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제연행 피해자 41만명 명부 공개

등록 2003.02.28 19:04수정 2003.03.01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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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28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 1층에서 열린 일제 강제만행 40만명 명부 전시회에서 명부를 살펴보던 한 할머니가 눈물을 훔치고 있다.

28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 1층에서 열린 일제 강제만행 40만명 명부 전시회에서 명부를 살펴보던 한 할머니가 눈물을 훔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일제 강제연행 피해자 41만3407명의 명부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일반인들에게 공개됐다.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 모임'은 3·1절을 하루 앞둔 2월 28일 국회 의원회관 1층 로비에서 일제시대 강제로 연행됐던 피해자들의 일본측 명부를 일반인들에게 공개하고 생사여부 등 각종 사항을 확인할 수 있게 했다.

이 명부는 '조총련 조선인강제연행진상조사단'이 지난 72년부터 30년간 수집해온 것으로 이미 일본에서는 91년 이후 열차례 강제연행 당사자나 유족들에게 공개한 명부다.

일제시대에 강제로 연행됐던 피해자들의 명부는 현재 한국 정부기록보존소에 약 48만명 분이 보관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일반인들에게 명부가 공개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에 공개된 약 41만 명부는 10만명 정도가 정부 보관 명부와 중복되고 나머지 31만 명은 새로운 기록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공개된 명부는 총 79권으로 강제노동 관련 17만9662명, 군인·군속 등 23만3745명이다. 명부 중에는 지난 2001년 중국인 피해자들이 5억엔의 보상을 얻어내고 현재도 싸움이 진행중인 하나오까 광산 징용 노동자의 명부도 있어, 국내에서도 피해자들을 찾을 경우 유사한 보상도 가능할 전망이다. 또한 조선인 위안부 147명의 이름과 본적이 기록된 명부 등 역사적으로 중요한 명부도 있다.(개인 프라이버시 보호 위해 실명 감춤)

3월 4일까지 5일간 계속되는 이번 전시회는 첫날부터 일제치하 국인·군속·노무자 등으로 강제 징용된 피해자나 그 유족 50여명이 찾아와 명부를 뒤지며 애타게 이름을 찾았다. 하지만 기록이 일본어로 되어 있어 찾기는 쉽지 않았다.

일본에서 명부를 직접 가져온 조선인강제연행진상조사단 홍상진 사무국장(52)은 "'어디로 끌려갔는가' 하는 장소, 그리고 '창씨개명 당시의 이름'을 알고 있으면 찾기가 쉽다"고 말했다. 홍씨는 전시기간 의원회관 로비에 상주하며 일반인들의 명부 확인에 도움을 줄 예정이다.


a 태평양 전쟁 피해자 보상추진협의회 소속 유족이 행방불명된 아버지의 징용사실를 확인하기 위해 명부를 살펴보고 있다.

태평양 전쟁 피해자 보상추진협의회 소속 유족이 행방불명된 아버지의 징용사실를 확인하기 위해 명부를 살펴보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김희선 민주당 의원(민족정기의원모임 회장)은 "일제에 의해 징용·징병·위안부 등 강제연행 피해를 당한 우리 민족이 750만에 이른다. 당시 우리 민족이 약 2500만이었다. 국민의 30%가 일제에 의해 끌려간 것이다"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그동안 왜곡하고 숨기기에 급급했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우리 스스로 먼저 충분한 근거사료를 확보하는 일에 적극 나서야 한다"며 "우리가 일제 강제연행 피해 관련 진상을 규명하고 증거사료를 수집, 연구, 보존해나갈 때만이 일제 피해자들이 사과받고 배상받는 길이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안영근 한나라당 의원은 향후 활동 계획에 대해 "먼저 명단에 들어 있는 피해자를 찾고, 보다 근본적인 대책으로 한일 과거사 청산을 위한 근거 사료를 수집, 보존 등을 제도화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안 의원은 특히 "피해자 등을 찾는 방안과 관련해, 명부를 전산화하여 검색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만약 현재 국내에 입수된 일제강제연행 피해자 79만(정부소유 48만 + 새로 공개 41만 - 중복 10만)명의 기록을 전산화해 공개한다면 피해자 본인은 물론 유족들의 확인에 획기적인 길이 열릴 것으로 보인다. 민족정기의원모임은 이런 내용이 포함된 '한일과거사사료수집연구및보존사업회법안'을 발의할 예정이다.

명부 공개에 앞서 열린 '한일과거사기록관 설립을 위한 토론회'에 참석한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정혜경 특별연구원은 "기록을 홀대하면 역사가 앙갚음한다"고 말했다.

"일본정부, 금전관계 명부 100% 가지고 있다"
<인터뷰> 조총련 조선인강제연행진상조사단 홍상진 사무국장

▲ 조총련 조선인강제연행진상조사단 홍상진 사무국장
ⓒ오마이뉴스 이종호
- '재일조선인총연합회 조선인강제연행진상조사단'은 어떤 단체인가.
"72년 8월 일본 오키나와에서 결성했다. 사실을 명확히 알자는 취지다. '규탄' 차원보다는 밝은 미래를 위해서는 과거 문제를 명확히 기록에 남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일 우호친선도 없다는 취지에서 결성했다. 그동안 종군위안부, 강제노동자, 군인·군속, 원폭피해자에 대한 조사를 해왔다. 또한 법적 책임이나 보상 방법 등의 활동도 하고 있다. 현재 약 800여명이 25개 지역에서 조사를 진행중이다."

