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회사에서 곧 바로 여행지로 출발할 때면 차를 가지고 출근하지 않고 나의 아내로 하여금 내 회사 근처로 애들을 데리고 나오라고 한다. 오후 4시에 출발. 이 시간쯤이면 올림픽대로는 월드컵대로(강북강변도로)보다 밀린다. 그래서 원효대교를 통해서 여의도를 빠져 나와 월드컵 대로를 택했다.
늘 그랬던 것처럼 나는 나의 아내에게 반포대교가 밀리는지 봐 달라고 했다. 나의 아내는 "잘 빠지는 것 같은 데"라고 했다. 반포대교를 건너 올림픽대로를 지나 중부고속도로로 접어들었다. 중부고속도로는 호법까지 4차선이 추가로 개통이 되어 호법 언저리까지는 결코 밀리는 법이 없다. 2시간 정도 걸려 문막휴게소에 도착했다. 큰놈이 약간 배고프다고 김밥을 사 달라고 하고 작은 놈은 늘 그렇듯이 닭튀김을 사 달라고 했다.
이제 날이 어둑어둑 해져 밖의 경치는 기대할 것이 없다. 다만 멀리 보이는 스키장 불빛이 하얀 눈을 비추어 장관을 연출하고 있으나 어쩐지 나의 마음은 시렸다. 산꼭대기가 잘려 나가 허연 속살을 드러내고 있는 것 같아서 말이다.
그저께 눈이 많이 와 걱정을 많이 했는데 날씨가 따뜻해서인지 의외로 길은 좋았다. 38휴게소 너머로 검은 바다가 보이고 그 아래 바로 기사문리 항구도 보인다. 검은 바다는 모든 것을 삼킬 듯이 출렁거리고 있다. 나도 몰래 노래가 나온다
어두운 밤바다에 바람이 불면
저 멀리 한 바다에 불빛 가물거린다
아무도 없어라 텅 빈 이 바닷가
불빛 아련히 가물거리는데
바람아 쳐라 물결아 일어라
내 작은 조각배 띄어 볼란다
속초를 가다 보면 어느 길을 택하든 38선을 지나게 된다. 홍천-인제간 국도에서는 홍천을 지나 소양강이 내려다보이는 신남 휴게소 근처를 지나다 보면 알 수 있다. 구룡령을 넘어 양양으로 빠지는 국도에는 미천골휴양림을 지나 좌측으로 38선이라는 돌에 새긴 표시가 나온다. 그리고 내가 가고 있는 강릉-속초간 국도에서는 기사문리 바로 위에 38휴게소가 있어 내가 지금 38선을 지나가고 있다는 것을 안다.
8시쯤 속초에 도착했다. 속초는 나에게는 별로 낯설지가 않다. 일 년에 계절별로 네 번 정도 온다. 그 중에 겨울에 오는 속초가 제일 좋다. 깨끗한 것이 더 깨끗해 보이고 맑은 것이 더 맑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바닷물이 그렇고 공기가 그렇고..
숙소는 미시령 밑에 있는 콘도를 잡았는데 본관으로 가서 잠자리를 알아보았는데 프론트 직원이 이 예약은 별관으로 돼 있다고 해서 난 별 감정없이 별관으로 향했다. 그 이유를 난 집에 돌아와서야 알게 되었다. 9시에 들려 오는 뉴스에 따르면 올 설에 호텔이 100% 예약이 끝났고 그 중 절반이 중국, 일본 관광객 몫이라는 것이었다. 그 뉴스를 듣고 기분이 상해서 그 회사에 전화를 해서 따질 심산이다. 우리나라 국민이 우리나라에서 대접 못 받으면 어디서 대접 받냐고....
저녁은 'KBS 6시 내고향'에 나왔다고 자랑스럽게 써놓은 순두부집에서 먹었다. 순두부는 고소했고 산채비빕밥의 산채는 시골에서 정월대보름 때 먹었던 그런 맛을 내었다. 다른 집에 비하면 요란하지 않은 간판이 맘에 들었다. 다른 집은 3개 방송국, 유명 신문사에 실렸다고 요란을 떨었지만 여기는 그다지 요란스럽지는 않았다. 어느 사진을 보니 "MBC, KBS, SBS에 나온 집"이라고 써놓은 집도 있더라 마는....
여행을 할 때마다 자기 전에 아침 산책코스를 생각 해 놓는다. 부지런한 경우라면 미리 계획을 세워 놓고 떠나기도 하지만 이번 여행은 가볍게 애들 위주로 떠나는 여행인지라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여기는 해돋이를 볼 수 있는 곳이어서 당연 해돋이를 보는 걸로 산책을 대신한다. 7시30분에 속초 해돋이 공원에 도착했다. 낙산의 의상대라면 더 멋진 해돋이라 할 수 있지만 그 것 또한 마음먹기 달린 것 아닌가. 원효가 유학 가는 길에 깨달은 것처럼.....
7시40분, 수평선 근처가 붉게 물들고 있었다. 구름 테두리는 공사장 주변에 설치한 전등으로 불을 밝힌 듯 선이 선명했다. 1분,2분이 지나서도 주인공은 몸을 드러내지 않는다. 한시라도 눈을 뗄 수 없다. 해돋이는 워낙 빠른 순간에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사진이라도 찍을라 치면 내 몸은 바빠지기 시작한다. 해돋이 장소에 와서 느낀 것은 해돋이를 보는 사람이면 남녀노소 모두 시인이 된다는 것이다. 옆의 50대 아저씨가 오늘 시인이 되었다. 저 해는 부끄러워서 빨리 못 나오는구먼... 어 저기는 온통 불바다야.....더 이상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바다에서 뜨는 해는 붉고 아른아른하다. 던지면 날아갈 듯 연하다. 산에서 뜨는 해는 손톱의 하얀 선 같다. 아기가 엄마 자궁에서 내미는 머리 같다. 강렬하다.
