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유진. 720503-2130411
부산시 서구 암남동 D오피스텔 1303호
하단부에는 그녀의 업무내용과 인사평가가 기록되어 있었다. 그래픽 디자인이 그녀의 주업무였다. 인사평가는 대체로 양호했고, 장기 고용계약이 가능하다고 적혀 있었다. 하지만 서류에는 그게 전부였다. 학력이나 경력사항 같은 것은 기재되지 않았다. 사진도 없었다.
김 기자는 여자의 이름과 주민번호를 수첩에 적으며 물었다.
"신상에 대한 기록은 아무 것도 없군요."
"저희들도 최유진양에 대해 잘 알지 못합니다. 임시직 사원은 제가 직접 심사를 하는데 최유진양의 경우에는 본사에서 추천의뢰가 왔습니다. 본사에서 추천이 왔는데 심사하고 말 것도 없었죠. 실력도 상당한 편이고, 그래서 일감이 몰려올 때마다 부르게 되었죠."
"그녀와 친하게 지내던 동료직원은 없었나요?"
"글쎄요. 임시직 사원이라…. 특히 그래픽 일은 혼자서 컴퓨터하고만 씨름하는 편이라 직원들과의 교류가 드문 편이죠. 하지만 제가 한번 알아보죠."
지사장이 들고 있던 커피잔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김 기자도 함께 일어섰다. 지사장이 방을 나섰다. 그도 함께 따라 나갔다. 복도에서 지사장이 말했다.
"기자 선생께서는 여기서 기다리십시오."
"가능하다면 같이 가서 몇 가지를 묻고 싶습니다."
지사장이 인상을 찌푸리며 손을 내저었다.
"여긴 광고회사이기 때문에 보안을 철저히 지켜야 합니다. 때문에 외부인의 출입을 금하고 있습니다."
지사장이 주머니에서 카드 한 장을 꺼내어 들었다. 그걸 입구의 기계에 넣자 문이 스르르 열렸다. 김 기자는 복도에 선 채로 사무실 쪽을 바라보았다. 사무실은 유리문이지만 검은 시트지로 덮여 안이 보이지 않았다. 광고회사치고는 보안이 철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도 지사장은 나오지 않았다. 김 기자는 복도에 선 채로 창 밖을 바라보았다.
회색구름이 바다 건너 집들이 빽빽이 들어찬 산자락에 길게 걸려 있었다. 육지와 섬을 연결한 붉은 색의 부산대교가 보이고 그 아래로 어선 한 척이 항구 쪽으로 미끄러져 가고 있는 중이었다.
실내와는 달리 복도는 무척 더웠다. 쏟아져 들어오는 아침 햇살에 복도바닥이 후끈 달아올랐다. 김 기자는 손수건을 꺼내어 땀을 닦았다. 그때 커피를 가져왔던 여자가 찻잔을 들고 나오는 게 보였다. 눈인사를 보냈다. 하지만 여자는 고개를 숙인 채 그를 비켜갔다. 김 기자가 다가가며 말했다.
"아까는 죄송했습니다."
여자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괜찮아요."
여자는 얼른 복도를 벗어났다. 그녀의 얼굴은 붉어져 있었다.
잠시 후 지사장이 왔다.
"어떡하죠. 별 성과가 없는 것 같은데."
그가 담배를 권했다. 복도에 있는 금연표시가 보였다. 손을 내저었다. 그가 상관 없다는 듯이 불까지 붙이며 다시 권했다. 희부연 담배연기 복도사이로 낮게 퍼져갔다.
"최유진양은 회사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회식을 해도 무슨 일이 있다며 피한 적이 많다는군요."
김 기자가 담배 필터를 세게 깨물었다.
"그런데 이주언이라는 임시직 직원이 있는데 그가 최유진과 밖에서 만나는 것을 보았다고 한 직원이 있었습니다."
"제가 그 분을 좀 만날 수 있을까요?"
"지금 자신의 작업실에서 일을 하고 있답니다. 전화 번호를 가르쳐 드릴 테니 한번 만나 보시죠."
지사장이 전화번호가 적힌 메모지를 건네주었다. 고맙다고 인사를 건넸다. 그가 눈동자를 굴리며 바라보았다. 이쪽 눈치를 살피는 듯 했다. 이상하게도 눈자위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기까지 했다.
같은 시각.
방송을 마친 진수는 담당PD를 만나고는 곧장 부장의 방으로 향하고 있었다. 방송을 그만두기 위해서였다. 방송출연과, 자서전 대필 그리고 살인사건 추적. 이 세 가지를 동시에 진행할 수 없는 것이다.
자서전은 회장에게서 이미 어마어마한 돈을 받아버렸고, 살인사건은 사건의 실체에 상당히 접근해가고 있다. 포기할 수 있는 것은 방송밖에 없었다. 특히 방송출연은 생방송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시간제약이 무척 많은 편이었다.
대강의 사정을 이야기하자 부장이 난색을 표했다.
"자네도 우리 방송의 특성을 잘 알지 않은가? 시사프로에다 정부를 비판하는 내용도 있기 때문에 갑자기 그만두게 되면 불필요한 오해를 사게 된다구."
"그 부분에서 문제가 발생된다면 제가 언론에 확실히 밝히겠습니다."
"그러지 말고 3개월만 더 있어주게. 곧 정기개편이 있을 거야."
"죄송합니다. 저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부장은 몇 번이나 더 사정을 했지만 진수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다음 출연자를 섭외하기 전까지만 방송에 출연하라는 부탁도 거부하고 즉각 사임을 요구했다. 부장은 할 수 없이 허락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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