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생활은 지옥, 추석뒤 자진출두"

[인터뷰] 1년4개월째 수배 차수련 전 보건의료노조 위원장

등록 2003.08.29 17:39수정 2003.09.05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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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윤성효

"밥을 지어 아이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싶어요."

주5일제, 화물연대 투쟁 등 노동계의 현안이 적지 않은 가운데 듣기나름으로는 이런 한가한(?) 고민을 하고 있는 한 노동운동가가 있다. 차수련(44) 전 전국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이 바로 그 사람이다. 그는 현재 경찰의 수배를 받고 있는 몸이어서 1년4개월 넘게 집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차 전 위원장은 조만간 검찰에 자진 출두할 예정이다. 그는 "수배생활이 오히려 감옥생활보다 못하다"면서 "건강 회복을 위해 출두를 미루다보니 시간만 잡아먹는다"는 생각을 하게됐다. 최근 권영길 민주노동당 대표와 단병호 민주노총 위원장이 강금실 법무부장관을 만나 수배 노동자들에 대한 배려를 건의하면서 차 전 위원장을 언급한 바도 있다.

그는 지난 2002년 5월 23일 산별 총파업으로 체포영장이 발부된 상태다. 당시 서울 명동성당에서 농성중 20일간 물 한모금도 마시지 않는 단식농성을 벌이는 등 강력투쟁을 벌였다.

그러다 올해 1월 명동성당을 나온 이후 떠돌아 다니는 수배생활을 하고 있다. 먹고 자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무엇보다 오랜 단식으로 몸이 많이 망가진 상태다. 그러나 수배자 신분이라 입원해서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어 그의 건강상태가 우려되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최근 차 전 위원장과 두 차례 인터뷰를 가졌다. 지난 7월 경남 창원 소재 모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1차 인터뷰를 가졌으며, 지난 8월 26일 서울 근교에서 2차 인터뷰를 추가로 가졌다.

추석 이후 검찰 자진출두를 각오하고 있는 차 전 위원장을 만나 1년 넘은 수배생활의 심경과 건강상태, 그리고 노무현 정권의 노동정책 등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다음은 차 전 위원장과 나눈 대화내용을 간추린 것이다.


"완전 고립생활 그 자체, 건강도 회복되지 못해... 출두 각오"

- 현재 제일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밥을 지어 아이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싶다."


- 수배생활로 건강을 많이 해친 것으로 들었다. 요즘 건강 상태는?
"최근 한방치료를 위해 3주 가량 입원해 있다가 나왔다. 혈압이 떨어져 불안하다. 매일 운동하고 침 맞고 부항을 뜨기도 한다."

- 수배생활이 상당히 오래 지속되고 있다고 보여진다.
"하루종일 말 한 마디도 안 할 때가 있다. 완전히 고립생활 그 자체다. 사람 얼굴 못 볼 때가 많다. 더불어 산다는 게 필요하다는 걸 절실히 느낀다. 수배생활이 감옥에 가 있는 것보다 더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 가족들과 너무 오래 떨어져 지내다보니 힘들 것 같은데...
"1년4개월 동안 집에 들어가지를 못했다. 애들과도 함께 지내지 못했다. 애들이 커가면서 시댁이며 친정에도 맡길 형편이 되지 못했다. 한 두 달도 아니고 장기가 되다보니 애들이 더 걱정이었다. 시부모도 칠순이 넘었고, 남편이 장남이라 모셔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해 죄스럽다. 그래서 스트레스를 더 받는다. 한 마디로 말해 지금 생활이 지옥이다.

아이들 생각하면 가슴이 쓰리다. 사람의 가슴이 찢어진다고 하는 말의 뜻을 이해할 것 같다. 언제 한번은 남편이 출장을 가고, 아들도 다른 데 가 있어 집에는 딸 아이 혼자 있었는데, 저는 노조 회의를 밤새 했다. 새벽에 보니 딸애가 휴대전화에 음성을 여섯 번이나 남겼다. 마지막에는 '엄마 제발 전화 좀 받아라'며 울고 있었다. 우리 딸애가 얼마나 답답했는지, 오죽하면 대통령한테 편지를 쓰겠다고 한다. 아들도 악몽을 꿀 때가 많다고 들었다. 어머니가 붙잡혀 가는 꿈을 꾼다는 거다. 아이들도 정서적으로 불안해하는 것 같아 마음이 정말 아프다."

