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들, '콤퓨타대회' 상받던 날

야들아, 엄마가 콤퓨타대회 상 받았다, 그 두번째 이야기

등록 2002.10.30 15:02수정 2002.11.02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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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대회 본선은 청양대학교에서 열렸는데 우리 예산군 대표들은 군청에 모여서 점심을 같이 먹고 군청 측이 마련한 차를 타고 본선 대회장에 도착했습니다. 오후 2시에 시작하는 본선 대회에 늦지 않으려고 1시간 일찍 도착했는데 벌써 여러 사람들이 와 있었습니다.

본선 시험장에 들어가 자리를 확인하고 사용할 컴퓨터를 만져보면서 2시를 기다렸습니다. 2시가 되니까 도청에서 나온 감독관이 문제가 담긴 디스켓을 하나씩 주는데 문제는 10개 문항을 누가 더 빨리 누가 더 정확하게 검색하느냐 하는 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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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윤자 할머니와 박국원 할아버지는 주어진 문제들이 하나같이 아리송하고 깜깜한 문제들이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는 열심히 한다고 했습니다. 시간이 다 되어 나오려는데 도청 공보담당 직원이 부부가 참가한 경우는 유일하다면서 여러 번 사진을 찍고 TV 카메라 촬영도 해갔습니다.

집에 돌아오면서 할아버지는 "오래 살다보니 별 짓도 다 해보네 그려 임자! 등수에 들겄어?"하고 할머니에게 말을 건넸습니다. 그러자 할머니는 "등수는 그만두고 꼴찌나 면했으면 좋지 뭘! 바랠 걸 바래야지..."하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습니다. 도청 홈페이지에 대회 결과를 발표하는 날입니다. 그런데 비록 대회에 나가 젊은 사람들과 함께 컴퓨터 실력을 겨루기는 했지만, 솔직히 두 분 할머니와 할아버지에겐 도청 홈페이지를 찾아가서 발표 공고를 찾는 것도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입상은 아예 생각도 안하고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군청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할머니, 축하 드려요.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부부 참가상을 받으시게 됐고요, 할머니는 여자 부문 고령자상인 실버상을 받으시게 됐어요. 할머니 좋으시죠?"

시상식을 기다리는 곽윤자 할머니
▲시상식을 기다리는 곽윤자 할머니 유시환
할머니는 처음에 무슨 말인지 잘 못알아들었습니다. "상을 받았다니! 무슨... 나 같은 늙은이가 무슨 상을..." 그러고 말았는데 도청에서 다시 전화가 왔습니다.


"곽윤자 할머니시죠. 축하드립니다. 실버상을 받으시게 됐습니다. 그리고 박국원 할아버지와 할머니 부부 참가상도요. 시상식은 24일 날 도청 회의실에서 있습니다. 꼭 참석해주세요" 그러는 겁니다.

그때서야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상을 받는다는 사실이 믿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가슴이 뛰기 시작하는데, 그 마음이 초등학교 입학식날을 기다리는 아이들 같았다고 합니다. 시상식 날이 24일이면 일주일 남았는데 왜 그렇게 멀리 잡았는지 두 분은 도저히 안달이 나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할머니는 부엌으로 갔다가 안방으로 갔다가 또 밖에 나갔다가도 일이 손에 안 잡혀 다시 들어와서 달력을 들여다보며 안절부절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드디어 시상식 날이 되었습니다.

시상식은 도청에서 오후 2시에 있는데 할머니는 아침 9시 미장원이 문을 열자마자 미장원에 가서 머리하고, 할아버지는 이발소에 가서 이발하고 아들이 해준 한복 꺼내서 곱게 차려입고, 있는 멋 없는 멋 다 내고 도청에 갔습니다.

도청에서는 1시까지 오라 했습니다. 그렇지만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12시 30분에 시상식장에 도착해서 기다렸습니다. 1시 좀 넘으니까 도청 담당 직원이 나와서 시상식 순서와 방법을 죽 설명하고 자리를 배정해주는데 할머니와 할아버지 자리는 영광스럽게도 도지사 바로 옆 자리였습니다.

드디어 시상식 시간이 되고 상당히 직급이 높아 보이는 분이 들어오더니 시상식이 시작되었습니다. 도지사는 급한 문제가 생겨서 못 나오고 부지사가 대신 왔다고 했습니다.

대상 금상 은상 동상이 시상되고 고령자에게 주어지는 실버상 차례가 되어 "곽윤자 어르신"하고 사회자가 부르는데 할머니는 어찌나 떨리는지 대답도 제대로 못하고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대답을 하고는 주체 못하게 떨리는 손으로 상을 받았습니다.

수상자, 행사 관계자들과 기념 사진. 맨 오른쪽이 박국원 할아버지.
▲수상자, 행사 관계자들과 기념 사진. 맨 오른쪽이 박국원 할아버지. 유시환
이어서 사회자가 "다음에는 특별상 순서가 있겠습니다"하면서 할머니와 할아버지 이름을 호명하면서 상에 대한 설명을 곁들였습니다.

그 내용은 '부부가 늙도록 해로하면서 이런 대회에 참가한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이냐. 그래서 도지사의 특별 배려로 특별상을 시상하게 되었다'하는 것이었습니다.

시상식이 끝나고 나서 사회자는 "지사님과 차를 한 잔씩 나누면서 수상자 어르신들이 지사님께 하시고 싶은 이야기들을 하시기 바랍니다"하였습니다. 그래서 할머니는 만용인지 용기인지 벌떡 일어나서 일장 '연설'을 했습니다.

"먼저 도지사님께 한말씀 드리것슈. 이 늙은 것이 콤퓨타가 뭔지도 모른디 군청에서 가르쳐 준다길래 그냥 갔슈. 그란디 선상님들이 월메나 잘 가르쳐 주는지 모르것슈. 그래서 내가 이렇게 상까정 받게 됐는디. 그 고마운 마음 어떻게 할 수가 없슈. 너무 고마워유. 그란디 우리 예산군청 콤퓨타가 시원찮은 게 많유. 그라니께 이 손가락이 월메나 아픈지 몰라유. 콤퓨타 좀 바꿔줘유."

그러자 좌중에서는 폭소가 터지고 큰 박수가 터져나왔습니다. 그 말씀을 들은 부지사도 "재정이 확보되면 어르신 말씀대로 장비를 교체하는 일을 힘써 보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시상식 끝나고 집에 돌아오는 두 분의 발걸음은 날아가는 것 같았습니다. 할머니는 집에 돌아와 당장 미국에 사는 아이들에게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야들아! 엄마가 콤퓨타 대회 나가서 상 받았다. 그러니께 늬들도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먹고 용기를 내거라."

주변에서도 야단들이 났습니다. TV에서 뉴스 시간에 시상식 장면이 방영되었는데 그것을 본 사람들이 여기 저기서 전화를 해오고 신문 기사를 들고 찾아오는 이도 있고 심지어는 어떻게 알았는지 무슨 무슨 장애인 단체인데 좋은 상을 받으셨으니 물건 좀 팔아달라는 전화도 자꾸 오고... 하여튼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동네 유명인사가 되었습니다. 자고 일어났더니 유명해졌다는 이야기가 실감이 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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