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환란'을 불러오자는 것인가?

[경제시평] 그많던 경제학자, 경제전문가는 다 어디로 갔나

등록 2002.10.30 10:51수정 2002.11.04 11:26
0
원고료로 응원
환란이 터진 뒤, 경제전문가(경제학자 포함)들은 환란 원인에 대해서 너도나도 한 마디쯤 거들었고, 다양한 견해들이 쏟아져나왔다. 어떤 경제전문가들은 자기 분석이 정답인 것처럼 자신 있게 떠들기도 했으며, 국내 언론들은 이들의 주장을 진리인 것처럼 국민들에게 전달했다. 만약 이들의 분석이 맞다면, 미래에 닥쳐올 환란에 대해서도 그 논리가 똑같이 적용되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 경제에는 국내 경제전문가들이 환란의 원인이라고 제시한 것들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경고의 목소리가 경제학계와 경제전문가 집단 등 사방에서 울려 퍼져야 한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어느 곳에서도 이런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국내 언론을 다 뒤져도 이런 기사는 찾아볼 길이 없다. 오히려 반색을 하고 반기듯이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자 그럼, 과연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고, 이런 일들이 왜 환란을 불러올 수밖에 없는지, 자세하게 살펴보자.

우선, 서울시는 10월 23일 '강남북 균형발전 추진계획'을 발표하였다. 서울 강북지역 3곳을 선정하여 신도시(뉴타운)로 개발하고 10년 안에 이런 신도시를 30여 곳이나 개발하겠단다. 그리고 10월 28일에는 무려 15조원이 소요되는 '20대 중점과제 시정4개년계획' 발표했다(이 계획이 실제로 시행되면 소요예산은 수 배나 더 증액될 것이다).

여기에는 서민용 임대주택을 중형규모로 다양화하여 10만호를 건설하고, 무료 장기요양원 9개 건설, 장애인편의시설 확충, 생활권 녹지 100만평 건설, 시청 앞 등 시민광장 3곳 건설, 대중교통 개선,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도시 건설, 청계천 복원, 지하철 부채 반감 등을 포함하고 있다. 이 같은 계획은 실현 가능성이 낮은 것은 사실이지만, 시민들에게는 장밋빛 환상을 심어주기에는 충분했다.

국내 언론의 보도 행태도 가관이다. 특히 조중동과 매경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조선일보는 4면 머리기사 및 해설기사로, 중앙일보는 1면 사이드 기사 및 27면 전면기사로, 동아일보는 30면 머리기사로, 매일경제는 1면 머리기사 및 38면 전면기사로 처리했다.

이런 보도 행태는 극히 이례적인 일로서, 특정 정당 띄워주기에 다름 아니라고 보아도 무방할 정도이다. '국민의 정부'가 국정계획을 발표했을 때에도 이런 정도까지 대대적으로 보도한 경우는 드물었기 때문이다.


이런 보도 행태가 부끄러웠던지 사업비 조달이 과제이고, 소요예산 산출에도 문제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으며, 사설을 통해서는 이명박 시장의 과잉의욕을 꾸짖는 척한 신문도 있었다. 어떤 신문은 강북지역의 투기를 걱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이 명백한 대통령 선거용 선심성 정치선전의 일환이라는 점은 외면했다.

무엇보다 큰 문제점은, 이런 정책들이 무리하게 시행될 경우에는 우리 경제가 환란과 같은 경제재앙에 다시 빠져들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느 언론도 이 점은 경고하지 않았다. 경제전문가도 모두 마찬가지였다. 자, 그러면 이런 일들이 왜 그리고 어떻게 환란을 불러온다는 것일까? 이 문제를 따져보자.


서울시의 위와 같은 발표는 환란을 불러왔던 과거 정부의 발표들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우선 '강남북 균형발전 추진계획'은 노태우 정권이 야심적으로 추진했던 '주택 200만호 건설계획'에 따른 신도시개발계획과 거의 정확하게 일치한다. 그리고 '시정 4개년계획'은 김영삼 정권의 'OECD 가입' 및 '국민소득 1만 달러'와 아주 비슷하다.

우선, 노태우 정권의 신도시개발정책은 첫째, 생산적 부문에 흘러가야 할 한정된 재원을 소비적 부문으로 끌어감으로써, 성장잠재력과 국제경쟁력을 결정적으로 손상시키고 말았다.

둘째, 국내 경기가 과열양상을 보이면서 총공급능력을 벗어난 총수요가 발생하여 수입이 급증하면서 국제수지가 급격히 악화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실제로 집권초기인 1988년에는 국제수지가 무려 145억 달러나 흑자를 기록했었는데, 집권후기인 1991년에는 당시 외환보유고의 60%에 달하는 무려 83억 달러의 적자를 기록하고 만다.

셋째, 위와 같은 경기과열은 물가불안을 불러올 것이 너무나 당연했다. 소비자물가상승률을 보면 1987년에는 3.1%를 기록하여 물가가 당시까지는 비교적 안정적이었으나, 1988년부터 꾸준히 높은 상승세를 보였고, 신도시개발계획이 본격적으로 추진되자 1991년에는 9.3%까지 오르고 말았다.