- 결성 계기가 있을 것 같은데.
"72년은 65년 한일조약이 체결된 지 7년 후다. 그동안 줄기차게 과거청산 문제가 대두돼 왔다. 70년대는 동포 1세들이 대략 60∼70세 정도 되던 시기였다. 기록을 명확히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제일동포의 출발은 명확히 일제의 강점 때문이다. 2세와 3세들에게 우리의 과거에 대해 명확히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 (홍 사무국장은) 교포 2세인가.
"그렇다. (조선인강제연행진상조사단은) 3세와 4세도 한다."

- 이 많은 명부를 어떻게 수집했는가.
"72년 오키나와에서 조사를 할 때 세계 최초로 종군위안부피해자가 나왔다. 배봉기 할머니였다. 그후 홋카이도, 큐슈 등 현지 조사를 통해 약 600여명의 명부를 수집했다. 일본 정부의 명부는 90년대에 들어서 본격적으로 모으기 시작했다."

- 일본정부가 명단을 공식적으로 공개하지 않는 상황에서 명단을 수집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여러가지 방법을 다 써서 모았다. 일본정부가 남조선 정부에 넘긴 명단도 있고, 비정부기구나 연구자의 협력을 받기도 하고, 미국이나 평양에서도 얻었다. 일본 지역에서 열차례 공개를 했는데, 그때마다 명부가 늘었다."

- 열차례 공개로 유족이나 당사자를 많이 찾았는가.
"91년 일본에서 12만 명부 공개로 시작했다. 그후 도쿄, 오오사카 등 열 곳에서 명단을 공개했는데, 그때마다 '삼촌 찾았다' '내 이름 찾았다'고 하는 사람들이 나왔다. 약 3%에서 5% 정도다. 100명이 오면 3∼5명 정도는 찾는다."

- 이렇게 강제연행자 명단을 공개하는 의도는 무엇인가.
"우선 진상규명이 하나이고, 피해자 유가족에게 사망했으면 사망했다고 알리는 것은 (국가로서) 초보적인, 배상·보상 이전에 사람으로서 당연히 해야하는 것이다. 이것을 제공하자. 사실 이것은 일본정부가 다 해야하는 것이다."

- 조총련이기 때문에 남한에 오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지난해 2월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위에서 한국에서 진상규명법 제정과 관련해 심포지엄을 연다고 해서 가려고 했다. 하지만 못 갔다. 그 후 관심을 가지고 만나다보니, 이런 명단이 있었냐고, 한국에서는 (기존 한국정부가 가지고 있던 명단도) 공개가 안되고 있다고 해서 9월에 들어오려고 했으나 허가가 나지 않았다. 이번에는 김희선 의원이 직접 나서서, 지난번에는 민간단체가 했었는데, 직접 국정원 관계자도 만나고 해서 새 대통령 취임 다음날 입국했다."

- 명부를 보니까 일본어로 되어 있는데, 당사자들은 대부분 사망했을 것이고 유족들은 알아보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쉽게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선적으로 '어디로 끌려갔는가' 하는 장소, 그리고 '창씨개명 당시의 이름'을 알고 있으면 찾기가 쉽다."

- 찾고 난 뒤에 당사자나 유족들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그 사람의 희망에 따라서다. 많은 사망자들은 일본에 유골이 남아있다. 지금도 동포 학생들이 유골을 찾는다고 땅을 파고 있다. 우선 강제연행장소를 찾아가거나, 유족이 배상을 요구할 수도 있다. 다만, 재판에서 이길 확률은 대단히 낮다."

- 일본정부가 공개하지 않는 다른 명부가 있는가.
"엄청 있다. 특히 금전관계에 관한 명부, 예를 들어 일본은 당시에도 사회보험제도가 있었는데 그 명부나, 임금을 넣는 예금 명부 등은 100% 가지고 있다. 하지만 공개를 안하고 있다. 이유는 프라이버시라는 것이다. 그중 일부가 여기(전시회)에 있다. 우리가 일본에서 한 열명 정도 정부에 (자신의 기록) 공개를 신청해서 돈을 받게끔 한 사례도 있다."

- 한국정부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명부 목록에 74번이 세계에서 한권 밖에 없는 위안부 피해자의 이름과 본적이 나와있는 명부다. 여기에 전시되어 있는데, 전시된 명부는 프라이버시 문제로 일부가 색칠이 되어있다. 그 원판을 이번에 가지고 왔다. 한국정부가 민간단체와 협조해서 조사를 하겠다면 그 원판을 제공할 용의가 있다." / 이병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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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선임기자. 정신차리고 보니 기자 생활 20년이 훌쩍 넘었다. 언제쯤 세상이 좀 수월해질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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