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대신 손자·며느리만 보고왔지"

5차 이산가족 상봉 참가한 석영자 할머니

등록 2002.10.16 12:50수정 2002.10.16 16:45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9위 금메달 9개 은메달 11 동메달 13' '미녀 응원단' '세계 역사 리성희'...

부산 아시안게임 대한민국 종합 2위라는 성적 못지않게 우리를 들뜨게 하는 것은 북에서 내려온 같은 핏줄들이다. 입밖에 내기 어려웠던 말들이 사람들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면서 조금은 낯선 일들이 벌어진다. 같은 얼굴 같은 말로 같은 땅에 살아오던 이들과 이제서야 조금이나마 가까워진 현실이 낯선 것이다.

2002년 10월 12일, 북쪽의 며느리, 손자와 찍은 사진을 들고 있는 이산가족 석영자 할머니
▲2002년 10월 12일, 북쪽의 며느리, 손자와 찍은 사진을 들고 있는 이산가족 석영자 할머니 한국교원대신문사
하지만 '길광이' '길남이', 한 할머니가 들고 있는 사진 속의 북쪽 손자들은 전혀 낯설지 않다. 사진은 9월 중순경 5차 이산가족 상봉 때 금강산에서 북쪽의 며느리, 손자들과 찍은 것이다. 사진의 주인공인, 맏아들이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에 의해 의용군으로 끌려가는 바람에 반세기 넘게 이산가족으로 살아온 석영자 할머니를 찾아뵈었다.

골목에서 만난 한 아주머니는 텔레비전에도 나와서 안다며 집을 자세히 알려준다. 댁에 방문했을 때는 둘째 며느리와 함께 석영자 할머니가 맞아주었다. 12살에 시집와서 자식을 낳고 잃고 낳고 잃고 한 석영자 할머니는 둘째 며느리와 손자와 함께 삼대째 청주 사직동에 살고 있다.

"금강산 잘 다녀오셨어요?"라는 물음에 "이름? 돌 석자에 영화 영자에 아들 자자, 석영자여"라고 하실 정도로 석영자 할머니는 많이 연로하셨다. 이번 일뿐이겠냐마는 이산 가족 신청부터 금강산 떠나는 길 앞까지 뒷바라지한 둘째 며느님이 할머니 옆에 앉아 말을 전하고 대신 말해준다. 그 분 역시 환갑이 지난 63세이다. 성함을 묻자 멋적어 하면서 "이영자여, 할머니랑 이름이 같아"라는데 고부간에 보통 인연이 아닌 것 같다.

금강산 가서 북쪽 가족과 찍어온 사진을 보여준다. 사진 속에는 19살에 끌려간 맏아들의 모습은 없었다. 아들이 북에 가서 얻은 맏며느리 김상연(65), 손자 표길광(35), 표길남(30)씨가 할머니 주위에 같이 서 있을 뿐이었다.

"손자들이 미남인데요. 아들 많이 닮았어요?"라는 물음에 "안 닮았지… 눈 큰 건 닮았지"라는데, 옆에 있던 며느리는 "닮았어, 이 집안 사람들이 다 잘 생겼어, 근대 북쪽 손자들은 그네 어머니를 닮아서 아래 볼이 쪽 빠졌어"라고 말한다.


오른쪽 석영자 할머니(92) 왼쪽 남쪽 며느리 이영자(65)씨
▲오른쪽 석영자 할머니(92) 왼쪽 남쪽 며느리 이영자(65)씨 박종희
귀도 어둡고 기억도 흐릿해서 석영자 할머니는 상봉했을 때 이야기를 물어도 잘 대답하지 못한다. 눈앞에 오가는 이야기가 희미하게 들려오는 탓인지, 먼저 떠난 아들들을 떠올리는 부모된 입장 때문인지 한숨과 근심의 표정이 떠나질 않는다. 며느리가 "아이고 답답햐"라는데, "그러니 나는 얼마나 답답하겠어"하는 말씀에 그 마음을 조금이나마 가늠할 수 있다.

전쟁 때 아들이 이끌려가던 모습이 기억나느냐는 물음에는 "예..."라는 말과 함께 주름진 눈언저리에 눈물이 맺힌다. 석영자 할머니는 소리 없는 눈물을 손수건으로 훔치시고 나지막이 한숨을 내뱉는다.

