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대중 문화, 안방까지 들어온다

일본 대중문화 추가 개방의 배경과 의의

등록 2003.06.11 22:53수정 2003.06.12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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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3박 4일의 일본방문 일정을 마치고 지난 9일 돌아왔다. 방문일인 현충일 오전 국립묘지를 참배하고 오후에는 천황과 술잔을 기울인 모습은 국민정서상 민망한 감이 없지 않다.

마침 창씨개명은 조선인이 원한 것이었다는 일본 정치인의 망언이 판을 치고 자국의 군대를 외국에 파견하겠다는 유사법제 통과가 이루어진 시점의 대통령 방일은 우리를 심란하게 한다.


북핵문제, 경제협력 논의, 새정부 차원에서의 한일관계 기본틀 설정 등 여러 현안을 감안하면 마냥 미를 수만은 없는 행사이긴 했다. 그렇지만 우리에게 있어 국민정서상 한일 관계에 있어 가장 민감한 과거사와 일본 정치세력의 우경화 문제는 여전히 걸림돌이었다.

일본사회의 우경화 흐름에 대해 국가 차원의 실질적인 조치를 내세우지 못한 이유로 이번 대통령의 일본방문은 '굴욕외교'의 화살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이번 일본 방문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일본 대중문화 개방 확대 방침을 밝혔다. 이는 한국 정부가 2001년 교과서 왜곡 문제 파동으로 개방 논의가 중단된 지 2년여만의 일이다. 여러 가지 굵직굵직한 현안들에 가려 일본 대중문화 개방 확대 논의는 조용히 넘어간 면이 없지 않다. 이번 조치가 가진 여러 의미를 자유롭게 풀어보았다.

가장 큰 동인은 우리 대중문화에 대한 자신감

이번 일본 대중문화 개방 확대 방침은 일본 대중문화 개방 흐름을 더욱 가속시킬 전망이다.


현재까지 미개방 상태로 남아있는 분야는 △주요영화제에서 수상하지 않은 '18세미만 관람불가' 영화 △국제영화제나 국제애니메이션 페스티벌 미수상 극장용 애니메이션 △국내 미상영 극영화와 만화영화의 비디오 △일본어 가창음반 △게임기용 비디오게임물 △드라마.오락프로그램 방송 △공중파 방송의 영화방영 △국내 개봉작 중 국제영화제 수상작 및 '전체관람가' 영화를 제외한 영화의 케이블TV와 위성방송 등이다.(6월 9일, 연합뉴스)

일본 정상의 록그룹, Globe
▲일본 정상의 록그룹, Globe 길준범
이제 머지않아 길거리를 지나가다 일본 노래를 들을 수도 있고, 집에 와서 TV를 틀면 일본인이 일본어로 말하는 프로그램을 볼 수도 있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 전까지 3차 개방의 수위가 영화관이나 공연장 등 특정한 곳에 찾아가서 접할 수 있는 정도였다면 앞으로의 개방 수위는 말 그대로 안방까지 일본 대중문화의 진출을 허용한 격이라 할 수 있다.


이미 일본 대중문화가 웬만한 매니아 층에서 익숙한 것이었다고 해도 일본 대중문화에 특별한 관심이 없었던 다수의 사람들에게는 충격을 줄 것이라 예상된다.

일본 대중문화 개방의 시점은 1998년 김대중 정부의 조치에서 시작되었다. 1998년 10월 4대 국제 영화제 수상 일본 영화의 상영 허용 등의 내용을 담은 1차 개방을 기점으로 2차 개방(99년 9월, 2천석 이하 공연장에서 하는 대중가요공연 허용 등), 3차 개방(2000년 6월, 18세 미만 관람불가를 제외한 모든 일본영화 상영 가능 및 그 비디오 출시 허용 등)이 차례로 이루어졌다. 순조롭게 진행되던 개방 조치는 2000년 여름부터 1년여 동안 계속되었던 일본의 역사 교과서 문제로 논의가 중단된 상태였다.

