하늘 빛나는 태양처럼
불타던 사랑의 시절 있었건만
저 밤을 밝히는 달빛처럼
님 그리워 애달픈 낭만도 지나고
오늘 다시 보니 창공에는
푸른 별빛만 반짝이더라

세월이 유수 같으니
님 아니 떠나 실까만
서러워 못 살면 어찌할까나
백발의 주름이 동무하더니
죽음의 가시조차 동무하자네
보자기로 가려 피하리까
막대기로 쳐서 쫓으리까
봄인가 했더니 여름이요
여름인가 했더니 가을이라
가을인가 했더니 밤임을 알았네
세월이여
인생이여
내 님이 기어이 가신다네
붙잡아도 그냥 가시는 님을
어찌 짝 사랑만 하고 있으리요

덧없이 흐르는 삶이여
추억만 돌 같이 남는구려
젊든 나는 노인 되고
어리든 너는 어른 되는 날 일세나
이 슬프고도 아름다운 계절에
너는 뜨는 해일지니
나는 지는 달이고 싶어라
수많은 푸른 별들의 하늘에서


일곱째는 이 부족한 사람의 글(詩)의 세계를 좋은 작품으로 이해하여 평가하여 주시고 비평하여 주신 것은 이 가을의 좋은 결실이다. 특히 지방문학의 순수성을 지키고 있는 '태안 문학'의 대표 작가이신 지요하 선생께서 나를 시인이 되도록 격려하여 주셨고, 한국문학의 대들보 역할을 하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는 '문예 한국'에서 나에게 신인상을 수상하게 하신 것을 깊이 감사 드리지 안을 수 없다. 이 아름다운 결실의 계절에 부디 독자 여러분들에게도 좋은 감사의 열매를 주렁주렁 맺히고 더욱 사랑의 결실이 성숙해 가기를 바라마지 않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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