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국내 반핵 10대뉴스 (3)

등록 2002.12.31 20:53수정 2003.01.01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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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최초의 '백색비상'과 단기간 최다 피폭자 발생
울진 3호기 백색비상과 이후 109명 피폭


4월 5일, 가동 2년 3개월만에 울진 4호기에서 세관파단사고가 일어난 후(이어진 앞 기사의 "2. 그 많은 물이 어떻게 나왔을까 - 울진 4호기 증기발생기 세관파단 사고" 참고), 11월 25일 이번에는 같은 모델인 울진 3호기(가동 4년)의 원자로를 식혀주는 냉각수가 막대한 양의 방사능이 오염되는 사건이 발생하여 백색비상이 발령되었다. 이 핵발전소들은 한국정부가 세계에 널리 홍보해온 '한국표준형원자로'이다.

'방사선 백색비상'이란 핵발전소 방사선 비상(1종)의 등급을 나타내는 것으로, 방사선 피해가 핵발전소 내에 국한되는 사건이 발생할 때나, 핵발전소의 상태가 더 심각한 사고로 발생할 가능성이 보일 때 발령된다. 이 사고에서는 원자로를 직접 냉각시켜주는 1차 냉각수에서 방사성 물질인 요오드-131의 농도가 분당 54,000 카운트(cpm)까지 이르렀다. 냉각수의 방사성 물질 증가로 핵연료봉이 손상된 일은 몇 차례 있었지만 이렇게 높은 준위의 방사능이 검출되어 백색비상발령을 내린 것은 울진 3호기가 처음이다.

놀랍게도, 1년 전인 2001년 10월 29일에 냉각수 중 방사능 농도 증가로 핵연료봉이 손상된 사실이 이미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한수원은 2001년 10월부터 2002년 11월까지 손상 핵연료봉을 방치한 채 14개월간 발전소 운전을 강행해왔고, 결국 25일 사고가 일어나고 말았다.

사고 후 울진원자력본부의 대응은 더욱 상식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건물 내 방사능오염이 기준치를 초과한 것을 알고도 작업자들을 방치하여 11월 28, 29, 30일 3일 동안 보수작업을 하던 한전기공 소속 작업자 109명이 방사능물질인 요오드-131, 코발트-58, 크세논-133 등에 피폭되었다. 당시 원자로 건물의 공기 중 요오드-131 농도는 과학기술부 방사능안전에 관한 고시기준치인 400베크렐(Bq)/m3 의 열 배에 가까운 3,550 Bq/m3 까지 치솟은 상태였다. 그러나 울진원자력본부측은 당일 새벽 3시 50분경 이 같은 방사능오염상황을 인지하고도 5시간동안 건물 내 작업자들에게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방치하다가 오전 11시경에나 철수시킨 것으로 밝혀졌다.

제보자들에 따르면, 상당수의 작업자들은 당시 작업자간 의사소통문제 때문에 방독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더해주고 있다. 작업자들은 "마스크를 착용한 상태에서는 작업지시 등의 대화가 전혀 불가능하기 때문에 마스크를 잠깐씩 벗을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마스크를 벗은 상태에서 대화를 하면 오염된 공기중의 요오드-131이 호흡기를 통해 흡수된다.

불과 2-3일이라는 짧은 기간동안 1백 명이 넘는 인원이 방사능에 피폭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참고로 지난 1998년 영광 2호기에서 3개월의 보수정비기간동안 투입된 작업자 310명의 피폭된 사례가 있다.) 방사선 피폭에 대비한 근본적인 개선책이 선행되지 않는 한 이번과 같은 대규모 인원의 내부피폭은 되풀이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9. 고리 신규 핵발전소, '하면 된다'?
주민의견 수렴 없이 건설 절차 강행


고리는 남한 최초의 핵발전소가 들어선 곳이며, 대도시(부산)에 가장 근접해 있는 핵발전소 부지이다. 현재 4개의 핵발전소가 가동 중이며, 수명이 다 되어가는 핵발전소와 새로 들어설 핵발전소를 둘러싸고 몸살을 앓고 있다.

한수원에서는 신고리 1, 2, 3, 4호기를 신규 건설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으나, 주민들의 반대로 법적인 절차를 통과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정해진 계획대로 진행하겠다는 과욕을 부린 나머지 또다시 불법과 탈법 수단을 동원하여 일정을 강행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핵발전소를 반대하는 주민여론으로 몇 번의 공청회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3월 6일 한수원은 '초청장'이 발부된 주민들과 관계자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고리본부 홍보전시관 강당에서 신고리 1, 2호기에 대한 '주민공청회'를 강행했다. 공청회에 앞서 한수원측은 반대주민들을 막기 위해 경찰병력 3개 중대 400여명을 정문과 공청회장 주변에 배치했고 '초대장'을 받지 못한 주민들이 몇차례 공청회장에 들어가려 시도했으나 끝내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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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의견 무시하고 강행하려던 신고리 1,2호기 환경영향평가 결국 무산되다. ⓒ 민주노총 울산본부