이산 가족 상봉 신청은 재작년에 둘째 며느리 이영자씨가 이곳 저곳 아는 곳 모르는 곳 다니면서 했고, 올 8월말에 전화로 통보가 왔다고 한다.

"(북쪽 아주버니는) 돌아가셨다는 데 맥이 팍 풀어지데. 이곳에 그이도 우리 형 죽었나 살았나 했었는데 둘 다 소식도 알기 전에 세상을 떴으니…."

기대하던 소식은 아니었지만 2남2녀 중 손자와 맏며느리가 살아 있다는 소식이 그나마 위안이었다. 이영자씨는 사진 속의 형님을 보며 말한다.

"이 양반 너무 고생을 했어. 남편이 44살에 11살 9살 7살 5살 먹은 자녀를 두고 죽어서 혼자 애들 키우느라 얼마나 힘들었겠어. 사진을 봐, 얼마나 고생을 했으면 아흔 넘은 어머니랑 형제 같이 보이잖아."

그리고 "빨리 통일이 되어 조카들 만나고, (사진 속의 형님을 가리키며) 이 양반이 너무 고생을 해서 도울 수 있으면 좋겠어"라고 말한다.

할머니는 다리가 안 좋은 데도 자세를 바꿔가며 끝까지 앉아서 잘 들리지 않는 소리를 가늠하며 이야기를 들어준다.

그리고는 기자들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전할 말을 묻는데, 이영자씨가 "뭐 손자들한테 바라는 것 없어요?"라고 전하자 "없어"라며 뭐 바랄 게 있겠냐며 말한다.

"얼른 통일되었으면 좋겠죠?"


"예∼"

현재 남한에는 이산가족 1세대가 약 120만명이 있고, 2∼3세대까지 합하면 그 수는 700만명을 훌쩍 넘는다. 하지만, 그 오랜 피붙이를 상봉한 사람은 구우일모(九牛一毛)로 비유하면 적절하다.


그리고 더한 것은 이산 가족 상봉 신청을 한 사람 중에 약 13%가 사망했다는 사실이다. 사망자 중 80세 이상이 56%인 걸로 보아 고령으로 자연사한 이들이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한다. 앞으로 기다리는 동안 얼마나 더 시간을 아쉬워하는 모습이 이어져야 할지….

그나마 지난 9월 적십자 회담에서 이산가족 상설 면회소를 금강산에, 순차적으로는 경의선 연결 구간인 도라산역에 설치하기로 한 것이 무척 고무적인 일이다. 하지만 갈 길은 멀다. 상설 면회소를 설치한다 해도 한 달에 몇 번 정도 제한된 규모로 이루어지는 만남에, 기다리는 사람들은 너무도 많다.

석영자 할머니의 경우 연세가 워낙 많아 일찍 상봉이 가능했던 경우이다.

"눈에 보이고... 보고싶고... 언제 볼라나."

이북 가족을 상봉하고 왔음에도 석영자 할머니의 마음보다 더 애 타는 현실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그래서 이산가족 문제의 해결과 통일로 가기 위한 걸음은 더 이상 늦어져서는 안된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톡톡 60초

AD

AD

AD

인기기사

  1. 1 공포 영화 틀었을 뿐인데... 10분만에 우리 가족이 겪은 일 공포 영화 틀었을 뿐인데... 10분만에 우리 가족이 겪은 일
  2. 2 누드 모델 가방 속에서 가운보다 눈에 띄는 것 누드 모델 가방 속에서 가운보다 눈에 띄는 것
  3. 3 김민석 "'탁자 위 구두' 피 안 통해서 다리 스트레칭한 것" 김민석 "'탁자 위 구두' 피 안 통해서 다리 스트레칭한 것"
  4. 4 0.09%P 모자란 김민석, 낙선 위기 김용... 마지막 관전 포인트 0.09%P 모자란 김민석, 낙선 위기 김용... 마지막 관전 포인트
  5. 5 다소 황당한 이유로 파헤쳐진 광화문 사거리 다소 황당한 이유로 파헤쳐진 광화문 사거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