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교육에 대해 나름대로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된건,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부터였다.아이가 취학전에도 주변에서 영어학원입네, 미술학원입네 하며 아이가 과연 소화해 낼수 있을까 싶을 만큼 학원으로 내몰던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래도 내 나름대로의 교육에 대한 가치관이랄까, 나만의 생각이 있었기에 책읽기등에 최대한 투자를 하며 굿굿하게 나만의 길(?)을 갈수가 있었다.
그런데 학교에 보내놓고 보니, 내 생각이 과연 옳은것인지 혼돈이 오기 시작했다. 일찌감치 독서토론수업을 듣고 글쓰기 학원을 다닌 아이들의 일기장이 예사가 아니었다. 다른건 몰라도 책읽기에 노력을 기울였다고 생각하고 있던 나였건만, 우리아이와 글쓰기를 배운 아이의 실력차(?)에 나는 뒤통수를 얻어 맞은 느낌이었다. 이래서 학원엘 보내는구나 싶어 내 나름대로의 의지로 밀고 왔던 내방식의 문제점을 인식해야 하는건 아닌가 싶어 갑자기 불안해 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학원에 보내야 아무래도 낫지요.'하고 그들은 한결같이 학원예찬을
했다. 비싼 사교육비를 들여 영어학원을 다니는 아이들은 영어단어 받아쓰기를 하느라 바쁜모습을 보고는 이제막 영어교재를 시작하려던
나를 더욱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나는 갑자기 마음이 바빠져 아이들을 다그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면 냉정해져선 이게 아닌데 싶어지는 악순환이 이어진게 지금까지다. 나혼자 독야청청 하고 싶었으나 그럴수 없었음을 굳이 변명한다면 주변에서 들려오는 우리아이와 비교되는 실력(?)들을 외면할수가 없었노라 해야할까?
초등학교는 어떤가?
우리아이 하나 학교에 보내서 우리나라의 유일한 초등학교 의무교육한번 제대로 받아 보고 싶다는데 학교에 가야할 일은 어찌 그리도 많은지. 학교 급식을 하고 청소를 하는건 우리 아이가 밥먹는 일을 도와주고, 교실을 깨끗이 함으로써 청결한 공간에서 공부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준다 치더라도 왜들 그렇게 선생님께 못 갔다 바쳐서 안달난 사람들처럼 행동하는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을 3년 동안 겪었다.
지난해엔 2학년이던 아이의 학급에 뭔가 봉사를 할 수 있을까 싶어
명예교사를 1년 동안 해보았다. 순전히 봉사를 위해 명예교사가 되었건만, 필요 이상으로 학교에 가야 할 일이 자주 생겼을 뿐더러, 학급에, 명예교사회에 왜 돈까지 갖다 바쳐야 했는지도 두고 두고 의문이다.
그것보다도 학급임원이 되어 파생되는 여러갈래의 모임은 관례처럼 되어 있었는데 만나게 되면 정해진 말들이 오가는 그 현장도 참으로 한심한 수준이었으니 정말이지 벗어나고 싶었다. 내삶의 현실이 보장이 된다는 조건만 맞아준다면 말이다.
그 조건에 맞는 삶의 현실이 다행히도 일어나 나는 지금 서울을 벗어났다. 지난 토요일 이사를 끝내고, 월요일 아침 아이 둘을 양손에
잡고 새로운 학교로 가는 길, 공기가 상쾌하고 달기까지 했다. 오냐, 이 달고도 상쾌한 공기가 환절기마다 콧물을 달고 사는 우리아이들의
비염기를 말끔하게 고쳐줄 것이다 생각하니 백번 생각해도 여기 경기도로 이사오길 잘했단 생각을 하게 됐다.
그런데 삑삑거리는 소음 뒤로 교장선생님의 목소리가 확성기를 통해 교문밖까지 쩌렁거리는 것이었다.
월요일 아침조회!!
