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소 지킴단' 구성, '시신 탈취' 대비
"고향 가족들도 뉴스듣고 이해하더라"

[현장취재] 노조간부 '분신'한 창원 두산중공업의 설맞이

등록 2003.01.31 16:53수정 2003.02.02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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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배달호씨의 시신이 있는 두산중공업 노동자광장에 대형 트레일러를 이용해 바리게이트를 설치해 놓고 있다.
▲고 배달호씨의 시신이 있는 두산중공업 노동자광장에 대형 트레일러를 이용해 바리게이트를 설치해 놓고 있다. 오마이뉴스 윤성효
"안타깝죠. 이전에는 시댁 식구들과 함께 음식도 만들고 했는데. 올해는 아들이며 며느리도 없어 어머님께서 서운하실 걸 상상하면 마음이 아파요. 회사에서 시댁 식구들을 회유하는 바람에 가족들을 갈라놓아 더 괴롭죠."

노동부, 4일부터 특별조사
대책위 대표단, 배달호씨 모친 설날 인사

두산중공업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노동부의 특별조사가 예정된 가운데, 창원지방노동사무소에서 관련 자료 확보에 나서 관심을 끈다. 창원지방노동사무소는 2월 4일 오후 2시 민주노총 경남도본부 손석형 본부장의 출석을 요구했다.

손 본부장은 1월 23일 회사 관계자가 참석한 가운데 열린 토론 프로그램인 '포커스 경남'에 출연, 직원들의 성향을 분석한 '블랙리스트'를 공개한 적이 있다.

한편 '분신대책위' 대표단이 설 하루 전날인 31일 저녁 고 배달호씨의 모친 이영순(70)씨를 찾아 새해 인사를 했다. 민주노총 경남도본부 손석형 본부장과 금속노조 최용규 부위원장, 두산중공업 조합원 1명은 이날 저녁 부산 전포동에 살고 있는 이씨 집을 방문했다.

손 본부장은 "전통적으로 우리는 명절 때마다 친구나 동료의 부모님에게 세배를 드리는 게 예의였다"면서, "자식을 잃고 가슴 아파하실 어머니를 찾아 뵙고 고인을 대신해 인사를 드리고자 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 윤성효 기자
새 대통령도 나오고 해서 모두들 '희망찬' 새해 설날을 맞을 준비에 바쁜데, 졸지에 남편을 '분신'으로 잃은 고 배달호씨 부인 황길영(43)씨가 한 말이다. 설을 하루 앞둔 1월 31일 오후 '유족 임시 숙소'에서 황씨를 만났다. 다른 해고 가족들과 함께, 어느 해보다 괴로운 설을 맞을 황씨의 심정을 들어보았다.

"딸은 내일 아침에 올 거예요. 마음이 편안하지 않구요. 밥도 하루 한 끼를 겨우 먹으면서 버팁니다. 그래도 주변에서 많은 분들이 도와주고 있어 고맙구요. 어제는 인터넷의 '민주노동당 지지 모임'인 '민지네' 회원들이 성금을 모았다면서 보내 왔데요. 고맙다는 말을 꼭 하고 싶네요."

황씨는 두산중공업과 HSD 해고 노동자 가족들과 함께 지내고 있다. 해고자 강웅표씨의 부인 박옥련(41)씨와 임병섭씨의 부인 위필조(41)씨 등은 설날인데도 고향에 갈 생각을 하지 못하고, 황씨와 함께 지낸다. 박씨는 "단식을 하고 있는 남편의 건강도 걱정이 되고, 우리를 대신해 분신자살한 고인의 뜻을 받들기 위해서라도 이 정도는 당연히 해야 하는 일 아니요"라고 말했다.

고 배달호씨의 부인 황길영(가운데)씨가 해고자 부인들과 함께 있는 모습.
▲고 배달호씨의 부인 황길영(가운데)씨가 해고자 부인들과 함께 있는 모습. 오마이뉴스 윤성효

시신 탈취 대비해 바리게이트 설치, '빈소 지킴단' 구성

31일 오후 배달호씨가 분신자살했던 두산중공업 노동자광장 현장에 30여명의 노동자들이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설 연휴 동안 만일에 있을 시신 탈취를 우려해 대비책을 세우고 있다.

