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시를 준비하는 우리들의 얼굴(1)

즐거운 고딩일기-[PART1] 마인드 컨트롤

등록 2003.06.07 15:18수정 2003.06.07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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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중간고사도 끝났고 슬슬 수시를 써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여기 너희들 생활기록부랑 성적 증명서 떼어놨으니까 수시에 대해서 각자들 생각해 봐라. 질문 있으면 개인적으로 찾아오고.”


사실 평소에는 별로 생각도 하지 못했었다. 정신없이 중간고사를 치르고, 학원에서는 모의고사를 치러야 했으니까. 대학교 수시 모집이라니……. 오늘 아침, 담임선생님의 이 한마디에 시끌벅적한 우리 반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어느 날 불쑥 수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기묘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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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강훈

온 반에는 이제 각 대학별 수시에 관련된 책자가 손과 손을 통해서 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교실 여기저기에선 열띤 정보의 교환이 이뤄지기 시작한다.

“연대는 전체 석차를 다 반영한다나봐.”

“그럼 우리 2학년 때 배웠던 교련 같은 것도 다 본단 말야? 그럼 미술, 체육도?”

“어 맞아. 그런 것들 하나도 안 빠지고 다 본데.”


“연대는 물 건너 갔네. 그런 과목들 쳐다도 안 봤는데. 솔직히 도움도 안 되는 것. 근데 연대 면접은 쉽다던데.”

“아냐. 작년에 우리 형 친구가 연대 면접 보러 갔는데 막 뜬금없는 거 물어본데. 모 밖에 주차된 차를 가리키면서 무슨 생각이 나냐고 물어봤다던가. 하여튼 그런 거.”


“그래서 뭐라고 그랬다는데?”

“막 그 차가 불법 주차 돼있는 것 같다고 말한 다음에, 우리나라 불법 주차 현황과 풍속도 같은 거 말하고 해결책을 제시했다고 그러더래.”

“당황스러운 것도 물어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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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강훈

우리 반에서 수시를 쓰고 싶다고 말한 아이들을 이렇게 보니까 대략 일곱 명 정도다. 그 중에서도 옛날부터 해온 자기 내신 성적이 좋고 나쁘고에 따라서 지망하는 대학은 달라진다. 일궈놓은 내신 성적에 따라서 수시를 쓰더라도 상황이 다른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암묵적으로 인정해 오고 있는 공통된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자기가 지망대학에 붙을 수 있는지 그 반대인지 아무도 모르기에 확신할 수 없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수시라는 것에 마음을 써서는 안 된다는 것.

언젠가 문학 선생님이 해 주신 말씀이 있다.

“너네, 수시는 되도록이면 자기가 가고 싶은 대학에 써야 돼. 소신 지원 알지? 그렇다고 괜히 전혀 안되는 데에 놓고 울면 안 된다.(웃음) 여하튼 수시 원서 써놓고 나서 절대 거기에 신경 많이 쓰면 안돼. 수시 서류나 접수 같은 것은 담임선생님이 알아서 찾아주시고 필요하면 너네 불러서 이야기 해 주시고 하실 테니까 걱정 할 것도 없고.

작년에 내가 맡은 반 한 얘는 1학기 수시 넣었는데 1차에서는 붙고 그 다음에 떨어진 거야. 그렇게 나쁜 대학이 많아. 원서대 챙길라고 1차에서는 낮춰서 받고 2학기 때 다 떨어트리는 거지. 여하튼 그 애 그렇게 떨어지고 나서 마음을 못 잡더라고 게다가 작년에는 월드컵에서 우리나라가 그렇게 잘 했으니 오죽했겠냐. 결국 걔 재수했지 뭐. 그러니까 거듭 강조하는데, 너희도 조심하고 공부해야 돼, 수능공부.“

이런 말을 들으니, 수시모집에 많은 신경을 쓰지 않겠다고 마음먹을 수밖에. 그런데 지금의 풍경을 봐서는 그러한 마음이 흔들리게 마련인가 보다. 반 전체는 벌써 수시 열기에 들떠 있었다. 그렇게 수시 쓰는 아이들이 들뜸을 경계해야 한다고 했었건만…….

그런데 이런 분위기를 경계해야 하는 대상은 수시를 희망하는 아이들의 경우에만 해당사항이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어쩐지, 내 옆자리에 앉은 친구 표정이 영 좋지를 않다.

“오늘, 기분 안 좋아? 어째 침울하냐.”

“안 좋을 수밖에 없지. 나는 수시 해당도 안 되는데, 아침부터 담임선생님이 수시 이야기를 하지를 않나, 학과 선생님들 다 들어와서 하는 소리가 다 그 소리니……. 수시 때문에 나까지도 덩달아서 들뜨는 것 같아. 막, 나는 안 쓰니까 옛날에 왜 놀았나 후회 같은 것도 되고.”

“움…….”

“담임선생님이 그러시면 안돼. 그런 거 다 쓰는 것도 아닌데, 안 쓰는 얘들까지 다 듣게 이야기 하고. 그런 건 개인적으로 불러서 해야지. 아 짜증나 공부 안돼.”

수시를 생각하고 있지 않는 아이들(그중에는 수증 점수를 잘 받아서 아예 정시로 가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얘들도 있겠지만)조차도 수시에 대해 의식하고 동요하고 있었다.

그네들은 신경 안 쓰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수시를 준비하느라고 왁자지껄 떠드는 다른 아이들 뒤에서 씁쓸하게 바라만보고 있었던 것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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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강훈

그 누구나 대학 진학이 중요하다는 것을 안다. 이른바 ‘대학인생결정론’이 대세인 세상에서는 이에 대해 말이 필요 없는 것이다. 그러한 ‘법칙’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누구하나라도 지금, ‘패배자’가 되고 싶은 마음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의 우리에게는 진정 ‘마인드컨트롤’이 중요하다. 대학진학의 첫 번째 관문인 수시 모집이 확연히 보장된 것이 아닌 이상, 안될 경우에 대비해서 우리는 심적 피해를 최대한 줄여야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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