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하나가 학문연구를 위해 존재하는 독일 대학도시 튀빙엔에 조각가 칼 헨니히 제만이 빗어 논 청동상 "언쟁(1979년 작)" 유병찬
1. 현대생활의 복잡성과 획일성으로 인해 자기 얼굴을 잃어버린 인문학
오늘날 우리는 머리카락처럼 무성한 뱀 머리들을 제각각 사방팔방으로 어지럽게 흔들면서도 결국 하나의 먹거리를 향해 돌진하는 괴물처럼 살고 있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생활양식이 복잡해지고 분업화되어 모든 사회 집단들과 그 구성원들이 제각각 자신들의 영역을 차지하고서는 앞다투어 제 목소리 내기에 바쁘지만, 기실 전문화라는 미명의 폐쇄성에 몸을 북박은 채 미국식 자본주의가 길들여 놓은 욕망과 쾌락충족이라는 절대적 삶의 목표를 향해 일제히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인문학 위기의 근본적 원인이 있다. 인간의 삶에 대해 말해야할 인문학자들은 현대생활의 복잡성으로 인해 그 연구대상인 인간을 그 전체 모습에서 일목요연하게 파악조차 하지 못한 채 그저 자신들의 울타리 속에 웅크려 앉아 세상사람들이 알아듣지도 못하는 이론을 텅 빈 예배당에서 설교하듯 반복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복마전이 된 대학사회를 지배하는 절대유일의 시장적 가치에 내 몰리거나 휩쓸려 들어가, 인간 삶이 지닌 다양한 뜻과 길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볼 기회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제 할 일을 못하고 있는데 누가 그들을 지원하고 따르겠는가? 아무런 대책도 없이 붕괴될 날만을 기다리며 서서히 쓰러져가고 있는 낡은 건물 같은 인문학을 되살릴 수는 없는 건가? 차분히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을 응시하는 순간 인문학은 다시 제 모습을 추스를 수 있다.
2.인간의 구체적 삶을 보이지 않은 영역까지 살펴가며 고민하는 것이 인문학인 한, 인문학자는 철학자이며 광장에 선 논객
인문학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삶에 대해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도 고려하여 깊이 생각하는 학문이다. 모든 여타학문과 마찬가지로 인문학도 인간의 생활현장에 대한 실천적 관심에서 생긴 것이다. 인간의 구체적 삶을 의미나 목표 가치 등 눈에 보이지 않은 영역까지 염두에 두고 고민하는 것이 인문학이기에 모든 인문학은 동시에 철학이기도 하다. 그리고 진지한 고민 끝에 끌어낸 대답들을 혼자만 아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세상을 살아가는 다른 사람에게 알려주고 그러면서 반대된 생각의 잘못들을 지적해 나간다는 점에서 모든 철학자들은 또한 논객이기도 하다.
학문이 오늘날처럼 복잡하고 세분화되기 이전인 고대희랍시대에는 인문학의 이런 자기 정체성이 뚜렷했다. 소피스트 편에서 세상을 보건 소크라테스 편에서 세상을 보건간에 그들은 인간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 라는 인문학의 핵심문제를 가지고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에 찾아가 대화와 논쟁을 했던 것이다.
현실세계를 부정하고 이데아라는 관념적 세계로 도피했다고 비난받는 플라톤 역시 이론적 관심이 아닌 실천을 위한 필요에서 철학을 했다. 실천학으로서의 철학을 여기저기 삶의 현장을 찾아다니며 사람들과의 부대낌 속에서 해나갔던 것이다. 이렇게 현장을 찾아 다니던 중 그는 한때 시라쿠스의 전제군주 디오니시오스 1세의 정치적 음모에 빠져 노예가 되기도 했다. 이 때 그를 사서 석방시켜준 아니케리스에게 갚아주려던 돈으로 기원전 387년에 세웠다는 아카데미아에서는 오늘날의 대학들처럼 논리적이고 지성적인 전문교육에 중점을 두었던 것이 아니라 주로 인간지도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닌 인물양성에 전념했다. 그리하여 공공생활을 위한 새로운 자극과 방향설정이 항상 이 유럽 최초의 대학인 아카데미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인문학자들이 그들의 눈인 철학정신을 상실하고, 논객으로서 저자거리에 서지 못한 채 서재에만 파묻혀 지내는 백면서생이 된 것은 역설적이게도 최초의 전문적 철학자라고 일컬어지는 18세기 칸트 이후부터이다. 흔히들 이 때부터 철학이 오늘날과 같은 학과 특성을 지닐 수 있게 되었고, 여타 개별학문들이 철학으로부터 갈라져 나가 전문화되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달리 말해 이것은 철학의 고립을 뜻하는 동시에 여타 개별학문들이 인간 삶에 대한 총체적이고 다차원적인 눈으로 제각각의 영역들을 인간의 구체적 삶과 연결시켜 파악하려는 철학적 시선을 상실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교롭게도 이 시기는 서구 자본주의가 본격적으로 체계를 갖추기 시작하여 제국주의라는 정치이데올로기를 앞세워 전 세계 사람들의 삶의 방식과 목표를 획일화하기 시작한 때이기도 하다. 시장적 가치가 절대화되는 시대에 인간의 삶에 대해 근본적으로 묻는 것은 반동이다. 개별학문들은 자신들이 만들어가고 있는 시간이 지금 도대체 몇 시를 가르치는 지도 모르고 움직이는 시계부품들처럼 그저 그들의 위치에서 기능적 작업만을 수행하는 게 미덕이 된다. 기능적 작업에 전념하거나 그런 작업을 수호하는 학문들이 당연히 떠받들어지는 것이다. 그리하여 기능적 학문에 대한 이런 떠받들음은 이들에게 인간 삶의 의미와 방향마저 재단하게 만드니, 인문정신이 결여된 소수 기능적 학문이 드디어 인문학이 해야할 일을 덮어버리고 만다.
