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들어오지마!

등록 2002.10.17 05:17수정 2002.11.06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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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들어오지마!"


요즘, 미국에 살면서 한국에 있는 친척들한테 이런 소리 안들어 본 사람이 없을 것 같습니다.이번 일요일이면 저도 미국생활 3년이 되지만 여름방학 동안 저희 집에 잠깐 방문하신 저희 부모님조차도 아이들교육을 위해서라도 이곳이 더 낫지 않겠느냐고 조심스럽게 의견을 피력하셨을 정도니 젊은 부모들의 생각은 물어보지 않아도 짐작이 갈 것 같습니다. 사실, 전 그런 소릴 들을 때마다 울컥 짜증이 날 때가 많습니다.

'한국이 어때서?!'라는 칼같은 대답을 들이대고 싶을 때가 많지만 이런 대답을 해대다간 어김없이 열이면 아홉은 지금의 한국의 사정을 너무 모른다며 말을 가르치듯 쏟아 붓곤 물정 모르면 잠자코 있으라는 식의 타박을 해대곤 전화를 끊습니다. 정말 한국은 썩을 대로 썩은 나라일까요? 미국은 참 아름답고 부유하며 모든 것이 한국보다 나은 곳일까요?

제가 처음 미국이라는 곳에 가게 된다는 것을 알았을 때, 결혼한 여자라면 대개는 시가와의 불편한 관계로부터 자유로워질 좋은 기회일 것 같아서 좋을 것 같았고, 아이들한테 새로운 세상을 접한 기회를 줄 수 있어서 더 좋을 것 같았고, 제 자신에 대한 어떤 형태로든 발전의 기회를 접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심리가 있었습니다.

마침내 미국이라는 땅을 밟게 된 날, 제가 본 이 나라의 첫인상은 그다지 좋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정말 엄청나게 큰 트럭들이 한국에선 생각도 못해본 넓은 고속도로를 결코 부드럽지 않게 달리는 모습들을 보면서 표현할 수 없는 미묘한 감정 속에 빠져들면서 그때부터 저의 미국에 대한 불편한 생각은 자라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다행히 전 대책없이 긍정적인 사고 방식을 가진 헤헤 엄마였던 지라 모든 것이 좋아질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미국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처음 1년은 큰딸아이 학교적응 문제로 울보엄마가 된 적도 더러 있었고, 천성이 덜렁이인 성격으로 여러 번 길 위에서 경찰과 반갑지 않은 대면을 해야만 했지만 전 그저 새로운 생활에 익숙해 가는 재미가 만만치 않아 남편의 좀따가운 눈길과 은근한 간섭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내 방식대로 내 아이 키우고 내 방식대로 생활을 해나가며, 내가 겪은 것을 기준으로 미국을 생각하며 말 그대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생각 없이(이보다 정확한 표현은 없는 것 같습니다) 살았습니다. 그러다 참 여러분 모두가 아시는 9.11.테러를 겪게 되었지요. 그날은 지구상에 사는 모든 사람에겐 충격적인 장면의 연속이었겠지만, 전 정말 생방송으로 펼쳐지는 장면에 5.18광주민중항쟁때 직접 눈으로 본 결코 지워지지 않는 순간 이후로 가장 충격적인 경험을 갖게 되었답니다.


그 이후 미국의 반응과 종교인의 반응, 그리고 차근차근 여론을 유도하며 완벽하게 대응하는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격 등은 제가 미국에 첫발을 딛던 첫날, 고속도로를 질주하던 엄청난 트럭을 자꾸 연상하게 하더군요. 그래서 시작된 저의 역사책읽기는 그동안 제가 얼마나 세상사에 무관하게 살아왔는지 그리고 제가 얼마나 한국과 미국의 관계에 일방적인 교육만을 받고 살아왔는지 그리고 정치가 사람 사는 세상에서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게 되는 지 알게된 소중한 시간들이었답니다. 저만 굶지 않고 저만 사는 것에 불편함을 느끼지 않으면 세상은 어떻게 돌아가도 상관이 없었던 그 무식하고 용감한 사고방식, 정치에 대한 혐오감은 많을수록 좋은 거였고, 아이가 잘되는 것만이 절대절명의 사명인양 살아왔던 제 자신을 돌아보는 좀 뼈아픈 과정이었지요. 물론 이런 과정 속에 오마이뉴스가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좀 이야기가 빗나갔는지 모르지만 미국은 커다란 접시에 담겨진 샐러드 한 접시란 표현은 적절한 비유입니다. 하지만, 서로 섞이지 않는 샐러드라고 할까요? 섞이려고 해도 잘되지 않는 샐러드말입니다. 그런 샐러드 속에서 하나의 야채라면 자신만의 독특한 맛과 빛깔과 향기로 입맛을 돋구어주는 것만이 자신의 존재를 알려주는 좋은 방법일 것 같습니다. 그런 야채들로만 이루어진 샐러드는 확실히 맛도 좋고 보기에도 멋진 것 같습니다. 비유가 바를 지 모르지만, 미국에서 사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만의 색깔과 멋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한국인으로 태어났으면 한국인으로서의 색깔을 보여주고 향기를 드러내는 것이 바르다는 생각입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사는 것은 맛도 없고 향기도 내지 못하고 색깔도 드러나지 않는 것과 같다고 할까요?


이번 미국생활 3주년에도 아마 누군가로부터 전화가 올 것입니다. 그러면서 또 듣게 되겠지요. "한국에 오지마"라고! 제가 그때 어떻게 말해야 할지 사실 지금도 난감합니다. 물론 간단히 웃고 말수도 있겠지요. 그리고 아마 그럴 것 같습니다. 하지만, 내년 4주년때엔 전 제목소리를 내고 싶습니다.

가까운 누군가가 힘든 상황에 있을 때 생각이 있고 남을 배려하는 사람이라면 외면하지 못하겠지요. 한국이 그 가까운 누구입니다. 아니 그 이상이겠지요. 게다가, 샐러드를 제 맘대로 휘두르는 주걱처럼 행동하는 미국에 대해 한국은 "안돼!" 라고 말도 하지 못하는 정말 짠한 나라입니다. 하지만 '언젠가 하고 말거야'라는 심지를 키우고 있는 사람이 많은 나라입니다.

어쩌면 가장 따뜻한 충고와 관심과 참여과 필요한 지금, 신물난다고 정치외면하고, 내 자식만 귀하다고 유학 보내고, 내가 그럭저럭 사니 윗동네 몇 년의 재해로 살림이 거덜나고 피덩어리들 길바닥에서 흙 주어먹어도 너희 빨간나라 사람 도와줄 수 없다고 한다면, 우리들 마음속에 진리와 정의와 사랑이 있는지 의심해 봐야하지 않을 까요. 먼 나라 미국에 살면서 나라의 소중함이 얼마나 큰지 겪어보고 안 철없던 저는 요즘 한국이 썩을 대로 썩은 나라가 아니며, 미국 또한 본 받아야할 나라가 아니라는 것을 매일 매일 느끼며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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