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03.08.01 11:12수정 2003.08.01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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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삼일 동안 컴퓨터를 못했을 뿐인데도 몇 주일처럼 길게 느껴지는 이유는 아마도 하루도 빠짐 없이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컴퓨터 중독증' 정도 될까. 마약이나 담배 같은 인체에 해로운 것들만 중독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했다.
언제부터인가 컴퓨터가 내 생활의 중요 부분으로 자리잡은 모양이다.
오늘에야 비로소 삼일 동안의 침묵을 깨고 원상복귀된 컴퓨터에 앉아 모니터를 보며 키보드를 치니 안도의 한숨까지 새어 나왔다. 그저께 밤에서야 시간을 내 컴퓨터 앞에 앉은 남편은 이리저리 둘러 보더니 인상을 쓰면서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 도대체 뭘 건드려 놨길래 이 모양이냐? 우리집 같은 애들이 또 있을까."
컴퓨터를 고장낸 사람은 지레 짐작이지만 큰 아들 녀석일 가능성이 크다. 언젠가 나한테 미래의 꿈을 컴퓨터 박사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요즘 방학을 맞아 일주일에 두 번 오전마다 1시간씩 학교에서 컴퓨터를 배우고 있는 큰 녀석은 그날 배운 것을 책까지 옆에 끼고 앉아 복습을 하는 눈치였다. 컴퓨터에 대해서 어른인 나보다도 인지능력이 뛰어난 큰 녀석은 보면 볼수록 더 복잡하기만 한 컴퓨터 책을 뒤적거리며 바탕화면을 마음대로 바꾸어 놓기도 하고 누가 따로 가르쳐 주지도 않았는데 어느새 자판을 익혀 검색까지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올해 한걸음 더나아가 본격적으로 컴퓨터를 배운 다음부터는 엄마까지 가르치려고 한다. 그로 인해 작은 아이는 형만 컴퓨터를 혼자 독차지한다고 나한테 몇 번이나 일러 바치고 있다.
" 엄마, 형아만 컴퓨터 해."
" 같이 해야지."
" 지금 같이 하고 있어."
두 아이의 컴퓨터 쟁탈전에 중간에서 내가 할수 있는 도우미 역할은 미비할 뿐이다.
그런데 컴퓨터에 이상이 생겼다. 불은 들어 오는데 인터넷이 연결이 되지 않았다. 모든 전원을 다 끄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봐도 똑같은 문구만을 되풀이하며 창은 열리지 않았다. 가만 보니 이번에도 큰 녀석이 책을 보면서 따라 하다가 잘못 건드린 게 틀림없었다.
그런데도 큰 녀석은 여느 때와 마차가지로 오리발이다. 웬만해선 자동으로 복귀가 되던 인터넷이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남편은 자신이 고치기를 포기하고 인터넷 고객센터에 서비스를 요청했다.
어제 오후 늦게서야 도착한 기사는 두 명의 청년들이었다.
미리 온다는 것을 알고 전원을 켜 두고 있던터라 그들이 자리에 앉아마자 대뜸 고칠 수 있느냐고 물어 보았다.
" 그럼요."
대답은 간결하면서도 자신만만했다.
고칠 수 있다는 단언에 한시름은 놓았지만 단단히 고장난 거라면 수리 비용으로 들어갈 돈을 떠올리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엊그제는 또 변기통이 막혔는지 그걸 뚫느라고 거금 5만 원이 지출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고장난 게 심각하나요?"
더울 것 같아 얼음을 띄운 콜라를 건네주며 물어 보았다.
" 아니요. 누가 제어판을 손댔네요. 컴퓨터는 보통 누가 쓰지요?"
" 애 둘 하고 저요. 아이들 아빠도 가끔 쓰구요."
" 다른 건 괜찮은데 여기 제어판 보시면 인터넷이 있는데 이것만 주의하면 됩니다."
우선 크게 고장난 게 아니라니 천만다행이었다. 나중에 큰 녀석한테 단단히 주의를 주어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비용이 얼마냐고 물어 보았다.
" 공짠데요."
돈을 받지 않는다니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었다. 공짜를 너무 좋아하면 머리가 벗져진다는 말도 있던데 그 순간만은 공짜라는 말에 웃음이 나왔다.
두 청년들이 가고 난뒤 큰 녀석을 불러 앉혀 놓고 앞으로는 이것저것 함부로 손대지 말 것을 일러 주고 당분간은 컴퓨터를 못한다는 엄포까지 놓았다. 큰 녀석도 자기 나름대로 잘못을 인정하는지 순순히 알았다며 의외로 순한 양이 되어 고개를 끄덕거렸다.
언제 또 불시에 큰 녀석에 의해 먹통이 될지 모르지만 만 삼일만에 정상으로 돌아 온 컴퓨터를 보니 마치 집 나갔다가 돌아온 개를 보듯 반가운 마음이 먼저 드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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