3.미국의 이라크 살육약탈전쟁은 세상사와 고립된 인문학의 처절한 패배
실천학으로서의 철학과 철학으로서의 인문학은 세상사에 눈을 감고 책 속에 파묻히는 순간 스스로 세상으로부터 멀어진다. 인문학은 인간들이 구체적으로 당면한 문제들을 움켜잡으면서도 당대를 지배하는 획일화된 세계관에 함께 휩쓸리지 않고 맞서야 한다. 그렇게 초연히 맞서서 문제를 차근차근 그 뿌리까지 캐 보여주며 인간으로서 과연 어떤 방향으로 살아가는 것이 값진 것인지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인문학이 이런 역할을 제대로 수행 못할 때마다 인문학은 스스로 작업영역을 잃고 세상 사람들의 냉소의 대상이 됨을 우리는 미국의 이라크 살육약탈전쟁 때 보았다. 정의는 강자의 한낱 전리품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고, 자신의 욕망을 위해 다른 이를 죽이거나 억압해서는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게 아니라고 가르쳐 오던 인문학자들은 가공할 폭력을 안하무인격으로 휘둘러 대는 미국의 살육약탈전쟁 앞에서 무기력하기만 했다. 미국의 가면을 벗겨내며 비분강개해서 부시행정부를 비난한 이들도 있었으나, 미국 신보수주의자들이 치밀하게 준비해 노골적으로 들이미는 약육강식이라는 냉혹한 생존방식에 대해 그것이 어째서 잘 못된 것인지 시원스럽게 파헤쳐 물리치며 인간 삶의 또 다른 근본원리를 제시해 주는 이는 없었다.
인간은 남들 보기에 최상의 생존조건에서도 마음가짐에 따라 스스로 생명을 끊을 수도 있고 부귀영화를 버리고 기꺼이 가시밭길을 걸어 들어갈 수도 있는 사유존재이다. 대개 본능을 쫓아 살면서도 그런 자신을 돌아보며 발걸음을 정하는 존재인 것이다. 미국의 만행을 지켜보면서 사람들은 단지 분노하기만 한 것이 아니다. 어째서 정글의 법칙이 인간 삶의 법칙이 될 수 없는지에 대해서 네오콘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조목조목 반박하며 누군가 밝혀주기를 고대했다.
머리 속을 맴돌던 이런 지적 요구는 윤리적 옳고 그름의 문제를 넘어서 도대체 실제로 인간이란 어떤 존재이며 어떤 방식으로 살고 있는가하는 근본적 물음에 닿아 있었다. 그러나 이 땅뿐만이 아니라 전세계의 모든 인문학자 중 그 누구도 이런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
인문학이 이렇듯 할말을 해야 할 때 입을 굳게 다물자 사람들은 입바른 소리로 회자되던 인문적 가치의 공허함에 허탈해했다. 여전히 네오콘을 비난하면서도 냉담해진 사람들은 결국 그들의 주장에 암묵적으로 동의하기 시작했다.
이런 분위기는 드디어 일본제국주의 침탈사까지도 인터넷 게시판 여기저기서 당당히 정당화해보려는 시도들로 표현되기도 했다. 인간의 존엄성을 경전처럼 주절거리던 인문학의 처절한 패배요 망신이었다.
세분화와 전문성이라는 미명 아래 고립되어 있으면서 미국식 자본주의가 그어놓은 단 하나의 선을 따라 움직이던 인문학의 자업자득이었다.
4.인터넷은 세계로 트인 21세기 아크로폴리스 광장
넓게 트인 데로 나와 전체를 조망해 볼 수 있어야만 세상에 대한 다양한 생각이 인다. 동서를 막론하고 고대철학자들이 오늘날까지도 설득력을 지닌 다양한 사상들을 빚을 수 있었던 것도 그들이 논객으로서 광장으로 나와 구체적 삶의 현장 속에서 부대끼며 생각을 다듬었기 때문이다. 세계 곳곳에 실핏줄처럼 닿아 있는 인터넷은 이제 인문학자들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 인터넷은 세계로 트인 21세기 아크로폴리스 광장인 것이다. 거기서 인문학자는 한 사람의 논객으로서 24시간 사방팔방으로 열린 토론공간에 내 던져진다. 이로써 이론에만 능한 소수의 지식인들로부터가 아니라 삶의 현장에 있는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철저히 검증받을 수 있게 됐으니, 인문학자가 세상 보는 눈을 키우며 강하게 커가기에 딱 좋은 환경 마련된 것이다.
연구실에서 가다듬은 삶이 관통된 생각들을 들고 나와 세상 한복판에 서서 끈질기고 치열한 토론을 전개하며 인문정신을 풍성하게 하고 나아가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줄 용기를 지닌 자 누구인가! 조리 있게 말하는 훈련조차 안된 상태에서 최고학부 물리학 교수라는 찬란한 명함을 휘두르며 국제관계와 남북문제를 단칼에 베려하는 이나, 영문학을 전공했으면서도 막무가내로 동양철학자를 밀쳐내며 중국고전을 제대로 해석해 보겠다고 호언장담해 놓고선 슬그머니 꼬리를 감추는 그런 돈키호테들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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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객과 철인-인문학 위기에 대한 인간학적 진단과 처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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