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방 들어주는 아이>를 만나고 싶습니다

장애를 겪은 작가 고정욱씨가 들려주는 장애우 이야기

등록 2003.07.11 13:49수정 2003.07.11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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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방 들어주는 아이>라는 책을 접하게 된 것은 초등학교 근처 서점 유리벽에 붙여진 <느낌표 선정> 도서라는 광고문구를 본 것도 있지만 아들의 장애를 겪게 되면서 매일 하루의 일과처럼 되버린 장애관련 사이트를 이 잡듯 찾고 다니거나 장애관련 서적만 보면 그냥 지나칠 수 없게 된 장애아 부모로서의 일종의 '직업병'적인 습관 때문이었다.

운좋게도 관할 동사무소 새마을문고에서 이 책을 무료로 빌려볼 수 있게 되는 행운까지 얻게 되었는데 책 표지에 파스텔톤으로 그려진 그림을 통해서 <가방 들어주는 아이>의 내용을 선명히 이해할 수 있었다.


아마도 주 독자가 초등학생이 되리라라는 걸 감안했는지 책 표지 왼쪽엔 커다랗게 양쪽 어깨에 가방을 맨 아이가 못 쓰는 양발대신 양손에 목발을 의지한 채 힘겹게 뒤따라 오는 장애인 친구를 약간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실쭉하게 쳐다보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책표지만 봐도 어떤 내용이 펼쳐질지 쉽게 머리에 그려지면서도 얼른 이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에 집에 오자마자 단숨에 읽어내려갔다. 2학년이 되는 새학기 첫날 주인공 문석우는 엄마와 함께 목발을 짚고 교실에 들어온 민영택과 한 반이 되고 첫날부터 다리가 불편한 영택이와 집이 가깝다는 이유로 일 년동안 영택이의 가방을 대신 들어주는 임무를 맡게 된다.

갑작스럽게 주어진 임무에 조금 얼떨떨하면서도 석우는 선생님의 명령이기에 어쩔 수 없이 영택의 가방을 대신 들어주게 되고 그러한 석우에게 미안해하는 영택과 어색한 첫만남을 갖게 되고 두 사람은 원치않지만 매일 등하교길을 같이 하는 친구가 된다.

아이들에게 '찔뚝이'라고 놀림받는 영택이와 함께 다니게 되면서 찔뚝이 친구라는 말이 듣기 싫고 때로는 하교길에 축구라도 하며 놀고 싶어도 자신이 맡은 임무 때문에 마음놓고 놀 수도 없게 된 석우는 가방 들어주는 일이 귀찮게 느껴지다가도 얼마 안있어 주변 사람들에게 몸이 불편한 친구를 도와주는 착한 아이라는 칭찬도 받게 되고 청소를 빠지는 '특권'도 누리면서 점차 친구의 가방을 대신 들어주는 일에 적응해 가기 시작한다.

또한 가정 형편이 전보다 어려워져 학용품 살 돈도 제대로 타지 못하는 석우에게 학용품 살 돈을 주시기도 하고 초콜릿같은 간식도 주시는 영택의 어머니의 배려로 차츰 가방 들어주는 일의 '장점'도 누리게 된다.


하지만 석우가 장애인 친구 영택이의 가방을 대신 들어주면서 얻게 된 가장 큰 선물은 진정으로 장애인 친구를 이해하게 되는 일이다.
아무 생각없이 영택이의 장애에 대해 툭툭 내던지는 사람들의 빈정거림에 대해 대신 분노하기도 하고 반 아이를 거의 다 생일잔치에 초대해도 왠지 장애인이라는 '떨떠름함'때문에 생일잔치에 오지 않는 반친구들에 대한 서운함을 공유한다.

그리고 일년이 흐르고 3학년이 된 첫 날 석우는 지난 일년 동안 몸이 불편한 친구를 위해 가방을 들어준 공로로 모범상을 받게 되지만 석우는 차마 그 상을 받을 수가 없다. 바로 모범상을 받게 되는 날 아침 등교길에 다른 반이 된 영택이의 가방을 들어주려다 주위 아이들이 '가방 들어주는 아이'라는 수군거림으로 인해 슬그머니 영택이네 집앞을 지나쳤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장애인을 위해 '가방 들어주는 아이'같은 착한 아이가 많아야 한다는 교훈을 일방적으로 심어주려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의 고통 못지않게 1년동안 장애인을 위해 봉사했으면서도 가끔은 자신의 이기심 때문에 장애인을 모른 척 하고 싶어질 때도 있는 주변인의 고통을 생생하게 다루었다는 데 있다.

이 책의 저자 고정욱은 <아주 특별한 우리 형>, <안내견 탄실이> 등 장애인을 소재로 한 작품을 써왔는데 실제로 어릴 때 소아마비를 앓아 두 다리를 쓰지 못하는 소아마비 1급 장애인이라고 한다. 어쩌면 작가가 유년시절 겪었을 장애인으로서의 고통이 장애인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가 담긴 작품을 완성시키는 데 크나큰 밑거름이 되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다만 이 책을 읽으면서 한가지 아쉬움과 바램이 있다면 후속작으로서는 장애인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겪어나가는 장애인과 주변인의 에피소드를 담은 내용이 아니라 장애인으로 인해 세상이 더욱 발전하고 변화해가는, 장애인의 의지가 주체가 된 작품을 써 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장애인 면전에서도 장애인에 대해 험한 말을 서슴치 않을 정도로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저급했던 예전에 비해 얼마전부터는 장애인이라는 말대신 장애우라는 용어를 사용하자는 운동도 일 정도로 우리의 장애인문화는 성숙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영택이를 '찔뚝이'라고 놀리는 영택이의 반친구들처럼 우리의 인식 속에는 장애인에 대한 올바른 배려가 정립되어 있지 못한 실정이다. 한 나라가 선진국인지를 알려면 어린이, 노약자, 장애인에게 얼마나 살기 좋은 나라인지 알아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부디 고정욱의 <가방 들어주는 아이>가 더욱 널리 읽혀진다면 우리나라엔 장애인의 가방을 대신 들어주는 '가방 들어주는 아이들'도 많아질 것이고 우리나라가 장애인에 대해 배려하는 문화선진국으로 발돋음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많은 이들이 <가방 들어주는 아이>를 읽게 되길 바란다.

가방 들어주는 아이 - MBC 느낌표 선정도서

고정욱 지음, 백남원 그림,
사계절,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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