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소설> 밈 (23회)

증상(2)

등록 2003.08.04 09:18수정 2003.08.04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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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성은 송영태가 일러준 여자의 집을 찾아갔다. 그녀의 집은 3층 건물의 연립주택이었다. 빨간 벽돌로 벽면을 장식한 건물은 최근에 지어졌는지 옅은 시멘트 냄새가 풍겼다.

그녀가 살고 있는 곳은 301호였다. 문 입구에는 사흘치의 신문이 쌓여 있었다. 벨을 눌러 보았지만 반응이 없었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옆집 302호의 벨을 눌렀다.


"누구세요?"
"옆집 301호에 찾아온 손님인데요. 며칠째 연락이 없어 몇 가지 여쭤 보려고요."

302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곧이어 문을 열고 사람이 직접 나왔다. 30대 중반의 여자였다.
"실례지만 301호 아가씨하고 어떻게 되는 사이입니까?"
"전 의사입니다. 진료기록에 무슨 문제가 있었어요."

여자는 표정을 흐리며 나지막하게 이야기했다.
"301호 아가씬 죽었어요. 친척이 찾아 왔었거든요. 그러고 보니 오늘이 바로 출상일이네요."

순간 안재성의 안색이 확 구겨졌다. 동시에 머리가 혼란스러워지며 갖가지 추측이 뒤섞이기 시작했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무엇 때문에 죽었다고 합니까?"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해요. 커다란 덤프트럭에 치였다나…."
"혹시 그 아가씨의 가족들이 살고 있는 곳을 알 수 있을까요?"
"그 친척에게 연락처를 하나 받아둔 게 있어요."


안재성은 다시 차를 몰고 그녀의 가족들이 살고 있는 한남동으로 향했다.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10시를 넘기고 있었다.

최영선의 집은 2층 건물에다 큰 대문과 높은 담장을 두른 고급주택이었다. 육중한 대문 옆에는 수십 개의 근조 화환이 놓여 있었다. 문은 열려 있었다. 가족은 아무도 없었다. 모두 장지로 갔다고 했다.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죽은 영선의 외할아버지가 재벌인 일성그룹의 회장이라고 했다. 그래서 찾아온 사람도 많았고 화환도 가득 놓여 있었다. 안재성이 만난 사람은 최영선의 가까운 친척이었다. 외사촌이라고 밝힌 그는 사고의 경위를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그날은 비가 무척 많이 왔다고 합니다. 사고가 난 장소는 사람들이 거의 다니지 않는 시골 국도변이었어요. 무엇 때문에 영선이가 그곳에 갔는지 이해가 가지 않네요. 운전사 말로는 영선이가 갑자기 도로 위로 뛰쳐나와 사고가 났다고 합니다. 저희들은 아직 운전사를 의심하고 있어요."

사고가 난 장소는 남양주의 47번 국도였다. 따라서 운전자는 관할구역인 남양주 경찰서 유치장에 있었다. 그는 다시 차를 몰아 남양주경찰서를 향했다. 하지만 안재성은 사고를 낸 운전자를 만날 수 없었다. 경찰은 피의자와의 면담을 강력히 거부했다. 의사라고 신분을 밝히며 사정을 해도 소용이 없었다.

"피해자가 만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궁금한 사항이 있으면 담당 경찰관에게 여쭈어 보십시오."
할 수 없이 안재성은 피의자를 심문한 경찰관을 찾아갔다. 경찰은 40대 후반으로 후덕한 인상을 풍기고 있었다.

"사고를 당한 최영선씨가 왜 인적이 드문 길에 있었던 겁니까?"
"저희들도 그 부분이 잘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피의자를 집중적으로 추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황으로 보아서는 여자가 차에 스스로 뛰어든 것이 분명한 것 같습니다."

경찰서에서 특별히 알아낸 것은 없었다. 알아냈다면 경찰들도 최영선의 죽음에 의문을 품고 있다는 정도였다. 경찰서를 나서는 안재성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그의 머리는 혼란스러워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똑같은 증세를 나타낸 두 환자. 그들은 모두 20대 후반의 여자들로 혼자 살고 있었다. 그중 한 명은 실종되었고, 나머지 한 명은 교통사고로 죽고 말았다. 문득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안재성은 세차게 머리를 흔들고는 경찰서를 급히 빠져나왔다.

안재성이 경찰서를 나와 찾은 곳은 여자가 교통사고를 당한 국도변이었다. 깨진 유리병 같은 햇살이 아스팔트를 하얗게 뒤덮고 있었다. 국도는 2차선이었고, 차들은 빠른 속도로 도로 위를 질주했다.

김 기자는 얼마동안 그 차들을 바라보았다. 주위의 인가는 많지 않았다. 사고가 난 지점에서 20미터 정도 떨어진 지점에 작은 구멍가게가 하나 보였다. 그 가게에 가서 드링크제를 한 병 사 마시며 주인에게 물었다. 주인은 중늙은이의 여자였다.

"며칠 전에 요 앞에서 교통사고 난 거 기억하시죠?"
"기억 나고 말고. 구급차가 오고 난리가 났었지."
"혹시 사고 당한 여자를 보신 적 있습니까?"
"나도 처음엔 몰랐는데, 나중에 사고가 나고 나서야 내가 봤던 여자가 그 여자라는 걸 알았어요."

안재성의 눈이 크게 벌어졌다.
"그 여자를 만나 보셨다구요?"
"그럼. 가게문을 닫으려는데 어떤 젊은 여자가 걸어 오더라구. 여자는 한참 망설이다가 내게 어디에 가면 사슴을 볼 수 있냐고 물었어요."

"사슴이라고요?"
"분명히 사슴이라고 그랬어. 내가 여기는 사슴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하니깐 풀이 죽었는지 저쪽 길로 걸어갔어. 그리고 얼마 뒤에 사고가 났나봐요."

"사슴이라…."
안재성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가게문을 나섰다. 햇살은 여전히 뜨거운 열기로 도로 위에 쏟아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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