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파도 타기, 일본

신주쿠 촛불 시위

등록 2002.12.31 20:39수정 2002.12.31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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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을 하는 시위대 ⓒ 안창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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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있게 지켜보는 일본 시민들 ⓒ 안창규

2002년 12월 31일 오후2시, 60여명이 모인 가운데 일본에서의 촛불파도타기는 시작되었다. 시작에 앞서 일본 유학생 이름으로 성명서를 발표하고 성명서를 불태우는 순으로 행사의 시작을 알렸다. "이 행사가 바다를 건너 한국과 미국까지 우리의 뜻이 전해줬으면 좋겠다는 재일교포분에 인사가 끝나자 오늘 행사 참가자들은 공원을 벗어나 신주큐 중심부로 행진을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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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주쿠 동쪽 출구 앞 ⓒ 안창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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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주쿠 서쪽 출구 앞에서 ⓒ 안창규

오후2시 이른 시각이었기에 거리는 예전에 비해 한산하였지만 태극기를 앞세운 대열을 지나가는 일본시민들이 관심어린 눈길로 지켜보았다.

대열은 신주쿠 역 동쪽 출구앞에서 20분간 사진 판넬과 초를 들고 거리 한가운데 일렬로 늘어서 미선·효순이의 죽음을 침묵으로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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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로 된 촛불 컵 ⓒ 안창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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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을 든 아이. ⓒ 안창규

대열은 다시 신주쿠 역 서쪽 출구로 이동해서 잠시 침묵시위를 하며 전단지 배포를 실시하였다. 15분 정도 서쪽 출구에 미물렀던 시위대는 다시 신주쿠 역 남쪽 출구로 이동해 서쪽 출구와 같은 방법으로 시위를 전개하였다.

오늘 참가자들은 일반 동경 유학생 및 재일교포, 그리고 일본인으로 구성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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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주쿠 앞에 태극기 ⓒ 안창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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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주쿠역 남쪽 출구 ⓒ 안창규

시위대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은 한국에 여중생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시위대의 사진 판넬과 전단지를 관심있게 지켜보았다.

지나가는 미국인들도 "투걸스"라고 물어보며 파이팅을 외치며 지나갔다.

시위대는 남쪽 출구 두곳에서 각각 15분씩 머무리며 여중생 사건을 알렸다.

다시 시위대열은 신주쿠 한복판을 가로 질러서 출발 장소인 공원으로 이동했다. 공원 안에서 오늘 집회에 대해서 평가하고 유학생, 재일교포, 일본인과 하나되어 아리랑을 부르며 오늘의 집회를 끝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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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된 아리랑 ⓒ 안창규



성명서

성명서

2002년 6월 13일, 모두들 월드컵 함성에 두 여중생 미선·효순이의 비명이 묻혀버리고 말았습니다. 50년 간 이 땅에서 그랬던 것처럼, 미국은 대수롭지 않은 사건에 하나로 치부하며 마무리 지으려 하였습니다. 기만적인 재판과 한국민들을 우롱하는 외교적 모습에 분노를 금할 길이 없습니다.
그들은 평화를 지키기 위해 이 땅에 주둔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모습은 평화를 지키기 위한 주둔군에 모습이 아닙니다. 식민지를 점령하고 있는 점령군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많은 미군들에 범죄가 이 땅에서 자행되어 왔지만 변변한 사과조차 없었습니다. 이번 미선·효순이 사건 만해도 기만적인 부시의 사과가 다였습니다.
우리는 당당히 요구합니다. 이제 더 이상 식민지가 아님을 선언합니다.
그리고 미국에 전쟁에 대해서 반대합니다. 평화는 폭력으로 얻어질 수 없음을 말해주고 싶습니다. 우리는 진정 평화를 원합니다.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어떤 공격도 용납할 수 없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우린 동등한 외교를 할 것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더 이상 평화를 해치는 그런 위험한 일을 자행하지 않기를 미국에 요구합니다.
작지만 평화의 촛불을 들겠습니다. 하나의 촛불의 모여 평화의 큰 불길이 되리라 믿습니다.
미선·효순이를 추모하며 평화를 기원합니다.

2002년 12월 31일
동경유학생 일동.
/ 동경 유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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