거기다 천막을 새로 다듬고, 쓰레기도 쓸어내면서, 빈소도 설날을 맞을 준비가 한창이었다. 천막 안의 자리도 새로 깔면서, 모두들 의지를 다듬고 있었다. 두산중공업지회 대의원들은 설 연휴 동안 현장에서 지내기로 결의해 놓고 있다. 빈소 주변에는 대의원뿐만 아니라 평 조합원도 나와 움직이고 있었다.


'분신대책위'는 설 연휴 동안 있을 시신 탈취사건을 우려해 '빈소 지킴단'을 구성해 놓고 있다. 30일 저녁에는 200여명이 빈소 주변을 지켰으며, 설 연휴가 끝나는 5일까지 매일 200~300여명이 빈소를 지킨다는 전략이다. '빈소 지킴단'은 두산중공업 조합원을 비롯해, 민주노총 사업장의 조합원, 시민사회단체도 동참하고 있다.

빈소는 두산중공업 노동자광장에 마련되어 있고, 주검은 분신자살 현장에 있다. 냉동탑차 안에 보존되어 있으며, 그 옆에는 배달호씨가 타고 다녔던 승용차가 그대로 있다. 분신자살 현장에는 검게 그을린 자국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분신대책위'는 빈소 앞 도로에 대형 트레일러로 바리게이트를 설치해 놓고 있다.


설 하루 전날인 1월 31일 고 배달호씨의 빈소 모습.
▲설 하루 전날인 1월 31일 고 배달호씨의 빈소 모습. 오마이뉴스 윤성효
두산중공업지회 조합원들 빈소 지켜 "가족들도 이해하더라"

노동자광장과 빈소 주변을 새롭게 정리하고 있는 모습.
▲노동자광장과 빈소 주변을 새롭게 정리하고 있는 모습. 오마이뉴스 윤성효
경북 풍기가 고향인 김민관(45. 환경안전부)씨는 "아버지 제사도 지내야 하는데 동료가 우리들을 위해 대신 죽었기에, 어떻게 집에 갈 수가 있는가"라고 말했다. 관리직 사원인 이상민(34)씨는 "고향에 가는 일보다 고인의 죽음을 되새기며, 노동자들과 함께 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회사의 감시 때문에 이름을 밝히기를 꺼린 노동자들도 많다. 함안이 고향이라고 한 박아무개(54)씨는 "기업주는 노동자를 인간으로 보지 않고 소모품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이는 한국에만, 두산에만 있는 일인 것 같다"고 말했다. 박씨는 아내와 가족들도 회사의 사정을 알고 있기에 굳이 설명하지 않더라도 설에 고향에 가지 못하는 것을 이해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박씨는 "목숨은 하나 뿐입니다. 고인이 목숨을 끊었던 이유를 회사와 사회가 알아야 한다"면서, "정부는 노동정책에 있어 '고용의 유연화'를 이야기하는데, 이는 사회적 안정장치를 해놓고 난 뒤에 해야한다"라고 말했다.

HSD 직원인 이정형(41)씨는 "사건이 발생한 뒤 사흘동안 잠을 자지 못했다"면서, "평소 고인과 술도 함께 먹고 했는데, 고인은 평소 활달한 성격이었다"고 기억하고 있다. 의령이 고향인 그는 어머니가 계시지만 이번 설에는 가지 않기로 했다. "언론에 나고 해서 어머니와 친척들도 알고 있다. 전화를 드렸더니 섭섭해하시면서 건강을 조심하라고 걱정하셨다. 부산에 사는 처형한테 전화를 했더니 걱정을 하시더라."

