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창을 열자 거센 바람이 와락 몰려왔다. 창 틈으로 몰려온 바람은 후드득 소리를 내며 안재성의 머리카락을 날리게 했다. 들고 있던 종이도 심하게 구겨졌다. 다시 차창을 올렸다.
그의 손에는 C대학병원에서 복사해준 원경이의 진료기록지가 있었다. 무거워진 머리를 흔들며 진료기록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글자 한 자도 놓치지 않고 꼼꼼히 살폈다. 이해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휴, 하고 밀리는 한숨을 내쉬며 택시의 뒷좌석에 몸을 기댔다. 그의 머릿속은 순서 없이 치솟는 질문들 때문에 혼잡하고 무질서했다
"웬일이야? 자네가 나를 다 만나자고 연락을 다하고."
"그냥, 네 얼굴이나 보려구."
송영태와 안재성은 술집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밤 10시를 넘긴 시간. 밖은 비가 내리고 있었고, 실내는 사람들이 내뿜는 담배연기로 공기가 다소 탁했다. 천장에는 대형선풍기의 날개가 헬리콥터의 날개처럼 둔중하게 공기를 때리고 있었다.
요즘 다른 신경과 닥터들에게 이상한 걸 물어보고 다닌다면서?"
"그걸 어떻게 알았지?"
"내가 누구냐? 신경과의 마당발 아니니."
안재성은 박하사탕을 꺼내어 송영태에게 내밀었다. 고개를 내저었다. 안재성이 비닐을 벗겨 박하사탕을 입에 넣었다.
"존경하는 은사님이 계셨는데, 그 딸이 얼마 전에 실종되었어."
"그래?"
송영태가 놀란 표정을 했다.
"그런데 그 딸의 방에서 알렌비아틴과 페노발이 발견되었어."
"알렌비아틴이라면 간질을 치료하는 약이잖아. 간질에 걸렸다 말이야?"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아."
안재성은 의자에 놓아둔 가방을 뒤적였다. 가방에서 차트를 복사한 종이를 꺼내 건네주었다. 송영태는 얼굴을 가까이 대고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어디 보자. 광과민성 착시 현상에 환청과 환시. 그리고 수면장애를 호소하였군."
"그 밑을 자세히 봐. 동시에 두 장소에 있는 것 같은 환각을 느끼고, 의식 속에서는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기억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을 경험한다고 기록되어 있어."
"그렇다면 측두엽에 문제가 생겨 간질증세가 유발되었군."
"담당의사도 너와 같은 생각을 하고 뇌파 검사를 하였어. 그런데 아무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어. 그래서 뇌자기공명영상과 뇌전산화 단층촬영까지 하였지만 이상이 없다는 거야."
"간질의 원인이 뇌세포 차원의 미세한 구조적 이상에서 생길 수도 있잖아?"
"그것도 마찬가지야.
안재성이 사이를 두었다가 다시 말했다.
"한 가지 특이한 것은 원경이가 실종되기 전에 극도의 공포감을 가지고 있었다는 거야. 누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해."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송영태는 아, 하는 표정과 함께 어떤 사실에 생각이 미쳤다. 이틀 전 자신을 찾아왔던 젊은 여성. 아무 이상이 없다는 진단에 힘없이 돌아서는 그녀의 모습이 플래시백처럼 번뜩였다.
"누군가 자신을 감시하고 있다는 심한 공포감을 느꼈다고 그랬지? 나도 그런 환자를 진찰한 적이 있어. 듣고 보니 네가 말한 것과 거의 똑같은 것 같아."
"그래? 누구야? 아니 전화번호를 적어 줘 내가 직접 통화를 해 볼게."
"지금 밤 10시가 넘었어. 병원은 문을 닫았다구. 내일 아침 일찍 진료기록을 찾아 연락해 줄게."
안재성은 다시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초조했다. 내일 아침까지 기다릴 순 없었다. 너무 급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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