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문제를 보는 국민들의 심경변화와 새로운 출발

양치기 소년은 북한인가 미국인가, 합리적인 대북문제 해결이 필요하다

등록 2003.01.01 20:12수정 2003.01.02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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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민의 제안에 의해 촉발된 여중생 추모 촛불시위가 한창인 요즘 북한 핵 문제를 둘러싸고 또다른 긴장이 달아오르고 있다. 그러나 대통령과 대통령 당선자가 미국의 봉쇄정책에 반대성명을 내면서 분위기가 예전같지 않다.

북한이 IAEA(국제원자력 기구) 사찰요원의 추방에 이어 NPT(핵확산 금지 조약) 탈퇴까지 거론하며 한반도의 긴장이 고조되었고, 미국은 전쟁불사라는 강경방침에서 대한민국 내부의 반미 분위기와 전쟁에 대한 세계의 비난을 의식하여 다소 유화적인 태도로 입장을 누그러뜨리며 맞춤형이라는 미묘한 표현으로 간접적으로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상황이었는데,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가 명백히 반대의사를 표명을 한 것이다.

불과 2-3년전이라면, 아니 지난해 6월 서해교전 당시라면 가능한 상황은 절대 아니다. 또, 국민들의 반응도 대북강경, 친미로의 회귀가 아니라, 이번 사태의 원인을 미국측의 잘못된 정책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면서 미국의 속셈에 대해 의심하고 무엇이 국익인지 먼저 생각하는 분위기이다.

이에대해 틈만 나면 친미반북을 외치며 목소리를 높여서 정치적 이해득실의 승리로 가져가던 한나라당의 목소리도 그리 크지않고, 조중동도 머쓱해하면서 처음과는 달리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의 주장에 지면을 많이 할애하면서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다.

그런 심경변화는 참으로 괄목할만하다. 과거 북한에 대해 느꼈던 양치기 소년을 대하는 느낌이 이젠 미국에 대해서도 느낀다는 것이다.

이와같은 심경변화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미선, 효순 두 여중생 사망사건에서 비롯된 민족자존 회복운동 때문일까? 아니면, 월드컵이 가져다준 평화를 희구하는 국민들의 단합된 마음과 시야의 확대일까?

물론 둘 다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다른 관점에서 보면 국민들의 교육수준, 정보에의 접근 수준이 과거와는 판이하게 높아진 까닭으로 보여진다. 일방적인 보도와 레드컴플렉스 자극에 속아 넘어가던 국민들이 이제는 속지않고 냉정하게 바라보는 것이다. 여기에 전쟁은 공멸이며, 경제위기 등 위기의 경험에서 우리의 생존은 우리가 지켜야 한다는 공통된 인식이 형성된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따져보면 미국의 대북정책은 참으로 교활한 것이었다. 과거 북한이 1993년 탈퇴한 NPT에 재가입하고 평화적인 태도로 나올 경우, 마치 미국이 규정한 테러국가 반열에서 제외시킬 듯 하다가 북한이 협력하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테러국가로 규정했다. 이후, 지난 9.11 테러사건에서 힘을 받아 아예 전쟁대상국으로 몰아가면서 미국의 구미에 따라서 중유, 식량 등 경제지원도 했다가 말았다가 하면서 함부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미국의 속셈은 전문가들의 분석대로 동북아시아에서의 영향력 유지에 있다. 동구권 해체이후, 미국이 가장 경계하는 국가는 이라크가 아니라 중국이란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12억 인구에 엄청난 잠재력을 가진 중국이 성장하는 싹을 자신들의 영향력 범위로 들어오게 만들려는 시도인 것이다.

그 과정에서 북한은 미국에게 참으로 소중한 미끼이다. 중국의 자존심을 직접 건드리지 않으면서도 중국에게 긴장감을 줄 수도 있고, 핵무기와 군사력 증강에 대해 중국을 포함한 전세계 국가들의 분위기를 환기시키면서 자신들의 의도대로 세계를 주도할 수 있다. 여기에 대한민국과 일본은 보너스다. 긴장감 고조 때마다 3국은 모여서 협의하고, 미국은 두 국가를 보호해주는 댓가로 무기도 팔고, 경제적인 협력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적당히 자극하고 적당히 풀어주면서 유지해야할 필요성은 충분한 것이다.