이번 점진적인 일본 대중문화 개방 확대 논의는 지금껏 우리 정부가 일본의 과거사 파동에 대한 대응조치로 일본 대중문화 개방을 보류해왔던 방식을 탈피한 것이다. 4차 개방을 앞두고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 문제가 터졌을 때 우리 정부는 이에 대한 대응조치 차원에서 개방 논의를 중단한 바 있다.

최근 논란이 되었던 망언 파동, 유사법제 통과 등 국민 정서상 민감한 일본의 우경화 문제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일본 대중문화 개방 확대 방침을 밝혔다. 이번 개방확대 방침은 한일관계를 미래지향적인 차원으로 이끌어가자는 정부의 의지를 보여준다. 다만 '전면개방'이 아닌 '추가개방'의 원칙을 밝힌 것은 일본의 우경화에 대한 한국의 국민감정을 자극하지 말자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정치, 경제 논리(국내 대중문화 산업 보호정책)에 따라 일본의 대중문화에 신중한 대응을 해왔던 정부가 자신감 있게 개방 확대 방침을 밝힐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일본대중 문화 개방에 크게 거부감을 가지고 있지 않은 우리의 국민정서가 가장 큰 밑받침이 될 듯하다.

작년 여름 방송위원회가 여론조사 전문기관에 의뢰해 실시한 전화조사의 결과를 보면 방송의 단계적 개방에 80.5%가 찬성하였고, 일본 방송이 국내 방송산업에 미칠 영향도 긍정효과가 더 클 것이라는 의견(55.1%)이 부정적인 의견(38.9%)보다 많았다.

응답자의 61.6%는 `일본방송 개방은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 등 과거사 문제와는 별개로 생각해야 한다'는 답을 했다.(2002년 8월 9일, 연합뉴스) 이 조사결과는 일본 대중문화 개방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긍정적 견해와 과거사문제와 대중문화 개방은 별개라는 과거에 비해 변화된 인식을 보여준다.

일본 대중문화 개방에 대한 긍정적 국민정서의 근거로는 우리 스스로 일본 대중문화에 무차별적으로 종속되지 않으리라는 믿음의 문화적 자신감을 꼽을 수 있다. 몇 년 전부터 중국과 아시아를 휩쓸었던 한류 열풍은 우리 대중문화가 세계적으로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아시아 대중문화의 중심지로 부상한 한국 대중문화의 저력을 경험함으로써 일본 대중문화를 우리 기호에 맞게 주체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겨난 것이다. 한일 정상의 만찬에 초대되었던 10대 가수 보아는 이러한 우리 자신감의 정점에 서있는 아이콘이다. 한일 양국의 대중음악 시장을 휩쓴 보아는 일본에서도 한국 대중문화 상품이 통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

우리 대중문화에 대한 자신감과는 별개의 차원에서 우리가 일본 대중문화에 거부감을 갖지 않게 된 것은 그만큼 우리 스스로 일본 대중문화에 시나브로 익숙해졌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것이 저질 3류 만화이든 대가라 칭송받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이든 우리에게 일본의 대중문화는 일본의 것이라 해서 특이하거나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게 된 것이다. '일본'이라는 타이틀이 붙은 것은 어떠한 것이든 경계의 대상으로 여겼던 과거 우리의 국민정서와는 다른 모습이다.

진정한 역사의식 공유 이루어져야

여러 가지 정황상 무리가 없는 조치였다 해도 일본 대중문화 개방이라는 소재를 마냥 환영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가 느끼는 한일 관계에는 미묘한 과거사 문제가 늘 껄끄럽게 존재해왔기 때문이다. 대중문화와 과거사 인식, 얼핏보면 서로 밀접한 연관관계가 없어 보인다.