게다가 한수원은 공청회 개최 과정에서 신고리 원전 건설 일정의 차질을 우려해, 주민공청회 날짜 등에 대해 울주군과 사전 협의를 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공고하여 관련법을 어겼다. 관련법에는 공청회 일시 및 장소 등에 관해 미리 주관 지방자치단체와 협의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환경영향평가 공청회는 사실상 주민의견 수렴을 위한 단 하나의 제도인데, 2001년 12월, 2002년 3월과 4월 3차례 모두 사실상 무산되었고 보완이 이뤄지지 않았다. 이어 7월에는 신고리 3, 4호기 공청회를 또다시 강행하여 지역 주민들이 크게 반발했다. 환경부가 1, 2호기 공청회는 주민의견을 제대로 수용하지 못했다고 환경영향평가서를 반려했고, 1, 2호기 환경영향평가 검토의견에서는 심각한 생태계 파괴가 예측되었다. 그런데도 이에 대한 대책 없이 3, 4호기 공청회를 추진하는 것은 밀어부치기식 핵전건설의 표본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게다가 한수원이 울산시울주군과 부산 기장군에 제출한 신고리 3, 4호기의 환경영향평가서 초안에 따르면 신고리 3, 4호기 건설로 예상되는 환경파괴는 더 심각하다. 핵전 예정부지 반경 5㎞ 이내에 식물량이 2천394t이나 감소하며 동식물 플랑크톤의 20-40%가 죽는 등 주변 하천과 해양생태계의 변화가 극심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7월 25일 국회 산업자원위원회에서 백승홍 의원은 "산자부는 신고리원전 부지 지정 후 지금까지 주민숙원사업 해결 명목으로 377억5천700만원을 선심 행정으로 낭비했다"고 밝혔다. 백의원은 "산자부, 한국수력원자력(주), 원자력문화재단이 33억원의 홍보비를 선심성 관광비, 횟집 식사비, 해외 원전 시찰비 등으로 탕진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한수원은 8월 9일 신고리 원전 1,2호기와 신월성 원전 1,2호기 건설을 위한 원자로설비 및 터빈발전기 공급계약을 마쳤다. 어느 것 하나 합법적이고 민주적으로 진행된 것이 없지만, 일정은 무조건 맞춘다는 '하면 된다'는 태도이다.

12월 27일에는 또다시 주민들을 들러리 세우는 신고리 1, 2호기 공청회를 열었다. 이미 건설허가를 받아 놓고 핵발전소 주기기와 종합설계용역 계약을 체결했으면서 요식적으로 공청회를 통과시키려는 것이다.

핵발전소 건설이 주민 탄압과 분열을 기반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군사독재 시절부터 벌써 수십년째 계속된 악습이다. 평화적인 정권교체를 이룬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도 이 점만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핵발전 문제에 대해서는 노무현 당선자와 민주당도 전혀 진보적이지는 않았다.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면 그나마 핵발전 행정의 후진성을 탈피하고 주민들의 여론을 수렴하여 핵발전 정책을 수정하는 데까지는 이를 수 있을지 주목할 일이다.

10. 눈가리고 아웅하는 핵폐기장 '자율유치'
핵폐기장의 비민주적 추진


핵폐기장은 핵발전소에서 나오는 방사성 폐기물을 저장하는 시설이다. 한국정부가 1989년부터 6차례나 건설을 추진해 왔지만 해당 지역과 환경단체의 반대로 아직까지 부지조차 선정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일방적인 지정 방식에 대한 반발이 심하자 지역주민과 협의를 통해 공개적으로 핵폐기장을 추진하겠다는 방안을 세우고 거액의 지역지원금을 내걸고 2000년부터 부지 유치 공모를 했다. 하지만 두 번이나 공모 마감 시한을 늦췄지만, 신청한 지역이 한 곳도 없었다.

이에 한수원은 막대한 자금과 조직력으로 전남 진도·강진·영광과 전북 고창 등 4개 군의 일부 지역주민을 매수해 핵폐기장 '자율'유치위원회를 가장하게 했다. 그간 주민들은 지역 공동체를 파괴하는 이같은 행태를 비판해왔으며, 실제로 공개된 한수원의 기밀문서를 통해 그 전모가 드러났다.

