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토현의 외침, 통일의 함성!"이라는 주제로 오는 5월 9일부터 11일까지 황토현에서 열리는 제36회 동학농민혁명기념제의 일환으로 지난 23일부터 25일까지 열린 동학농민혁명사 시민강좌가 수강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사)갑오농민혁명계승사업회는 '혁명 정신의 역사적 가치를 재조명하고 혁명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한편 혁명에 대한 시민의식을 높인다'는 취지로 강좌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시청 회의실과 근로자복지회관 등에서 실시한 이번 강좌에 대해 시민들은 "훌륭한 강사를 초빙해준 관계자에게 고마움을 느낀다"며 "미처 생각치 못했던 부분에 대해 새로운 시야를 갖게되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며 동학혁명정신을 새롭게 조명하는데 시민들의 적극적 관심과 참여를 다짐하기도 했다.
첫날인 23일에는 역사문제연구소장을 지낸 이이화씨가 '나의 삶과 동학농민혁명'을 이틀째인 24일에는 원광대 사학과 교수인 신순철씨가 '동학농민혁명의 전국성과 지역성', 마지막 날에는 한국외국어대 박준성교수가 '1894년 농민전쟁 기념물의 역사상'을 주제로 강의했다.
원광대 신순철교수는 "동학농민전쟁은 봉건체제의 모순이 심화되어 농민층이 가혹한 수탈과 억압을 스스로 극복하기 위한 전국적인 농민전쟁이며 열강의 제국주의적 침략에 저항한 중국의 태평천국의 난,인도의 세포이 난과 함께 동양의 3대 반외세 농민전쟁"임을 강조했다.
조선왕조가 각 고을 농민을 효율적으로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둔 향회는 지배계층이 주도하는 조직인 반면 동학은 만민평등을 내세우던 피지배계층의 전국적인 종교조직이었다고 비교했다.
이어 그는 '삿된 종교를 퍼뜨려 백성을 현혹시킨다'며 최수운을 처형시키자 동학교도들은 충청.전라감사에게 수차에 걸쳐 부당한 억압과 수탈을 중지할 것과 억울한 죽음을 당한 교조의 명예회복을 요구하는 교조신원운동을 전개했으며, 이 운동은 1893년 3만명 이상이 운집한 보은집회에서 종교운동을 넘어서 '부국안민' 등의 슬로건을 내건 정치적 집회로 발전하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동학농민전쟁이 실패로 끝나고 고향에 돌아가지 못한 사람들이 강원도, 남해안 섬 일대로 뿔뿔이 흩어진 와중에 일부는 대둔산의 150여m 높이의 한 정상에 5평 남짓한 움막을 지어놓고 동짓달 15일부터 3개월동안 끈질기게 항거하다가 일본군에 의해 사살된 24명을 소개했다.
사다리를 타고 소탕전에 나선 일본군에 대항하며 '일본군의 총탄에 죽느니 깨끗하게 죽겠다'며 어린아이를 안고 뛰어내리거나 만삭의 몸으로 바위아래 몸을 던진 여인들의 숭고한 정신과 고통을 느껴보기 위해 혹한속에서 텐트를 쳐놓고 하루밤을 지내보았다는 신 교수는 "동학농민혁명은 남자뿐 아니라 부녀자와 아이들까지도 일어섰던 정읍,전라도의 사건을 넘어선 전국적 사건이었다"며 사례를 들기도 했다.
'동학농민군의 잔여세력 사살이 곧 대륙진출에 나섰던 일본군들의 학살의 시작으로 이어졌고 조선정부의 허락없이 2만명 가량 죽인것은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라고 주장하는 한 일본인 교수의 주장을 소개한 신 교수는 "농민군 진압에 대한 자세한 자료가 일본 방위청에 소장되어있다"고 밝혔다.
셋째날 '1894년 농민전쟁 조형물에 담긴 역사상'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맡은 역사학연구소 연구원이며 노동자교육센터(준)공동대표인 박준성 교수는 "조형물은 설립 시기와 주체에 따라 설립의도가 다르며 조형물의 상도 바뀌어 왔다"며 전국에 산재한 동학농민혁명 관련 조형물의 문제점을 슬라이드 교육을 통해 지적했다.
우선 '역사 재구성 때 사실대로 복원해야 옳다'고 밝히며 전봉준 고택,경복궁 등에 식재된 잔디밭은 아이러니하게 권력 상징을 나타내고 있다고 말했다.
또 황토현의 갑오동학혁명기념탑, 우금치의 동학혁명군위령탑, 황토현기념관의 전봉준 장군 동상은 5ㆍ16 군사쿠데타와 10월 유신 그리고 전두환 정권에 이르기까지 정치적 목적을 바탕에 깔고 현실의 질서를 유지하려는 국가주의적 의도가 물씬 담겨있는 전형이라고 비판했다.
전국에 있는 기념탑이 남성우월주의,어른중심은 물론이고 전형적 군국주의,권위주의,관료주의를 나타내고 있다고 비판하는 박준성교수는 "동상의 머리를 맨상투로 만들었으니 황토현의 전봉준 장군 동상은 몸체는 농민군 지도자이고 머리는 죄수"라며 조형물은 제작자와 감독자의 의식수준이 중요함을 강조했다.
또 김유신 장군상,세종대왕 동상,이 충무공 동상,인천 자유공원의 맥아더 동상,친일 행적이 있는 고려대 김성수,이화여대 김활란 동상과 황토현기념관의 전봉준 장군 동상을 조각한 사람이 동상제작에서 최고 권위자로 평가받는 인물로서 친일에 적극 앞장 선 김경승교수인데 오랫동안 국전 심사위원장까지 지낸것은 어처구니 없는 사례라고 밝혔다.
이에 반해 지난 94년 9월 정읍 동학농민혁명계승사업회가 주축이 되어 시민단체와 뜻 있는 지역 주민들의 성금을 모아 이름없이 스러져간 농민군의 영혼과 넋을 위로하고 추모 하려고 세운 고부면 신중리 주산부락의 녹두회관 앞의 '무명동학농민군위령탑'은 여타의 기념탑과 비교가 되는 좋은 사례라고 소개했다.
박교수는 "앞으로는 지자체와 시민이 하나되어 눈높이로 동상을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라며 청주시의 단재 신채호 선생 탑을 소개하며 "조형물의 상이 역사의 상상력을 촉진하고 역사인식에 영향을 주고 나아가 과거의 기억을 특정한 형상으로 고정시키기도 한다"며 조형물의 중요도를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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