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론 사면하고 뒤로는 검거하나"

[현장] 수배 4년째 한총련 학생, '대석방' 하루만에 연행

등록 2003.04.30 23:09수정 2003.05.01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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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4년째 수배중이던 박제민씨가 연행되자 박씨의 가족은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아들 박씨를 면회하고 나온 어머니 김성옥(가운데)씨는 끝내 실신, 병원으로 옮겨졌다.

4년째 수배중이던 박제민씨가 연행되자 박씨의 가족은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아들 박씨를 면회하고 나온 어머니 김성옥(가운데)씨는 끝내 실신, 병원으로 옮겨졌다. ⓒ 오마이뉴스 김지은

"양심수 풀어주더니 하루도 안돼 양심수 만드나"

대통령 취임을 기념해 양심수 특별사면이 단행된 직후, 경찰이 한총련 소속 수배학생을 검거해 새로이 양심수 양산에 나섰다는 눈총을 받고 있다.

4년째 수배생활을 하던 한총련(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소속 박제민(25·2000년 경기대 총학생회장)씨가 30일 낮 12시 50분께 서울 충정로 경기대 앞에서 경찰에 검거된 것. 이날 박씨는 경기대 교문 건너편에 위치한 학생식당에서 밥을 먹고 나오던 중 경찰 7명에 의해 연행됐다.

a 연행된 박제민씨를 면회하고 나온 어머니 김성옥씨는  충격으로 실신, 병원으로 옮겨졌다.

연행된 박제민씨를 면회하고 나온 어머니 김성옥씨는 충격으로 실신, 병원으로 옮겨졌다. ⓒ 오마이뉴스 김지은

박씨를 연행한 서대문 경찰서는 "박씨는 국가보안법상 이적단체 가입혐의(제7조 제3항 위반)로 체포영장이 이미 발부된 상태"라고 밝혔다. 현재 박씨는 장안평 보안분실로 옮겨져 조사를 받고 있다.

연행된 박씨는 수배생활 이후 선천성 고도근시로 시력이 점점 악화되는 등 질병을 앓아왔다. 또 지난 3월9일 수배해제 모임과 보건단체의료연합이 실시한 한총련 수배학생 공개건강검진 결과에 따르면 박씨는 '비골골절·기능성 위장장애·급성위장관염·지루성 피부염' 등을 앓고 있어 "향후 병원 치료 및 규칙적인 식사와 안정이 필요"한 상태다.

박씨의 연행 소식을 접한 권오헌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양심수후원회장은 경찰의 연행을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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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권 회장은 장안평 보안분실을 찾아 "대통령과 민정수석이 '수배해제'를 언급하고 있는데 일선 경찰은 아직도 (한총련) 수배자 검거에 나서고 있다니 황당하다"며 "어제는 양심수를 석방하고 다음날 바로 양심수를 검거하는 경찰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박씨가 연행으로 가장 큰 충격을 받은 것은 그의 가족. 이날 오후 2시30분께 보안분실로 찾아가 약 40분간 박씨를 면회하고 나온 아버지 박환양(54)씨와 어머니 김성옥(46)씨, 여동생 박제리(23)씨 등은 충격을 감추지 않았다.

특히 어머니 김씨는 보안분실을 나서자마자 도로에 털썩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려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김씨는 "조금만 있으면 수배가 풀릴 것만 같았는데…. 제민이가 올해는 꼭 집으로 올 것 같아서 도배도 새로 하고 방안도 깨끗하게 정리해놨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이나"며 발을 굴렀다. 아버지 박씨도 "가장 걱정인 것은 제민이의 건강"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날 어머니 김씨는 충격으로 실신, 구급차에 실려 병원에 옮겨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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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민씨 연행, 다른 수배자 가족들에게도 충격

a 박씨의 연행소식이 전해지자 나머지 한총련 소속 수배자 가족들도 장안평 보안분실을 찾아 경찰의 연행에 항의했다.

박씨의 연행소식이 전해지자 나머지 한총련 소속 수배자 가족들도 장안평 보안분실을 찾아 경찰의 연행에 항의했다. ⓒ 오마이뉴스 김지은

이날 박제민씨가 경찰에 연행됐다는 소식은 다른 수배학생의 가족들에게도 충격이었다. 박씨의 연행 소식이 전해지자 한총련 수배학생의 가족들은 속속 장안평 대공분실을 찾았다.

이날 소식을 듣고 놀란 마음에 인천에서부터 택시를 잡아타고 왔다는 선금옥(51)씨는 "남의 일이 아니다"라며 "청와대도 법무부장관도 '수배해제 검토'를 얘기했는데 어떻게 경찰만 계속 한총련(수배자) 검거에 나서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선씨의 아들인 박선태현(28·03년 연세대 부총학생회장)씨도 현재 2년째 수배생활 중이다. 선씨는 "2년째 수배생활을 겪고 있는 나도 이렇게 힘든데 5년, 7년씩 아들이 수배생활 중인 어머니들은 마음이 어떻겠느냐"며 "특히 제민이는 건강이 안 좋아 더 걱정"이라고 안타까워했다.