"딸애가 오죽했으면 대통령한테 편지를 쓴다고..."

- 수배생활중 경찰한테 잡힐만한 상황은 없었는지?
"지난번에 명동성당에 들어가기 전에는 경찰에서 검거를 하면 2계급 특진이 내려져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현역이 아니다. 워낙 얼굴이 알려져 있어 조심하기도 한다. 명동성당에서 나온 뒤 고립된 생활을 하고 있다. 집에도 못 가고, 남편도 겨우 전화통화만 한다."

- 경찰에 자진출두할 생각은 없나?
"그동안 수배생활은 나빠진 건강을 돌보기 위해서였다. (수배생활이)길어지면서 시간만 갉아먹는다는 생각도 든다. 이 생활을 정리하고 형을 살고 나와서 치료를 받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을 한다. 현재 한약을 먹고 있는데 좀 더 먹어야 한다. 감옥에 들어가면 건강을 추스르지 못할 것이다. 남아있는 약을 다 먹고 추석 지나서 시기를 봐서 자진출두하겠다."

- 노무현 정권 출범 6개월이 지났다. 노 정권의 노동정책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노무현 대통령은 국회의원 시절 다른 의원들보다 노동현장을 발로 뛰어 다니면서 관심을 가졌다. 89년 한양대병원사태 때도 현장을 방문하고, 가압류와 징계 문제에 대해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현장을 많이 다녔기에 역대 다른 대통령과 다를 것이라고 애초에 생각했다. 올해 초 두산중공업 배달호씨 분신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을 보면서 기대를 가지기도 했다.

노-사 관계에 있어 정부의 조정역할이 중요한데, 철도파업과 화물연대 파업과 관련한 처리를 보면서 걱정이 된다. '선복귀 후협상'이라는 주장은 노조에 백기를 들라는 말이다. 노사문제는 정부가 끈기와 인내를 갖고 타결되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데, 정부의 태도는 협상을 안 하겠다는 것이다. 이전과 다르지 않다고 본다."

"노 대통령, 노조 도덕성 문제 삼는 건 단편적"

- 노 대통령이 일부 노조의 도덕성을 문제삼는 발언을 하기도 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어느 집단이나 정도의 차이가 있듯이 부도덕한 면은 있다. 그래도 노조는 우리 사회에서 상대적으로 나은 편이다. 그나마 노동운동을 한 사람들은 도덕성이 강하다. 일부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겠지만, 전부로 보면 안 된다. 대통령이 단편적인 문제를 갖고 전국민을 상대로 언급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 민주노총의 투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지난 3년간 투쟁을 보면, 경직된 면도 있다. 무리하게 총파업을 강행한 측면도 있다. 충분한 방향 설정과 치밀한 전략을 짜야하는데 아쉽다. 가령 김대중 정권 퇴진 운동을 한 적이 있는데, 당시에도 옳지 않다고 지적했다. 시도 때도 없이 퇴진운동으로 갈 수는 없었다. 노동운동은 투쟁 속에서 깨질 수 있다는 말이 있는데, 그렇지 않기 위해서는 지도자가 전략과 전술을 잘 짜야 한다."

"16년간 앞만 보고 왔다, 이젠 쉬고 싶다"

- 곧 민주노총 위원장 선거가 있는데, 일부에서는 선거 출마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본인 입장은?
"현재로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다. 보건의료노조 위원장 출마도 개인적으로 원하지 않았으나 주변에 떠밀렸다. 남편이 말리기도 했고, 애들이 울기까지 했다. 선거가 다가오니 입에 오르내리는 모양인데, 전혀 생각이 없다. 역량도 안되고, 건강도 나쁘며 지쳤다. 16년간 앞만 보고 미친 듯이 왔는데 이제 저 자신을 돌아볼 시간이 필요하다."

- 내년 총선에서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후보로 출마할 가능성도 있다고 하는데 본인 입장은?
"민주노동당의 비례대표는 그동안 노동운동을 위해 싸워온 선배들이 해야 한다. 누구든 사람이 욕심을 가지면 망한다. 운동도 자리에 연연하면 안 된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는 꼭 필요하다."

