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삐딴! 까삐딴! 로마에서의 소식입니다. 아마 노바라의 황금이 사실인 것 같다는 소문입니다."
"뭐? 노바라의 황금이 진짜로 있다는 말이야? 도대체 어디라고 하더냐?"
"왈이 헝가리로 간 것은 황금을 찾기 위한 것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럴 수가, 소문으로만 전해 내려오던 노바라의 황금이 진짜였다니?"
자칫했으면 영원히 왈의 입을 열지 못하고 인질을 죽여 버리고 말 뻔했어. 그 여우같은 늙은이! 여태껏 이 까삐딴을 감쪽같이 속이고 있었다니!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은 골칫거리 코레오 녀석이 또 나타나 오아시스를 잇는 사막의 통상권을 한손에 쥐고 흔드는 용맹하기로 소문난 무시무시한 놈 '아라곤의 사자'를 끌어들여 자신을 찾고 있다는 소문을 접하고는 간이 콩알만 해진 나머지, 화근 덩어리인 리베라와 그 새끼를 처지하고 여기를 떠나 어디론가 도망치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 까삐딴이 속수무책으로 힘도 못 써보고 죽이고 싶도록 미운 코레오에게 화냥년과 그 새끼를 순순히 넘겨줄 수야 없지, 하고 생각하며 이를 갈았다.
실제로 그 막대한 황금이 어딘가 숨겨져 있다면 그걸 알아내지 못하고 언제라도 없애버릴 수도 있는 그들을 미리 없애버렸다면 그것은 너무나도 큰 실수가 아니겠는가! 까삐딴은 자신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의 원대한 야망을 이루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다.
그것도 졸개들이 훔친 옷가지나 잡동사니들을 처분한 돈이나 꿈파니아의 여자나 아이들이 거리에서 구걸해오는 잔돈이 아니라 자신의 야욕을 이루기 위한 밑천이 될 수 있을 만한 큰 돈이 필요했다.
장차 집시세계의 황제 자리를 겨냥하고 있는 자신이 언제까지나 갓죠들의 더러운 코 묻은 돈에 운명을 맡기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왈이 동유럽으로 도망쳤단 말이지. 그것도 모르고 이렇게 허송세월을 하고 있었다니. 그렇다면 그라나다에서 버리고 온 마약 공장 따위를 아쉬워 할 일이 아니잖은가. 왈의 그 황금만 수중에 넣을 수 있다면 자신이 하고 싶은 모든 것을 하고도 남음이다.
교활한 늙은이 같으니라고! 빨리 리베라 모자를 인질로 끌고 헝가리로 쫓아가서 왈의 입을 열게 해야 하는데. 저 코레오 녀석이 성가시게 길을 막고 있으니 이를 어쩐다지!
까삐딴은 잃어버린 노바라의 황금을 찾아 낼 희망에 부풀어 오르면서 코레오 녀석이 더욱 밉고 성가시게만 여겨졌다.
"까삐딴, 무스타파의 부하들이 지금 자벵구리 (모로코에 있는 한 지방도시의 이름) 근처까지 와서 리베라를 찾아다니고 있다고 합니다."
그 때 다시 밖에서 돌아온 부하들이 허겁지겁 뛰어들면서 보고했다.
"정말 큰일이군. 계속 놈들의 동태를 살피면서 혹시라도 놈들이 무슨 눈치를 차린 듯하면 즉시 내게 보고하도록 해라."
무스타파가 풀은 졸개들이 리베라의 일을 염탐하러 근처까지 왔다는 부하들의 보고를 접하고 까삐딴은 완전히 질려버렸다.
'도대체 코레오란 녀석은 어떻게 되어 먹은 녀석일까? 녀석이 어떻게 해서 무스타파와 손을 잡았을까?'
무스타파가 개입하는 바람에 그나마 자신의 마지막 보루인 모로코의 아지트마저 초토화될 위기에 봉착하고 말았다.
여기까지 오기가 얼마나 힘들었는데. 녀석 때문에 몇 년 동안 준비해온 그라나다의 마약공장을 가동도 못 해보고 도망쳐온 마당에 그나마 잔챙이 무기거래를 하고 있던 여기 모로코 아지트까지 잃어버리면 집시제국의 기틀을 마련하기 위해 한 몫 잡기는커녕 갓죠들에게 쫓겨 다닐 도주자금 조차 변변히 마련하기 힘들 판이었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코레오를 죽여 버리고 싶지만, 그렇다고 지금 녀석을 죽이면 녀석을 보호하며 자신을 옥죄어오고 있는 무스타파에게 나를 죽여줍쇼, 하는 초대장을 던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얼마 안 되는 집시의 힘으로 이곳의 토착 세력인 강력한 그들과 맛서는 것은 말도 안 되었다.
코레오 녀석 하나쯤 죽여서 사막에 묻어버리고 경찰쯤 따돌리는 것은 문제도 아니지만, 저 난폭하기로 소문난 무스타파라는 놈이 버티고 있는 한, 왈의 황금을 찾아 떠나기는 고사하고 사막을 벗어나기도 전에 자신은 무스타파의 칼날에 무참하게 목이 날아가고 말 것이다!
노바라의 황금을 찾으러 지금 저 인질들을 앞세우고 한시바삐 왈을 찾아가야 할 이 마당에 저 죽일 놈의 코레오 때문에 무스타파라는 생각치도 못한 아랍 갓죠한테 개죽음을 당할 판국이었다.
