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고시 수정안 사실상 현행유지 논란

곳곳 독소조항... 공정위 개입 '원천봉쇄' 시민단체 반발

등록 2003.04.30 19:48수정 2003.05.06 0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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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고시 위반으로 제재받은 전력이 없을 경우 ▲ 위반이 일부지역에 국한되고 액수가 작을 경우 ▲ 공정위가 신문협회와 협의한 경우 신문협회가 신문고시 위반사항을 단속 처리한다."

송유철 규제개혁 제1심의관이 30일 '신문고시 개정안 심사결과'를 브리핑하고 있다.
▲송유철 규제개혁 제1심의관이 30일 '신문고시 개정안 심사결과'를 브리핑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손병관
30일 국무총리실 산하 규제개혁위원회(이하 규개위, www.rrc.go.kr) 경제1분과가 진통 끝에 내놓은 신문고시 수정안의 골자다.

5월2일 규개위 전체회의에 상정될 수정안은 '신문협회의 신문시장 자율규제'를 묵인해온 현행 규정과 별로 다르지 않고, '공정거래위원회 단속'의 전제조항들이 모호하게 표현되어 있어 최종안 확정까지 논란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신문업의 특수성'을 고려해 '현행유지'에 기운 규개위 안은 "신문협회의 묵인하에 더욱 혼탁해진 신문시장을 좌시할 수 없다"는 공정위와 개혁성향 시민단체들의 기대와 크게 어긋난 것이어서 이들의 반발이 예상된다.

99년 폐지됐다가 2001년 7월 재도입된 신문고시는 "공정경쟁규약(신문고시)을 시행하는 경우 사업자단체(신문협회)가 우선적으로 처리한다"는 11조 규정에 따라 그동안 신문업계의 불공정 행위 단속을 신문협회에 일임해왔다.

그러나 작년부터 자전거와 비데, TV 등 고가 경품들을 이용한 신문판촉전이 메이저신문들을 중심으로 가열됐음에도 신문협회는 위반사에 위약금을 부과할 뿐 신문시장 정상화를 위한 현실적인 힘을 행사하지 못했다.

신문협회가 회원사에 위약금을 부과한 건수는 2001년 상반기 월평균 44건에서 2002년 하반기 361건으로 크게 증가했다. 이날 한정길 경제1분과위원장(경기중소기업종합지원센터 대표이사)이 분과에 제출한 '강화규제 심사안'은 "올해 들어 신문시장의 불공정거래행위는 감소추세로 돌아섰으나 그 요인은 신문협회의 실효성 있는 감시에 의한 것이라기 보다는 공정위 개입방안이 알려진 것에 따른 것"이라고 분석했다.


공정위의 자체심사 결과, 민간위원들은 19 대 1의 표차로 '공정위의 직접규제'에 찬성했다. 공정위는 이에 '신문협회의 자율규제'를 명시한 11조를 개정해줄 것을 요청했다. 반면, 신문협회는 지난 28일 "회원사가 3회 이상 중복해서 위반할 경우 공정위 개입을 허용한다"는 내용의 시안을 제시했다.

30일 경제1분과에서 마련한 수정안은 논란이 된 11조에서 '우선적으로'라는 표현을 삭제해 외견상 공정위의 개정안을 수용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문제는 '신문협회의 자율규제'를 가능케 하는 3가지 단서조항들이다.


수정안의 단서조항은 "1. 신문고시 위반으로 신고된 사업자가 고시 또는 공정경쟁규약 위반으로 제재를 받은 사실이 없는 경우 2. 위반내용이 일부지역에 국한되거나 위반액이 소액인 경우 3. 공정위가 신문협회에서 처리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인정하여 신문협회와 협의한 경우 신문협회가 공정경쟁규약을 적용하여 사건을 처리한다"는 것이다.

첫 번째 조항은 "신문협회가 '초범'에 한해 자율적으로 규제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위반 사업자가 신문사인지 지국인지에 따라 의미는 크게 달라진다. A신문사의 B지국에서 경품으로 적발됐는데, 같은 신문사의 C지국이 또 다시 경품으로 적발됐다고 해도 사업자가 지국으로 해석된다면 동일 지국에서 상습적인 위반행위를 하지 않는 이상 A신문사는 공정위의 단속을 피할 명분이 생긴다.

이날 브리핑을 한 송유철 규제개혁 제1심의관은 "사업자의 정의를 명확히 해달라"는 <조선> 기자의 지적을 받고 처음에 "신문사 전체로 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개인 의견을 말했다가 "논란이 될 수 있는 부분은 2일까지 정리하겠다"고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위반 내용이 일부 지역에 국한되거나 위반가액이 소액인 경우'라는 두 번째 조항도 소액이 어느 정도 수준인 지를 명확히 하지 않아 논란을 불러일으킨다. 송 심의관은 "위반의 데드라인이 3만원인데, 3만원을 조금 넘겼다고 적발하면 가혹하지 않느냐?"고 반문하기도.

"공정위가 규제대상이 되는 업종의 이익단체와 협의하여 개입을 결정한다"는 조항은 신문고시의 존립근거 자체를 뒤흔드는 내용이다. 이런 조항을 타 업종에 적용한다면 공정위가 재벌의 부당 내부거래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전경련과 상의하는 모양새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언론단체 회원들이 30일 규개위 회의가 열리는 동안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피켓 시위를 벌이고 있다.
▲언론단체 회원들이 30일 규개위 회의가 열리는 동안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피켓 시위를 벌이고 있다. 오마이뉴스 손병관
신문시장 정상화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기보다는 공정위와 신문협회의 의견 대립을 기계적으로 조화시키려는 규개위 위원들의 무사 안일이 '누더기 수정안'을 양산했다는 지적도 있다. 신문고시 개정 작업을 놓고 연일 '자율단속 드라이브'를 걸어온 조중동 메이저신문들의 눈치를 봤다는 얘기다.