여기에 첨부해서 보아야 할 것은 미국의 국내사정이다. 부시 대통령이 당선되는 과정에서의 해프닝은 미국의 힘이 약화될 것이라는 관측으로 나왔고, 부시 대통령은 그런 컴플렉스 극복을 위해 강력한 미국을 표방했고 일방주의 외교로 세계각국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여기에 로비설 등으로 수뢰의혹을 받던 부시 정부에게 9.11 테러는 참으로 호재였다. 이후, 계속 강경기조를 유지하면서 부시 정부의 지지도는 상승한 것이다.

그것이 그동안 미국이 보여준 행태였고, 대한민국 국민들은 그런 미국을 양치기 소년으로 보는 것이다. 더우기 한 민족의 생존을 담보로 전쟁이라는 말을 함부로 해댄 것은 우리 국민의 자존심을 폭발시키기에 충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한편, 일부 국민들은 북한의 잘못을 꼬집기도 한다. 왜 약속을 지키지 않는가라는 측면이다. 지난 6.15 남북정상회담 이후, 이산가족 상봉, 남북한 철도 연결 공사 등 많은 협력을 요구하는 일들이 있었고, 그 때마다 북한은 갖가지 이유를 들어서 더 많은 돈과 지원을 요구하거나, 지연시키기 일쑤였다. 또, 틈만나면 핵문제로 위기감을 고조시키는 빌미를 제공했다.

그리고, 보수언론들은 북한을 양치기 소년쯤으로 치부했고, 전문가들도 북한과의 관계재정립을 제기하면서 지속적인 대화를 추진해오던 정부도 밀리는 양상이었다. 그러다가 조금 대화가 가동되나 싶으면, 또다시 반복되었다.

그 결과 국민들은 북한을 둘러싼 문제에 대해 미국도 북한도 믿지 않는 모습이 되어버린 것이다. 물론, 그나마 북한의 경우 같은 민족이라는 의식이 있어서 나름대로 동정적인 여론도 있었지만, 미국의 경우는 혈맹임에도 불구하고 계속된 이기적인 행태에 합리적인 관점에서 관계재정립의 필요성을 느끼고 폭발한 것이다.

요즘 국민들은 북한도 미국도 믿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현상이 과연 합리적이며 우리 민족과 국가의 운명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가기에 충분한 것일런지 의문이다. 믿지 않는 가운데에서는 협력이나 평화라는 궁극적인 목표를 이루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신뢰 속에서 구체적이고 안정적인 결과가 나온다는 것은 순리이다. 그러므로, 신뢰도 측면에서 이제는 새로운 구도를 구축해야할 시기가 도래한 것으로 보여진다.

미국과의 관계는 SOFA 등에 의해 불평등한 관계였던 바 개선이 필요하다. 그러나, 세계의 경찰국가 임을 자임하고 있고 미국내 국내사정을 고려할 때, 쉽게 한 번에 모든 것을 변화시키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단지 문제가 불거질 때만 선심쓰듯 조금씩 바꾸는 것이 아니라, 불평등한 부분에 대해 개선을 추진하는 정기적인 만남과 협의가 자주 필요한 시점인 것이고 미국에게 요구해야할 사항인 것이다.

북한과의 관계도 서로에 대한 이해의 측면에서 변화가 필요하다. 비록 레드컴플렉스의 허상이 드러나면서 많이 변화하긴 했지만, 탈북자 문제 등을 제기하면서 극우 보수 언론에 의해 조작되고 온정주의에서 고착된 또 하나의 허상을 깨야 한다.

바로 북한 주민들은 불쌍하고, 북한 정부는 문제가 있다는 인식이다. 그 결과는 보수진영과 진보진영의 갈등을 유발하기도 했다. 도와주어도 북한 정부가 다 가로채서 전쟁준비를 하니 도와주지 말아야 하며 북한 정부도 그럴 때 변화한다는 주장과 불쌍한 북한 주민들을 먼저 지원해야하며 그나마 지원이 없으면 북한 주민들은 벼랑으로 몰린다는 것과 북한 정부가 북한을 풍요롭게 이끌도록 유도하자는 주장이 대립되었던 것이다.