넷째, 경기과열은 그 거품이 쉽게 꺼질 수밖에 없으며, 실제로 경기의 급격한 침체를 불렀다. 실제로 성장률은 1988년에 10.5%를 기록했다가 1989년에는 6.1%로 잠시 떨어지기도 했지만, 신도시개발이 본격화한 1990년과 1991년에는 9%를 상회했고, 이후 1992년에는 다시 5.4%까지 떨어졌다. 총고정자본형성 증가율을 보면 더욱 심각해서, 1990년 25.9%까지 상승했으나, 1992년에는 오히려 -0.7%로 급격히 떨어졌다.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환란은 이미 노태우 정권 때부터 잉태되고 있었던 것이다. 오죽했으면 김영삼 전 대통령도 취임 초에 '부실기업을 인수한 것 같다'고 했겠는가.

그런데 집권초기에 노태우 정권으로부터 물려받은 경제난 극복을 위해 허리띠를 졸라맸던 김영삼 정권도 경제가 약간 호전되자 과잉의욕을 부리게 되었고, 결국은 환란의 원흉으로 몰리고 만다. 임기 내에 '국민소득 1만달러'와 'OECD 가입'을 성취하기 위해 무리를 했던 것이 결국은 환란이라는 경제재앙을 불렀던 것이다.

'서울시정 4개년계획'도 과잉의욕이라는 면에서 김영삼 정권의 위와 같은 정치적 선전구호와 하나도 다르지 않다. 자, 그럼 김영삼 정권이 어떻게 환란의 발발을 불렀는지도 한번 따져보자.

환란은 외환위기와 금융위기가 동시에 진행하면서 일으킨 경제재앙이다. 이 쌍둥이 위기를 불러왔던 것은, 반복하거니와, 김영삼 정권의 '국민소득 1만 달러'와 'OECD 가입'이라는 과잉의욕이었다. 과잉의욕이 경기과열을 부추겼고, 이것이 환란을 불렀다. 국민을 일시적으로 현혹시켰던 꿈 같은 정치선전이 경제재앙을 부른 것이다.

먼저, 외환고갈에 따른 외환위기는 국제수지 적자누적에 따라 발생했다. 1994∼1997년까지 불과 4년 사이의 국제수지 적자가 무려 435억 달러로서, 1990년대 전반 외환보유고의 약 2배에 이르렀으니 외환이 고갈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대규모 국제수지 적자는 수입 급증이 불렀다. 그리고 수입의 급증은 경기과열이 초래했다. 경기과열이 총공급 능력을 초과하는 총수요를 발생시켰으며, 이에 따라 수입이 급증한 것이다. 수출이 비교적 높은 증가율을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국제수지 적자가 눈덩이처럼 커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환란 전 4년 동안의 수출은 연평균 13.4%가 증가했는데, 수입은 그보다 많은 14.6%가 증가했다. 환란이 전개되던 1997년에 수입이 3.8%나 감소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 차이는 더욱 커진다.

또한 의욕과잉이 불러온 경기과열은 기업의 투자과잉을 불렀고, 이것이 기업의 수익성과 경영수지를 악화시켰다. 여기에다가 경기과열의 거품이 꺼지면서 경기의 급속한 침체까지 가세하였다. 그래서 1997년에 들어서자 한보, 삼미, 대농, 기아 등 재벌들까지 무너졌고, 금융기관 부실채권이 급증했으며, 금융시스템 위기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한 마디로 말해서, 환란은 의욕과잉에 따른 경기과열에 의해서 발발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대선을 앞두고 각종 장밋빛 정책공약들이 남발되고 있다. 서울시의 '강남북 균형발전계획'이나 '시정 4개년 계획'은 그 대표적인 사례의 하나일 뿐이다. 이런 정책들이 억지로 시행될 경우에는 우리 경제가 다시 환란이나 환란에 버금갈 경제난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을 것임을 나는 이 자리에서 명백하게 밝혀두는 바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21세기경제학연구소(taeri.org)'에도 실려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21세기경제학연구소(taeri.org)'에도 실려 있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톡톡 60초

AD

AD

AD

인기기사

  1. 1 평수 줄여 이사 간 은퇴 부부, 이게 제일 좋다네요 평수 줄여 이사 간 은퇴 부부, 이게 제일 좋다네요
  2. 2 여수 가게마다 긴 줄, 먹어보니 이유를 알겠다 여수 가게마다 긴 줄, 먹어보니 이유를 알겠다
  3. 3 "폭리는 반사회적 악행" 대통령 경고에 정유·주유소 업계 심야 '백기투항' "폭리는 반사회적 악행" 대통령 경고에 정유·주유소 업계 심야 '백기투항'
  4. 4 "파르테논 신전급" 캐나다 건축가가 극찬한 서울의 건축물 "파르테논 신전급" 캐나다 건축가가 극찬한 서울의 건축물
  5. 5 줄넘기로 '세계 1위' 찍고 대학 특기생 진학... "아시아 여성 최초예요" 줄넘기로 '세계 1위' 찍고 대학 특기생 진학... "아시아 여성 최초예요"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