신문고시를 논의한 경제1분과는 한정길 위원장과 제프리 존스(김&장 법률사무소 미국 변호사), 서윤석(이화여자대학교 경영대학장 / 경영대학원장), 이인실(한경련 금융재정연구센터소장) 등 민간위원 4명과 김진표 재경부장관, 이영탁 국무조정실장, 강철규 공정거래위원장, 성광원 법제처장 등 정부위원 4명으로 구성되어 있다.(성 법제처장은 이날 회의에 불참)

규개위가 메이저신문들의 눈치를 살폈다는 것은 송유철 심의관의 브리핑 발언에서도 확인된다.

"서로 믿지 못하고 불신해서 계속 논란이 벌어지게 된다.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면 문제가 없다."
"신문협회에 자율단속을 인정해준 것이 법 논리에 맞지 않지만, 규개위는 신문업의 특성을 존중했다. 공정위가 단속권을 100% 회수한다는 것은 2001년의 자율성 원칙을 깨뜨리는 것이다."
"법대로 하는 게 맞지만, 신문업종에 대한 단속이 신문에 대한 단속으로 비쳐지는 게 현실이다."


전반적으로 규개위의 수정안은 공정위의 체면을 살려주는 듯 하면서도 3가지 단서조항으로 공정위가 신문시장 단속에 나설 수 있는 길을 봉쇄하고 있다.

최민희 민주언론시민운동연합 사무총장은 "신문협회가 우선적으로 처리한다는 조항 때문에 공정위가 단속하지 못했는데, 자질구레한 조항들의 해석을 놓고 공정위와 협회가 싸우다가 아무 일도 못하게 생겼다. 서너달 뒤에 자전거 경품이 보란 듯이 나타나면 규개위 수정안이 미봉책이라는 것이 드러날 것"이라고 비판했다.

최 총장은 "시민단체들의 입장은 11조 폐지다. 타업종에 대해서는 강력한 법 제재를 가하면서도 신문업에 대해서만 특례를 인정하는 모순을 없애기 위해 우리는 끝까지 싸울 것이다"고 말했다.

최 총장은 이날 규개위에 참고인 자격으로 출석해 신문사들의 경품제공 사례를 고발했다. 언론노조와 민언련, 언론인권센터 활동가 10여명은 규개위가 열리는 동안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신문시장 정상화'를 촉구하는 피켓 시위를 벌였다. 다음은 규개위의 결정에 대해 민언련이 1일 발표한 성명 전문.

규개위 전체회의를 주목한다

30일 규제개혁위원회 경제1분과회의의 '신문고시' 개정안에 대한 심의결과는 한마디로 거대 신문사에 대한 '눈치보기'다.

규제개혁위원회는 '공정경쟁 규약을 시행하는 경우 사업자단체(한국신문협회)가 우선적으로 동 규약을 적용해 사건을 처리하게 할 수 있다'는 신문고시 11조 중 '우선적으로'라는 표현을 삭제하는 소극적인 개정안을 채택했다.

신문협회가 주장하는 '자율규제'가 신문시장의 질서를 세우는 데 아무런 실효가 없다는 것은 이미 오래 전에 증명되었다. 본회를 포함한 시민단체와 언론노조 등은 공정위의 직접 규제만이 왜곡된 신문시장을 정상화시킬 수 있다고 누누이 강조해왔다. 그럼에도 규제개혁위원회 경제1분과회의는 신문협회의 눈치를 보며 사실상 달라질 것이 없는 개정안을 채택하고 말았다.

신문협회는 신문시장이 안정되어 가는 분위기라고 억지를 부리고 있다. 그러나 28일 본회가 18곳의 서울지역 일선 지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는 신문협회의 주장을 무색케한다. 18곳의 지국 가운데 16곳이 경품을 제공하고 있었다. 이것이 신문협회가 말하는 신문시장의 안정이란 말인가.

또한 시민언론단체에 접수된 제보에 따르면 '신문고시 개정이 사실상 무산될 것이니 경품 제공이 문제될 것 없다'고 독자를 현혹하는 지국까지 있다고 한다. '신문협회의 자율규제가 아무 소용없다'는 경험에서 우러난 믿음이 없고서야 어떻게 일선 지국들이 불공정거래 행위에 이토록 자신만만할 수 있단 말인가.

그동안 거대 언론사들은 신문지면을 동원해 '언론의 특수성' 운운하며 신문시장에 대한 공정위의 직접 규제 취지를 호도했다. 우리는 규제개혁위원회 경제1분과회의가 거대 신문사들의 눈치를 살피고, 결국 그들의 왜곡된 논리를 극복하지 못한 결정을 내어놓은 데 대해 참으로 유감스럽다.

그런데도 거대신문들이 이번 규개위의 심의결과를 놓고 '정부의 직접개입을 가능하게 했다'는 궤변을 늘어놓으며 신문고시 개정안을 더욱 후퇴시키려 하고 있다. 자사의 이해관계 관철을 위해 지면을 동원하는 이들 거대 신문사들에게 어떻게 '자율규제'를 기대할 수 있단 말인가.

우리는 2일 열리는 규제개혁위원회 전체회의에 주목한다.

규개위는 신문시장의 실태를 정확하게 판단하고 이제라도 그에 따르는 합당한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이다. 또 다시 신문협회의 '자율규제'를 보장한다면, 그로 인해 발생하는 신문시장의 파행과 불상사에 대해 규개위는 책임을 면치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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