벙어리 개에 관하여

최근 시청앞 기도회는 반역이다

등록 2003.01.20 08:18수정 2003.01.20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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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을 지키는 파수꾼이라는 것들은 눈이 멀어서 살피지도 못한다. 지도자가 되어 망을 보라고 하였더니, 벙어리 개가 되어서 야수가 와도 짖지도 못한다. 기껏 한다는 것이 꿈이나 꾸고, 늘어지게 누워서 잠자기나 좋아한다. 지도자라는 것들은 굶주린 개처럼 그렇게 먹고도 만족할 줄을 모른다. 백성을 지키는 지도자가 되어서도 분별력이 없다. 모두들 저 좋을 대로만 하고 저마다 제 배만 채운다. 그 도적들이 입은 살아서 "오너라, 우리가 술을 가져 올 터이니, 독한 것으로 취하도록 마시자. 내일도 오늘처럼 마시자. 아니, 더 실컷 마시자"하는구나. <이사야 56:10-12>


황선미의 <마당을 나온 암탉>이라는 동화가 있습니다. 여느 동화와 달리 자기 존재의 정체성에 대한 철학적 사유가 돋보이는 동화입니다. 주인공으로 나오는 "잎싹"이라는 닭은 본디 양계장에서 알을 낳는 닭입니다. 그런데, 양계장 출입문 틈새로 보이는 마당을 가끔씩 내다보면서 잎싹은 차츰 깊은 고민에 잠기기 시작합니다. 자신도 수탉과 함께 마당을 한가로이 거니는 씨암탉처럼 자유롭게 살면서, 병아리도 낳아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이 간절해질수록 식욕은 떨어졌습니다. 양계장을 빠져나갈 길이 요원했기 때문입니다. 먹는 게 부실하니 알을 잘 낳을 리 없습니다. 다행히 이렇게 알도 잘 낳지 못한데다 몸도 병약해져서 폐계가 되어서야 주인의 버림을 받아 양계장을 빠져나오게 되지요.

흙구덩이에 내동댕이쳐진 여러 폐계들 가운데 잎싹만이 어느 청둥오리의 도움을 받아 기적적으로 살아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마당에 들어가 거기의 닭이며 오리들과 어울리고자 하지만, 녀석들은 폐계인 잎싹을 좀처럼 받아주지 않습니다.

마당에서 가장 우두머리 노릇을 하는 놈은 수탉이었습니다. 수탉은 마당의 늙은 개까지도 제압하였습니다. 이 늙은 개는 파수꾼을 자처하지만, 게으르고 둔하여 족제비를 막아내기는커녕 허수아비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는 녀석입니다. 그러면서도 잎싹이나 청둥오리 같은 소수자들에게는 강한 척하며 큰 소리를 치려 들지요. 자기 먹는 밥마저도 수탉에게 빼앗기는 주제에 말입니다.

이 늙은 개는 말 그대로 수탉과 씨암탉의 꼬붕 노릇을 할 뿐입니다. 작품에 등장하는 동물 가운데 잎싹과 달리 노예적 삶을 가장 충실하게 이행하는 녀석이 바로 이 늙은 개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신의 본래 역할도 망각한 채, 현실에 순응하여 그저 무난하게 사는 것만이 최선이라 믿는 부류가 이 늙은 개와 같은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넓게 보면 마당에 있는 가축들이나 양계장에 갇혀 평생을 기계처럼 알만 낳다 죽는 닭들 모두가 이와 엇비슷합니다. 자기의 꿈이나 자유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하고, 주어진 현실의 테두리에서만 맴돌다 가는 것이지요.

말하자면, 자기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주인이 만들어 놓은 닭장이나 마당에서 주인을 위해 봉사하다가 끝나는 것이 그들의 슬픈 운명입니다.


이들 가운데서도 가장 불쌍한 녀석이 바로 늙은 개이지요. 정작 족제비가 올 때는 속수무책이면서도 다른 이들 앞에 자기는 가장 완벽한 파수꾼이라 내세우곤 합니다. 사실상 쓸모 없는 존재에 불과한데, 그것이 알려질까봐 조마조마하면서 비굴하게 수탉 부부에게 굴종하는 대가로 겨우 연명하는 양상입니다.