잠깐 착각이 일었다. 나 국민학교때,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20년도 훨씬전에 그런 모습속에 내가 있었으므로…
월요일 아침마다 운동장에 모여 (여기 학생들은 실내화가 든 보조가방까지 들고 운동장에 모인다) 선생님의 구령소리에 맞춰 줄서고 교장선생님훈시를 듣고 하는 그런 월요일 운동장 조회가 과연 좋은 일인가, 안좋은 일인가, 잠시 헷갈리기 시작했다.
정보화 운운하는거 나도 좋아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시대에 뒤떨어지는것도 그다지 반길 일은 분명 아닌것 같은데, 예전 모습 그대로를 재현한 듯한 월요일아침의 운동장 풍경이 갑자기 낯설어 지는 것이었다.
아이들이 운동장에 가득 들어차 있어서였을까, 손을 잘 잡고 따라오던
둘째 아이가 교문 앞에서 머뭇거렸다. 걸음이 느려지고 마지못해 따라오는 그 아이 앞엔 서울에서 건물의 외양으로 치자면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학교와 너무도 비교되는 오랜 건물이 거무튀튀한 입을 벌리고 있었다. 아이는 겁먹은 표정이 되어 버렸다.
"엄마 어렸을 때도 이런 건물이었어.괜찮아"하고 말은 해주었지만
엄마인 내가 보아도 초등학교 건물치고는 너무 낡아 보였다.(정부보조를 받아서라도 이 초등학교에 페인트를 칠해야 하는건 아닌가 싶었다)
전학 수속을 밟기위해 교무실로 들어 갔다.
두 아이 모두 '여울반'이라는 이쁜 이름의 반에 배정을 받고는 다소 마음이 누그러졌는지 여울, 여울, 여우 하면서 웃었다. 낡은 교실건물은 그 학교의 역사와 맞먹는 교실로 통하는 여닫이 문에 가서 절정을 맞는 기분이었다.
내가다 기분이 우울해 졌다. '예전의 학교가 너무 시설이 좋았던 거야' 하고 자신을 달래야 했을 정도로. 어느새 조회가 끝났는지 운동장에 있던 아이들이 교실로 몰려 들기시작하자 작은 아이가 어색함을 감추지 못하고 모퉁이 뒤로 숨어 있다가 선생님이 부르자 마지못해 쭈뼛거리며 교실로 들어섰다.
그 모습을 보고 있는 내 가슴에 뭔가 울렁거려 오는건 무엇이었는지,
아이가 자기자리를 찾아 앉는 동안에 난 왜 눈물이 나왔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큰 애를 데리고 3학년 여울반을 찾아 선생님께 인사드리고
아이를 맡기고 돌아서서는 그만 엉엉 울고 말았다. 선생님이 "걱정 되서 그러느냐"고, "잘 적응할 것 같으니 걱정마시라"고 오히려 나를 안심시켜 주셨다.
새로온 이 곳의 사정을 잘 모르는 터에 이 학교의 교육행정에 무어라 말할 처지는 못되지만 웬일인지 석연치 않은 구석이 보이는건 나도 어쩔수가 없었다. 학생 수도 많고, 앞으로는 어쩌면 더 많아질수도 있는 학교가 지나치게 예전방식을 답습해서 건물까지 예전모습 그대로를
고수하는 모습이 뭔지 모르게 답답해 보였던 탓이라고 해야할까?
그런 마음으로 운동장을 돌아 나오는데 운동장 한켠에 심어진 아마도 이학교가 생길 무렵 기념식수를 한듯한 굴피나무가 우람하게 서있는 모습을 보았다. 불현듯 나도 모르게 그 앞에서 두손을 모우고 싶었다.
학기 중간에 전학 온 우리아이들 잘 적응하게 해주십사, 별탈없이 학교에 다니게 해주십사, 그런 기도를 드리고 싶었다. 또 전학 온 우리아이 손을 잡아주며 '이제 내친구 되는 거야?'하고 묻던 해맑은 아이의 눈빛이 언제나 밝게 빛나길 기도드리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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