대중의 취향을 드러내는 대중문화와 양국간 갈등을 일으키는 역사인식 문제는 직접적인 인과관계의 틀 속에 넣기 어려울지 모른다. 그러나 일본의 대중문화를 받아들이는데 있어 역사에 대한 관심을 지우는 것은 양국에 있어 겉핥기 교류밖에 되지 않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이번 추가 개방조치가 내세운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를 진정으로 지향한다면 우리는 한일 양국의 역사 교류에 관심을 가져야만 한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 할 때 현재 그 사람이 현재 좋아하는 기호나 취향만을 가지고 그 사람의 전부를 이해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 사람이 과거에는 어떤 환경에서 자랐으며 어떤 생각을 가졌었는지, 그 환경의 결과 현재 가지고 있는 삶에 대한 철학이 무엇인지, 다른 사람을 어떻게 바라보고 평가하는지 등 그의 총체적인 가치관을 알아야만 그를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일본의 대중문화에 대해 자신감이 있기 때문에 거부감을 가지지 않는 것은 다가오고 있는 일본 대중문화 전면 개방에 대해 우리가 가져야할 모든 것이 아니다. 진정한 상대방의 모습을 알기 위해서, 이를 통해 상대방과 진정으로 소통하기 위해 우리는 일본과의 과거사 문제를 잊어서는 안되고 일본의 정부, 시민에게 끊임없이 대화를 시도해야만 한다.

한일 양국간의 과거사 문제에 있어 가장 표면적으로 떠오르는 문제는 일본 제국주의 침략사의 부분이다. 해방 50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치 세력의 과거사 문제에 대한 자세는 우리에게 늘 찜찜한 그 무엇으로 남는다.

교과서 왜곡 파동, 총리의 신사 참배, 창씨개명 망언, 유사법제 통과 등 일본 정치세력이 과거 대일본제국의 영화를 잊지 못하고 있음은 식민지배를 경험한 할아버지의 아들, 손자인 우리들의 분노를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일본 우익 정치 세력의 '대일본제국 만들기' 프로젝트는 시민혁명을 경험하지 못한 채 급격히 제국주의의 방향으로 돌아섰던 일본의 역사가 경험할 수밖에 없는 비극이라고 할 수 있다. 제국주의의 뿌리가 너무 깊기에 쉽사리 파헤치기 어려운 상황에서 이를 파헤칠 건강한 시민의 역할을 수행할 세력이 미약했던 것이다.

오늘날 일본 지폐의 모델이 되어있는 후쿠자와 유키치.(1835∼1901) 그는 미개한 아시아를 벗어나 서구세력에 일본이 속해야 한다며(脫亞入歐) 정한론을 주장해 미개한 조선을 구제할 것을 주장한 인물이다. 이같은 제국주의적 인물을 일본에서는 개화기의 선각자로 받들어 지폐에까지 모시고 있으니 일본 내에서 근대화를 포장한 제국주의적 사상의 뿌리가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있다.

역사에 대한 접근은 항상 어렵고 신중한 문제다. 현재의 입장에서 보면 너무나 어이없는 과거의 일이라도 그 당시에서 보았을 때는 당연한 일처럼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역사를 마주할 때 늘 희생당한 자의 아픔을 먼저 생각해보아야 한다.

창씨개명의 문제를 보자. 창씨개명이 그 당시에는 당연한 역사의 흐름으로 보였을 수도 있다. 당시만 해도 사회의 체제로써 일본제국 정부가 굳건하게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망언을 저지른 일본 국회의원의 논리도 이처럼 당시에는 당연한 일이었다는 발상에서 기인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당시에 당연해 보였다고 해서 그것이 곧 진리는 아니다. 힘없이 희생당할 운명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식민지배하 조선인의 아픔을 생각하면 일본의 제국주의 잔존 세력은 지금도 큰 도덕적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셈이다.

한일간의 근대사 문제는 정부차원에서 그 해결의 마침표를 기대하기 어렵다. 과거 일본 정부의 되풀이되었던 허울뿐인 사과를 우리는 늘 속는다는 느낌으로 받아들여왔다. 일부 일본인들은 일본 정부가 여러번 사과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은 과거 문제에만 집착한다고 생각한다.

