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으로 한번 더 별을 돌아보고
늦은 밤의 창문을 나는 닫는다.
어디선가 지구의 저쪽켠에서
말 없이 문을 여는 사람이 있다.
차겁고 뜨거운 그의 얼굴은
그러나 너그러이 나를 대한다.
나직이 나는 묵례를 보낸다.
혹시는 나의 잠을 지켜 줄 사람인가
지향없이 나의 밤을 헤메일 사람인가
그의 정체를 나는 알 수가 없다.
다음 날 이른 아침 창문을 열면
또 한번 나의 눈은 대하게 된다.
어디선가 지구의 저쪽켠에서
말없이 문을 닫는 그의 모습을
나직이 나는 묵례를 보낸다.
그의 잠을 이번은 내가 지킬 차롄가
그의 밤을 지향없이 내가 헤메일 차롄가.
차겁고 뜨거운 어진 사람은
언제나 이렇게 나와 만난다.
언제나 이렇게 나와 헤어진다.
<어떤 사람> 신동집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오래 전 영화로도 국내에 소개된 적이 있는 프랑소와즈 사강의 소설 'AIMEZ-VOUS BRAHMS?'. 이는 연상의 여인을 사랑하는 순진한 청년이 겪는 사랑과 고독의 갈등을 그린 작품이다. 영화제목은 `Goodbye again'. - 1961년도 유나이티드 아티스트 배급, 캐스트는 잉글리드 버그만, 안소니 퍼킨스 그리고 이브 몽땅이다.
연상의 여인을 음악회에 초대하면서 청년이 물었던 대사의 한 부분 -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Do you like Brahms?"
하필이면 모두(冒頭)가 왜 브람스일까? 영화의 전편에 흐르는 배경음악 브람스의 교향곡 3번, 그 3악장이 인상적이어서 일까? 아니면 연상인 클라라를 사랑한 세기말의 사랑, 브람스이기 때문일까? 아니다. 그들이 서로가 이 시의 텍스트인 <어떤 사람> 으로 이 세상에 남아 길이 기림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야말로 프랑소와즈 사강이 브람스와 클라라와의 관계를 정작 소설화한 것이다.
그로부터 1세기가 지난 1949년. 조지 오웰은 현대사회가 안고 있는 전체주의적 정신풍토를 경고한 역 유토피아 소설 <1984년>을 세상에 내놓았다. 이전 `어떤 사람`의 관계는 단절이요, 소망 또한 옛 유물이다. 오직 빅 브라더(Big brother)의 숭배 -
권력 집중. 당에 의한 대중 지배. 지배수단으로서 항상적(恒常的)인 전쟁상태의 유지. 개인생활의 감시. 사상통제를 목적으로 한 언어의 간략화. 당의 무류성(無謬性)을 증명하기 위한 역사의 개서(改書) 등, 모든 지배기구가 내포하는 총체적 위험성을 하나하나 여기서 적시(摘示)할 필요 없이 시인의 그 땅 1969년이다.
살수록 두렵다. 24시간 렌즈 앞에 무방비로 감시만 당하고 꽁꽁 얼어붙은 두 손 녹일 공간 하나 없이, 내가 그가 서로를 지켜주는 `어떤 사람`도 없이 기계가 되고 만 삶. - 오웰 선생의 또한 <2010년> 이다.
그리하여 나는 `어떤 사람`을 기다린다. 지구 저 쪽 켠에서 내가 문을 닫으면 말없이 문을 열고 나의 잠을 지켜줄 지향 없이 나의 밤을 해매일 사람을. 그가 문을 닫으면 내가 문을 열고 지향없이 그의 밤을 해매일 내가. 그도 나도 서로의 정체를 알 수 없지만 그는 냉철하고 열정적이고 어진 사람. -
언제나 이렇게 나와 만난다.
언제나 이렇게 나와 헤어진다.
만나고 헤어지다, 헤어지고 만나다. 그럴 때마다 브람스를 생각하고 시인처럼 `어떤 사람`을 기다리는 채 `어떤 사람`으로 우리들 모두를 영원히 기억하라.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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