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03.01.28 19:19수정 2003.01.30 09:41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이틀 전부터 내리던 비가 27일 오후 세찬 바람에 기온이 뚝 떨어져 눈으로 바뀌는가 싶더니 기상대는 전국에 한파주의보가 발령되어 몸과 마음이 움츠러듭니다. 그런데 마음은 포근합니다. TV를 보던 박막심(73) 할머니는 ‘눈이 계속 오면 어쩌나’ 벌써부터 자식들 귀향 길을 걱정합니다. 나이가 들면 주름과 함께 걱정도 느는가 봅니다. 없는 잠에 세상걱정까지 하고 계시니 말입니다.
‘서울에서는 모든 것을 사먹어야 한다’며 지난 가을에 거둬들인 쌀이며 참깨, 고사리, 무말랭이, 미리 빻아 놓은 고춧가루 등 자식들에게 나눠줄 양념을 꼼꼼히 챙깁니다.
세월이 갈수록 손주가 눈에 선하다면서 과자나 피자만 좋아하는 손주놈에게 이번에는 달콤한 고구마엿을 만들어 먹이겠다고 합니다. 또한 몸이 약한 아들생각에 산에서 캔 온갖 약초를 섞어 달인 보약을 냉장고에 보관중입니다. 자식들에게 주는 재미로 힘든 농사도 마다하지 않고 직접 짓고 있습니다.
옆에서 지켜보는 할아버지는‘애들 생각해봐야 다 지들 각시만 생각한다’며 할망구가 욕심이 많아서 그렇다고 핀잔을 줍니다. 이번 설에는 죽기 전에 손주들에게 집안내력을 바로 가르쳐야겠다고 단단히 맘먹습니다. 모두 내려오라고 전화로 지시해 놓은 상태입니다.
설은 해가 바뀐 후 처음 시작한다는 의미로 ‘새롭게 시작하니 서툴다’고 하여 설이라 했나봅니다. 그런데 ‘설’이라는 아름다운 우리말보다 언제부터인지 생각 없이 ‘구정’이라고 부릅니다. 하기야 우리의 언어생활이 혼탕에 잡탕이 되었으니 외국어를 쓰지 않은 것만도 감지덕지 해야할 일인지도 모릅니다.
조도출신으로 서울에서 전전하다 15년 전 고향에 내려와 경양식을 운영하는 장씨(55)는 찾아오는 친지와 공부하는 자식을 위해 싱싱한 생선과 50cm의 복어를 준비해 놓고 설을 기다립니다. 이웃에 사는 문방구점 김씨(42)와 호박공장 허씨(49)를 불러 술을 마시며 복어를 자랑합니다.
7남매 중 막내인 말포동 박씨(45)는 부모의 가업을 이어 받아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매년 고향을 찾는 친구들을 위해 간제미와 홍주를 미리 준비해 뒀습니다. 성묘를 마친 초등학교 동창들이 모여들기 때문입니다. 연례행사로 굳어져 귀찮아하던 아내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33살 노총각 박씨는 이번 설을 단단히 벼르고 있습니다. 객지 생활하는 다섯살 아래인 순분이를 만나 꼭 결혼에 골인하겠다는 결연한 각오입니다. 이번만은 자신이 있습니다. 비정규직이지만 직장도 얻었으니 그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에 더욱 몸이 달아오릅니다. 그도 그럴 것이 70이 넘은 노인네 걱정을 덜어드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지석(10)이는 벌써부터 삼촌들에게 받을 새배돈에 한껏 마음이 부풀어 있습니다. ‘삼촌과 고모는 언제 오느냐’고 엄마를 닦달합니다. PC방에서도 새배돈에 대한 이야기가 화제를 모읍니다. 작년 설에 20만원을 받았다고 어깨에 힘을 주는 기세등등한 아이와 찾아올 친척이 없다고 풀죽은 아이도 역시 설은 기다려지는 명절인 모양입니다.
형제들은 물론 이웃집 아저씨, 동네친구들, 형과 동생들, 한창 물이 올라 예쁜 아가씨도 짧은 연휴이지만 시간을 내어 고향을 찾는 답니다. 한동안 보지 못했던 이들을 만날 수 있는 설이 몹시 기다려집니다.
덧붙이는 글 | 귀향길 평안하시고 즐거운 설. 고향의 정 듬뿍 담아 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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