불행했던 근대사 문제에 관해 양국의 시민들은 공유하는 바가 없는 것은 서로에 대한 무지의 역사가 깊다는 데도 이유가 있다. 근대사 영역만이 아니다. 양국간 서로에 대한 역사인식은 차이 정도가 아니라 상대방을 끊임없이 낮춰 부르는 데만 치중해왔다.

일왕과 조센징. 이 두 단어는 양국간 서로에 대한 무지의 수준을 드러내준다. 국내의 언론들은 흔히 일본의 천황을 감히 '천황'이라고 높여 부를 수 없기 때문에 일왕으로 부른다.

천황이라고 부르면 우리는 일본의 신하격인 나라로 느껴져서 그렇기 때문일까? 일왕으로 부르면 우리보다 더 낮은 격으로 느껴지기 때문에 괜찮은 것일까? (일제 시대를 겪으며 천황폐하 만세를 강요받았던 우리에게 물론 천황이라는 단어를 정서상 친근하게 여길 수는 없는 노릇이긴 하다. 그렇지만).

일본인이 '일왕'이라는 말을 들으면 상당히 의아하게 생각할 것이다. 그건 한국인이 우리 대통령을 외국에서 '소통령'으로 낮춰 부르는 것을 들을 때 느끼는 것과 비슷할 것 같다. 천황은 하나의 고유명사일 뿐이다. 대통령이 그냥 일반적인 고유명사이듯. 정 천황이라고 한국식으로 발음하기 껄끄럽다면 천황의 일본발음인 '덴노'를 사용해도 된다. 일본 역사에서는 '왕'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우리가 천황을 일왕으로 부르는 것은 그들의 역사를 깡그리 무시하는 셈이 된다.

조센징은 일본인들이 일제 시대의 식민치하 조선인들을 일컬어 부르던 말이었다. 유감스럽게도 몇몇 일본인들은 한국인이라는 단어보다 조센징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난 한국 사람이지 '조선 사람'이 아닌데…. 이건 완전히 상대방의 이름과 이름에 담긴 자존심을 짓밟는 폭력이다. 상대방의 이름을 제대로 불러주지 않고 친하기를 원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이러한 역사에 관한 복합적인 문제는 결국 사회를 구성하는 시민들이 책임져야 할 부분이다. 앞으로 활발한 한일 민간 교류가 이루어져서 진정한 역사 의식을 공유하는 일은 우리가 일본정치인을 비난하는 일만큼 중요한 과제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활동이 원활히 이루어져야만 일본대중문화 추가개방 조치는 적절한 의의를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다.

'일본인'에 대한 고정관념 깨기

아이돌 스타, 히로스에 료코
▲아이돌 스타, 히로스에 료코 길준범
음반, 방송 분야의 일본 대중문화 개방을 통해 우리는 일본인의 일상생활의 모습을 접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노래는 생활에서 느끼는 감정의 희노애락을 표현하는 것이고 드라마는 일상생활에서 소재를 취하기 때문에 그러하다. 이제 우리는 그동안 우리 드라마를 통해 보아왔던 '일본인'과는 다른, 그들이 표현하는 그들의 모습을 볼 기회를 가질 것이다.

이는 우리가 일본인에 대해 가졌던 선입견을 벗어나 일본인에 대해 몰랐던 부분도 알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할 것이다. 문화적 차이로 인해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생소하게 보일 수 있어도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보편적 정서의 폭은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대중문화가 곧바로 사회의 참모습을 반영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인어아가씨'의 '은아리영'이 옆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여성임을 믿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지만 대중문화 속의 모습을 통해 사회 구성원들이 추구하는 정서와 공감대의 가치를 엿보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렇다면 드라마를 예로 들어 우리가 흔히 보아왔던 우리 드라마 속의 일본인들은 어떠한 모습으로 그려졌을까? 얼마 전 큰 인기를 끌었던 야인시대 하야시 조직의 일본인들과 천년지애의 타쓰지가 문득 떠오른다. 두 캐릭터 모두 나름대로 인간적인 면을 표출하고 때로는 멋있게 그려지는 등 일본인을 교활하고 비열한 인간으로 보았던 옛날의 고정관념을 많이 탈피한 것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어느 정도 일본인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과 선입견이 가미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드라마 야인시대에서 우리는 조선인 주먹 계열의 김두한 조직과 일본 야쿠자 계열의 하야시 조직의 대립을 본다. 재미있는 것은 각기 주인공과 반동인물의 역할을 수행했던 두 캐릭터가 긍정적으로 혹은 부정적으로 그려진 방식이다. 직접적인 사건에서 표현되었던 것은 부차적인 부분에 불과하다. 개인간의 거리, 상대방에 대한 접촉의 정도라는 문화적 방식의 차이가 두 캐릭터를 구분짓는 방식이었다.