'에이, 고무 지렁이 같은 코레오놈!'
도대체 리베라는 어디서 저런 화근 덩어리를 끌어들여 내 속을 이리도 번번이 뒤집어 놓는 거야!'
바로 그 때 까삐딴의 머리 속을 번개같이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그렇다. 방법이 있다! 리베라 그년으로 하여금 코레오 녀석을 내쫓게 하는 거야. 그 녀석은 아무리 내쫓으려 해도 리베라를 보기 전에는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무스타파에게 사람을 보내서 코레오와 리베라를 자유롭게 만나게 해서 본인들이 결정하게 하겠으니, 나를 더 이상 괴롭히지 말고 손을 떼라고 제의하는 거야. 그러면 무스타파도 할말이 없겠지. 나는 왜 이렇게 천재일까!
"여봐라! 누구 없느냐? 지금 바로 무스타파에게 사람을 보내야 한다!"
여우같은 년이! 옛날 코레오의 새끼를 내 새끼라고 속이려고 했을 때 내가 속아 주는 척 하기를 잘했지. 코레오의 자식새끼가 리베라와 왈의 입을 열어 황금의 비밀을 아는 열쇠가 될 수 있을 줄이야!
까삐딴은 창살 안에 쓰러져 있는 리베라를 노려보며 생각했다.
어린것의 생명을 위협하면 아무리 독한 것들이라도 황금을 내놓겠지.
악착같은 리베라도 교활한 늙은 왈도 자신들의 핏줄에게 위해가 가해지는 것을 두 눈 똑바로 뜨고 지켜보고만 있지는 못하겠지. 으 흐흐흐.
언젠가는 너희들의 입을 열게 만들고야 말겠다. 분통이 터지더라도 참으면서 때를 기다리는 거다.
음, 안 되고말고, 이 까삐딴님의 황금을 잃어버릴 수야 없는 일이지, 하고 마음속으로 이를 갈면서 까삐딴은 입을 열었다.
"리베라! 너의 서방이 이곳까지 오셨다는데 한번 만나보는 것이 현숙한 아내의 도리가 아닐까?"
퀭한 눈으로 멍하니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가 '코레오'라는 말에 귀가 번쩍 뜨이는 듯한 리베라의 찢겨진 콧구멍을 보면서 까삐딴은 생각했다.
왜 내가 코를 찢었을까! 이제는 매력이 아니라 정나미가 떨어지는군!
까삐딴은 그날 리베라의 콧구멍을 찢은 이후 그녀의 죽은 자의 그것같이 축 늘어뜨린 저항 없는 팔다리와 자꾸 신경에 거슬리게 눈에 뜨이던 어두운 터널같이 섬뜩한 공포감을 느끼게 하던 콧구멍을 떠올렸다.
그건 다시 생각해도 실수라고 까삐딴은 생각했다. 좀더 짜릿한 방법으로 고통을 줄 수 있는 다른 방법도 많았을 텐데, 왜 하필……. 순간적으로 타오르는 분노를 억제하지 못하여 아까운 장난감을 망가뜨리고 말다니…….
까삐딴은 마음속으로 이제 다시는 이 역겨운 찢어진 콧구멍을 가까이에서 들여다보지 않겠다고 작정하면서 내뱉었다.
"놈을 만나서 무슨 설득을 하던 간에 놈이 너를 쫓아다니는 것을 단념시켜!
내가 녀석 하나쯤 죽이는 것은 식은 죽 먹기지만 손에 직접 더러운 갓죠의 피를 묻히기 싫어서 너에게 그 녀석을 포기시켜 돌아가게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주려는 것뿐이야.
네 서방이었던 놈이 이 사막에 묻혀 전갈의 집이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면 허튼 수작일랑 아예 할 생각도 말아. 알았어?"
하고 까삐딴이 소리치자 그제서야 감을 잡았는지 리베라는 절망하듯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우리 애들이 너희들을 겹겹이 둘러싸고 있을 것이다. 만약 조금이라도 미심쩍거나 이상한 짓을 하면 그 자리에서 둘 다 죽여 버린다. 하기야 너희 둘이 정사를 하는 거야 상관없다고 생각할는지 모르겠지. 하지만 네 새끼가 재수 없는 곰 새끼처럼 갖은 괴롭힘을 당하다가 비참하다 죽는 것을 바라지는 않겠지? 으 흐흐흐."
리베라가 공포에 질린 듯 사시나무 떨듯이 몸을 떠는 것을 보며 자신의 말귀를 분명히 알아들은 것을 보고 까삐딴은 마음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하기사, 이제까지 나를 겪어보고도 내가 어떤 사람인 것을 모를 미련한 년은 아닐 테니까!
그러나 까삐딴은 다시 한번 그녀가 마음속에 아예 다른 생각조차 갖지 못하도록 쐐기를 박았다.
"가서 놈의 얼굴을 갈겨주고 침을 뱉어주란 말이야. 그래서 놈의 하찮은 목숨이나마 건져주고 네가 나의 자비를 받아 코레오의 자식새끼와 목숨이나마 부지할 수 있도록, 알겠지? 그렇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그리고는 까삐딴은 애써 말을 아꼈다. 그녀의 공포심을 키우기 위해서는 나머지는 그녀의 상상에 맡겨야 하는 것을 더 잘 알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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