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거칠어진 손이 아름답다

등록 2003.01.27 22:27수정 2003.01.28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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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농사짓는 친구들이 몇 있다.
몇 년 전부터 하던 일들을 정리하고 농사꾼이 된 친구들은 새로운 꿈을 품고 사는 친구들이다. 그 중 대학동기인 친구의 거친 손을 보고 많은 생각을 했다. 농사라고는 지어보지 않았던 그 고운 손이 농군이 되어 옛날 어머님과 어머님의 거친 손처럼 투박하게 되어버렸다. 친구의 손에 비하면 나의 손은 부끄러운 손이다.

사이비 농군이 된 지 얼마되지 않는 나에 비하면 그의 손은 훨씬 투박하고 거칠다. 이제 겨우 손에 굳은살이 박이고 갈라진 틈 사이로 풀 때가 묻은 내 손은 새악시 손이다.


농기구를 다루다가 엄지손가락 한 마디를 잃어버린 친구는 더 이상 클라리넷을 연주할 수 없었다. 대학시절 교회 문학의 밤에 초청을 받아 그 친구의 클라리넷 연주에 맞추어 기타 연주를 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 다시는 그런 시간은 없겠지. 그래도 엄지손가락의 한계를 극복하고 기타를 연습해서 클래식 기타를 멋들어지게 치는 친구.

그 친구가 갑자기 농사를 짓겠다고 했을 때 걱정이 되긴 했지만 그 친구를 믿었다. 80년대 격동의 시대에서도 그는 늘 선봉에서 자신의 몫을 넉넉히 해냈던 친구였기에 어느 곳에서도 자신의 삶을 아름답게 살아갈 것이라고 믿었다.

그의 거친 손을 보며 저것이 사람의 손이라고 생각했다. 저런 손이 있기에 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의 먹거리가 보장되고, 저런 손이 있기에 세상은 살 만 한 것이 아닌가?

또 한 친구는 중학교 동창이다. 중학교를 졸업한 후에 참으로 오랜만의 만남이었지만 출판하는 일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었기에 둘은 쉽게 친해졌다. 나 역시도 출판과 많은 관련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벼르고 벼르다 그를 만나 그의 차를 처음 탔을 때는 90년대 후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차안에서는 80년대 운동가요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미 지나간 것으로만 생각하고 있던 일들을 그 친구는 아직도 마음에 품고 살아가며 자신을 다지고 있었던 것이다.

IMF가 한창이던 1998년에 그 친구는 출판사를 더 이상 지탱할 수 없다며 퇴촌에 자리를 잡고 농사일을 시작했다. 그 친구 역시도 농사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었지만 패배자로서가 아니라 흙 속에서 의미를 찾고, 자신의 삶을 다지기 위해서 그렇게 농사꾼이 되었다. 그 친구가 어느 정도 농사일을 모르는지를 정확하게 보여줄 수 있는 사건이 있었다.


그는 호박을 심기로 했다. 그런데 방법은 모르겠고, 일일이 손으로 파자니 힘이 들어 포크레인을 불러 구덩이를 파도록 지시했다. 포크레인 기사는 시키는대로 할 수밖에. 그리고 친구는 그 큰 구덩이에 호박씨를 묻고는 흙을 덮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흙 덮는 일이 너무 힘들어서 포크레인이 퍼놓은 흙에 호박씨를 심었다는 전설같은 이야기가 있다.

"그래, 호박은 좀 따먹었냐?"
"아니, 구덩이에 파묻은 것은 아직 안나왔는데."


이 친구들이 먼저 퇴촌에 자리를 잡고 친구 목사가 퇴촌으로 내려와 교회를 설립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그 교회로 친구들이 모이게 되었고, 나도 쉬는 기간을 맞이하여 그 곳 교회에 방문을 했다.

그 곳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 남자들의 손은 대부분 거칠고 투박하다. 그 거친 손들이 80년대 민주화운동의 한복판에서 물러서지 않고 싸웠던 전력들이 있는 이들의 손이다.

나의 친구들에게는 자신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웃이 있고, 조국을 그 안에 품고 있다. 요즘은 무엇을 마음에 품고 있는지 속 시원히 이야기할 시간들은 없었지만 흙과 더불어 지내면서 자연의 섭리 속에 자신을 맡기는 훈련들을 하고 있는 중이다. 지금의 시간들이 소중하다.
단지 도피구로서 이 곳을 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돌파구로 흙과 씨름하는 일을 택했기에 그 거칠은 손들이 부끄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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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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