김두한과 그 조직원들을 보면 항상 서로 가까운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사무실에서 회의를 할 때에도 좁은 장소에서 가깝게 모여 있고 술을 마시면 어깨동무를 하며 부둥켜안기도 한다.

대화를 할 때에도 상대방을 응시하며 얘기하고 종종 애정어린 눈빛을 보이기도 한다. 이같은 묘사는 김두한 조직이 '우리'라는 가치에 의해 모인 집단임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한국인에게 정으로 뭉친 '우리'라는 공동체의 가치는 소중한 것이었기에 이를 잘 보여준 김두한 조직은 긍정적인 캐릭터로 그려질 수 있었다.

반면 하야시와 그 조직원들은 대체로 서로 먼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그들의 사무실은 매우 넓고 서로 꽤 떨어져서 앉아있다. 심지어 가족간의 대화에도 그들은 서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다. 하야시가 부인이나 처제인 나미코, 장인과 얘기할 때 가까운 거리에서 정답게 얘기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그들은 서로 눈길을 마주치지도 않는다.

회의를 할 때 하야시는 냉정한 눈빛으로 앞을 보며 얘기하고 그 부하들도 좀처럼 눈빛을 마주치지 않는다. 이같은 한국인의 정서와는 반대되는 행동의 묘사를 통해 야쿠자 조직은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것으로 비쳐질 수 있었다. 이들은 나아가 일제의 잔인한 이미지를 보여주기 위한 캐릭터의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야인시대는 일본인에 대한 문화적 배경의 묘사를 통한 것만으로도 일본인을 정없고 냉혹한 캐릭터로 비쳐지게 하는 효과를 거두었다. 최근 인기를 끌었던 천년지애의 타쓰지도 매력적인 모습으로 그려지기는 했으나 냉혹하고 집착적인 이미지를 보여주는 등 일본인에 대한 선입견에서 자유로와 질 수는 없었다.

지금껏 제작되었던 한일 합작 드라마에서 일본측 주인공들이 여성으로 등장한 것은 이러한 일본인에 대한 고정관념을 파고들기 위해서였을지도 모르겠다. 감성이 풍부한 여성 케릭터들을 등장시킴으로써 한국적 기준에서 '정없고 냉혹한 일본인'이라는 일본인에 대한 고정관념을 적극적으로 뒤집기 위해서 말이다.

앞으로 방송 부분에서 일본 대중문화가 개방되어 많은 소재들을 접한다면 우리의 '일본인'에 대해 막연히 가져왔던 고정관념이나 선입견도 다시 한번 돌아볼 수 있게 되리라 기대해 본다.

마치며

지금까지 우리는 정부의 일본 대중문화 개방 확대 방침의 배경, 이를 위해 꼭 해결되어야 할 한일간 역사적 문제, 드라마와 같은 장르의 일본 대중문화가 일본인에 대한 고정관념을 바꿔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음에 관해 이야기하였다. 우리는 분명 외국의 어떠한 문물이 들어와도 무분별하게 추종하지 않을 만큼의 역량과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

우리의 가치 기준에 맞는 제도의 설정으로 혹 생길지도 모르는 위험에 대비하고 냉정하게 평가하는 안목을 가진다면 일본 대중문화의 4차 개방도 그리 겁나는 일은 아니다. 이번 정부의 조치가 훗날 우리 문화 발전에 긍정적인 정책이 되었음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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