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상상! 만약 수능이 사라진다면?

수험생들에게 추천하고픈, 무라카미 류 <69>

등록 2003.08.11 08:02수정 2003.08.11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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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이 80여 일 남은 지금 고3 수험생들은 입시 준비가 한창이다. 여름의 뜨거운 햇살아래, 11월 6일의 수능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이들. 다른 이들처럼 피서다 야영이다 뛰어 놀고 싶은 심정이겠지만 고3, 그들은 주말의 늦은 오후에도 자율학습 때문에 학교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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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진성

괜히 마음이 들뜨는 여름방학, 입시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중압감은 고3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교실에서는 친구들과의 경쟁관계, 집에서는 아침식사도 제대로 못하는 시간 부족과 정서적 스트레스, 하지만 이런 것들을 털어버릴 만한 배출구는 그들에게 없다.


이런 시점에 건강한 상상을 할 수 있는 책 한 권을 읽는 것은 어떨까? 무라카미 류의 <69>는 우리를 이런 건강한 상상의 세계로 빠져들게 하는 책이다. 대학능력 시험이 갑자기 중단된다면? 수험생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꿈꾸어 봤을 상상, 하지만 그것은 무라카미 류의 <69> 속에선 상상이 아닌 현실이었다.

그렇다. <69>는 상상으로 써진 것이 아닌, 무라카미 류의 자전적 소설이다. 즉 무라카미 류가 말하는 1969년도의 일본은 이러한 아이러니한 사회 현실 속에서 존재하고 있었다. 그해 일본 도쿄대학이 입시를 중단했다. 그렇게 <69>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즐거운 상상! 공부 이외에 다른 것이, 학생들을 감싼다면?

69년 일본에선 공부 잘하는 아이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적어도 사회 분위기는 그랬다. 사회는 학생들에게 공부를 강요하지 않았다. 한국의 수험생들이 듣는다면 깜짝 놀라고도 남을 일이다. 하지만 69년, 일본의 학생들에게 이것은 결코 행복한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공부 이외에 다른 것이 학생들을 감싼다는 것, 그들은 공부대신 체제와 사상의 강요를 당해야 했다. 베트남 전쟁의 여파, 전학력의 <미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 호> 반대시위, 이런 체제와 사상의 반대는 유행처럼 그들을 휩쓸었다.


하지만 주인공 겐짱의 눈에 이런 모습들은 우스꽝스럽게 보이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가령 학교에 존재하는 3개의 반체제파를 놀자파, 정치파, 록파로 정의하고 오토바이파, 우파는 학생들 사이에 너무 소수라 힘도 쓰지 못한다는, 그만의 적나라한 풍자로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세상의 눈에 비친 그는,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겉도는 문제아의 전형이었다. 마치 대한민국 교육현실에서 하라는 자율학습은 안하고, 어디 숨어 이성친구나 만나고 있을 그런 녀석들과 흡사하다. 굳이 다른 점이 있다면 사회 문제아의 전형이 다르다는 점이다. <69>에선 체제에 대한 비판을 일삼는 이들이, 대한민국 교육현실에선 공부를 못하는 이들이 소위 세상에서 말하는 문제아였다는 점이다.


우리는 우리만의 시각으로 현실을 보고 있을까?

학벌주의가 만연해 있는 대한민국 교육현실에서 수험생들은 입시가 자신들의 꿈을 이룰 희망의 출구라 굳게 믿고 있다. 하지만 소위 말하는 일류대학 병, 그래서 행해지는 재수, 삼수 그러한 교육현실에 더욱 수험생들은 더욱 궁지로 내몰리고 있는 듯하다.

이런 현실 속에서 과연 우리는, 우리의 학생들은 자신들만의 시각으로 현실을 보고 있을까? 단지 사회에서 요구하는 학벌에 아무런 목적 의식 없이 끌려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 생긴다. 지금의 수험생들에게서 이런 불안감을 느끼는 것은 내가 그런 모순 속에서 고민하고 실패한 전형적 케이스였기 때문이다.

내게 사회에서 강요하고 주입한 학벌의 의미는 의식하고 싶지 않아도 의식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고등학교 내내 문학특기자 활동을 하면서도 그런 불안감은 가시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결국 아무런 목적의식 없던 나는 실패를 맛보았다.

그런 반성과 후회를 다른 이들이 반복하는 것이 걱정된다. 이런 우리사회의 공기는 69년 일본에서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다. <69>에서의 사회분위기는 더욱 벗어나기 힘든 것이었다. 목적 의식 없던 바리게이드 봉쇄 등의 시대 조류를 따르지 않으면 안되었던 상황, 그런 그때 겐짱이 바라보던 현실은 달랐다.

레이디 제인! 그리고 페스티벌! 그의 꿈을 이루다

69년 사세보북고 바리게이드 봉쇄 사건은 NHK와 NBC 지방 톱 뉴스로 방영되었다. 그 당시 사회의 눈으로 비쳐진 이 사건은 단지 한 학생단체의 시위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회의 이러한 의심과 다르게 겐짱이 바리게이드로 학교를 봉쇄한 이유는 단 하나였다. 바로 그가 좋아하는 마츠이 카즈코, 레이디 제인이라 불리는 그녀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였다.

그에게 바리게이드 봉쇄는 사상도 그리고 단지 자신의 표출도 아닌,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한 수단이었던 것이다. 이것이 우리에게 전해지는 메시지는 극명하다. 그리고 작가 무라카미 류가 우리에게 던지려 했던 메시지도 확연히 드러난다. 무의식적인 수단의 공유.

지금 우리 그리고 우리의 수험생들도 무의식적인 수단에 너무 집착하고 연연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학벌이라는 것이 열풍처럼 번지는 우리 교육의 현실은 그런 의문을 갖게 한다.

결국 겐짱의 이런 바리케이드 봉쇄는 들통나고, 그는 학교의 처벌을 받는다. 이것은 결코 그가 원하던 것이 아니었다. 그는 단지 놀이를 했던 것 뿐이었다. 하지만 그는 처벌을 받고 난 후에야, 다시 학교로 복귀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학교로 복귀한 그가 했던 일은 페스티벌, 그토록 그가 바라던 페스티벌의 개최였다. 페스티벌의 개최는 바리게이드 봉쇄처럼 많은 이들의 반대도 그리고 고민도 또 씁쓸함도 없었다.

페스티벌은 그에게 있어 꿈을 이루는 희망 그 자체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 꿈을 이루고 자신만의 페스티벌을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 고3은 어떤 위치에 존재하는가? 그리고 불안한 미래에 대해 당당히 이겨낼 자신감은 있는가?

그런 의미에서 69와 함께 떠난 상상은 수험생들의 정신을 더욱 살찌우게 할 것이라 생각한다. 수능은 고3들에게 미래의 모든 것을 결정짓는 자유이용권 같은 것이 아니다. 자신의 미래를 위해 생각하고 이용할 수 있는 하나의 수단일 것이다. 레이디 제인을 위해 바리게이드를 봉쇄했던 겐짱처럼 말이다.

페스티벌을 만들어 냈던 겐짱처럼, 고3수험생들도 자신의 미래에 대한 상상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그러한 상상은 미래를 짊어지고 나갈 청소년들의 정신을 더욱 건강하게 할 테니 말이다.

69

무라카미 류 지음, 양억관 옮김,
작가정신,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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