복잡한 것이 싫어서 이른 아침에 설악공원으로 갔다. 거기 갈 때마다 느끼는 건데 주차관리의 진수를 보는 것 같다. 그 조그마한 터에 몇 백대를 주차하니까 말이다.
설악공원에 들어서니 곰 한 마리가 겨울잠은 자지 않고 딱 버티고 서있다. 둘째 놈이 곰하고 사진 한장 찍어 달라고 했다. 속으로 웃음이 나왔지만 얘기는 안 했다. 둘째 놈은 학교에서 곰돌이라는 별명이 있다는 것을 들었기 때문이다. 필름 현상을 하면 곰 두 마리가 버티고 서 있을 게다.
설악공원은 온통 눈바다다. 10CM넘는 포근한 양탄자를 깔아 논 것 같다. 공원안에는 두 그루의 노송이 자태를 뽐내며 멋있게 서 있다. 부모의 욕심에 거기서 애들 사진을 찍어 주고 싶었다. 명당은 원래 주인이 따로 있나 보다. 사진 찍기 제일 좋은 곳에 번데기, 메뚜기, 소라 장사가 자리를 틀고 있었다. 순간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지금 생각하니 부끄러워진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누군가 그렇게 외치는데 나에겐 가요 가사로만 들렸나 보다. 그 사람들이 나보다 잘 사는지 못사는지 난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는 거기서 노동을 하고 있었고 난 관광하러 왔다는 것이다. 물론 그도 관광지에서 관광 온 사람들을 대상으로 돈을 벌고 있다면 관광 온 사람들을 배려하는 직업의식이 필요한 것은 필요하지만, 분명 사람은 꽃보다 아름다운 것은 사실이다.
신흥사 일주문을 10미터쯤 가면 세계최대의 불상이 주위의 경관하고 어울리지 않게 서 있다. 최근 늘어나는 중국, 일본 관광객들에게나 눈요기 감이 될 성싶다. 거긴 조그맣게 사리탑이 몇 개정도 놓여 있을 만한 곳이다. 오늘같이 눈이 많이 쌓인 날 눈으로 단장하고 수줍게 서 있는 사리탑은 세계최대의 불상 보다 몇 배 아름다울 것이다. 이런 불상이 지리산엔 생길 리 없다. 설악산은 산등성이 하나 넘어 진전사의 진전사지 삼층탑이 변방문화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이렇다 할 문화재를 껴안고 있지 못하고 있는 한계가 있다.
길을 재촉하여 비선대로 향했다. 울산바위, 구룡폭포 길 보다 눈을 감상하면서 산책하기에 좋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숲속을 약간 접어들었을 때, 난 속으로 깊은 탄성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키 작은 산조릿대는 눈 속에 잠겨 마치 무덤의 비석처럼 제 이름표만 남겨 놓고 있었다. 소나무는 소나무대로 참나무는 참나무대로 나름대로 눈으로 몸단장을 하고 서 있었다. 소나무는 기품있는 양반의 모습을 참나무는 예쁜 색시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계곡바위들은 무슨 업보를 갖고 태어난 양 묵묵히 두꺼운 눈을 이고 있었는데 순간 난 힘 좋은 머슴같은 생각이 들어 웃음이 나왔다. 그 순간 옆에서 마누라가 보고 왜 웃냐고 묻기에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하니까 큰 놈하고 멀찌감치 앞서 나가더니 뒤도 안보고 내뺐다. 눈경치에 취해 오르다가 시계를 보니 처제네 식구가 도착할 시간이 훨씬 지난 뒤라 비선대 휴게소까지만 가고 부리나케 내려왔다.
비선대까지의 길은 눈으로 포장된 포장도로였다. 둘째 놈의 신발이 잘 미끄러지는 신발이어서 내려올 때는 줄곧 양손으로 미끄럼을 태워 주고 내려왔다. 그 놈의 웃음소리가 마약이 되어 힘든 줄도 모르고 말이다. 거의 다 내려와서 보니 사람들이 프라스틱으로 된 음료수 박스를 이용하여 밑에 호스를 대어 그럴싸한 눈썰매를 만들어 끌고 다니는 있었다. 난 이것을 보고 '위대한 대한민국 국민이여!'하고 외쳐 보았다.
처제네 식구하고는 여러 언론매체에 많이 소개된 막국수집에서 만났다. 내가 속초에 가면 항상 들르는 곳이다. 점심은 이 막국수집에서, 저녁은 기사문항의 H식당에서 먹는다. 메뉴도 막국수는 점심에 회는 저녁에 먹게 되어서 잘 어울린다. 막국수는 동치미의 시원한 맛이 그만이다. H식당은 싼 가격으로 싱싱한 자연산 회를 먹을 수 있어 좋다.
그 집 따님이 미대를 나왔는데 주인아주머니는 비싸게 가르쳐 놨더니 누군가가 확 데려갔다고 푸념이 대단하였다. 순간 내 옆의 아내를 보았다. 역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아내의 전공은 달랐지만 자기가 그집 따님과 똑 같은 신세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을 게다.
이 날 오후는 온천을 함께 할 수 있는 수영장에 갔다. 난 수영을 못하여 간간이 애들 수영하는 것을 보는데 만족하고 온천을 주로 하였다. 거기에는 이름 값하기엔 약간 어설픈 여러 가지 온천탕이 있었다. 어쨌거나 한번씩 다하고 나니까 기분은 좋아지긴 했어도 진이 빠지는 느낌이 든다. blase(블라제이)!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이래서 로마가 망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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