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 '역고소', 어떻게 보십니까

[取중眞담] 두 대학의 성폭력 사건과 가해 교수들의 '반란'

등록 2003.08.29 21:11수정 2003.09.01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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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9일 오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교육장에서 '성폭력 역고소 공대위 대구특위' 주최로 열린 <성폭력 가해자에 의한 대구 명예훼손 재판 분석토론회>.
▲지난 29일 오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교육장에서 '성폭력 역고소 공대위 대구특위' 주최로 열린 <성폭력 가해자에 의한 대구 명예훼손 재판 분석토론회>. 오마이뉴스 김지은
여기 두 건의 교수 성폭력 사건이 있습니다. 한 건은 자신의 조교를, 다른 하나는 자신의 제자를 교수가 각각 강간·성추행한 사건입니다.

그런데 이 두 사건의 해결에 나선 여성단체가 두 가해 교수로부터 고소를 당하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고소를 당한 이들은 대구여성의전화(이하 대구여전)의 전 공동대표 두 사람입니다.

대구여전의 전 공동대표들은 지난 2000년 5월과 7월 경북의 경일대와 경북대에서 벌어진 교수 성폭력 사건과 관련해 이 사건의 가해 교수들로부터 명예훼손으로 '역고소'를 당했습니다.

경일대 사건의 가해자인 K 교수는 지난 2001년 대구고등법원에 의해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의 실형을 받은 후 상고했으나 기각됐고, 경북대 사건의 가해자인 L 교수는 지난 2000년 9월 구속기소 됐으나 피해자와의 합의로 고소가 취소돼 같은 해 10월 대구지법에서 공소기각 판결을 받았습니다. 또한 L 교수는 지난 2001년 경북대 자체의 징계위원회의 결정에 의해 해임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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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 교수와 L 교수의 '혐의'는 어떤 것이었을까요?

현재 두 교수에 의한 역고소 사건의 변호 대리인을 맡고 있는 이춘희(법무법인 삼일) 변호사에 따르면 "K 교수 사건은 이 교수가 조교 A씨를 경주로 유인해 억지로 독한 고량주를 마시도록 해 정신을 잃게 한 후 A씨를 호텔 객실로 데려가 강간한 사건"입니다. 당시 A씨는 약 7시간 동안 정신을 잃었고 눈을 떠보니 이미 K 교수가 성행위를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L 교수의 경우, 전형적인 제자 성추행 사건입니다. "L 교수가 자신의 제자였던 B씨를 자신의 연구실에서 강제로 껴안고 성기를 만지게 하는 등 강제로 추행했다"는 것이 이 변호사의 설명입니다.


대구여전은 두건의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피해자들을 상담하는 등 피해자에게 도움을 주는 한편 성명서 발표 및 재판부에 진정서를 제출하는 등의 활동을 펼쳤습니다.

그런데 K 교수와 L 교수는 당시 대구여전의 공동대표 두 명을 지난 2001년 8월 명예훼손으로 고소했습니다. 대구여전이 법원의 판결이 있기도 전에 실명(L 교수)과 혐의사실을 인터넷 홈페이지와 소식지 등에 게재해 배포해 자신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것이 이들 교수의 주장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것은 법원의 판결입니다. 대구지법은 지난 2002년 10월 17일 두 사건 모두에 대해 공소사실을 인정, 대구여전에 벌금 200만원의 형을 선고했습니다.

이에 대해 대구여전측에서는 1심 판결을 인정할 수 없다며 항소했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항소심에서도 또다시 대구여전이 유죄임을 인정하고 초범인 점 등을 참작해 형을 줄여 벌금 100만원 형을 선고했습니다.

이러한 판결은 대구여전을 비롯한 여성단체 사회에서는 일종의 '충격'이었습니다. 대구여전의 전 대표들은 이 건에 대해 상고해 현재 대법원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누구에게 얘기하고 싶어도 누구를 믿을지 모를 수도 있습니다. 누가 진정으로 귀를 기울여 줄 것인가? 비난하지도 심판하지도 않을 사람은 누구인가? 다시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습니다. 도움이 될 사람도 필요할 것입니다.