우리 주변에도 늙은 개와 같은 존재들은 많이 있습니다. 공장, 학교, 군대, 교회, 정지권, 언론계에 이런 늙은 개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망을 보라고 세워두었더니 야수가 와도 짖지도 못하고 기껏 한다는 짓이 늘어지게 잠이나 자는" 늙은 개들 말입니다. 말이 "늙은 개"이지 여기서 "늙음"은 생물학적으로 늙은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몸은 젊어도 이미 늙은이가 되어 있는 자들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전에도 말했듯이 "젊은이"는 "저를 묻는 이"이고 늙은이는 "늘 그런 이"입니다. 젊은이는 자신에 대해 끊임없이 물으면서 현실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는 변화와 개혁을 향해 나아갑니다. 반면에 늙은이는 "이대로!"라는 구호 하에 지금의 모습에서 한치도 나아가지 않으려 합니다.

그러니 늘 그 모양인 것입니다. 이런 자들이 바로 말하자면 수구, 보수, 기득권 세력인 것이지요. 자신들이 현재 누리고 있는 기득권에 도취된 나머지 개혁의 시기가 왔음에도 그것을 놓치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칩니다.

지난 11일 한기총 주최로 시청 앞에서 열린 "나라와 민족을 위한 평화기도회" 소식을 접하면서 양식 있는 많은 국민들이 그랬듯 참으로 어처구니 없고 참담한 심정이었습니다. 서울 시내 몇몇 대형교회 중심으로 무려 8만 명이 모여 "반미 부추기는 무리 있어 회개합니다" "미군철수는 위기상황, 살길 허락하소서" "주여, 부시의 마음을 붙잡아 주소서" 등의 기도를 올렸다고 합니다.

저는 오마이뉴스의 오마이 TV를 통해 그 기도회 장면을 보면서 얼굴이 화끈거리고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차라리 잘 되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차제에 수구 기득권에 빌붙어 연명하는 이들 교회들에 대한 거품이 어느 정도 빠지리라는 기대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기독교에 대한 일반의 평가도 보다 분명해지겠지요. 벌써 이에 대한 논쟁이 한창 진행되고, 있고 한기총 기도회에 반대하는 기독인들이 힘을 모으고 있습니다.

노무현의 당선으로 앞으로 힘을 잃을 것을 두려워한 이들 보수 대형교회 목사들이 벌써부터 세과시를 하면서 최후의 발악을 하고 있다는 평들이 많습니다. 우리 사회의 마지막 성역이라고 일컫는 언론과 종교 분야에 대한 개혁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도둑이 제발 저리는 것처럼 이들이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니까 늘 하던 식으로 잠꼬대를 늘어놓으면서 늙은 개처럼 멍청하게 기차를 보며 짖어대는 것이지요. 시대가 엄청나게 변화하고 있음을 아직도 절감하지 못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그러니 "미국은 우리의 혈맹"이니 "촛불시위는 불순세력들의 반미운동"이니 이런 망발을 늘어놓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들은 과거 하던 대로 교인들을 대거 동원하여 초대형 집회로 밀어 부치면 자신들의 존재를 두려워 할 줄 아나 봅니다.

효순이와 미선이가 미군 장갑차에 처참히 깔려 죽었을 때는 아무 소리도 못하던 자들이, 북핵 문제가 터지니까 미국이 마치 구세주나 되는 것처럼 그들을 짝사랑하지 못해서 안달이니 이거 한심한 노릇 아닙니까. 숭미 사대주의에 찌들린 그들의 추악한 모습이 이번에 그대로 드러난 것입니다.

한국교회가 주체적인 모습으로 이 겨레 위에 뿌리내리고자 한다면, 이런 기회를 통해 교회 내에 은연중에 스며 있는 미국에 대한 기존의 환상들을 철저히 깨는 작업이 필요하리라고 봅니다. 미국인 선교사들에 의해 기독교가 전래되다 보니 기독교 복음 자체가 숭미를 말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착각하는 경우를 간혹 봅니다.

설교 시간에 예화 하나를 들어도 미국에서 일어난 일을 말하고, 미국이 현재 초강대국으로 잘 사는 것은 청교도 신앙으로 하나님께 복을 받아 된 것이라고 곧잘 말하곤 하는 정신 나간 목사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걸 보면 그들의 신앙 근저에는 미국을 닮아야 우리도 하나님의 복을 받아 잘 살 수 있다는 생각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한국교회 내에 "승리 지상주의" "성공주의" "물량주의"가 지금의 교회 안에 가득한 게 아니겠습니까? 어찌되었든, 무슨 수를 써서라도 교회는 크고 봐야하고, 그렇게 해서 대형교회를 맡고 있는 목회자가 성공한 목회자로 통합니다.

