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 아무렇지 않게 받아왔으나

주는 손이 부끄럽지 않으려면 받는 손이 먼저 없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등록 2003.01.30 11:31수정 2003.01.30 14:52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입사한지 5개월 째인 필자는 이곳 저곳에서 인사 차 내미는 선물이 꽤 됩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들어와 ‘어른들’의 세계를 바라보는 사회 초년병인 필자는 초등학생의 마음으로 하루하루 일하고 있지만 분에 넘치게 좋은 자리에 있다 보니 나이가 훨씬 많은 인생 선배님들로부터 인사를 받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별 거 아닌 자리에 앉은 필자와 같은 사람도 새해엔 별의별 복들이 쏟아져 들어옵니다. 5만원짜리 상품권부터 와인, 오피스 세트에 미백 상품권까지 내가 받아도 되나 싶은 것들도 이미 손에 들어오면 내것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합니다.


“저 이런 거 주실 필요 없는데요.” 여러 번 사양하지만, 주는 사람 미안할까봐, 젊은 놈이 혼자만 고고한 척 한다는 인상을 줄까봐, 어른들이 내미는 손이 부끄러울 까봐, 큰 선물도 아닌데 인정으로 받자는 생각에 이렇게 선물을 받으면서 문득문득 공짜로 들어오는 것들이 익숙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다들 이렇게 부끄러움을 지우면서 시작합니다.
내미는 손도 받는 손도 조금씩 일상의 부분이 되어가면 10만원 받아서 떳떳한 내가 1000만원 받아서 부끄러운 그들에게 삿대질할 수 있을까요. 불티나게 팔린다는 100만원짜리 위스키가 언젠가는 제 손에 쥐어져 있지 않을까요. PR비 받았다던 PD님들 취재원들로부터 감사 인사 받은 기자님들 사과 박스 쌓은 정치인들을 향한 제 손가락이 그다지 곧게 펴져 있지는 못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스승의 날 선생님께 무슨 선물을 드려야 할지 고민했던 적이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좋아하시는 과자를 한 다발 사드릴까 분필가루 덜 묻게 분필 꽂이를 사드릴까 고민하던 고사리 손이 생각납니다. 스승의 날 선생님 책상엔 크고 작은 선물 꾸러미가 가득해서 필자가 선물한 분필 꽂이가 너무 초라해 보였습니다.

고집 피우지 말고 어머니께서 준비하신 가방을 가져다 드릴걸 하는 후회로 밤새 잠을 설쳤던 때가 기억납니다. 다음 날 선생님께서 분필꽂이를 쓰셨더라면 다음 스승의 날, 새 담임 선생님을 만나도 부끄럽지 않게 ‘선물’을 내미는 손이 되었을 것입니다.

선물과 뇌물을 어떻게 구분해야 옳은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단순히 금액의 크고 작음이 기준이 아닌 것은 분명합니다. 일로 만난 사람들 공적인 관계로 얽힌 사람들에게는 받지 않아야 옳지 않을까 합니다.


‘젊은 놈이 챙겨줬더니 별거 아니라고 안 받는다’는 거나 ‘혼자 고고한 줄 안다’ 거나 이런 말들이 저의 인간관계를 어렵게 하지는 않을까 아직 걱정이 앞서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딘 어린 아이의 마음으로 분필 꽂이를 선물하던 손을 기억하겠습니다. 주는 손이 부끄럽지 않으려면 받는 손이 먼저 없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연휴가 끝나면 ‘제 자리’에 놓인 ‘선물’들을 ‘제자리’로 돌려 놓는 일로 조금씩 진보하는 2003년을 시작할까 합니다.


받는 손 집어 넣겠습니다. 주시는 손 따뜻한 코트 속에 넣어두십시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톡톡 60초

AD

AD

AD

인기기사

  1. 1 2년 전 800만 원이 지금 2천... 시집갈 때까지 기다릴 걸 2년 전 800만 원이 지금 2천... 시집갈 때까지 기다릴 걸
  2. 2 미국에서 온 건축가가 주차장서 벌인 일, 성수동이 뒤집어졌다 미국에서 온 건축가가 주차장서 벌인 일, 성수동이 뒤집어졌다
  3. 3 "아파트 단지 통행불가? 법으로 막자" 어느 건축가의 이색 제안 "아파트 단지 통행불가? 법으로 막자" 어느 건축가의 이색 제안
  4. 4 삼남매가 결혼할 때 엄마에게 해드린 진상품, 승자는? 삼남매가 결혼할 때 엄마에게 해드린 진상품, 승자는?
  5. 5 태어나보니 백기완 손주였다 태어나보니 백기완 손주였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