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은 1층에서 3층까지는 상가로 사용하고 4층부터는 사람들이 거주하는 아파트로, 말하자면 주상복합건물이었다. 오래 전에 지은 탓인지 건물은 낡았고, 군데군데 칠이 벗겨져 있었다.
복도 끝에서는 오후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둡고 습한 분위기가 드리워져 있었다. 걸을 때마다 발목이 바닥에 빠져드는 느낌이 들었다.
김 기자는 문 앞에서 잠시 주춤했다. 아무래도 낯선 여자가 혼자 사는 집에 들어가기란 쉽지 않은 것이다. 벨을 눌렀다.
"누구세요?"
라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여자는 바지 주머니에 양손을 끼워 넣고 서서 김 기자를 건너다보고 있었다. 김 기자는 여자를 보는 순간 잠시동안 숨을 멈추었다. 그녀에게서 한 호흡 가득 밀려온 진한 풀 냄새 때문이었다. 그 냄새는 정신을 아뜩하게 할 정도였다.
이주언은 화장기 없는 얼굴에 헐렁한 감색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끝단이 찢어진 청바지는 바닥에 끌릴 정도로 길어 약간의 퇴폐미를 얹어주었다. 그녀가 고개를 숙이자 포도주처럼 염색한 머리칼 몇 올이 그녀의 이마 위로 내려왔다. 그녀의 머리칼을 만져보고 싶다는 욕구가 물밀 듯 몰려왔다.
묘한 매력을 지닌 여자였다. 김 기자는 자신도 모르게 엄지손가락으로 수염을 긁었다. 살비듬이 떨어졌다.
"일단 들어오시죠."
멍한 시선을 의식해서인지 여자가 먼저 말을 건네 왔다.
아파트는 열 평이 조금 넘었다. 방은 하나였고, 식탁 겸용으로 보이는 책상이 차지하고 있어 주방이 딸린 거실은 매우 비좁았다. 하지만 불필요한 가구와 전자제품은 보이지 않았다. 전체적으로 정갈한 느낌을 주었다. 어디서 본 듯한 방의 풍경. 죽은 그녀의 취향과 비슷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언은 책상 의자를 김 기자에게 내주고 자신은 책상 위에 걸터앉았다. 그렇게 앉아 있는 모습이 다소 도발적으로 보였다. 에어컨 때문인지 실내는 적당한 온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여자는 차를 내오겠다고 했으나 김 기자는 정중하게 사양했다. 그는 조금 서두르고 있었다.
"최유진양은 일주일 째 행방불명상태입니다. 가능하면 그녀에 대해 아는 대로 말씀해 주십시오."
김 기자는 등을 꼿꼿하게 세우며 진지하게 물었다. 그 어조는 어느 정도 상대방을 위압하는 것이었다.
"글쎄요……."
하지만 이주언은 시원한 대답을 하지 않았다.
"혹시 그녀에게 남자는 없었던가요?"
"있었던 것 같아요. 여행도 몇 번 같이 갔다고 들었어요."
여행을 같이 간 남자는 그녀를 살해한 용의자일지도 모른다. 김 기자는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래서인지 생각지도 않던 말이 튀어나오고 말았다.
"그 남자에 대해 잘 생각해보세요. 꼭 부탁합니다. 어쩜 그녀는 살인을 당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녀의 눈자위가 심하게 떨렸다. 그 말에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가늘게 떨리는 듯한 속눈썹은 김 기자의 정신을 아뜩하게 만들었다. 그 눈은 사람을 묘하게 끌어들이는 흡인력이 있었다.
하지만 김 기자는 이내 아차, 하고 후회를 하고 말았다. 그는 두툼한 손으로 입언저리를 세게 쳤다.
'아이, 씨팔.'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난감한 표정으로 슬그머니 그녀의 눈길을 피했다. 이어 뒷말을 수습했다.
"이건 단순한 저의 추측일 뿐입니다. 그 남자에 대해 말씀해주시겠습니까? 둘은 사이가 좋았나요? 자주 다투진 않았나요?"
당황해서인지 그는 여러 질문을 한꺼번에 펼쳐놓았다. 여자가 천천히 입을 떼었다.
"댁은 그 남자가 범인일 거라고 생각 하시는군요."
김 기자가 손을 내저었다. 하지만 그녀는 믿지 않았다. 한참동안 고개를 떨구고 있다가 필터까지 타 들어간 담배를 비벼 끄며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지금은 정신이 없어 제대로 기억 할 수가 없겠군요. 다음에 다시 오셨으면 합니다."
김 기자는 다시 물으려다가 그만두었다. 재촉한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더구나 그의 마음속에는 그녀를 다시 볼 수 있다는 은근한 기대감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김 기자는 지갑에서 명함을 꺼내어 건네주었다.
여자는 현관까지 나오지 않았다. 처음의 자세대로 미동도 않고 책상에 기대어 서있었다. 김 기자는 조용히 문을 열고 복도로 나왔다. 복도는 여전히 음산한 채로 한구석에 컴컴한 어둠이 웅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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