양측 주장 모두 북한과 북한 정부에 대해 진정한 신뢰라고 보기에는 어려운 측면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대립의 전제인 북한 정부와 북한주민을 분리시키는 것은 옳지 않다. 바로 북한을 실체적인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우리 헌법에는 충실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맞지 않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대한민국 정부가 학정을 자행하고 국민을 괴롭힌다고 해서, 국가가 망하고 다른나라에 편입되길 바라지는 않는다는 것, 아무리 나라가 어려워도 국가로서의 실체를 인정받지 못한다면 반감이 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것을 북한에도 적용하면, 북한 주민들이 남북관계에서 대한민국 측의 주장대로 진행되는 것이나 오랜동안 북한당국에 의해 적대시 되었던 미국의 의도대로 정책을 이끄는 것이 어려운 것이다.

북한 정부는 비록 경제적 빈곤이라는 현실의 벽을 인정하고 변화의 길을 가고자 하지만, 그것이 곧 미국의 요구에 부응하는 것만은 아니며, 대한민국이 요구하는 대로 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북한 정부가 북한 주민들로부터 정부로서 인정받고 지지받으면서 북한을 풍요롭게 만들기 위해서는 나름대로의 고충이 있는 것이고, 그런 사정을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북한 정부가 북한 주민들에게 내세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핵이라는 점이다. 핵 카드는 대외적으로 미국이나 대한민국의 지원을 끌어내는 무기이기도 하지만, 북한주민들에게 북한정부가 힘이 있는 정부이며 강력한 국가를 이끌 것이라는 강력한 무언의 메시지인 것이다. (그것은 소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가 영화화 되고 선풍을 끌었을 당시에도 드러난 것처럼 우리 국민들에게도 부러움을 느끼게하는 카드이다.) 또, 극도로 악화된 경제사정에서도 북한주민들이 북한 정부를 믿는 자긍심인 것이다.

과연 그것을 현재의 북한정부가 뒤집어진다고 해서 버릴 수 있을까?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과 대한민국이 그 카드를 버리라고 요구할 때는 그만한 대체 카드를 주어야 한다는 결론인 것이다. 또, 북한 정부를 부시의 주장처럼 악의 축으로 보아서는 화해무드나 평화가 결코 성숙될 수 없는 것이다.

그 대체카드는 평화의 카드여야 북한과의 원만한 관계유지뿐 아니라, 미국이 적어도 겉으로는 그토록 외치는 세계평화의 길로 가는 유일한 길이다. 이런 상황에서 김대중 정부는 나름대로 비전을 제시했고, 어렵지만 정상회담에서 합의를 이끌어냈으며, 미국의 압력과 야당의 반대에 부딪혀서 예산을 동반한 일에 대해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미국은 달랐다. 앞서 밝힌 것처럼 부시 정부가 집권하면서 선거당시의 해프닝과 로비설 등을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강력한 정책을 추진했고, 다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북한을 계속 테러국으로 묶어 놓고서 이라크와 함께 전쟁 대상국으로 선포했던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계속된 것이다. 그러면, 앞으로의 남북관계는 어떻게 정립되어야 할 것인가? 대립주의나 온정주의가 아닌 합리적인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북한 정부가 핵카드를 쓰지 않아도 북한주민들의 지지를 받아서 평화의 길로 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말이 필요없다. 서로 대화를 통해서 풀어가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핵카드를 버리라고 요구하는 미국에게도 그런 부분을 충분히 설득하고 풀어가야 하는 것이다. 물론, 미국은 자국의 사정에 따라서 수시로 변하지만, 그런 미국에게도 이익이 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함으로써, 대한민국과 북한, 미국이 서로 신뢰할 수 있는 분위기로 이끌어야 하는 것이다.

북한 핵문제의 본질은 바로 북한 정부와 북한 주민들의 유일한 희망이라는 점에 있는 것이다. 따라서, 북한이 핵을 영구적으로 포기하기를 희망한다면, 북한의 희망을 대체할 또다른 희망을 미국과 대한민국은 함께 풀어주어야 하며, 그것은 진정한 신뢰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는 것, 진정한 신뢰는 강경론이나 온정주의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상대방을 인정하고 대화하는 것이다. 또, 그 과정에서 더 큰 신뢰가 쌓이고, 미국이 동북아 평화를 위해서 기여하고 대한민국과 북한 모두에게 함께 발전하는 파트너, 동북아에서 영향력이 있는 국가로서 인정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평화안착을 위해 대한민국과 북한, 미국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새로운 출발의 논의들을 언론과 전문가들은 시도해야 하며, 국민과 정부가 함께 열어가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 이 기사는 '뉴스통'에도 동시에 송고된 기사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뉴스통'에도 동시에 송고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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