시골에서 작은 교회를 섬기며 늙으신 어르신들의 손발이 되어 마을의 일을 도맡아 하는 젊은 목회자는 무능하고 별 볼 일 없는 사람 취급을 당하기 십상입니다. 교인들마저 이런 대교회주의에 빠져서 담임 목사가 무엇을 설교하고 그 교회가 무엇을 추구하든지 아예 의식을 놓고 안이한 신앙생활을 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물론 여기에 대한 일차적인 책임은 거짓으로 잘못 가르친 목회자들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거짓된 목자들의 모습을 보시면서 이렇게 한탄하며 경고하십니다.

너희가 두어 움큼 보리와 두어 조각 떡을 위하여 나를 내 백성 가운데서 욕되게 하여 거짓말을 곧이 듣는 내 백성에게 너희가 거짓말을 지어서 죽지 아니할 영혼을 죽이고 살지 못할 영혼을 살리는도다(겔13:19)

시대를 분별하는 눈을 감아 버리고서, 듣기 좋은 말들로 무지한 교인들을 속여서 자기 배를 채우는 데만 골몰하는 목회자들을 조심해야 합니다. 오늘 읽은 본문에는 그 도적들이 입은 살아서 "오너라, 우리가 술을 가져 올 터이니, 독한 것으로 취하도록 마시자. 내일도 오늘처럼 마시자. 아니, 더 실컷 마시자" 한다고 했습니다.

자기들의 시대가 계속될 것이라면서 날마다 "이대로!"를 외치며 축배를 들고 있는 겁니다. 하긴, 역사적으로 이런 거짓 선지자들이 인정받고 판을 치기 마련입니다. 살진 양을 잡아 그 기름을 먹으며 그 털을 입기는 좋아하면서 정작 양의 무리는 먹이지 않는(겔34:3) 자들이 항상 주류 기득권 세력을 형성합니다. 그들은 술수와 타협과 처세에 밝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교회를 떠난 사람들을 가끔씩 만날 기회가 있어 이야기 해보면 "예수는 좋은데 교회는 싫다"고 말합니다. 예수께서 행하시고 가르치신 복음은 분명 그게 아닌데, 교회는 예수를 말하면서도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말로는 사랑이라는 구호를 내세우는데 실제는 그런 모습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걸 보고서 논리적으로 설명은 잘 못하지만 마음 속으로 "이건 아닌데, 아닌데"하다가 환멸을 느끼고 교회를 떠나는 것이지요. 그래도 이런 사람들 중에는 비록 교회는 출석하고 있지 않지만, 예수 정신에 따라서 낮은 자들과 함께 하려 하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애쓰는 이도 적지 않습니다.

이걸 보면 교회가 진실된 신앙인들을 오히려 내쫓은 격입니다. 목마르게 복음이 외쳐지기를 갈망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강단은 헛소리로 가득차 있고 가장 민주적이어야 할 교회에 하나님의 공의는 온데 간데 없습니다. 이에 많은 상처를 받고서 헤매는 성도들의 상한 마음을 누가 위로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께서는 "나는 양의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요10:9)고 하셨습니다. 양의 문이신 예수님을 통과하지 않는 자들은 절도며 강도라 했지요. 그런데 양의 문을 통과하지 않고 들어가 양들을 엉뚱한 곳으로 이끄는 자들이 활개치고 있습니다.

도둑에 불과한 이 삯군들은 양들을 잡아먹고 팔아먹는 데는 빠르지만, 그들이 정말 위기에 처했을 때는 막아 주는 것이 아니라 도망쳐 버리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은 우리들 마음을 너무나 잘 알고 계십니다. 우리 또한 그 분이 어떤 분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이 하나님을 아는 것처럼 목자이신 예수님은 양을 알고 양은 목자를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 예수님은 자신의 목숨을 다 바쳐 양들을 지켜 주시는 분이십니다. 벙어리 개처럼 짖어야할 때는 짖지 못하면서, 굶주린 개처럼 먹고 또 먹어도 만족할 줄 모르고, 자신들의 배 채우는데 교인들을 동원하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날이 올 것입니다. 대신 예수님은 직접 우리의 목자가 되셔서 "잃어버린 자를 찾으시고 쫓긴 자를 돌아오게 하며 상한 자를 싸매 주며 병든 자를 강하게 하고 살진 자와 강한 자는 멸하시고 공의대로 양들을 먹이실"(겔34:15-16)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솔샘교회 어제(19일) 예배 설교문입니다.

덧붙이는 글 솔샘교회 어제(19일) 예배 설교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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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솔샘교회(solsam.zio.to) 목사입니다. '정의와 평화가 입맞추는 세상' 함께 꿈꾸며 이루어 가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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