대책위 관계자들 "노동투쟁하며 명절 때 고향에 못 가기는 처음

31일 노동자광장의 풍경. 아래 사진은 고 배달호씨의 주검이 들어 있는 냉동탑차와 고인이 탔던 승용차 모습.
▲31일 노동자광장의 풍경. 아래 사진은 고 배달호씨의 주검이 들어 있는 냉동탑차와 고인이 탔던 승용차 모습. 오마이뉴스 윤성효
'분신대책위' 관계자들도 빈소를 떠나지 않고 있다. 민주노총 경남도본부 손석형 본부장은 "죽을 정도로 노동탄압이 있었다. 이제는 두산재벌은 노동자들이 노동을 할 수 있도록 전향적인 자세를 가져야 한다. 결국 해를 넘기게 되었는데 안타깝기도 하고 분노를 느낀다"고 말했다.

전국금속산업연맹 백순환 위원장은 "80년대 말부터 노동운동을 했지만 노동투쟁과 관련해 명절을 넘기기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서울이 집이며, 경북 영덕이 고향인 그는 "지금 생각은 연휴가 끝나는 5일까지 시신을 탈취 당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지켜낼 것인가에 대한 고민 뿐"이라며, "이 고비만 무사히 넘기면 잘 풀릴 것"이라 말했다.

백 위원장은 "어머니께서 부산에 살고 계신다. 형제와 가족들에게 전화도 못 드렸다. 다 이해하고 계실 것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른 동지들이 고향에도 못가고 힘을 합치는 모습을 보니, 노동자들에게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 말했다.

진주에서 달려온 민주노총진주지역협의회 김재명 의장도 빈소를 지키고 있다. "계속 있어왔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노동자 전체의 일이다. 두산중공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당연히 노동자들이 빈소를 지켜야 한다."

며느리면서도 설날에 시댁에 가지 않고 빈소를 지키는 여성 노동자도 있다. 전국금속노조 경남1지부 수석부지부장 김은형씨는 "시댁에 양해를 구했다. 뉴스를 보고 이번 사태를 알고 계신다. 못 올 거라고 짐작을 하고 계시더라. 여기 있다고 해서 큰 힘이 되지는 않겠지만,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한다는 생각에 지키고 있다"고 말했다.

회사 간부들도 노조 간부에게 '격려 메시지' 보내기도

31일 오후 노조 간부 남궁성민씨의 휴대전화에 들어온 회사 한 간부의 격려 문자 메시지.
▲31일 오후 노조 간부 남궁성민씨의 휴대전화에 들어온 회사 한 간부의 격려 문자 메시지. 오마이뉴스 윤성효
'분신대책위'는 설날인 1일 아침 8시, 빈소에 새 단장을 하고, 합동 조문을 할 예정이다. 아직 장례를 치르지 않았기에 차례는 지내지 않는다. 배달호씨의 시신를 지키기 위한 '빈소 지킴단'은 매일 200~300명이 상주한다. 아침과 오전, 오후로 나눠 하루 세 차례 집회를 갖는다.

매일 저녁에는 빈소에서 토론과 '편지쓰기' 운동을 벌인다. 두산중공업지회 간부들을 대상으로 선동훈련 연습과 노래 배우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분신대책위'는 서울과 창원 마산 등지에서 귀향민들을 대상으로 '두산제품 불매운동' 선전 활동을 벌이고 있다. 역과 터미널 앞에서 스티커와 홍보물을 나눠주며 불매운동 동참을 호소하고 있다. '분신대책위'는 스티커 20만장을 제작해 전국에 배포하기로 했다.

한편 몇몇 언론사 취재기자들도 만약 '시신 탈취 사건'이 있을 것에 대비해, 현장을 떠나지 않고 상주하고 있다.

고향에서 설을 지내지 못하고 빈소를 지키는 노조 간부들을 격려하는 두산중공업 관리자들도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두산중공업지회 조사통계부장 남궁성민씨는 31일 오후 보일러 공장의 한 간부로부터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고 자랑했다.

"노동해방을 위해서 피나는 투쟁을 하는 님의 모습을 진짜로 존경합니다"라는 내용이다. 남궁씨는 문자 메시지를 받고 자랑하면서 "힘이 난다"며 "외롭지 않은 싸움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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