여성단체는 당신이 최선의 방법으로 감정을 이겨나가고 결정할 수 있도록 도와 줄 것입니다. 당신이 그들을 필요로 할 때 그들은 언제든지 당신을 도울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홈페이지(www.sisters.or.kr)에 적힌 글입니다. 여기에서처럼 성폭력 피해자에게 여성단체는 소중한 동반자이자 지지자가 됩니다. 성폭력을 당했다는 피해 사실을 공개하기 조차 어려운 현실에서 여성단체들은 피해자가 앞으로 해 나가야할 법적·의료적·심리적 대처에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여성단체들은 그간 보수도 바라지 않은 채 우리 사회의 올바른 성문화 정착이라는 '공익'을 위해 일해왔습니다. 이번 '역고소' 사건으로 현장에서 성폭력 피해자들을 돕고 있는 여성단체 활동가들은 무척 격앙돼있는 상태입니다.

또한 이번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결의 파장도 무시 못할 것입니다. 이번 판결이 일종의 '선례'로 남아 성폭력 범죄자들이 역고소하는 사태가 물밀 듯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대법원의 판결을 앞두고 한국여성의전화연합(여전)을 비롯한 여성단체들은 '성폭력 역고소 공동대책위'(이하 역고소 공대위) 및 '성폭력 역고소 공대위 대구특위'(이하 대구특위)를 구성해 대책마련에 나섰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29일 오후 2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층 교육장에서 열린 '성폭력 가해자에 의한 대구 명예 훼손 재판 분석토론회'는 이번 역고소 사건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에 대한 깊은 논의가 벌어진 의미 있는 자리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상자기사 참조).

법원 개혁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대법관 선임문제를 둘러싸고 전국 판사 150여명이 '인터넷 연판장'에 서명해 '연공서열 위주의 대법관 선임문제'를 지적하며 사법개혁을 촉구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대법원은 최고 법원으로서 그 판결이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만큼 그 개혁의 문제는 더이상 미룰 수 없다는 게 시민단체들의 주장이기도 합니다.

또 지난 19일 최종영 대법원장이 전효숙(52) 서울 고등법원 부장판사를 최초의 여성 헌법재판소 재판관으로 지명해 법원 개혁문제에 사회적 관심도 쏠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법원의 개혁 여부는 법원 스스로에 달려 있는 문제입니다. 그리고 그 개혁성은 '판결문'이 말해주겠지요.

이제 서론을 끝냅니다. 제가 지금부터 여러분에게 알려드릴 내용은 이번 사건을 바라보는 법원의 시각과 29일 토론회에 참석한 현장 법조인, 여성 법학자의 시각입니다(아래 두 상자 기사 참조).

독자 여러분은 이 사건에 대해 어떤 '판결'을 내리시겠습니까.

"가해교수의 실명과 피해사실 적시, 공익활동으로 볼 수 없다"
K 교수 및 L 교수의 '역고소' 사건에 대한 법원의 판결

다음은 K 교수와 L 교수의 '역고소' 사건에 대한 대구지방법원의 1심·항소심 판결 내용의 주요부분을 요약한 것이다.

<1심 판결>

▶ L 교수 사건에 대해,

"피고인들은 L 교수가 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되기도 전에 이에 대한 범죄내용을 인터넷 홈페이지나 소식지에 게재했을 뿐만 아니라, '경북대 ○○○○학과 ○○○ 교수가 제자를 성추행 하였다'고 그 신분과 실명을 명시한 점 등이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이라거나 L 교수를 비방할 목적이 없었다고 할 수는 없다"

▶ K 교수 사건에 대해,

"K 교수가 A씨를 강간한 것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K 교수가 술에 마취약을 넣어 A씨를 실신시킨 사실이 없는 이상, 피고인들(대구여전 전 공동대표 두명)이 '술에 마취약을 넣어 실신시킨 후 강간한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계획적으로 마취제를 술에 태운 것으로 보아 상습범일 가능성이 높습니다'라는 취지의 글을 게재한 것은 허위의 사실을 적시한 것이라고 판단 된다"

<항소심 판결>

▶ L 교수 사건에 대해,

"특별한 조사를 함이 없이 추행을 당한 사람의 일방적인 진술만을 기초로, L 교수가 강제 추행 혐의로 기소되기도 전에 혐의 사실을 소식지 등에 게재한 점, 당시 대부분의 언론에서는 실명을 거론하지 않았는데, 피고인들은 L 교수의 신분과 실명을 명시한 점, 범죄자에 대한 신상공개는 청소년성보호에관한법률 등 개별 법률에서 정한 적법 절차를 거쳐야 되는 점 등의 사정을 종합해 (피고인들의) 사실적시가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이라거나 L 교수를 비방할 목적이 없었다고는 할 수 없다"

