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의 여름방학 이야기

즐거운 고딩일기

등록 2003.07.27 10:19수정 2003.08.18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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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식 날의 단상


정신없이 지나가는 나날의 연속, 그러던 중 어느덧 방학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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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강훈

오늘은 방학식날. 이상하게도 학교를 다니며 수많은 방학식을 거쳤건만, 그때마다 전날 밤은 잠이 잘 안 왔고, 그것은 오늘도 마찬가지. 그리고 약간은 잠이 모자란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아침 일찍 나 자신도 모르게 눈이 떠지는 것도….

방학식 행사도 여느 때와 같았다. 스피커에선 교장선생님 말씀이 흘러나오고 그 누구도 그다지 귀 기울여 듣지 않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교실 안은 방학과 더불어, 다음 날이 주말이라는 사실로 인해 매우 들뜬 분위기인 것.

대청소시간에도 모두들 신이 났다. 평소에는 잘만 '땡땡이' 치던 치들조차도 기분이라며 청소에 열심이다. 방학이라는 이름의 보상으로 그네에게는 잠시동안 교실의 묵은 먼지를 먹는 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가보다.

이윽고 종래시간, 담임선생님께서는 한 달간 못 보게 될 아이들 앞에 서셨다.


“이제 후회할 시간도 얼마 남지 않는 것 같다. 정말, 한 달 정도 방학이 있는데, 이제 놀지 말고 공부해라. 공부해서 점수 좀 올릴 생각을 해라. 자기가 보기에, 약한 과목이 무언가 다들 생각해 보고, 그 과목을 중점적으로 해야된다.

그렇게 해서 개학식 날 보자. 자기가, 방학동안에 시간을 잘 보낸다면 개학식 날 와서 웃을 수 있을 거다. 아니면 그 반대겠지. 9월 초에 모의고사 있는 거 다 알거다. 그러니까 제발, 공부들 좀 제대로 하고 개학 날 좀 웃는 얼굴로들 만났으면 좋겠다.”


고등학교 생활의 마지막 해, 그리고 마지막 여름방학이 오늘부터 시작되었다.

어찌 보면 우리에겐 별로 다를 것도 없을 시간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밥 두 끼를 학교에서 해결하던 오랜 생활습관이 바뀌는 것 정도. 말 그대로 명목상의 방학일 뿐….

이러한 사실을 그 누구도 잊지는 않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방학식날 오늘 하루만큼은 우리에게 웃음과 여유가 있다. 분명 속은 조금 불편할지언정 우리들은 방학을 자축하고 싶은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여기저기서 각종 모의(謀議)가 진행 중이다.

“야, 우리 그래도 방학은 방학인데 PC방 가자.”

“니, 고삼 맞냐?”

“그래서 너 안 간다고?”

“아니, 당연히 가야지!”

우리들의 방학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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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강훈

방학동안 친구들은 어떻게 지낼 생각 인가 궁금해서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문득 들었다.

“야, 너네는 방학 때 어떻게 지낼 거냐?”

“뻔하지 모. 나는 공부할 거다.”

“공부 안하는 사람이 어디 있냐?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 거냐고.”

“난 시골로 가겠어.”

평소 단짝이던 친구다. 요즘 들어 슬럼프에 빠져서인지 힘들어 보였다. 아예 대천에 있는 시골로 내려가겠다는 것이다.

“너희 시골 해수욕장인데다가 집에 컴퓨터랑 텔레비전 같은 거 다 있다며? 그냥 동네 도서관이나 다니지.”

“아니, 우리 시골 집 옆에 있는 집 빈집이래. 아예 치워달라고 했어. 인제 공부만 할 거야.”

하긴, 나도 가끔은 그런 상황을 동경했다. 인적 드문 산사(山寺)에서 공부에만 정진하는 것도 그럴 듯 해 보이지 않는가.

다른 친구는 학교에 나가서 보충수업을 듣는다고 했다. 보충수업이 끝난 후에는 동네에 있는 독서실에 다닌다고.

학교 보충수업을 신청한 아이들도 많다. 담임선생님께서 구두로 방학 중, 보충수업을 할 사람 손들어 보라고 하셨는데, 반 정도가 손을 들었다. 보충수업이 끝난 후에 학교에 남아 '야자(야간자습)'를 한다는 아이들도 꽤 있었다. 그리고 과외와 학원수업을 병행한다는 아이들도 반에서 다섯 명을 제외하고 모두였다.

내 경우는 그저 종일 독서실에 있다가 저녁 때 집에 와서 교육방송을 볼 예정이지만.

그건 그렇고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문득, 초등학교 다닐 때 방학만 되면 그리던 동그란 방학생활 계획표가 생각이 났다. 그때는 계획이라고 세워 놓고 스스로 지키지 않았던 것이 거의였던 시절이었는데. 대개 내용은 이러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세수하고 아침 먹고 ‘방학생활’하고, 또 일기 쓰고 등등….

밥 먹고 세수하고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모두 공부라고 써놓은 어이없는 시간표. 그런데 실상은 숙제를 너무 안 해서 개학이 다가올 즈음 고생하던 기억들 뿐. 그래도 그때가 좋았다는 생각을 해 본다. 적어도 계획을 지키지 않아도 될 여유로 충만한 때였으니까.

이번 방학만은 사정이 다른 만큼 생활계획표대로 살아야만 할 것이다.

방학에 임하는 우리들. 사실, 친구들의 방학계획이 제각각 다를 지라도, 그것이 공부계획이라는 점에서는 같을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결코 여겨서는 안 되는 계획이라는 점에서도 우리는 모두 같다.

웃는 얼굴로 다시 만나길

방학이 시작되고 며칠이 흘렀다. 어떤 이들은 먼저 대학에 붙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치기어린 부러움이 드는 순간, 내가 앉아 있는 곳은 독서실. 나 혼자다.

혼자인 것이 부담스러운 것은, ‘우리’일 때 잠시나마 잊고 있었던 ‘목적의식’에 너무 노골적으로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는 벌써 며칠째 설사증세에 시달리고 있다.

문득, 담임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떠오른다. “개학 날 웃으면서 만나자.”

어떤 날은 공부가 잘 되서 한없이 뿌듯하고 기분이 좋을 때가 있다. 그리고 어떤 날은 아침부터 몸을 가눌 수 없이 마음이 산란해져 공부고 뭐고 영 하기 싫어지는 날도 있다. 이런 기복에 과연 개학날 나는 웃을 수 있는지 하는 걱정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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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강훈

가끔은, 친구들에게서 문자메시지가 온다. 그런데 그 메시지 내용이란 것이 어쩜 그렇게도 내 생각과 꼭 같을 수 있는지.

어떤 친구들은 개학날 그야말로 만족스런 웃음으로 나타날 수도 있겠다. 개인적으로 모든 친구들을 웃으면서 보았으면 하는 바람인데, 그런 웃음이라면 더욱 좋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웃음일 수 없다면, 내가 단지 건강하게 방학을 보냈으며 지금 다시 너를 만나서 즐겁다는 웃음.

그렇게 웃는 얼굴로, 다시 만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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