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두르다 부러진다

집권층 인사들은 수시로 부처 간부직들과 비공식적 대화의 장을 지속해야 한다

등록 2003.06.19 04:09수정 2003.06.19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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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임기 5년을 부부의 일생이라고 본다면 새 정부 출범 후 6개월은 새 신랑신부인 집권층과 공무원집단이 신혼 기싸움을 통해 서로의 눈높이를 확인하는 기간이다. 참여정부의 집권층은 정부와 시민의 관계를 수평적으로 바꾸고 정부와 사회 각 영역에서의 분권과 자율을 고양하고 대화와 타협을 국정원리로 삼고 있다. 공무원 조직은 기본적으로 상명하복의 충성조직으로 법규로 정해진 절차와 단계에 따라서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이들은 지금까지 경제사회발전을 주도하였고 가부장적 권위의식도 강하다.

최근 노무현 대통령이 일련의 특강에서 제시하고 있는 정부내 개혁주체 세력에 대하여 정부 내외에서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것은 집권층의 수평적-변화지향적 사고틀과 공무원의 수직적-질서유지적 사고틀이 충돌하는 현상으로 해석할 수 있다. 새로운 집권층은 공무원들의 자발적인 혁신동력 없이는 정부혁신이나 대통령의 개혁과제들을 수행할 수 없다는 인식을 하고 있다. 그래서 개혁적인 공무원들의 창발적 활동을 주니어 보드와 같은 비공식적 소집단으로 활성화하고, 이러한 혁신적 모임을 범정부적 수평적 네트워크로 연계하면서 정부내의 혁신 역량과 문화를 높이려는 의도가 있다.

그러나 대통령의 특강에서 감사원 감사와 인사를 통해서 대통령의 국정방향으로 동행하지 않는 공무원에 대하여 문책하겠다는 것과 부처 내에 공식 비공식 개혁주체 조직을 만들겠다는 것에 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공무원집단에서는 편가르기, 대통령쪽 줄세우기, 젊은 세대를 동원한 구세대 흔들기라며 반발하고 있다. 중하위직 공무원들이 상급자를 거치지 않고 장관이나 청와대로 직접 혁신과제를 제안하게 되면 위계질서가 무너진다는 주장이다. 노 대통령의 수평적 사고와 대통령의 모든 발언을 공식적인 지시로 받아들이는 공무원의 수직적 사고가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클린턴 전 대통령이 정부재창조 과제를 추진하면서 각 정부기관내의 혁신실험실, 성과챔피언 등 다양한 형태의 개혁선도집단을 형성하였다. 이를 통해 정부서비스의 질의 향상이나 비용절감에서 상당한 성과를 낳았다. 공무원 스스로 혁신을 주도하라는 대통령의 요구는 선진국에서는 당연한 언급으로 인식되는 데 반해, 왜 우리나라의 일부 공무원과 언론에게는 정치적 의도나 직업공무원 조직 장악기도로 해석되고 있을까.

노 대통령도 언급하였듯이 사고방식과 문화가 바뀌어야 하는데 아직 우리의 공직문화는 영미 국가의 민주적 수평적 사고방식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이러한 수직 잣대를 수평 잣대로 바꾸는 데는 개혁적 시스템의 구축과 개혁 선도집단의 형성도 필요하지만 꾸준한 대화와 설득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제 노 대통령이 직접 강의형태로 설득하는 것은 효율적이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으며, 모든 혁신과제가 청와대로 집중되는 것은 수평적 코드에도 맞지 않다. 공무원조직의 중추적 역할을 하는 실-국-과장들은 자신들의 새로운 정책아이디어가 가져올 정책 혼선과 갈등에 대한 책임을 지기 때문에 항상 언행을 보수적으로 하게 된다.

이 때문에 정부 내에 젊고 창의적인 혁신동력을 활성화하고 범정부적 연계를 마련하는 것 못지 않게 집권층 인사들이 수시로 부처 간부직들과 비공식적 대화의 장을 지속해야 한다. 이를 통해 정부혁신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온라인 공간이 담을 수 없는 지혜를 활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중년의 실-국-과장들이 책임감과 공직경험을 살리면서 집권세력의 혁신동반자로 활동할 수 있어야 비로소 안정된 국정운영과 정부혁신의 성과가 나올 수 있다.


급한 마음에 단기간에 우리 사회의 수직 잣대를 수평 잣대로 개조하겠다고 하다가 잣대를 부러뜨릴 수도 있다. 집권층이 확실한 비전, 정교한 개혁 프로그램과 일정을 제시하고 장기간의 설득과정을 광범위하게 거치는 것이 개혁의 동조자를 확보하는 첩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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