또 다른 수배자 가족인 이승은(62, 수배5년차 신승헌씨 어머니)씨도 "내 아이가 이랬다면 어쨌겠느냐"며 "오늘따라 몸이 안 좋았지만 남의 일이 아니라서 급히 찾아왔다"고 말했다. 이어 이씨는 "제민이 얘기를 듣고 승헌이 생각이 안날 수 없었다"며 "오늘따라 연락이 안돼 더욱 걱정"이라고 밝혔다.

3년째 수배중인 이산라(28·2001년 단국대 총학생회장, 제9기 한총련 대의원)씨의 어머니 김낙희씨도 분통을 터뜨렸다.

김씨는 "어쩌자고 멀쩡한 아이들을 이렇게 자꾸 잡아가느냐"면서 "소식을 듣고 오는 길 내내 울기만 했다"며 눈물을 훔쳤다.

이날 수배자 가족 10여명은 오후 8시30분께까지 장안평 보안분실 앞에서 "경찰의 과잉연행을 규탄한다"며 항의 시위를 벌였다.

또한 박씨의 학교인 경기대 소속 대학생 및 한총련 소속 대학생 100여명도 보안분실 앞을 찾아 항의 시위를 벌였다.

a 이날 경기대 소속 대학생 등 한총련 소속 대학생 100여명도 장안평 보안분실을 찾아 규탄 시위를 벌였다. 시위 도중 경찰과의 몸싸움으로 학생 유아무개씨가 턱이 찢어지는 부상을 입기도 했다.

이날 경기대 소속 대학생 등 한총련 소속 대학생 100여명도 장안평 보안분실을 찾아 규탄 시위를 벌였다. 시위 도중 경찰과의 몸싸움으로 학생 유아무개씨가 턱이 찢어지는 부상을 입기도 했다. ⓒ 오마이뉴스 김지은

하지만 이들은 경찰의 저지로 보안분실을 50여 미터 앞둔 도로에서 "한총련은 정당하다", "과잉연행 경찰을 규탄한다", "앞으로는 수배해제 뒤로는 불법연행이 웬말이냐" 등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시위 과정에서 한때 경찰과 격렬한 몸싸움이 벌어져 시위 학생 유아무개(서울산업대)씨가 경찰의 방패에 턱이 찢겨져 병원으로 이송돼, 수술을 받는 등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들은 시위를 벌이다 이날 오후 9시30분께 해산했다.

한편 이날 오후2시께 한총련 소속 대학생 6명은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을 찾아 항의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이날 시위에서 "한총련 합법화 반대하는 검찰 규탄"이라고 적힌 펼침막을 든 채 약 20여분간 시위를 진행했다.

이들은 시위 이후 대검찰청 민원실에 '항의 서한'을 전달했다. 이들은 이 서한을 통해 "최근까지도 검찰은 관동대 김민범 학생, 경기대 박제민 학생을 연행하는 등 한총련 탄압을 계속하고 있다"며 "국가보안법이라는 구 시대의 논리에 따라 양심수를 양산하는 검찰을 규탄한다"고 주장했다.

박씨 "조사 내내 단식으로 항의 표시하겠다"

▲ 박제민씨의 건강진단결과표
ⓒ오마이뉴스 김지은
박제민(25·00년 경기대 총학생회장)씨는 선천성 고도근시로 시력을 점점 잃어 가는 질병을 앓고 있다. 컴퓨터로 문서를 작성할 때도 글자크기를 24∼30 포인트로 놓고 써야할 정도. 게다가 지난 해 말에는 왼쪽 다리까지 부러졌다(비골골절). 결국 학생들 20여명의 '엄호'를 받으며 병원에 가 수술을 받았지만 이후 제대로 받지 못해 걸음도 불편한 상태다.

하지만 박씨는 연행된 이후 "한총련 수배자들의 수배가 모두 풀릴 때까지 조사내내 단식투쟁을 벌이겠다"고 밝혀 가족들을 안타깝게 했다.

이날 박씨를 면회하고 나온 아버지 박환양(54)씨는 "제민이의 건강이 가장 걱정인데 게다가 단식까지 하겠다고 하니 속상하다"며 "그래도 제민이가 연행됐어도 당당한 모습을 잃지 않아 그나마 위안이 된다"고 밝혔다.

이어 박씨는 "제민이가 연행 및 조사 과정에서 경찰이 '조용히 해 XXX야' 등 욕설과 폭력을 행사했다는 얘길 했다"며 "경찰이 성인인 대학생을 연행해 그런 대우를 하다니 납득할 수 없다"고 고개를 내둘렀다.

한편 박씨의 변호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장경욱(한누리 법률사무소) 변호사가 맡기로 했다. 이날 장안평 보안분실을 찾아 박씨를 면회하고 나온 장 변호사는 "아직 담당 검사가 정해지지 않은 상태"라며 "박씨의 건강이 좋지 않은 상태이니 불구속 수사를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장 변호사는 향후 있을 박씨의 영장 실질심사(구속 전 심문) 과정에서 담당 검사에게 박씨의 건강검진 자료 및 가족들의 탄원서를 제출, 불구속 수사를 요청할 예정이다. / 김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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