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쪽 석영자 할머니(92) 왼쪽 남쪽 며느리 이영자(65)씨 박종희
귀도 어둡고 기억도 흐릿해서 석영자 할머니는 상봉했을 때 이야기를 물어도 잘 대답하지 못한다. 눈앞에 오가는 이야기가 희미하게 들려오는 탓인지, 먼저 떠난 아들들을 떠올리는 부모된 입장 때문인지 한숨과 근심의 표정이 떠나질 않는다. 며느리가 "아이고 답답햐"라는데, "그러니 나는 얼마나 답답하겠어"하는 말씀에 그 마음을 조금이나마 가늠할 수 있다.
전쟁 때 아들이 이끌려가던 모습이 기억나느냐는 물음에는 "예..."라는 말과 함께 주름진 눈언저리에 눈물이 맺힌다. 석영자 할머니는 소리 없는 눈물을 손수건으로 훔치시고 나지막이 한숨을 내뱉는다.
이산 가족 상봉 신청은 재작년에 둘째 며느리 이영자씨가 이곳 저곳 아는 곳 모르는 곳 다니면서 했고, 올 8월말에 전화로 통보가 왔다고 한다.
"(북쪽 아주버니는) 돌아가셨다는 데 맥이 팍 풀어지데. 이곳에 그이도 우리 형 죽었나 살았나 했었는데 둘 다 소식도 알기 전에 세상을 떴으니…."
기대하던 소식은 아니었지만 2남2녀 중 손자와 맏며느리가 살아 있다는 소식이 그나마 위안이었다. 이영자씨는 사진 속의 형님을 보며 말한다.
"이 양반 너무 고생을 했어. 남편이 44살에 11살 9살 7살 5살 먹은 자녀를 두고 죽어서 혼자 애들 키우느라 얼마나 힘들었겠어. 사진을 봐, 얼마나 고생을 했으면 아흔 넘은 어머니랑 형제 같이 보이잖아."
그리고 "빨리 통일이 되어 조카들 만나고, (사진 속의 형님을 가리키며) 이 양반이 너무 고생을 해서 도울 수 있으면 좋겠어"라고 말한다.
할머니는 다리가 안 좋은 데도 자세를 바꿔가며 끝까지 앉아서 잘 들리지 않는 소리를 가늠하며 이야기를 들어준다.
그리고는 기자들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전할 말을 묻는데, 이영자씨가 "뭐 손자들한테 바라는 것 없어요?"라고 전하자 "없어"라며 뭐 바랄 게 있겠냐며 말한다.
"얼른 통일되었으면 좋겠죠?"
"예∼"
현재 남한에는 이산가족 1세대가 약 120만명이 있고, 2∼3세대까지 합하면 그 수는 700만명을 훌쩍 넘는다. 하지만, 그 오랜 피붙이를 상봉한 사람은 구우일모(九牛一毛)로 비유하면 적절하다.
그리고 더한 것은 이산 가족 상봉 신청을 한 사람 중에 약 13%가 사망했다는 사실이다. 사망자 중 80세 이상이 56%인 걸로 보아 고령으로 자연사한 이들이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한다. 앞으로 기다리는 동안 얼마나 더 시간을 아쉬워하는 모습이 이어져야 할지….
그나마 지난 9월 적십자 회담에서 이산가족 상설 면회소를 금강산에, 순차적으로는 경의선 연결 구간인 도라산역에 설치하기로 한 것이 무척 고무적인 일이다. 하지만 갈 길은 멀다. 상설 면회소를 설치한다 해도 한 달에 몇 번 정도 제한된 규모로 이루어지는 만남에, 기다리는 사람들은 너무도 많다.
석영자 할머니의 경우 연세가 워낙 많아 일찍 상봉이 가능했던 경우이다.
"눈에 보이고... 보고싶고... 언제 볼라나."
이북 가족을 상봉하고 왔음에도 석영자 할머니의 마음보다 더 애 타는 현실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그래서 이산가족 문제의 해결과 통일로 가기 위한 걸음은 더 이상 늦어져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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