- 2002년 병원 파업으로 수배가 되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2002년 병원 파업의 주요 쟁점은 의료의 공공성 강화와 직권중재 철폐였다. 헌법재판소 상당수 재판관들도 직권중재의 위헌성을 지적하고 있다. 국제노동기구(ILO)도 직권중재를 시정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병원의 공공성 확보가 시급하다. 올바른 의료개혁이 되어야 한다. 공공성이 확보되지 않다보니 병원비의 환자 부담이 늘어나고, 노동자들의 임금도 박하다. 제약회사와 검은 거래가 빚어지기도 한다. 국민의 교육과 건강을 지켜나가는데 있어 1차적 책임은 국가가 져야 한다. 이런 투쟁은 계속되어야 한다."

- 그간 해고와 수배, 구속 경력으로 보면 현 노동계에서 첫 손가락에 꼽히는 것으로 보이는데...
"단병호 위원장이 가장 많이 구속되었고, 그 다음으로 보면 된다. 헌법에는 노동3권을 보장한다고 해놓고있지만, 이 땅에서 과연 노동3권이 지켜지고 있는지 의문이다. 파업을 범죄시하고, 집단이기주의로 몰아가는 바람에 노동자들이 감옥행을 간다. 한 해 3분의 2 가량을 집에 들어가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이 땅에서 아직도 노동운동을 하면 감옥에 가야한다는 각오를 해야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 얼마전 권영길 민주노동당 대표가 강금실 법무부장관을 면담한 자리에서 수배 노동자에 대한 선처를 호소하며 차 전 위원장을 언급한 것으로 안다. 현재 검찰은 어떤 입장인가?
"변호사를 통해 선처를 호소해봤다. 검찰 입장은 형평성의 문제도 있고 해서 선처를 할 생각이 없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정치인과 유명 종교인들은 몸이 조금만 아파도 불구속처분을 내린다. 교도소에 가 보면 정말 생활이 힘든 수형자들이 병보석을 신청해도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골병이 든 수형자들이 많다. 법이 과연 형평의 잣대를 대는지 의문이다. 각오하고 있다."

'철의 여인' '명성황후'... 네 차례 구속에 두 차례 해고
노동운동계의 여걸, 차수련 전 위원장은 누구?

▲ 차수련 전 위원장
ⓒ오마이뉴스 윤성효
그녀에겐 '철의 여인' '명성황후' 등의 별명이 붙어 있다. 지금까지 네차례 구속에 두차례 해고를 당했다. 구속과 해고 등의 경력이 화려한만큼 그녀는 노동 현장에서 투쟁해 왔다. 남자도 아닌 여자로서 이같은 경력이 있으니 별명이 헛말은 아닌 셈이다.

차 전 위원장은 전태일 노동상(2001년) 불교인권상(2002년)을 받았으며, 2001년 민주노총 부위원장에 당선되었다. 그녀는 한양대를 나와 83년 한양대병원에 입사, 87년 노조 위원장과 초대 병노협 사무국장을 지냈다.

그녀는 89년 파업으로 단일호봉제를 쟁취한 뒤 처음으로 구속됐다. 이듬해 전노협 관련 업무조사 거부와 서울대병원 3자 개입으로 수배·해고됐으며 91년 2차 구속됐다. 94년 해고자 신분으로 한양대의료원 5대 위원장에 당선되었고, 97년 파업투쟁으로 9일간 금식단식 끝에 3차 구속됐다.

2000년 보건의료노조 첫 직선 위원장에 당선, 그해 5월 민주노총 총파업 주도 혐의로 명동성당에서 농성하다 자진출두해 구속되었다. 2000년 11월 집행유예로 석방되었으며, 2002년 5월 산별 총파업으로 체포영장이 발부되어 있다.

차 전 위원장은 현재 건강 상태가 나쁘다. 오랜 단식으로 후유증을 앓고 있다. 심장기능상실(심부전)과 식도염을 동반한 위-식도역류질환, 저혈압 등이 그녀에게 붙어 있는 병명이다. 그녀를 치료했던 의사들은 "지속적인 투약치료와 안정가료가 필요하다"고 한다. / 윤성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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