▶ K 교수 사건에 대해,

"K 교수가 강간한 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강간죄에 있어 강간의 방법은 중요한 요소인데, K 교수가 술에 취한 A씨를 강간하였음에도 술에 마취약을 태워 실신시킨 후 강간하였다고 게재한 점, K 교수가 상습범일 가능성이 높다고 게재한 점등에 비추어 K 교수에 대한 사실적시는 허위의 사실이지 단순히 세부에 있어 진실과 약간 차이가 난다거나 다소 과장된 표현을 사용한 것에 불과하다고 볼 수 없다" / 정리=김지은 기자

"가해 교수는 이미 스스로 명예를 실추시켰다"
이번 사건을 바라보는 담당 변호사·여성법조인의 시각

29일 오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교육장에서 열린 토론회에서는 이춘희 변호사와 박선영 교수(가톨릭대 법학과)가 발제자로 참석했다. 이 변호사는 이 사건의 변호대리인이고, 박 교수는 법 여성학 전문가이다.

이날 발제에서 두 사람이 주요한 쟁점으로 삼았던 것은 ▲성폭력 가해자에 대한 실명 거론이 '명예훼손'이 될 수 있는지 여부 ▲피해자 진술을 토대로 한 선전물 내용의 '허위성' 여부 ▲여성단체 활동의 공익성 여부 등이다.

▲박선영 교수 ⓒ 오마이뉴스 김지은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박 교수의 주장. 박 교수는 대구여전이 성명서 등에 L 교수의 실명이나 K 교수의 혐의사실을 거론한 것은 명예훼손이 될 수 없다는 논리를 폈다. 두 사람 모두 이미 '공적 영역'에 들어와 있는 인물들이라는 것.

이에 대해 박 교수는 "L 교수의 경우 국립대에 재직 중인 교수로서 공무원이며 K 교수는 사립대에 재직 중이긴 하나 그가 사회적으로 수행하는 업무가 공익을 실현할 사람을 키워내는 지위에 있기 때문"이라며 "이러한 공인들에 의한 성폭력 사건의 공론화는 우리 사회를 위해 공익성이 인정되는 행위"라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다음과 같은 말도 덧붙였다.

"사실 이들 두 교수는 성범죄를 일으킨 그 순간 스스로 자신의 명예를 훼손시켰다. 그런데 이들이 피해자를 도운 여성단체를 오히려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는 것은 부당제소라고 생각한다. 두 교수가 본인의 유발행위를 인정하지 않은 채 '억지 고소'를 하는 것은 여성단체를 시간적·경제적·정신적으로 부당하게 괴롭히는 행위다."

▲이춘희 변호사 ⓒ 오마이뉴스 김지은
이 변호사는 이번 역고소 사건에 대한 법적 공방의 쟁점에 대해 짚었다. 이날 발제에서 이 변호사는 L 교수 사건의 경우, "대구여전이 성명서 등에 교수의 실명을 거론한 것은 성범죄의 반복성·잠재적 피해자에 대한 보호의 차원에서 볼 때 공익을 위한 활동"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K 교수 사건의 경우도 "여성단체가 피해자의 설명만을 듣고 '마취제를 술에 탔다'는 점을 성명서 등에 썼다는 점은 지극히 지엽적인 문제"라며 "중요한 것은 K 교수가 A씨의 정신을 잃게 만들어 성폭력을 행사했다는 것이지 정신을 잃게 만든 원인에 대해 따지는 것은 사소한 부분"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서는 박 교수 또한 같은 의견을 내놨다. 박 교수는 "강간 사건의 경우 강간을 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지 이와 관련된 사소한 오해나 부수적인 상황에 대한 인식차이는 미세한 부분"이라며 "명예훼손의 위법성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주요사항이 진실하면 세부사항은 다소 진실에 부합되지 않더라도 그 진실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이 우리 대법원의 오랜 입장"이라고 소개했다.

그밖에 이들 두 사람은 우리 법원의 남성 중심성과 보수성 등도 지적했다. 이들은 "여성에 대한 성폭력 범죄는 일반 범죄와는 달리 은밀하게 일어나 사건의 전모를 밝히는데도 한계가 있고 증거 수집이 어렵다는 점을 이용해 가해자는 범행을 부인하기 일쑤"라며 "범행사실을 재차 입증해야하는 피해자의 정신적·물리적 고통을 생각할 때 이들의 입장을 대변하고 도와줄 사회단체의 도움은 반드시 필요하며 해결 과정에서의 여성단체의 활동도 예방 등의 효과가 있는 공익활동으로 봐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 김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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