'호남지역 핵폐기장 건설반대 대책위원회'는 4개 군 지역 주민의 청원 서명이 비정상적으로 이루어진 사례를 공개했는데, 대리 서명과 금품 수수, 식사 제공, 현금 지급 보장 등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부패가 얽혀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한 사람이 수십·수백 명분을 대리 작성했거나, 지역 주민이 아닌 사람들도 동원되었다. 존재하지 않는 '유령 인물'도 대거 서명했다. 전기료 인하, 국립공원 지정 해제 청원 용도, 심지어 핵폐기장 반대 용도로 받은 서명이 핵폐기장 유치 서명으로 둔갑했다. 가정마다 4억∼7억 원이 지급된다고 속여 서명을 받아내기도 했다.

10월 13일 MBC 뉴스 카메라출동도 역시 비슷한 내용을 고발했다. 유치위원회가 받은 서명은 한 사람이 모두 작성해 필체가 똑같으며 주민등록번호도 모두 가짜였다. 한수원의 내부 문건에는 각 지역 유치위원회 홍보 위원들에게 매달 198만원씩을 주고 각종 경비도 지급해온 사실이 드러나 있다. 또 다른 문건에는 유치위원회 측에 금전을 지급한 사실이 노출되면 사업 추진의 신뢰성과 투명성에 치명적이라는 문구도 있다.

김영춘 의원과 안영근 의원에 의하면 핵폐기장을 건설하는 데에 쓰여야 하는 비용이 지역 홍보비와 인건비, 운영비 명목으로 2,476억원 가까이 사용되었다. 또 '방사성폐기물 사업 이해'라는 명목으로 1998년부터 2002년 6월말까지 290차례에 걸쳐 12,270명의 지역주민들을 관광시키는 데에만 10억원이 넘는 돈을 사용했다.

유치위원회가 추진하는 핵폐기장 유치 집회도 한수원이 유치 분위기 확산을 위해 계획하고 뒷돈을 대고 있다. 영광에서는 한수원이 단 한 번의 집회에 1억3천여만원을 제공했다. 이들 '자율'유치위원회의 타락은 자신의 시간을 쪼개고 주머니의 돈을 털어 핵폐기장 반대 운동을 하는 주민들과 대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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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1일 핵폐기장 반대 상경집회 ⓒ 청년환경센터

전세계 어디에도 고준위 핵폐기물을 안정적으로 저장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 곳은 없다. 한국 정부는 밀실에서 결정하는 핵발전 정책, 핵폐기물 처리계획 등을 완전 공개하고 공개토론회를 여는 등 국민적인 합의를 먼저 거쳐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탈핵을 목표로 삼고, 현재 가동 중인 핵발전소만 남겨놓고 에너지 효율성을 높이며 청정한 재생에너지를 개발하면서 여론을 수렴해야 핵폐기장 문제를 풀 수 있다. 지금과 같은 구태의연한 방법으로는 합리적인 해결을 가져올 수 없다.


2003년은 핵 없는 세상으로 나아가는 전환점이 되길....

이 외에도 늙은 핵발전소의 수명연장, 대만에서 열린 10회 반핵아시아포럼, 전력산업 민영화 논의 등의 10대 뉴스거리가 있었다. 무엇보다 북한 핵문제는 사안의 심각성에서 포함시켰어야 하나, 독립된 기사로 심도 있게 다루는 편이 낫다고 여겨서 제외했다.

국내 핵산업계에 영향을 준 해외 뉴스로는 동경 스캔들이 있다. 일본의 공기업 성격인 도쿄전력이 수년간 원자로의 균열을 발견하고도 은폐해온 사실이 드러나서 이 회사의 회장 및 사장 등 중역들이 일제히 사임한 일이었다. 잇달아 일본전력(TEPCO)도 원자로 균열을 은폐해왔음이 드러나고 일본원자력(Genden)사도 원자로 균열 사실을 정부에 보고하지 않은 채 8년간 해당 원자로를 계속 작동해왔음이 밝혀졌다. 이 스캔들로 일본 핵산업계는 된서리를 맞았으며 한국 핵산업계도 불똥이 튀지 않을까 염려하는 분위기이다.

또한 독일, 네덜란드, 스페인, 스웨덴에 이어 벨기에도 전면적인 탈핵선언을 했다. 벨기에는 유럽에서 프랑스 다음으로 핵발전 비중이 높은 나라였지만 국민 합의를 통해 핵발전에서 벗어나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미 핵발전 비중이 높아서 핵발전 정책을 철회할 수 없다는 핑계를 대는 남한의 찬핵론자들에게 좋은 반례인 셈이다.

환경문제가 주변화되고 핵문제가 그 중에서도 주변화되어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것이 언제나 안타깝다. 중대한 사고도 언론에서 다루지 않기 때문에 10대뉴스에서도 각각의 세부 내용을 설명해야 하는 상황이 답답하기도 하다. 2003년에는 반핵 10대 뉴스를 짤막하게 짚어 주기만 해도, 독자들이 '아, 그 이야기구나'하고 상기할 수 있도록 반핵운동이 대중적으로 확산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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